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손으로 잡으며, 선반에 올려둔 생수병을 꺼냈다. 잠을 설쳐서 그런 건지,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거지같네.”
또 저절로 혼잣말이 나온다.
거친 말을 이렇게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확실히 이 상황이 거지같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죽은 듯이 누워있는 어머니, 아직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짐들, 선반 위에 지저분하게 놓인 먹다 남은 비스킷들, 이 모든 거지같은 상황들을 확인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의 뚜껑을 따고 그 안에 든 물을 몽땅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커튼을 제대로 치지 않은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점차 들어와 내 눈을 부시게 만든다.
오늘이 몇 요일이더라.
병원에만 죽치고 있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가는 건 물론이고, 시간감각도 상실하게 된 건지 요새는 시계를 보는 일도 별로 없고, 요일마저도 어떤 요일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대충 뭉친 근육들을 풀고 병상 바로 옆에 놓인 달력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요일.
수요일, 오늘은 어머니의 담당의와 개별로 면담을 가지는 시간이 저녁쯤에 있는 날이다. 어머니에 관해서 그 의사에게 전달할 정보도 없고, 의사에게 뭔가를 부탁할 것도 없지만, 오늘은 아내에게 있어서는 꽤 중요할 날일 것이다.
나는 아직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조금 비비며, 아직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내일 중이면 분명히 연락이 오겠군.
정장을 입고 내게 미소를 지어보이는 아내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내가 담당의를 만나고 그와 면담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병상위에 누워있는 어머니가 더 이상 병상위에 누어만 있지 않게 될 때가 더욱 가까워진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현대의학이 굉장히 발달했고, 훌륭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의 다 죽어있던 시체를 되살리는 기술은 지금에 있어서 턱없이 부족하기에, 사실 이렇게 어머니가 숨만 쉬고 누워있다는 사실도 굉장히 놀랄 만한 사건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그것도 몇 번이나 내려진다. 늦춰지는 법은 절대 없다. 무죄의 가능성도 전혀 없다. 사형수는 아무런 말도 없으며, 이 사형선고를 묵묵히 받아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방관자가 된다. 자신의 의지 따위는 전혀 없는 방관자가 된다. 가만히 앉아서 빨리 모든 일들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리면 된다.
나설 필요는 없다.
그냥,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대충 살아가기만 하면 되는 거다.
나는 졸음이 완전히 가는 것을 느끼며 산발이 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거울로 확인했다.
“여기요~ 여기 밥 왔어요!”
타이밍 한 번 죽여주네.
병실 밖에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아침 8시, 나는 아주머니가 내게 건넨 따뜻한 아침을 받아 꾸역꾸역 주린 배를 채우는데 성공했다.
오전 11시, 병실에 죽치고 앉아서 휴대폰을 하고 있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가고 말았다. 이렇게 폐인처럼 주구장창 병실에만 있으면 결국 나도 병상에 드러누워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온 몸이 쑤셔서 제대로 걸어 다니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건 사양이기 때문에, 나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산책이라도 하고 오는 게 낫겠지.
산책, 산책하니 이번에는 그 꼬맹이의 이미지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고개를 병상 옆으로 돌려서 저번 주에 꼬맹이에게서 받은 빨간색 하트 인형을 바라봤다.
아무데도 쓸데도 없고,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는, 동대문 시장에나 가면 싸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싸구려 인형.
필요 따위는 없는데, 나는 그 인형을 받아버리고 말았다.
아니지, 강제로 받게 된 거라고 정정을 해야 되려나.
어쩐지 잠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칙칙하고, 어둡고, 더럽게 뭐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고, 주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내 인생에 그 꼬맹이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흑백사진 속에서 홀로 색을 가지고 있는 무지개처럼, 뻐꾸기시계 속에 둥지를 짓고 사는 종달새처럼, 똥파리와 나비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어린이를 싫어한다, 따라서 어린이를 즐겁게 해 줄 기술은 당연히 없으며, 어린이의 감정 따위 제대로 생각도 못하는 한심한 어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애 정신교육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아니 악영향을 미치는 어른일 것이다.
그런데도 어쩌다 보니, 나는 그 꼬맹이와 함께 있으면서 가벼워지는 마음을 조금 느꼈다.
그 이유는, 어쩐지 생각하기가 싫어진다.
마음이 착잡해진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작은 모자를 주워, 머리에 억지로 끼워 넣은 다음, 문을 열고 병원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풍경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링거를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환자들, 두 손을 하얀 가운에 푹 넣고 지친 기색으로 휘청거리며 걸어 다니는 의사, 그런 의사를 구경하며 서로 키득대고 웃고 있는 간호사들.
