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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19.
작가 : 삼각형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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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05     조회 : 412     추천 : 0     분량 : 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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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보이는구나.”

  어머니가 내게 보일 수 있었던 최고의 축하는 이 대사가 아닐까 싶다.

  입학식 때, 졸업식 때, 생일 날, 그리고 결혼을 하는 날까지 어머니는 내게 ‘좋아 보이는구나.’라는 짧은 대사로 축하를 표했다.

  표정은 무덤덤했고, 진심으로 내게 축하를 표하는 건지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내일 운동회 있어요.”

  기대는 했던 걸까, 당시 어떤 기분으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앞에 섰다.

  “그래?”

  눈썹을 씰룩거리며 아버지는 입에 대고 있던 찻잔을 식탁에 사뿐히 내려놓았다.

  “정우야, 너는 아빠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

  아버지의 그 질문에 대해서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렸던 나도 그 정해진 답은 굉장히 잘 알고 있었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른 말대꾸를 할 용기는 없었다.

  “네, 알고 있어요.”

  답은 간단하다. 아버지의 말에 무조건적인 동의를 하기만 한다면,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래, 그렇지. 아빠가 얼마나 바쁜지 너도 잘 알고 있잖니? 미안하지만,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운동회 정도로 아빠가 회사를 비울 수는 없단다.”

  과연 그 말에 나는 상처를 받았을까, 아프다고는 생각을 했을까.

  “여보, 당신이 내일 갈 수 있으면 한 번 가보는 게 어때?”

  “글쎄요, 내일은 바쁜 일이 있을 것 같네요.”

  높낮이가 없는 냉정한 말투로 어머니가 대꾸했다.

  과연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실망은 했을까, 화는 났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리 될 줄 알고 있었다며 재빨리 포기를 했을까.

  세상에 단 두 명뿐인 부모는 내게 있어서 냉장고 속에 널린 얼음과도 같았다. 차가운 부모. 부모 같지 않은 부모. 그러나 부모.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다면 언제든 그 장난감을 가질 수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언제든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언제든 그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나는 행복했다.

  아니지, 나는 행복했을까.

  나는 불행했을까.

  고학년이 되어서 운동회에서 처음으로 계주를 맞게 된 나, 그리고 그 소식을 끝끝내 부모에게 전하지도 못하고 방으로 돌아오게 된 나.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불행하다고 생각했을까.

  대충 살면 그만이야.

  확실히 기억이 나는 건 이 부분이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눕고, 천장을 바라보며 항상 내 좌우명으로 꼽고 있던 이 대사를 읊조렸다.

  나는 우리 집이 남들과는 달리 훨씬 풍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개방적이라면 개방적인 부모의 밑에서 특별히 받는 스트레스도 없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득이 있다면,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법.

  어린 내가 생각했던 것 치고는, 꽤나 깊은 발상이 아닌가. 나는 내가 얻고 있는 것들이 과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행복한 어린이라고 생각했다.

  케이크를 먹고 싶을 때, 케이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까 엄마의 손을 잡고 걸을 필요는 없어.

  멋진 로봇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소파에 누워서 혼자 영화를 즐길 수 있으니까 가족이 함께하는 외식은 필요 없어.

  너무 비싸서 다른 애들은 엄두도 못 내는 장난감들을 모두 가질 수 있으니까 엄마의 품에 안길 필요는 없어.

  당연했다, 몹시 당연했다. 남들보다 더 행복하니까, 자잘한 일들은 잃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분명 다른 녀석들보다 행복할 테니까.

  잃는 것들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대충 살면 그만이다.

  어차피 행복한 인생일 테니까.

  나는 금세 잠에 들었고, 운동회는 찾아왔다.

  반 아이들. 학교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여서 웃고 떠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아이들이 각자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앉아서 웃고 떠든다.

  부럽다?

  과연 나는 그들이 부러웠을까.

  지금 기억나는 건, 나는 운동장 한 구석에 서서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반 대항 달리기 시합이 시작이 되었다. 각 반에서 계주를 맡게 된 아이들은 운동장 한가운데로 모였고, 나 또한 그곳에 함께했다.

  내 순서는 마지막. 마지막에 대해서 부담감은 별로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달리기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고 애초부터 같은 반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반 대항 달리기에 큰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달릴 필요도 없었다.

  대충 달리자.

  아마도 분명히 나는 그렇게 생각했을 터였다.

  “자, 출발!”

  한 손에 공기총을 든 선생이 큰소리로 외치며 방아쇠를 당기자, 출발선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아이들은 있는 힘껏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는 모두가 비슷했고, 격차는 이렇다 저렇다 할 것 없이 전부 비슷했다.

  첫 번째 주자들은 거의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바통을 두 번째 주자에게 건넸다. 바통을 건네받은 두 번째 주자들이 뛰기 시작하자 여기서부터 격차가 조금씩 벌려지기 시작했다. 다른 레일에 있는 한 녀석이 조금씩 치달리기 시작하더니, 그 격차는 1등에 도장이라도 찍듯 엄청나졌다.

  마지막 주자인 나는 네 번째였고, 이 승부에 별 관심도 없었기에 뛰고 있는 주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시시콜콜한 달리기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관중석을 바라봤다.

  작은 돗자리들이 빽빽이 자리 잡아 돗자리의 숲을 만들고 있는 관중석. 햇빛을 막기 위해서 모자를 쓰고 앉아있는 학부모들, 돗자리를 채우고 있는 도시락들, 그 도시락을 먹으며 해맑은 웃음을 띠우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나는 발견한다.

