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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작가 : 요동치는하트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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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4 - 닌자(忍者) (3)
작성일 : 16-09-20     조회 : 221     추천 : 0     분량 : 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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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애의 폭탄 발언 때문에 잠시 소동이 있었지만 그 뒤로는 별 문제가 없었다. 제일 위협적인 것은 역시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게 특기인 도적놈들이었지만 놈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간혹 나타나는 목강시등의 괴물들은 그냥 지나칠 수가 있었기에 위험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황야를 질주했다. 산후시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반도의 끝에서 끝을 잇는 거리다. 번듯한 도로라도 깔려있었다면 반나절로 충분했겠지만 마교와의 전쟁이후 방치된 지역에서 그런 호사를 바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달리다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갔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갈 때쯤 창밖으로 송전탑 비스무레한 건물이 벽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탑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서 있었지만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길게 놓여있었다.

 

 유나는 탑으로 이루어진 벽을 넘어가지 않고 뒤에서 차를 세웠다. 유지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하고 내일 일찍 출발하기로 하죠.”

 

 자애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직 해가 안 졌는데, 조금 더 가도 되지 않나요?”

 

 유지는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저희도 물론 그러고 싶지만 이 앞이 마교의 잔당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서요. 지금 진입하면 아마 저곳을 통과하기 전에 해가 질 텐데, 밤에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괴물들이 많이 등장해서 위험합니다. 조금 시간을 쓰더라도 여기서 밤을 보내고 해가 뜬 다음에 지나가는 게 나아요.”

 

 자애는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간이 야영지를 만들었다. 날이 따뜻한지라 대단한 것은 필요 없었다. 트렁크에 실어둔 접이식 천막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돗자리와 의자를 놓는다.

 

 유지는 자리가 깔리자마자 털썩 앉아서 게임에 몰두했다. 유미 역시 그 옆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같이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사이좋게 앉아있는 모습이 왠지 귀여웠다.

 

 은은한 미소를 띠며 그들을 바라보던 자애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유나가 호위로 그녀의 곁에 붙었다.

 

 자애는 웬만한 송전탑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크기의 건물에 다가갔다. 건물은 꼭대기에 거울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각형의 철판을 거북이 등껍질처럼 두르고 있었다. 아래로 전등 같은 물체가 사방에 달려있고 밋밋한 중심부를 지나 맨 밑바닥에는 무한궤도형의 바퀴가 달려있다. 바퀴를 보고나니 탑이 아니라 공성차 같기도 했다.

 

 “이게 뭔가요?”

 

 유나는 여행 가이드처럼 친절하게 대답했다.

 

 “마기(魔氣)에 오염된 혈정진토가 확산되는 걸 막는 이동탑이에요. 혈정진토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주변의 양분을 흡수해서 계속 번져가거든요.”

 

 “그렇군요...... 벽 밖에는 신기한 것들이 정말 많네요.”

 

 “신기하기보다는 무서운 게 대부분이죠. 저기를 보세요.”

 

 유나는 해를 등지고 있는 탑 너머의 땅을 가리켰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 아래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생물체가 아니라 흙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피처럼 붉게 물든 흙이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솟아올랐다.

 

 갑자기 탑이 뾰족한 경고음을 발했다. 사면에 줄줄이 달려있는 전등이 돌아가며 작은 산처럼 일어선 흙을 조준. 딸깍 하고 전등이 켜지며 빛을 내리 쬐었다. 그러자 기괴하게도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났다. 흙이 흐물흐물해져서 주저앉았다.

 

 자애는 속이 느글거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징그러운데요.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요.”

 

 “살아있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혹시나 싶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절대 가까이 가지마세요. 밤에는 계속해서 공기 중에 독기를 뿌리는데다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거든요.”

 

 그때 뒤에서 혈정진토의 비명과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게임기를 놓고 머리를 쥐어뜯는 유지가 보였다. 뭔가 게임 내에서 잘 안 풀리는 일이 있는 모양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유미가 비웃었다.

 

 “멍청이. 졸라 못해.”

 

 유나는 한심하다는 듯이 유지를 바라보았다.

 

 “주인님은 게임 그만하시고 식사 준비나 좀 도와주세요.”

 

 유지는 다시 게임기를 잡으며 검지를 들어보였다.

 

 “딱 한판만 더 하고 할게.”

 

 유나는 오늘만큼은 주먹질보다 스마트한 방법을 취하기로 했다. 그녀는 딱 한 마디를 입 밖에 냈다.

 

 “용돈 깎이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당장 하겠습니다.”

 

 효과는 뛰어났다! 유지는 냉큼 일어나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나 게임 할래.”

 

 게임기는 유미의 손으로 들어갔다. 의자를 뒤로 젖혀 편하게 누워서 게임을 즐긴다. 식기를 꺼내던 유지가 그것을 보곤 장난처럼 투덜거렸다.

 

 “흥. 흥. 맨날 나만 미워해. 흥!”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제가 주인님을 얼마나......!”

 

 유나는 말을 맺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 잠깐 새에 서러움을 잊은 유지가 평온하게 물었다.

 

 “얼마나?”

 

 “......아니에요. 나와 보세요. 이제 제가 할 게요.”

 

 유나는 유지를 살짝 밀어내고 차에서 도시락 가방을 끄집어냈다. 그녀는 돗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풀어놓으며 유미를 불렀다.