병원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생명이 넘쳐나는 공간인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발소리를 크게 내며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이렇게 걷고라도 있으면, 뒤숭숭한 기분이 진정되는 느낌이 든다.
언젠가부터 느낀 거지만, 요 며칠 사이에 나는 내가 뭔가 이상해졌다는 기분을 받고 있었다. 원래 나 자체가 이상한 인간이라는 건 사실이지만, 이건 성격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나, 행동에 장애가 생겼다는 것처럼 중대한 일은 아니다.
잘 쌓아놨던 돌탑이 한순간에 우르르 무너져,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는 기분.
나는 이 기분을 몹시 억누르고 싶다, 그냥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대충 살고만 싶다. 대충 살아왔던 내 인생에 후회는 없고,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이지 않았느냐고 생각하며 그저 그렇게 살고만 싶다.
살고만 싶었는데.
어째 나를 도와주는 인간은 단 한명도 없다.
굴러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굴러 떨어지는…….
여러모로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건, 내 빌어먹을 몸뚱아리 또한 마찬가지인가 보다.
발, 헛딛고 말았다. 망할.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효과음이 실제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여기서 처음 깨닫고 말았다.
아, 욕이 아주 절로 나온다, 절로.
“씨팔.”
대자로 쭉 뻗은 상태, 한쪽 발은 우스꽝스럽게 계단 몇 칸 위로 뻗어있는 자세로, 나는 울분을 토했다.
기분이 거지같으면, 모든 상황이 거지 같이 보이는 법. 고로, 지금 내 기분은 몹시 거지같을 게 틀림없다.
“하.”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키기 위해 상체를 일으키고 다리에 힘을 줬다.
“악!”
역시나,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부은 것 같지는 않지만 오른쪽 발목이 제대로 삐끗했다.
여기가 비상계단이라 진심으로 다행이다.
“무슨 되는 게 하나도 없냐아! 망할!”
여기가 비상계단이라 진심으로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즉시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누군가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한심한 인간? 술 마시고 지랄발광을 떠는 미친놈? 꼴불견? 민폐남? 불쌍하다고 생각할까?
뭐, 그래도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는 사람 하나 없는 비상계단에서 이런 일을 당한 건 다행이다. 누가 보기라도 했다가는 이건 내 기억에서 큰 트라우마가…….
“와, 진짜 가관이네요.”
익숙한 목소리. 내가 아는 목소리.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듯 건조하게 말하는 이 말투. 그리고 뭔가 이런 적이 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 데자뷰.
“웃고는 싶은데, 음. 뭐, 잠시 참아드릴게요. 아저씨.”
그러니까, 이건 내 기억에서 큰 트라우마가 될 것이 분명해졌다.
“발목은 괜찮은 거예요?”
오른쪽 발목을 잡고 주무르는 내 옆에서 꼬맹이가 똘망똘망한 눈을 치켜뜨고 내게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이 꼬맹이, 사람 찾는 초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대충, 걸을 만은 한데.”
아무래도 산책은 글러먹은 것 같다.
“그런데 너는 이런데 뭐 한다고 있었던 거냐?”
나는 이 신출귀몰한 꼬맹이에게 진심으로 궁금한 점을 물었다.
“아, 아니 뭐 별 거는 아닌데요?”
이거 봐라.
나는 내 질문에 고개를 휙 돌리며 딴 청을 피우는 꼬맹이의 모습을 똑똑히 눈에 새겼다.
어쩐지 더 궁금해진다.
“궁금하세요?”
내 시선이 신경이 쓰인 건지, 꼬맹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됐어. 뭐, 꼬치꼬치 캐묻고 그러고 싶은 건 아니니까.”
솔직히 무진장 궁금하기는 하지만.
“헤, 표정이 영 그렇지가 않아 보이는데요?”
이번에는 꼬맹이가 조소를 지으며 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민다. 그리고 우물쭈물하는 내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해맑은 웃음을 살며시 짓는다.
“잠깐 피난이에요.”
“뭐라고?”
나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대답에 재차 질문했다.
“피난이요, 피난. 사실 저 방금 전에 아빠랑 싸우고 나왔어요.”
“뭐야, 난 또 뭐라고……. 그런데 너도 아빠랑 싸우기도 하는구나? 어째 신기하네.”
