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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작가 : 요동치는하트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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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4 - 닌자(忍者) (4)
작성일 : 16-09-21     조회 : 314     추천 : 0     분량 : 8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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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

 

 메마른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지의 겨드랑이 사이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유지의 뒤를 노리던 흑의인의 가슴에는 구멍이 있다. 그곳에서 피를 쏟아내며 나무토막처럼 뒤로 쓰러진다.

 

 시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시발점으로 사방에서 그림자가 날아올랐다. 몸을 일으킨 유지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훑었다. 그를 기습한 암살자의 수는 대략 열 명. 그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칼을 들었다. 칼의 손잡이에 박힌 주문 보조용 보주가 회전한다. 원소 계열 1서클 마법 파이어볼이 연달아 발사. 불타오르는 구체 다발이 야영지를 통째로 불태우려했다.

 

 “어딜!”

 

 천막을 걷어차며 유나가 뛰쳐나왔다. 왼팔의 방어주문식이 작동. 사파이어로 만들어진 마나배터리가 푸른빛을 뿜어내며 중위 마법을 짜내는데 필요한 활성화 마력을 배출. 마력회로를 타고 유나의 팔 전체에 숨어있는 마법진식을 깨워낸다. 비전 계열 3서클 마법 트리플 배리어가 발동되었다. 반구형의 보호막이 야영지를 삼중으로 뒤덮는다.

 

 배리어와 파이어볼이 충돌하며 폭음이 퍼져나갔다. 배리어는 금세 사라졌지만 공격을 견디는 데에는 충분했다. 차의 지붕이 터져나가듯이 열리며 유미가 뛰어올랐다. 그녀의 손이 칼의 손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수라귀구속제어술식 1단계가 해제.

 

 도검빙의 교룡귀(蛟龍鬼)

 

 칼집에서 칼날을 주렁주렁 달아놓은 채찍 모양의 검, 사복검(蛇腹劍)이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왔다. 그녀가 칼을 휘두르자 광풍이 일며 뱀의 몸체가 공간을 장악. 길게 늘어진 살육의 칼날이 십여명의 암살자를 동시에 노렸다.

 

 암살자들 중 몇몇은 칼을 들어 방어. 쇠와 쇠가 서로를 갉아내며 불꽃을 튀겨냈다. 나머지 암살자들은 허리를 숙여 공격을 피하고 앞으로 돌진해왔다.

 

 유지가 옆으로 몸을 날리며 원형 방패모양의 작은 마공학 장비, 애칭 ‘푸르미르’를 사용해 라이트닝볼트를 쏘았다. 맨 앞에서 달리던 암살자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머리에 직격을 맞았다. 마력이 피워낸 수백만 볼트의 전압에 얼굴이 지글지글 끓으며 숱덩이가 되어버렸다.

 

 뒷줄의 암살자가 시체를 뛰어넘으며 검 끝을 유지에게로 향했다. 비전 계열 1서클 마법 매직 슈리켄(Magic Shuriken)을 날린다. 유지는 공기를 찢으며 짓쳐드는 보랏빛의 수리검을 횡 이동으로 피하며 다시 한 번 라이트닝볼트를 발사했다.

 

 놈도 바보는 아니라 유지가 푸르미르를 향하자마자 쉴드를 펼쳐내 번갯불을 방어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유지의 노림수였다.

 

 구경은 작지만 장탄수가 많고 기력 전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중심골격에 만년한철(萬年寒鐵)을 박아 넣은 커스텀 병기, ‘백번 쪼는 쏙독새’가 불을 뿜었다.

 

 기력을 응축시켜 위력상승을 꾀할 뿐만 아니라 데어칼테의 법칙으로 마력을 분해하는 기총술의 일격이 쉴드를 관통하고 심장을 꿰뚫는다.

 

 기총술을 본 암살자들의 움직임이 기민해졌다. 그 중 한사람이 검을 역수로 쥐며 수인(手印)을 맺었다. 시공간(SpaceTime) 계열 2서클 마법 헤이스트를 시전. 묘한 마력의 기류가 암살자의 몸을 휘감았다. 자기 자신에게 작용하는 시간이 가속. 그의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유지는 왼손의 푸르미르로 검격을 막으며 암살자의 머리를 노리고 오른쪽 아래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헤이스트의 효과로 반응속도마저 가속된 암살자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턱을 관통하려는 총알을 피했다. 하지만 총알에 신경을 쏟느라 유지의 반대쪽 손 움직임을 놓쳤다.

