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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작가 : 요동치는하트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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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 - 상처 (6)
작성일 : 16-09-19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4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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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단고는 유명한 디저트 브랜드인 ‘블랙 앤 화이트’의 체인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대륙에서는 ‘태극밀원(太極蜜園)’이라고도 불리는 이 업체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 걸쳐서 수많은 아이들과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밖에는 마감 세일의 푯말이 걸려있고 점포 내는 정리가 한창이었다. 유지는 거멓게 죽어가는 얼굴로 가게에 들어섰다.

 

 골려먹은 건 좋은데 후폭풍이 너무 거세다. 어찌나 심하게 맞았는지 온몸이 쑤셨다. 매일같이 이렇게 맞다간 금강불괴까지는 못 되도 철포삼은 몸에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유미는 잔뜩 삐친 얼굴로 유지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유지의 옷깃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유미가 유지의 등을 치며 재촉했다.

 

 “주문해. 빨리.”

 

 유지는 학대당한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렸다.

 

 “히익! 그, 그만 때려용...... 너무 아파용......”

 

 유미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주먹을 들었다. 목도리가 펄럭인다.

 

 “신체빙의 대력귀.”

 

 호리호리한 몸이 근육으로 부풀어 오른다. 유지는 기겁을 하며 유미를 말렸다. 그냥 맞아도 아픈데 대력귀가 빙의된 상태에서 맞으면 진짜로 죽는다.

 

 “봐줘. 유미야. 오빠가 잘못했다.”

 

 “흥.”

 

 유미는 빙의를 해제했다. 목숨을 건진 유지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유지는 카운터로 가서 집에 가져갈 최하급 천년단고 한판과 유미의 식사를 대신할 주먹밥만한 꿀빵을 샀다.

 

 “22만원입니다~.”

 

 고작 케이크 한 판이랑 빵 한쪽 산 것 뿐인데 눈알이 튀어나오게 비싸다.

 

 유지는 곤륜산에 쳐들어가 쓸 만한 영수를 한 마리 잡아올까하는 상상을 했다. 영수 한 마리면 빚 갚는 건 껌이고 평생을 집안에만 처박혀 행복하게 놀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영수쯤 되면 인격 면에서 사람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그런 짓을 했다간 놀기는커녕 감옥에 가서 쓸쓸한 인생을 보내게 된다. 게다가 영수라는 생물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놈들 천지라 유지가 영수를 잡기보다는 영수가 유지를 잡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는 궁시렁대며 카드를 꺼내어 계산을 했다. 산뜻한 외모의 여종업원은 방실방실 웃으며 서비스로 우유와 할인권을 챙겨주었다. 유지는 종업원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또 한 대 맞았다.

 

 가게를 나와 교차로를 건너 사람이 적은 외각도로 쪽으로 빠졌다. 건물의 벽 반대편으로 시커먼 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항구와 곧장 연결되어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반강(半江)이다. 유지와 유미가 걷고 있는 길 아래에 둔치공원이 있고 가로등이 일렬로 늘어서서 강의 궤적을 밝혔다. 빛을 반사해 반짝반짝 빛나는 물줄기를 구경하며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데 꾸르륵 소리가 났다.

 유지가 유미를 돌아보았다. 유미는 주먹을 들어보였다.

 

 “보지 마.”

 

 “네, 네.”

 

 둘은 계단을 걸어 둔치로 내려갔다. 비어있는 벤치에 털썩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유미는 봉지에서 꿀빵을 꺼내어 포장을 뜯었다. 유지가 우유팩을 까서 두 손으로 유미에게 내민다.

 

 “드시죠. 아가씨.”

 

 유미는 인상을 썼다.

 

 “하지 마. 기분 나빠.”

 

 그리고선 우유를 휙 낚아챈다. 유지는 반대편을 돌아보며 입만 가지고 욕을 했다.

 

 유미는 도토리 갉아먹는 다람쥐처럼 꿀빵을 먹었다. 작은 입술로 단단하게 굳은 꿀빵의 표면을 조금씩 베어 문다. 달짝지근하고 바삭한 외피를 아작아작 씹어 먹고 부드러운 속살을 와구와구 씹어 삼켰다. 유미는 게눈 감추듯이 빵을 먹어치우고 터프하게 우유를 들이켰다. 착실하게 빵 봉지를 우유곽 안에 넣고 비닐에 던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둘은 멍하니 앉아 강변을 바라보았다.

 

 유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유지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잖아? 너무 자기 자신에 빠져들지 마. 물론 반성은 중요하지만 지나치면 그보다 더한 독이 없어. 그냥 다음부터는 안 그래야지~ 하고 잊어버려.”

 

 유미는 납득할 수 없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사람을 죽일 뻔 했는데도? 유나가 없었으면 정말 죽였을지도 몰라.”

 

 “결국 안 죽였잖아. 그거면 됐지.”

 

 태평스럽게도 말한다. 유지는 이럴 때면 마치 세상사에 초탈한 도사처럼 보였다. 유미는 한숨을 쉬었다.

 

 “유지랑 말하고 있으면 쓸데없이 고민하고 있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져.”

 

 유지는 대단한 발견을 했다는 듯 말했다.

 

 “너 바보 맞아. 이제야 알았니?”