만날 밝기만 해서 부모랑 말대꾸 같은 건 하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꽤나 의외다.
“뭐, 제가 잘못을 하기는 했지만요.”
인정도 참 빠르다.
“야, 그럼 빨리 올라가서 사과를…….”
“그러니까, 피난이라고 말했잖아요.”
가볍게 충고를 해주려 하는 내 말문을 막아서며 꼬맹이가 입을 연다.
“잠깐 그 병실을 피해서 밖으로 나온 거예요. 이렇게 밖에서 조금만 있다가 다시 들어갈 계획이었어요.”
“벌써 사춘기라도 온 거냐.”
“뭐라고요?”
별로 놀리려고 한 말은 아닌데, 기분이 언짢았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째려본다,
“그래도 나이 먹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소리나 지르면서 추하게 버둥거리는 어른보다는 훨~씬 낫거든요?”
반박할 수가 없다, 실로 동감한다.
“그래, 그래. 미안하게 됐으니까 이제 그 말은 꺼내지 마는 걸로 하자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토라진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는 꼬맹이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그럼, 그러는 아저씨는 뭐가 그렇게 짜증이 나서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요?”
마치 말하면 봐주겠다, 라는 듯이 나를 곁눈질하며 눈썹을 씰룩인다.
마땅한 변명은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애초에 굳이 여기서 변명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기분이라도 전환할 겸. 산책이지. 그리고 그 산책이 멋지게 망한거고.”
있는 그대로 사실을 내뱉으며, 나는 꼬맹이의 분위기를 다시 살폈다.
“호오~ 의외네요?”
다행히 토라짐은 완전히 사라진 듯, 놀라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댄다.
“뭐가 의왼데?”
“아저씨도 그렇게나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다는 게 좀 신기해서요. 알고 지낸지는 얼마 지나지는 않았지만, 왠지 아저씨는 평상시에 아예 의욕이 없어서 기분이 상하든, 좋든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사람 같았는데…….”
이 놀라운 관찰력에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제대로 마주친 적도 손에 꼽을 정도인데, 나에 대해서 그 정도까지 알아차리다니, 어쩌면 이 꼬맹이는 나중에 크게 성공할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아니면 그냥 내가 평소에 나도 모르게 그런 분위기를 항상 풍기고 다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좀 더 덜 솔직한 사람일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엄마가 항상 하신 말씀인데요, 언제든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 축에 드는 거랬어요.”
어깨를 으쓱하며 조금 부끄러운 건지 제대로 미소 짓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여기서 나는 무슨 반응을 보이면 좋을까.
‘행복한 사람 축에라도 들 수 있으니까, 정말 기쁘구나.’하고 어색한 리액션이라도 취해야 할까.
그 이전에 나는 언제 어디서나 솔직한 사람이 아니니까, 행복한 사람 축에 들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건데.
솔직한 적이 있던가, 있었나? 그래서 행복했던 적은…….
망할, 머리가 또 지끈거린다.
터질 듯이 아프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앉아있던 자리에서 급히 일어섰다. 일어서자마자 방금 전 삐끗한 오른쪽 발목에서도 통증이 느껴진다.
“어, 아저씨? 어디 가시게요? 발목은요?”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갑작스럽게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으며 근처에 보이는 공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휘청거리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내게 걱정된다는 시선을 보내며, 꼬맹이는 계속해서 나를 따라온다.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는 머리를 쥐어 잡고, 나는 눈앞에 보이는 나무벤치에 쓰러지듯 다시 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저씨? 괜찮아요? 뭐에요? 왜 말을 안 해요?”
계속해서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건가, 나는 그저 가만히만 있고 싶을 뿐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충만 있어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데.
구역질도 밀려온다.
“저…… 아저씨? 괜찮아요?”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꼬맹이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나는 분노가 들었다.
돌아버린 걸까, 진짜 돌아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천벌이라도 받은 건지 모르겠다.
“가.”
미쳐버린 나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꼬맹이를 노려보며 작게 말했다.
“네?”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보이며, 꼬맹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제발, 제발……. 가라. 네가 가면 괜찮아질 것 같으니까! 가! 제발. 제발 가봐!”
우발적. 말 그대로 우발적인 상황이다.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꼬맹이에게 큰소리를 치며 위협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되고 말았다.
내 위협은 제대로 먹혀 들어갔는지, 꼬맹이는 몸을 휙 돌려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 내게서 도망이라도 치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나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알고 싶지도 않은 감정에 휘말리며 더욱더 지끈거리는 머리를 꽉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