 

 유지가 푸르미르를 장착한 왼팔을 가볍게 떨쳤다. 부드럽게 암살자의 검을 미끄러트리며 그대로 가슴에 일장(一掌)을 먹인다. 암살자는 내장이 진탕되어 피를 토하며 나가 떨어졌다.

 

 유지의 특기중 하나인 무당파(武當派)의 간판 무공. 태극권(太極拳)이다.

 

 내가권의 일종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거나 흘려내는 데에 유용하며, 강맹한 위력은 없지만 잘만 운용한다면 상대방의 몸속에 경력을 전달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 공격력까지 갖추고 있는 무술이었다. 유지가 익힌 것은 기존의 태극권을 변형해 살상력을 더한 군식(軍式) 태극권이었지만 큰 틀은 같았다.

 

 또 다른 암살자가 헤이스트를 걸고 달려들었다. 놈은 접근전을 벌이느라 빈틈을 보인 유지의 옆구리를 노렸다. 하지만 그 루트는 이미 유나가 선점하고 있었다. 유나가 방아쇠를 당겼다.

 

 쾅쾅쾅쾅!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유나가 뽑아든 것은 분당 발사 속도가 200발이 넘는 전자동 산탄총이었다.

 

 마법도, 기도, 주술도 아니다. 오로지 과학기술로만 만들어진 평범한 화기지만 그 효과는 발군. 사거리는 짧아도 소총에 비해 피격면적이 넓고 저지력이 강하다. 귀신같이 빠른 동작으로 총잡이를 농락하는 무공고수를 상대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무기였다. 강화 주문을 특기로 접근전을 벌이는 마검사(魔劍士)에게도 마찬가지다.

 

 헤이스트로 가속한 상태라고 해도 근거리에서 발사하는 총탄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대응은 충분히 가능하다. 놈은 반사적으로 쉴드를 펼쳐 유나의 사격을 막아냈다. 유나는 계속해서 총알을 싸갈기며 접근. 그러다 한발을 크게 내디디며 앞으로 뛰어 통렬한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었다.

 

 S급 전투인형인 유나의 괴력에 항상 차고 다니는 공간압축팔찌의 어마어마한 무게가 합쳐졌다. 굉음이 터져 나온다. 산탄총의 연사를 막아내느라 내구도가 떨어진 쉴드가 단박에 조각나며 유미의 주먹이 암살자의 몸통에 꽂혔다. 암살자는 컥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나갔다. 놈은 뒤따라오는 12게이지 벅샷의 쇠구슬에 구멍이 숭숭 뚫린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유지의 유려한 권법과 유나의 괴력에 접근전을 벌이는 것은 불리하다고 생각했는지 돌진해오던 암살자들이 발을 멈춰 세웠다. 좌우로 흩어지며 매직 슈리켄을 난사.

 

 마나배터리의 잔량이 넉넉한 유나는 배리어를 펼쳐내 전방위를 막아냈다. 유지는 경공술을 발휘해 회피. 기총술의 최대사거리만큼의 거리를 벌리며 총격을 가했다.

 

 암살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력으로 수인을 맺었다. 기총술의 탄격(彈擊)을 막아낼 마법을 짜낸다. 그의 칼이 땅에 꽂히자 토사가 분출. 흙더미의 방벽이 일어섰다.

 

 원소 계열 2서클 마법. 클레이 월(Clay Wall)이다. 유지가 발사한 총알은 마력을 분해해 진흙의 응집해있는 벽의 구조를 무너트렸지만 이미 쌓여있는 흙더미를 관통하지는 못했다.

 

 암살자 둘이 벽 뒤에 모였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고 손놀이를 하듯 합동으로 수인을 맺었다. 유지가 견제를 위해 선회탄으로 벽 너머를 노렸지만 다른 녀석들이 클레이월을 넓게 펼쳐 시간을 벌었다.