 

 

 “아가씨. 식사하세요. 자애씨도 여기 앉으세요.”

 

 그녀는 자기 옆자리를 톡톡 두들겼다. 자애는 미소를 지으며 양 다리를 곱게 모아 옆으로 뉘이듯이 앉았다. 모두가 둘러앉자 유나는 각자에게 도시락 통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입가심용으로 가져온 모듬과일을 놓았다.

 

 자애는 유나에게 건네받은 도시락의 뚜껑을 벗겨보았다. 안에는 앙증맞은 생김새의 주먹밥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종류도 많다. 베이컨을 말아놓은 베이컨주먹밥. 돼지볶음을 속에 넣고 깻잎을 뒤집어쓴 제육주먹밥. 햄과 야채를 섞고 볶은 뒤 동그랗게 뭉쳐 김가루를 뿌린 햄 주먹밥 등 먹음직스러운 것들이 가득했다.

 

 자애는 그 중 하나를 꺼내어 입에 넣어보았다. 조금 식기는 했지만 간도 적당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요리로 밥벌이를 하던 그녀가 보아도 훌륭한 솜씨였다. 유지와 유미도 열심히 먹고 있다. 자애는 컵에 어묵 국물을 따르던 유나를 돌아보았다.

 

 “도시락은 유나씨가 싸신 건가요?”

 

 “네. 입맛에 좀 맞으세요?”

 

 “너무 맛있어요. 요리 진짜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칭찬을 늘어놓던 자애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나의 손이 텅텅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나씨는 안 드세요?”

 

 “아, 저는 괜찮아요. 안드로이드라 식사가 필요 없거든요.”

 

 “에이, 안드로이드라고 식사를 거르시면 안...... 안, 안드로이드라고요?”

 

 자애는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세상에, 진짜에요?”

 

 “네.”

 

 그녀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전혀 몰랐어요. 사람형체의 로봇이나 마법으로 만든 골렘은 몇 번 봤지만 생긴 것만 사람이지 하는 걸 보면 사람이 아니라는 게 티가 났는데...... 유나씨는 진짜 사람 같아요.”

 

 유나는 수줍게 웃었다.

 

 “전 조금 특수하거든요.”

 

 자애와 유나는 식사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 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속은 억센 타입이라 그런지 말이 비교적 잘 통하는 듯 했다.

 

 식사를 마치고나자 해가 저물고 사위가 어두워졌다.

 

 내일은 아침 일찍 부터 출발해야 했으므로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자애와 유미는 차 안에, 유지와 유나는 천막 아래에 침낭을 깔고 자리를 잡았다.

 

 유나는 만들어진 존재이긴 했으나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영혼에도 의식과 기억의 저장능력이 있다는 영리학의 영뇌이론(靈腦理論)을 근거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역시 잠을 필요로 했다.

 

 셋은 가위바위보로 불침번 순서를 정했다. 각자 두 시간 반씩. 유미, 유지, 유나 순으로 순번이 결정되었다.

 

 모두들 자리에 눕고 곧 잠이 들었다. 유미는 차의 지붕 위에 앉아서 불침번을 섰다.

 

 달이 떠오르고 밤이 점점 깊어갔다.

 

 십 수 년 간 방치된 황야에도 좋은 점은 있었다. 검푸른 하늘 위로 무수한 별들이 떠올랐다. 셀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드넓은 하늘 전체가 별로 빼곡히 들어찼다. 희뿌연 은하수가 별의 바다를 가로지르고 꼬리를 늘어트리며 떨어지는 유성이 보인다. 반으로 조각난 달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묘한 절제미를 뽐내며 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유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황야를 배경으로 날이 바짝 선 미모의 소녀가 품에 검을 끌어안은 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은 제법 그림이 되었다.

 

 그녀는 재킷의 품에서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휴대기를 꺼냈다. 격한 전투에도 부서지지 않도록 특수 제작된 휴대기다.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교대시간이 다 되었다. 그녀는 지붕에서 폴짝 뛰어내려 천막을 젖히고 유지를 깨웠다.

 

 “유지. 일어나.”

 

 “벌써 교대시간이야?”

 

 유지는 하품을 하며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유미는 잠을 자러 차로 들어갔다. 유지는 피곤한 기색으로 의자 하나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의자에 앉아 나른하게 등허리를 긁다가 건빵주머니를 뒤져 게임기를 꺼냈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구름이 잠시 달을 가린다. 간이 야영지에 짖은 그늘이 깔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지는 게임에 흠뻑 빠져서 화면에 정신을 집중했다.

 

 의자 뒤의 그림자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 속에서 검은 두건으로 싸여있는 머리가 솟아올랐다. 형체를 가지지 않은 귀신처럼 아무 움직임도 없이 천천히 그림자를 빠져나온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어깨, 몸통이 빠져나오고 이내 자신의 발로 땅을 디딘다.

 

 검게 칠한 무복을 걸친 사람이 유지의 등 뒤에 섰다. 달이 유지의 정면 방향에 있었기 때문에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빛을 빨아들이는 흑검(黑劍)이 쥐어져있었다. 뾰족한 검 끝이 유지의 등을 조준했다. 정확하게 심장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흑의인(黑衣人)은 망설임 없이 손에 힘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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