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 남매에게 받았던 의뢰의 약속일이 다가왔다. 자애와는 전날의 통화로 권도 남매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합류를 하기로 했다. 서가삼랑은 각자의 무장을 단단히 챙기고 차에 몸을 실었다.
권도 남매의 가게는 방벽너머, 치안구역의 경계선에 살짝 걸쳐있는 준열외지역에 위치해있었다. 정부가 아예 손을 떼어버려 온갖 범죄자와 불법이민자, 그리고 거지가 득시글거리는 완전열외지역보다야 낫지만 치안이나 전체적인 위생상태가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권도 남매의 가게는 대산시 뒷골목 세력의 한 축인 쌍도끼파의 구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사례금을 바치고 적절한 우호관계만 유지할 수 있다면 어지간한 경찰보다 나은 치안을 제공받을 수 있다.
쌍도끼파의 무뢰한들이라고 해도 생각이 있다면 왕년의 절정고수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을 테고, 준열외지역에서는 공무원들의 단속도 거의 없으니 나름대로 적절한 위치선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래저래 살기에 좋은 동네는 아니다. 그래도 사람은 많았다. 덩달아 차도 많다. 서가삼랑이 몰고 다니는 장갑차는 덩치가 너무 커서 주차할 자리를 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신호등도 없이 도로를 건너는 인간들이 바글거리고 자가용뿐만이 아니라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질서 없이 도로 위를 질주한다.
혼잡함으로 버무려진 이 세상의 또 다른 형태의 지옥에, 바른생활 아가씨인 유나마저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했다.
“저기요, 아저씨! 거기서 갑자기 앞으로 치고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미쳤나봐!”
“야! 이 꼬마가! 죽고 싶니? 차를 보고 길을 건너야지! 세상에나!”
유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핸들을 콱콱 두들기며 신경질을 부린다. 이때만큼은 유지도, 유미도 한 마음이 되어 몸을 움츠렸다.
씨근덕거리며 거칠게 운전을 하던 유나가 유지의 시선을 눈치 챈다. 분노수치가 순식간에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부끄러움수치가 플러스. 그녀는 운전대에 얼굴을 묻으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 이건 그러니까......”
유지는 안심하라는 듯 유나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렇게 변명할 필요 없어 유나야. 너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내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
희번득 거리는 눈이 유지를 향했다.
“......리가 없지! 괜찮아! 괜찮아! 사람이 가끔 화도내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으하핫!”
사신의 시선이 유지를 비껴지나갔다. 유지는 몇 번째일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차를 대는 데에는 무려 한 시간이 걸렸다.
셋은 차에서 내려 자애가 가르쳐준 주소의 좌표를 따라갔다. 가게는 얼기설기 지어진 상가사이의 골목에 있었다. 골목은 꽤나 더러웠지만 가게 앞은 깨끗했다. 청소를 열심히 하는지 문밖의 창들이 반질반질 빛을 낸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작고 허름한 가게지만 손님은 많았다. 허리가 굽은 노인에, 흙먼지와 땀에 절어 땟국물이 흐르는 공사장 인부. 등허리에는 칼을, 겨드랑이에는 총을 메고 있는 낭인. 빡빡이 머리에 팔에 용문신을 한 깡패까지 별의 별 인간들이 다 있다. 하지만 거친 일을 주로 하는 사내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게는 조용했다. 달그락 달그락 식기를 놀리는 소리만 울릴 뿐 모두들 조용히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다.
주방에서 앞치마 차림의 자애가 나왔다. 그녀는 서가삼랑을 보곤 조금 당황한 듯 했다. 조신한 걸음으로 다가와 꾸벅 인사부터 했다.
“죄송해요.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어요. 미리 정리를 해 뒀어야 하는데......”
유지는 점잖게 손을 들어보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조금 기다리죠 뭐.”
“감사합니다. 그럼 잠깐 여기에 앉아 계세요.”
그녀는 주방과 곧장 연결되어있는 카운터 앞좌석을 가리켰다.