 

 주문이 완성되었다. 놈들은 둘이서 손을 모아 유나를 향해 떨쳐냈다. 검게 물든 불꽃이 폭발하듯이 쏟아져 나왔다.

 

 유나는 3서클 정도의 중형 쉴드를 펼쳐 그것을 막으려했다.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뾰족한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피해!]

 

 유지의 텔레파시다. 빛의 속도와 맞먹는 영계의 신호에 유나가 반응했다. 그녀는 냅다 옆으로 몸을 날렸다. 검은 불꽃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서 옆구리가 살짝 불꽃에 그을렸다.

 

 “큭!”

 

 유나는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옆구리가 기름 끓는 소리를 내며 녹아내린다. 거대한 야수가 한 움큼 베어 문 것처럼 허리가 파였다.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내장을 쏟아내며 즉사했을 치명상이다.

 

 검은 불꽃의 직격을 받은 땅이 김을 피우며 허공으로 증발했다. 순식간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단순한 고열, 혹은 강산에 의한 물리현상이 아니다. 암살자들이 뿜어낸 검은 불꽃은 순수한 마법이 아니었다. 경험이 많은 유지는 한 눈에 정답에 가까운 추측을 끌어냈다.

 

 흑마법(黑魔法)이다.

 

 흑마법이란 마법과 주술을 뒤섞어 특수한 효능을 지니도록 만든 기술들을 총칭하는 단어다. 흑마법에는 영적인 특성이 섞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대응하기가 힘든 것이 많았다. 핵폭탄을 사용하더라도 나약해빠진 잡귀 하나 잡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氣), 그것도 정순한 내공심법을 바탕으로 쌓은 강대한 공력은 귀신에게도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결국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귀신에는 귀신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아주 잠깐의 시전시간이 끝났다. 암살자들이 두 번째 검은 불꽃을 내쏘았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상처를 입어 움직임이 굼떠진 유나를 노렸다.

 

 강력한 저주를 담은 업화의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유나를 향해 뻗어갔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유나는 그것을 피하려는 최소한도의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있었다.

 

 유미가 유나의 앞에 내려앉았다.

 

 앵두 같은 입술이 가늘고 긴 호흡을 뱉어낸다. 그녀의 허리춤에서 폭발적인 발검이 뿜어져 나왔다.

 

 도검빙의 대력귀.

 

 뛰쳐나온 것은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그 작은 검집에 들어있었을까 싶은 거대한 대검이었다. 물론 유미의 칼집에서 빠져나온 만큼 매끈하게 담금질을 해놓은 말끔한 철판은 아니다.

 

 피부를 벗겨낸 근육다발이 이리저리 얽히고 꼬여있다. 두꺼운 흰색의 뼈가 검의 형체를 유지시킨다. 날은 뭉툭해서 예리한 빛이라고는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박력 넘치게 꿈틀거리는 혈관들이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유미가 휘두른 대력귀검이 유나를 집어삼키려던 검은 불길을 두 쪽으로 갈라냈다. 공격을 비껴낸 유미는 곧장 납검세를 취했다. 대력귀검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검집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 유미는 다른 수라도의 귀신을 끄집어냈다.

 

 신체빙의 반시귀(半翅鬼).

 

 재킷을 위로 밀어젖히며 티셔츠를 뚫고 검푸른 피막을 가진 날개가 튀어나왔다. 한 쪽 뿐인 편익(片翼)이 펄럭이자 유미의 작은 몸이 총알처럼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암살자들의 헤이스트와는 비교도 안 될 가속력이다.

 

 순식간에 흑의인들의 눈앞에 도달한 유미가 신체빙의를 해제하며 검을 쥐었다. 그녀의 손에서 다시 한 번 대력귀가 그 거체를 뽐내며 뛰쳐나왔다. 검은 불꽃을 쏘았던 두 암살자는 기겁을 하며 이전에 세워두었던 흙벽너머로 몸을 피했다. 허나 무시무시한 근육질의 거검(巨劍)은 흙벽을 때려 박살내며 직진. 방어를 위해 치켜든 검마저 깨부수고 그들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피부와 근육조직을 찢어발기며 갈비뼈와 척추를 동시에 절단. 두 사람을 네 개로 갈라버렸다. 조각난 고깃덩어리가 운동에너지의 여파에 풍차처럼 회전하며 사방으로 피와 살점을 뿌린다.

