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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19.
작가 : 삼각형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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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2     조회 : 647     추천 : 0     분량 : 6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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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놈.

  미친 놈.

  미친 놈.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욕한다.

  이게 무슨 꼴불견인가.

  순수하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꼬마 아이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가며 꺼지라고 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놈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한번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는 계속해서 내 뭔지 모를 거지같은 기분을 돋운다.

  “염병할…….”

  벤치에 앉아, 그대로 자세를 낮추고 나는 땅바닥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불안하다.

  왜 불안한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것이 더욱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결론은 미쳐버리겠다.

  가벼움, 저번에 꼬맹이와 함께 산책로를 걸었을 때 느꼈던 그 가벼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까. 그 가벼움을 느끼게 된다면 이 불안감도, 이 거지같은 기분도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안 될 것만 같다.

  속이 크게 울렁거린다.

  나는 금방이라도 목구멍을 타고 나올 것만 같은 구역질을 막기 위해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동시에 아내의 얼굴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머니의 얼굴이 내 머릿속을 스치며 사라져간다.

  짜증이, 화가 밀려온다. 그동안 화 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한 내게 화가 밀려온다. 누군가에게 소리를 치고 싶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싶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누굴까.

  어지럽다.

  잘 생각해보니 조금 웃음이 밀려오기도 한다.

  나 같은 게, 나 따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충, 수동적으로, 어쩌어찌 살아온 내가 어떤 누구에게 당당하게 화를 낼 수 있다는 말인가.

  당당하게, 떳떳하게, 솔직하게 화를 낼 처지가 될 수 없다.

  솔직할 처지가 될 수 없다.

  “하.”

  구역감이 점차 가시기 시작한다.

  나는 바닥을 향해 있던 고개를 위로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거지같은 기분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하, 진짜 거지같네.”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두 손으로 내 두 눈을 가렸다.

  인정하고 싶지가 않다. 이 거지 같은 기분의 원인을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나는 그럭저럭 불만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나는 그럭저럭 남들이 부러워할 그런 행복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나는 두 눈에 손을 얹은 채로, 그대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나는 말이야, 오빠의 그런 점이 정말 좋아.”

 

  아내의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또박또박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어와 정면에 선다.

 

  “항상 거리를 두는 점. 나는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자기 만에 공간에 항상 갇혀있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 특유의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오빠는 내가 무섭지 않아? 나는 마음만 먹으면 오빠 정도는 잡아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인데. 알고 있지? 오빠도. 알고 있잖아? 다 알고 있었잖아?”

 

  그 얼굴이 점차 내게 가까이 온다, 그리고 아내의 긴 머리카락들이 위로 아래로 들썩이며 마치 뱀처럼 그 몸을 이리저리 비튼다.

 

  “알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숨어버리는 인간. 그래서 나는 오빠가 너무 좋아, 이리저리 해먹을 수 있으니까. 아무런 감정도 없이 이용해버릴 수 있으니까. 오빠가 항상 나한테 했던 말 기억나? 그 오빠의 말 같지도 않은 좌우명? 인생의 방향? 아, 이런 기억이 잘 나지는 않네? 어쨌든 그 비슷한 거. 항상 말했잖아? 대충 살면 그만이라고. 대충 살아만 가고 싶다고,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냥 대충 살고만 싶다고. 그거에 만족한다고.”

 

  기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잡아먹을 듯이 입을 크게 벌리는 아내.

  꿈이구나.

  나는 눈치를 챘다. 지금 이 상황, 이 모든 일들은 전부 꿈이다, 나는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고, 아내도 내 앞에서는 절대 이런 태도를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이건 꿈이다.

 

  “그런데 오빠 그거 알아?”

 

  그런데 이 꿈을 꾸게 하고 있는 건, 나잖아.

  나도 참 거지같구나.

 

  “그거 아냐니깐?”

 

  아내의 얼굴이 말 그대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뭔데.”

 

  꿈인걸 아니까. 뭘 망설일 필요도 없다, 나는 코앞까지 다가온 아내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오빠, 하나도 안 괜찮아 보여. 하나도 만족스러운 사람 같지가 않아. 무서워서 땅바닥에 머리 처박고 죽기나 기다리는 타조 같아! 눈 감고 외줄타기 하면서 여기는 안전하다고 자기최면이나 거는 아마추어 피에로 같아! 있지, 오빠는 제대로 아는 게 뭐야? 자기 이름은 제대로 알고 있는 거야?”