자애는 밖으로 나가 문밖에 ‘닫힘’ 이라고 적힌 알림패를 달아놓았다. 그리고 가게로 돌아와 손님들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죄송한데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그리고......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애에게로 집중되었다. 식탁에 앉아있던 까까머리가 거칠게 수저를 던지며 몸을 일으켰다. 앳된 얼굴이지만 단련을 열심히 했는지 제법 덩치가 있다. 팔에 박힌 두 자루의 도끼 문신이 근육을 따라 살벌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유지에게 다가갔다. 삐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씹어뱉듯이 말을 건넨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니들 설마 저 애한테 무슨 짓 했냐? 엉?”
유미는 외면. 유나는 난감. 그리고 유지는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자애가 까까머리를 말린다.
“그런 거 아니야. 이 분들은 나를 도와주러 오신 분들이야.”
또 한사람이 다가왔다. 등에 칼을 메고 있던 낭인이다. 광대가 튀어나오고 눈이 부리부리한 무서운 인상을 했지만 목소리는 다정다감했다.
“애기야, 무슨 일 있니?”
“......얼마 전에 강제 추방 통지서가 날아와서요. 다른 곳으로 이민을 가기로 했어요. 오빠는 몇 주 전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고요.”
낭인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어쩐지 가게 주인이 요새 안 보인다 싶더니... 그런 거였군. 그렇다면 저 친구들은 호위인가?”
그는 유지와 유미, 유나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꼬마 아가씨 둘에 수색대 복장의 젊은이...... 요즘 잘 나간다는 서가삼랑이군. 그래도 믿음직한 녀석들을 잘 골랐어.”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까까머리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애에게 따졌다.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해줬어야지. 갑자기 이렇게 떠난다고 하면 어떻게 해?”
그 말에 동의하는지 뒤에서 듣고 있던 손님들이 맞장구를 친다. 하지만 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았어. 원래는 그냥 말없이 조용히 떠나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지금 말한 거야.”
“그래도......”
낭인이 까까머리의 어깨를 잡았다. 까까머리는 인상을 썼지만 낭인은 그만두라는 식으로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씁쓸한 눈으로 자애를 돌아보았다.
“그래, 지금까지 고마웠다. 너랑 네 오빠에게는 신세진 게 많은데 어떻게 갚지도 못하고 이렇게 보내는구나.”
자애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곳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무리 짓지.”
까까머리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있는 듯 했지만 낭인이 애써 그를 말렸다. 억지로 자리에 앉은 까까머리는 신경질적으로 밥을 퍼먹었다.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비우고 자애에게 빈 그릇을 내밀었다. 자애는 쓴 웃음을 지으며 밥을 산더미만큼 공기에 채워주었다. 다른 손님들도 다시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주방으로 돌아온 자애는 서가삼랑 세 사람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었다.
“식사들은 하셨어요?”
“오기 전에 밥을 먹기는 했지만...... 저분들을 보니까 뭔가 먹고 싶어지네요.”
유지는 메뉴판을 보았다. 그리고 맨 위에 적혀있는 메인 메뉴를 골랐다.
“지라시스시? 이걸로 하나 주세요.”
자애의 시선이 나머지 둘에게 향했다.
“......난 됐어.”
“아, 저도 괜찮아요.”
잠시 후 자애가 큼지막한 그릇을 내왔다.
시큼한 향을 뿌리며 고슬고슬하게 익은 초밥 위에 물기를 뺀 절인 연근과 오이, 그리고 초생강이 올려져있다. 가장자리에는 노오랗게 부친 달걀지단과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새우가 있고 중심부에는 두껍게 깍뚝 썰기로 썰어낸 연어살이 그득히 들어차있다. 맨 꼭대기에는 새파란 무순이 장식처럼 올려져있었다.
고급스러운 느낌은 전혀 없지만 양이 많고 색이 예뻐 제법 먹음직하다. 유지는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숟가락으로 밥과 그 위의 재료들을 한 움큼 떠서 한입에 넣었다. 유지의 눈이 크게 뜨였다.
환상적인 맛의 조화가 입안에서 일어났다. 새콤달콤한 밥과 알싸한 야채향이 어울려 피어나고 연어살과 새우의 담백함이 그 위를 꾹꾹 누른다. 아삭아삭 씹히는 연근의 식감은 그야말로 최고.
“어우야, 이건 맛있네.”