 

 그들을 엄호하던 나머지 암살자가 복수를 하겠다는 양 유미의 좌우를 감싸며 달려들었다. 유미는 대력귀검을 되돌렸다. 대력귀검이 크르릉 용틀임을 하며 선회. 사선으로 내리치며 좌우의 암살자들을 동시에 휩쓸었다.

 

 유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명히 베어냈는데 손에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녀가 베어낸 두 명의 형체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아래로 접근하는 두 개의 그림자. 마력으로 자신과 똑같은 빛의 허상을 만들어내는 원소계열 2서클 마법 할루시에이션(hallucination)을 이용한 속임수다.

 

 유미의 간격 안으로 파고든 흑의인들의 검의 보주가 작동. 원소계열 1서클 마법 라이트닝 인첸트(Lightning enchant)가 발동되었다. 시커먼 검신을 따라 푸른색 전류가 방전했다. 뇌격을 담은 찌르기가 양쪽에서 사자의 어금니처럼 덮쳐들었다. 유미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칼날에 몸이 꿰뚫리나...... 싶었지만 수라귀구속제어술식 2단계가 해방되었다.

 

 신체빙의 금강귀(金剛鬼).

 

 유미의 얼굴이 반쯤 은색의 비늘로 뒤덮였다. 그녀의 가는 몸을 찌른 칼날은 겨우 옷만 뚫어냈을 뿐, 두꺼운 외피를 관통하지 못하고 옆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라이트닝 인첸트의 푸른색의 뱀도 유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호신강기(護身剛氣)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유미는 금강석보다도 단단해진 손을 휘둘렀다. 백너클이 암살자의 관자놀이에 처박혔다. 단박에 얼굴을 함몰시키며 반대쪽 눈알이 충격으로 튀어나왔다.

 

 남은 한 녀석은 어찌어찌 뒤로 몸을 날려 유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그곳에는 유지와 유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아있는 암살자는 오로지 그 하나뿐이었다.

 

 유나가 그녀의 주력무기인 대물저격총을 꺼내어 연사했다. 무지막지한 위력의 대구경탄환은 두어 발 만에 쉴드를 박살내고 암살자의 한쪽 팔을 피안개로 분해해버렸다. 하지만 놈은 한 팔을 잃은 채로 유지의 총격을 발악처럼 피하며 방향을 급격하게 틀었다.

 

 놈이 향한 것은 황야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서가삼랑의 차량이었다. 유지가 침착하게 놈의 몸통을 쏘았지만 놈은 배에 총알이 박혀가면서도 주문을 짜냈다. 파이어볼의 강화판인 원소 계열 2서클 마법. 파이어 블래스트(Fire Blast)의 폭발이 차량을 덮쳤다.

 

 흙먼지가 걷힌다. 차량을 감싸고 있는 반구형의 보호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나는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손끝에서 마력의 빛이 사그라졌다. 다행히 시간이 맞아 원격조작마법으로 장갑차의 내장 배리어를 작동시킬 수 있었다.

 

 전투가 끝났다. 남아있는 것은 파괴의 흔적과 바닥을 구르는 시체들뿐이었다.

 

 유나는 한숨을 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겪는 피곤한 전투였다. 몸은 괜찮지만 정신적으로 지쳤다. 유지는 유미에게 경계태세를 유지하라고 손짓을 하며 유나에게 다가갔다.

 

 “상처는 좀 괜찮아? 어디 좀 보자.”

 

 그는 유나의 팔을 잡았다. 유나는 얼굴을 붉히며 유지에게 옆구리를 보여주었다. 유나의 옆구리는 둥글게 파여 복잡한 전선과 회로. 그리고 인공근육다발등의 내부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유지는 전문 마공학 기술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위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군인답게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기능 체크는 물론이고 간단한 수리도 혼자서 가능하다. 그는 상처를 꼼꼼히 확인했다.