  갈색 계란들 사이에 껴있는 하얀 계란처럼, 잡초들 사이에 우뚝 선 난초처럼, 난쟁이들 사이에서 홀로 웅크리고 앉아있는 거인처럼, 동그란 공들 사이에 껴있는 럭비공처럼.

  시선을 끈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 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검은색 정장을 입고, 검은색 핸드백을 들고, 검은색 안경을 걸친 그녀는 관중석 저 끝에서도 또렷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야, 뭐해?”

  순간 정신이 들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숨을 헉헉대며 내게 바통을 건네고 있는 주자, 나보다 먼저 바통을 받아들고 한걸음 앞서 뛰어가는 옆 레일 주자.

  상황을 파악한 나는 급히 바통을 받아들고 앞으로 보이는 레일을 따라 뛰어갔다.

  관중의 환호성이든, 달리기의 승패든, 실책에 대한 책임감도 별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레일을 향해 힘껏 뛰었다.

  분명 대충 뛰기만 해도 됐을 터였다.

  중요한 경기도, 의미 있는 경기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내 두 발은 저 앞으로 앞서가는 주자를 따라잡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힘껏 뛰었다.

  있는 힘껏 뛰어서 그랬을까, 가슴도 마구 두근댔다.

  과연 내 표정은 어땠을까.

  나는 무슨 생각으로 뛰었던 걸까.

  나는 기뻤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렇지도 않았던 걸까.

  바통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뛰는 타이밍도 어설펐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반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되었다.

  이길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이기고 말았다.

  숨을 헉헉댔고, 두 다리는 후들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얼굴과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으며, 하얀 운동화는 흙먼지에 더렵혀졌다.

  승패에 별 관심도 없던 반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승리에 놀랐는지 나를 포함한 모든 계주에게 축하를 보냈다.

  어머니.

  여유 있게 앉아서 지친 다리를 풀어도 됐으련만, 당시 내게는 곧바로 찾아가야할 인물이 있었다.

  아직 긴장이 덜 풀려 조금씩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나는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똑똑히 목격한 어머니를 찾아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관중석을 헤집고 끄트머리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치 내가 이곳에 도착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검은 정장을 입은 검은 어머니는 고고하게 그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좋아 보이는구나.”

  뻔한 대사.

  수도 없이 들었던 대사.

  호의를 품었는지, 품지 않았는지 조차도 구별할 수 없었던 대사.

  분명히 어머니는 그 대사를 내게 읊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 앞에서 서서 똑똑히 어머니의 말을 귀담아 들은 나는.

 

  행복하게 웃지 않았던가.

 

  이미 행복한데, 행복하게 웃었다?

  가질 수 있는 거라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행복했을 터였다.

  냉소적인 부모님.

  자식의 생일 한 번 못 챙기는 부모님.

  그 품에 제대로 자식을 안아준 적이 없는 부모님.

  다함께 둘러앉아 제대로 웃음도 나눌 수 없는 부모님.

  내겐 과한 행복이 있었기에, 그런 것들은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어머니의 포옹도, 아버지의 목마도.

  굶주린 배를 채워주지는 않는다.

  새로운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게 해주지도 않는다.

  갖고 싶던 장난감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게 해주지도 않는다.

  내가 가진 것들이 중요한 것이라면, 내게 없는 것들은 사소한 것들뿐이다.

  사소한 것 없이도,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다.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어머니의 형식적이고, 뻔했던 그 말 한마디에.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던 건가.

 

  피어오른다.

  아버지의 제삿날, 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서 타닥타닥 작은 소리를 내며 향을 태워가며 피어오르던 연기처럼.

  기억을 뒤집어엎으며, 쑤셔 후비며, 사실들이 피어오른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기억을 해낼 수 없었던, 행복한 사실들이 피어오른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기억을 해낼 수 없었던, 행복했을 터였던 사실들이 피어오른다.

 

  표정도, 감정도, 소망도, 행동 하나마다 있는 의미까지 전부. 거대한 화산이 폭발한 후, 그 분화구에서 피어오르는 화산재처럼 내가 알고 있었던 하늘을 가린다.

  내 멋대로 생각했던 파랬던 하늘은, 사실은 파란 하늘이 아니었던 것일까. 몰려오는 화산재는 그 하늘을 회색으로 물들이며 내 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후아!”

  갑자기 두 눈이 번쩍 뜨이며, 나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주변은 어둡고, 어머니의 바이탈신호만이 캄캄한 공간속에서 희미한 불빛을 내뿜는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고, 머리는 지끈거린다. 누워있던 작은 침상은 심하게 흔들렸던 흔적이 보이며, 곱게 덮고 있었던 담요는 바닥에 떨어져있다.

  이 상황을 전부 곱씹어 보아 판단을 하건데, 나는 악몽을 꾼 것이 분명하다.

  머리는 아직도 지끈거리고 멍하여, 정확히 어떤 악몽을 꾼 것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왠지 희미하게나마 어머니가 꿈속에 나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고개를 슬쩍 돌려 병상 위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봤다.

  시체와 분간조차 되지 않는 어머니.

  썩어가는 고깃덩어리, 녹슬어가는 고철덩어리.

  한밤중이라서 그런 걸까, 정신은 멍하고 덕분에 다시금 내 시궁창 같은 현실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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