유지는 감탄하며 연속으로 수저를 입으로 옮겨갔다. 창식이 외진 곳에 있는 이런 허름한 가게를 도대체 왜 8년 동안 들락거렸는지를 혀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걸신들린 것처럼 꾸역꾸역 지라시스시를 먹어치웠다.
양 볼에 밥을 한가득 채워 넣고 행복하게 씹어 삼키던 유지가 자기를 흘끗흘끗 쳐다보고 있는 유미를 발견했다. 그는 입속의 것을 꿀꺽 삼키고 실실 웃으면서 지라시스시를 한 수저 떴다.
“한 입 먹을래?”
유미는 홱 고개를 돌렸다.
“꺼져.”
“에이! 그러지 말고! 먹고 싶어서 눈이 반짝반짝하는 게 다 보이는......”
옆구리를 찔리고 비명을 지르는 유지. 그는 식탁에 머리를 박고 끙끙 거리다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울먹울먹하면서 수저를 손에 든다. 우는 소리를 내며 눈물 젖은 밥을 슬프게 밀어 넣었다.
“흑흑, 뭐만 하면 맨날 때려. 진짜 서러워서 못 살겠다.”
“그러게 왜 자꾸 까불어요......”
유나는 안쓰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지의 등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유미는 떨떠름한 얼굴로 유지를 지켜보다가 머쓱하게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쪽을 바라보던 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자애는 따뜻한 미소를 보내왔다. 초생달 같은 두 눈이 부드럽게 휘며 환하게 웃는다. 뭐든지 보듬어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흥.”
유미는 차갑게 시선을 피했다. 자애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사를 마친 손님 중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에 자애와 대화를 나누었던 낭인이다. 그는 지갑을 꺼내들며 카운터로 걸어왔다.
“계산해줘.”
“네. 지라시스시 하나에 볶음우동까지해서 만 오천 원입니다.”
낭인은 지갑을 뒤졌다. 지폐를 한 움큼 꺼내어 자애에게 준다. 자애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어...... 중경 아저씨? 이건 뭔가요?”
“지금까지 밀린 외상값이다.”
중경은 얼른 받으라는 양 가볍게 돈을 흔들었다. 자애는 얼떨떨해서 그것을 받았다. 그녀는 돈을 꼭 쥐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받아. 그렇게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퍼주기만 하다가는 네가 말라죽는다. 다른 곳에 가면 돈 쓸 일도 많을 거야.”
“아니...... 외상값을 다 갚기에는 돈이 모자란 데요.”
“......그, 그래?”
중경은 지갑을 몽땅 털었다. 지갑 귀퉁이에 걸쳐져있는 동전까지 박박 긁어서 자애에게 넘겨주었다. 자애는 무안해져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
“아냐. 넌 이 정도는 받아도 돼.”
그 사이 또 다른 사람이 자애의 앞에 섰다. 일을 너무 험하게 해 얼굴이 온통 시커먼 아저씨다. 그는 작업복을 탈탈 털어 굴러 떨어지는 모든 돈을 자애의 손아귀에 쥐어주었다.
“지금까지 얻어먹은 걸 다 갚기에는 조금 모자라겠지만 받아줘. 지금까지 고마웠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것을 시점으로 사람들이 자애의 앞으로 줄을 이루어 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가 먹은 것 이상의 가격을 지불했다. 돈이 없는 한 할아버지는 손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주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들 가게를 나가기 전에 자애의 손을 꼭 잡아주며 덕담을 한 마디씩 한다.
“잘 있어.”
“잘 가렴. 너라면 어딜 가더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자애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인사를 받기에 바빴다. 어느 샌가 카운터에는 꾸깃꾸깃 접힌 지폐와 낡은 동전, 각종 패물이 수북하게 쌓였다.
마지막으로 카운터 앞에 선 것은 용 문신을 한 까까머리였다. 그는 힐끗 자애를 쳐다보더니 돈을 던지듯이 카운터에 내려놓고 인사도 없이 가게를 나가버렸다.
“아, 잘 지내. 진우야......”
자애는 그 등을 향해 작별인사를 던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텅 빈 가게에서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온기도 있다. 자애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돈더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유지가 말을 꺼냈다.
“인망이 있으시군요.”
“......이런 걸 인망이라고 하나요? 전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렇게 보인다는 것뿐입니다.”
유지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휴대기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만 가시죠.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