 

  아내는 깔깔 거리면서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바닥을 뒹굴기 시작한다. 배꼽을 잡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자지러진다.

 

  나도 참,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런 거지같은, 뭣 같지도 않은 꿈을 왜 보여주는 건가.

 

  짜증나게 말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도 깔깔거리며 자지러지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갔다.

  “꺼져.”

  악의가 담긴 목소리로 진심으로 말했다.

 

  “꺼져.”

 

  내 말을 들은 아내는 그 즐거워 보이는 표정을 즉시 멈추고 정색하더니 빠른 속도로 몸을 일으켜 다시 그 얼굴을 내 코앞까지 가까이 했다.

 

  “그거 웃기네. 언제까지 그렇게 살 작정이었어? 이렇게 내가 말이라도 해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되잖아? 아, 어머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쓰러져 주시니까 오빠가 그 뭣 같지도 않은 자기최면에서 깨어날 기회가 되고 있는 거잖아?”

 

  “꺼져.”

 

  피가 솟구친다, 예전에 학교에서 처음으로 싸웠을 때처럼, 피가 솟구치고, 주먹이 떨린다.

 

  “꺼지라고!”

 

  나는 꽉 쥔 주먹을 아내에게 휘둘렀다,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아내는 내 주먹을 맞지 않았다. 내 주먹은 그대로 아내를 통과하며 아내의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좀 똑바로 살지 그래? 언제까지 자기가 어른인줄만 알고 살 거야? 응?”

 

  아내의 섬뜩한 미소가 너무나 보기가 역겨워졌다.

 

  “그렇지 오빠? 아니, 꼬마야?”

 

  차가운 바람이 갑자기 내 머리를 쓱 지나간다.

  깼구나.

  나는 숙이고 있던 몸을 뒤로 젖혀 잠에서 아직 제대로 깨지 못한 몽롱한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햇살이 가득했던 곳이 어두컴컴해지고 말았다.

  아, 상담.

  나는 주머니에 넣고 있던 휴대폰을 꺼내고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 상담시간이 되기 전이다.

  “하아.”

  지끈거리던 머리도 다행히 가신 것 같다.

  정신이 단단히 나갔나 보군.

  나는 아직도 눈에 선선한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글러먹었구나.

  나는 전혀 어른답지 못하다. 그저 애였다.

  “한심하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러게요.”

 

  순간, 나는 아직도 잠에서 덜 깬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거 엄청 한심한 어른이에요, 아저씨는.”

  그러나 바로 내 앞에서 쭈그려 앉아 두 손으로 턱을 괘고 있는 꼬맹이의 모습이 눈에 선명히 비치자, 나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대체 몇 시간을 실신해 있는 거예요?”

  입을 앞으로 삐죽이며 내 얼굴을 똑바로 째려본다.

  아까와는 다르게 겉에는 갈색 점퍼를 걸치고 있고, 바깥에서 꽤 오랫동안 있었는지 두 볼이 새빨갛다.

  “얼마나 기다렸던 거야?”

  자연스럽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저씨가 엄청 무섭게 내쫓고 나서 바로 왔죠.”

  큰 반응 없이 꼬맹이가 답한다.

  “왜 온 건데.”

  거기에 나는 한 번 더 묻는다.

  “받아주려고요.”

  내 질문에 벌떡 일어서며 꼬맹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뭘, 받아주는데?”

  아직 덜 가신 몽롱한 기분으로 입을 연다.

  “당연히 화죠.”

  고개를 쑥 내 앞으로 들이민다. 그리고는 뭘 하려는 건지 짧은 팔을 양쪽으로 쭉 벌리고 싱긋 작은 미소를 짓는다.

  “흠, 자, 이제 마음껏 화내세요. 짜증도 부리고, 소리도 지르고 해도 돼요.”

  그러더니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친다.

  “화도 받아줄 사람이 있어야 내는 거예요, 앞뒤 맞지도 않고 별로 납득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이제 화내세요. 그렇게 힘들고 지치면 혼자서 속으로만 삭히지 말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앞에서 마음껏 풀라고요. 완전 한심한 아저씨. 그리고 저번에 물어봤을 때는 힘든 일 하나도 없는 사람인 척 하더니.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잖아요?”

  꼬맹이 주제에, 꽤나 어른스럽다.

  나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다.