 

 다행히 유나의 몸 전체를 가로지르는 주요 동력선은 멀쩡했다. 파손된 부분은 옆구리 장갑과 근육. 유기물을 마력으로 전환하는 발력기. 마력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보조 동력선 몇 가닥에 불과했다. 통증을 없애기 위해 통각을 차단해야하고, 허리가 힘을 제대로 받쳐줄 수 수 없어서 전체적으로 동작이 굼떠지겠지만 전투속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파손정도는 아니다. 다만, 아직도 검은 불꽃의 잔류가 남아 조금씩 상처부위를 갉아먹고 있었다.

 

 유나는 유지가 손을 댈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가는 목울대가 파르르 떨리며 얼굴은 물론이요,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어서 당장이라도 핏물을 쏟을 것 같다.

 

 하지만 유지는 신경 쓰지 않고 채홍다관의 경희에게서 구매한 퇴마부(退魔符) 몇 장을 꺼내 유나의 배와 등허리, 겨드랑이 아래에 붙여주었다. 지박령 수준의 잡귀를 쫓거나 가벼운 저주를 푸는 물건이라 큰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상처가 확산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저...... 이게 무슨......”

 

 차량의 문이 열리며 자애가 고개를 내밀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끔찍한 몰골의 시체들을 본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유지가 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나오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자애는 입을 틀어막으며 시키는 대로 문을 닫고 도로 들어갔다. 유미가 차량의 옆에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이제 괜찮아요.”

 

 유나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유지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아 비교적 깨끗한 상태로 죽은 시체를 살펴보았다. 그는 암살자들이 사용하던 흑검과 팔과 다리에 찬 각반. 그리고 대강의 옷차림을 살핀 뒤에 말했다.

 

 “이 친구들...... 극동도의 닌자(忍者)군.”

 

 유나가 그의 옆에 섰다.

 

 “유파(流派)는요? 마법을 썼으니 이가나 코우가의 고류닌자들은 아닐 테고...”

 

 “각반의 문양이나 다계통의 마법을 골고루 쓰는 걸로 봐서는 아마 낙일류(落日流) 야마가 12종파일 거야. 근데 이 친구들은 비왕당파의 다섯 닌자 가문 중에 하나라 지금 내전으로 바쁜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우리를 노린 걸까요?”

 

 “우리를 노렸다기보다는 아마......”

 

 유지는 흘끗 차량을 바라보았다. 유나 역시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표정이 심각해졌다. 약간 떨어져서도 둘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유미 역시 사나운 얼굴이 되었다.

 

 유지가 말했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지금이라도 추궁해 볼까요?”

 

 “아니...... 내가 보기에 자애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추궁을 하려면 그 권도라던 아저씨를 추궁해야겠지.”

 

 그때 쿨럭쿨럭 기침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니 쓰러져있던 흑의인중 하나가 가슴을 붙들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유지의 태극권에 당해 가슴팍을 얻어맞고 쓰러진 쪽이었다. 경력이 충분히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공격이 조금 얕았던 모양이다. 놈은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을 기었다. 유지가 뒷머리를 긁었다.

 

 “이거 또 골치 아파졌군.”

 

 “골치 아플 건 없지.”

 

 유미가 뚜벅뚜벅 걸어가며 칼을 뽑았다. 검집에서 카락카락 소리를 내며 수십 개의 톱니를 갈아대는 교아귀검이 빠져나왔다. 그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흑의인에게 다가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심장을 찔렀다.

 

 흑의인이 갑자기 발악을 하듯이 몸을 틀었다. 유미의 칼은 가슴이 아니라 그의 어깨에 꽂혔다. 살을 꿰뚫는 단순한 찌르기였지만 교아귀의 회전하는 칼날이 순식간에 팔을 뜯어냈다. 흑의인은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그는 한 쪽 어깨에서 피를 콸콸 쏟으면서 벌레처럼 바닥을 기었다. 생존을 향한 집념에 유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쯧 하고 혀를 차면서 다시 칼을 들었다. 어설프게 피하지 못하도록 정확히 조준을 하며 손에 힘을 넣는다.

 

 “그만 두세요!”

 

 그 앞을, 자애가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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