 

 유미의 팔꿈치가 유지의 옆구리에 틀어박힌다. 유지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대화가 끊겼다. 또 다시 정적이 이어진다. 유지는 하품을 했고 유미는 뭘 생각하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무릎을 끌어올려 품에 안았다.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날 때가 있어. 처음에는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 엄마랑 아빠를 죽인 놈은 물론이고 나를 실험실에 팔아치운 고아원 놈, 실험실의 유리창 밖에서, 그리고 투기장의 벽 위에서 내가 울부짖는 모습을 비웃으며 지켜보던 놈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찢어 죽이고 싶어. 하지만 조금 지나면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죽이고 싶어져. 투기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목을 쳐 날리고 내장을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 머리가 끓어올라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어버려.”

 

 유미는 무릎을 꽉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참았지만 다음번에도 참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처음에는 그저 수라마경의 부작용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달라. 아무런 목표도 없는 폭력본능이나 살의가 아니야.”

 

 유미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떨리는 목소리에 자조와 자괴감이 묻어나왔다.

 

 “아마도 난...... 망가져버린 거겠지.”

 

 그 말을 끝으로 유미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왠지 모를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이대로라면 또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유지는 나른하게 귀를 파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멀쩡 하구만 뭐...... 요즘 미친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유미는 유지를 돌아보았다. 유지는 열손가락을 펴보였다.

 

 “지가 세계 최강이 되겠다며 맨주먹으로 지구를 부수겠다는 놈도 있고... 세계 정복한다며 난리인 녀석들은 드글드글 하지. 여자 한명 살리겠다고 백만 명 죽이기를 선언한 놈도 내가보기에는 양반이야. 있는지도 모를 이상향을 찾는답시고 지옥문이나 열고 다니는 미친 박사 자식 보다는 훨씬 낫지. 그리고 또......”

 

 그는 온 세상이 알아주는 미친놈들을 나열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그리고 손가락이 부족해지자 결론을 내린다.

 

 “어쨌든 그런 또라이들도 다 잘 먹고 잘 살아. 너 정도면 아주 아주 양호한 편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딴 쓰레기들이랑 비교되는 거 자체가 기분 나빠.”

 

 유미는 핀잔을 주었지만 그래도 잠겨있던 목소리가 조금 풀려있었다. 후아 하고 숨을 내쉬며 안고 있던 무릎을 내려놓았다.

 유지는 혼자 계속 생각을 이어가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하긴... 네가 평범한 여자애들 보다야 성격이 많이 더럽기는 하지. 퉁명스러운데다 손버릇도 나빠. 눈빛도 무슨 짐승 같아서 웬만한 남자애는 그냥 눈만 마주쳐도 오줌을 지릴 정도고. 나중에 시집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이 오빠는 정말로 걱정스럽...... 어억!”

 마구마구 주먹이 날아들었다. 유미는 새빨간 얼굴로 씩씩 거리며 유지를 때렸다.

 

 “이, 이것 봐! 사, 사람 잡네!”

 

 “그냥 죽어!”

 

 유미는 빽 소리를 치며 유지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벌떡 일어서서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지럼증이 오는지 조금 비틀거리기는 하지만 이를 악물고 꿋꿋이 발을 내딛는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지는 쯧쯧 혀를 차면서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유미는 홀로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

 

 유미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로 온몸이 땀에 절어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줄줄 흐른다. 유지 없이 스스로와 싸워가며 홀로 집에까지 걸어온 결과였다.

 

 “어서오세...... 아가씨?”

 

 반갑게 유미를 맞으려던 유나가 이상을 알아채고 달려왔다. 유나가 다가오자 유미는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품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매달려 힘겹게 숨을 쉰다. 유나는 당황했지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유미의 등을 쓸어주었다.

 

 “아가씨, 이게 무슨 일......”

 

 유나가 입을 열자 유미는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 유미는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소매로 쓱 훔치더니 무뚝뚝하게 말했다.

 

 “미안... 잠깐 샤워 좀 할게.”

 

 유미는 유나가 무언가 묻기도 전에 벽에 몸을 기대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유지가 들어왔다.

 

 유나는 옆구리를 양손으로 짚고 남편의 숨겨놓은 카드이용명세서를 발견한 아내 같은 표정으로 현관을 지키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정체불명의 위압감을 느낀 유지는 식은땀을 흘리며 들고 있던 케이크를 선반위에 올렸다.

 

 유나가 딱딱한 어투로 묻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보시죠.”

 

 “어... 그게... 그러니까......”

 

 ‘헛소리를 한다면 당장 목을 비틀어버릴 거예요.’ 라고 외치는 듯한 유나의 눈빛에 질린 유지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심각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말했다.

 

 “유나야. 너는 유미한테 너무 물러. 채찍과 당근을 적절하게 조합할 줄 알아야지, 당근만 계속 준다고 말이 잘 달리니? 아니잖아? 나는 유미의 성장을 위해 너 대신 약간의 채찍질을 해준 것뿐이야.”

 

 “그 채찍질을 꼭 오늘 같은 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유나의 안면 온도가 기하급수적으로 하강한다. 소사가 가지고 있던 일대종사의 위압감에 지지 않을, 모성애가 뿜어내는 냉기에 주변 공기가 쩍쩍 얼어붙어갔다.

 

 “......내가 시킨 거 아니거든? 유미가 자기 혼자 삐쳐서 고집부린 거거든?”

 

 유나의 입가가 미소를 그렸다. 살육을 눈앞에 앞둔 맹수 같은 웃음이다. 그녀는 팔찌를 풀러 바닥에 내려놓았다. 살살 내려놓았는데도 쿵 하고 둔중한 소리가 무겁게 바닥을 울린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변명은 그걸로 끝나셨나요?”

 

 “어? 어......”

 

 유지는 바보처럼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이단옆차기가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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