  어쩌면 좋을까.

  멋대로 소리치고 화를 내며 내쫓은 한심한 어른 앞에, 어른보다 훨씬 어른다운 꼬맹이가 하나가 서있다.

  “꼬맹이 주제에, 너무 기어오르는 거 아니냐.”

  이 존경스러운 꼬맹이 같으니.

  나는 이 상황에서 내가 지어보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 말에 답했다.

  “뭐에요, 벌써 다 식은 거예요?”

  뭘 기대한 건지, 꼬맹이는 시시해졌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두 손을 자신의 허리춤에 가져다댄다.

  “그런 건 아니지만.”

  “뭐, 엄청 난감해 보이는 표정이기는 한데요? 흠, 일단은 이거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작스럽게 내 눈앞으로 캔커피 하나가 날라 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캔커피를 잡고 꼬맹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저 같은 꼬맹이한테 막 고급스러운 커피를 바라지는 않은 거죠? 아저씨가 그렇게 원하던 아이스크림 답례에요.”

  거 웃긴다.

  꼬맹이는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취하며 내 앞에서 기세등등한 포즈를 취한다.

  “풋.”

  뭐가 뭔지,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난해한 감정들도, 내 처지도 전혀 달라지지도 나아지지도 않았건만, 그때 느꼈던 그 가벼움이 다시 들 것만 같다.

  “뭐에요? 그 요상한 태도는. 여기서는 어른으로서 감사의 인사로 모법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나는 이 부러운 꼬맹이를 바라봤다.

  나보다 몇 보는 더 앞에 선 이 부러운 꼬맹이.

  “고맙다.”

  조금은 솔직하게 나는 감사를 표한다.

  “헤,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요.”

  실실 웃으며 해맑은 미소를 발산한다.

  “그래, 솔직히 맛도 별로 없는 걸로 샀네.”

  나는 받은 캔커피를 바로 입에 쏟으며 눈앞에 꼬맹이를 놀렸다.

  “자, 잘만 마시고 있잖아요!”

  두 발을 방방 뛰며 분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가지고 놀기도 참 쉬운 꼬맹이다.

  “아까는 미안했다.”

  마시던 커피를 전부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는 꼬맹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오, 사과도 할 줄 아시네요?”

  분한 표정이 다 가시지 않은 채로, 꼬맹이가 덤덤하게 반응한다.

  나는 씩 웃으며 그 꼬맹이의 머리를 작게 쓰다듬었다.

  “자, 그럼 나는 지금 볼 일이 있어서 말이다.”

  상담시간이 가깝게 다가온 것을 확인한 나는 벤치에서 일어서며 뻐근한 몸을 풀었다.

  “어, 뭐에요?”

  어딘지 아쉬운 표정을 보이며 꼬맹이가 시무룩하게 나를 올려다본다.

  “오늘은 그렇다는 거지.”

  “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꼬맹이의 얼굴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일도 오늘처럼 또 만나면 내가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도록 할까? 아, 그리고 나는 내일도 오늘하고 비슷한 시간에 산책로라도 가볼까 하는데.”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누가 보면 작업이라도 거는 줄 알겠다.

  “잘~ 알겠네요.”

  아무래도 잘 알아들은 모양이다.

  나는 실실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꼬맹이를 뒤로 한 채, 병원 안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파이팅’이라고 꼬맹이가 소리치는 목소리가 귀를 스치고 지나간다. 마치 위로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부끄러운 마음에 반응은 하지 않고 그대로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아까 다쳤던 발목이 조금씩 욱신거리기는 하지만 참을만하다.

  따뜻한 기운이 감싸는 병원 복도를 지나치고, 붕대를 칭칭 감고 돌아다니는 몇몇 어린이들도 지나쳤다.

  나답지 않게 별 이상한 약속도 하고 말이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빈 캔커피 캔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마음은 좀 진정이 된 것 같다, 더 이상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지도 않고 불안한 감정을 마구 쏟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가벼워진 것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상태.

  나는 바삐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췄다.

  짙은 갈색으로 칠해져 있는 고풍스러운 문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 문 위에는 ‘원장실’이라고 적힌 문패가 달려있다.

  어머니의 담당의.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렇다고 여기서 죽치고 있어봤자 득이 되는 건 하나도 없겠지.

  속에서 큰 한숨을 내쉰 나는 다시금 뭔지 모를 각오를 하며 고풍스러운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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