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계속해서 입을 움직이며 엄마를 불렀다.
엄마.
그러나, 목소리가 입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엄마.
저 멀리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
역시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저 그림자의 정체는 과연 엄마일까.
나는 있는 힘껏 목소리를 짜내며 그림자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
눈이 번쩍 뜨인다, 옆자리에서 곤히 자고 있던 아기가 내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기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보호자는 따끔한 눈초리로 나를 째려봤다.
“죄,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를 한다.
아, 꿈이구나.
아직도 정신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고개를 쳐들고 밝은 빛으로 가득한 응급실을 두리번거렸다.
새벽 1시를 가리키는 시계가 곧바로 눈에 띈다.
“잠이 깼니?”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뭐, 볼 것도 없지만.
“졸리면 계속 자, 배고프면 뭐 먹을 거라도 가서 사올까?”
면도를 하는 걸 까먹은 건지, 깨작깨작 난 수염. 네모난 안경, 더부룩한 머리, 쭉 찢어진 눈. 멋스럽지 않은 스킨 냄새를 풀풀 풍기는 이 사람은 내 아빠다.
“아뇨, 괜찮아요. 그냥 잠깐 꿈을 꿔서요.”
“아, 그래? 한 삼십 분만 있으면 피검사 결과가 나오니까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거야, 배는 어때?”
피검사, 소변검사, 대변검사. 응급실에서는 참 여러 가지 검사들을 실행해야 한다. 입원을 하고 있다가 잠깐 괜찮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하고 결국 그 통증은 병이 다시 도졌다는 신호가 되어 이렇게 응급실부터 돌아오고 만다. 아프다고 곧장 응급실로 간다고 곧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원수속을 밟아야 하고, 한정된 응급실의 공간을 배는 차지하는 환자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자리가 빌 때까지 준비된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도 일이다. 또한, 여러 가지 검사가 끝나도 검사결과가 제대로 나오기까지는 다섯 시간정도 되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안 그래도 몸이 피곤한 환자들은 더욱 몸이 피로해지고 짜증이 솟구치게 된다.
일 년 전? 그때 정도만 해도 나는 그 짜증을 침지 못하고 마구 입 밖으로 쏟아내며 아빠와 엄마에게 생고생을 시키게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 하나만 잘 참아내면 되는 일을 가지고 너무 애처럼 응석만 부렸다.
“참을 만 해요.”
나는 내 전매특허라고 해야 할까, 그런 웃음을 지으며 아빠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답했다.
실은 견디기 힘든 통증을 어떻게든 견디고 있는 아랫배를 꽉 잡으며.
“그래? 그래도 다행이네. 어떻게 배는 안 고프지? 혹시 나중에라도 배고플 수 있으니까 먹을 거라도 더 사올까?”
그렇게 걱정이 되는 걸까, 아빠의 얼굴에서는 어두운 기색이 사라지니 않는다. 눈 밑으로는 피곤한 기운이 검게 축 늘어나있다. 분명 내가 자고 있는 동안에 아빠는 단 한숨도 자지 않았을 것이다.
“네, 그게 더 나을 것 같네요.”
아빠에게 더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애써 편한 척 연기를 하며 배가 조금 고프다는 시늉을 했다. 이걸로 어느 정도 아빠가 안심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그래. 그럼 잠깐만 기다려 여기 편의점은 지금은 문 닫았으니까, 밖에 나갔다 와야겠다. 검사 결과 나오면 이제는 들을 줄 알지?”
아빠는 내 옆자리에서 일어나며 응급실에 올 때 거치고 있던 외투를 도로 겉에 걸쳤다.
“네~ 당연하죠. 이제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에요.”
태연하게 답한다, 내 대답을 들은 아빠는 내가 보고 싶었던 안심한 표정을 살짝 지으며 응급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아빠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한숨을 살짝 쉬며 눈을 찡그렸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몸 상태가 어느 정도까지 나빠졌는지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간호사 언니들이 건네는 쓰디 쓴 약을 삼키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제는 식은 죽 먹기다.
그래도, 통증을 참는 건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
배를 꽉 잡는다. 배 안에서 고장 난 기계가 뜨거운 증기를 뿜으며 내달리는 것처럼, 복싱선수가 장기에 잽을 날리는 것 마냥. 몹시 아프다.
참을 수가 없다, 그나마 통증을 잊을 수 있는 일은 눈을 감고 기적적으로라도 얕은 잠에 빠지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실패다. 한 번 잠을 청한 후, 이렇게 깨고 말면 다시 잠을 청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프네…….”
바로 옆, 다른 환자들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애를 쓰며, 나는 혹시 모를 기대를 품으며 계속해서 배를 쓰다듬었다.
아픔을 참는 건 익숙해지지 않아도, 아픈 걸 잘 참아내는 척 하는 건 이제 충분히 익숙해졌다.
“박 하? 환자 분?”
드디어 끝인가요?
말할 힘도 없는 나는 고개를 잠시 들어서 나를 찾고 있는 간호사 언니 한 분에게 눈빛을 보냈다.
“아, 너구나? 오래 기다렸지? 검사 결과는 나왔고, 그 아직 병상은 자리가 안 났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야겠는데……. 힘들지?”
꼬마 혼자서 기진맥진한 채로 쓰러져 있는 게 보기가 안쓰러웠는지 간호사 언니는 내게 동정어린 눈빛을 보내며 목소리를 낮춘다.
“아뇨, 괜찮아요. 지금은 좀 졸려서 힘이 없었어요.”
태연한, 해맑은 표정을 짓는다.
“와~ 정말 씩씩하네, 잘 참을 줄 아는구나? 아, 미안해. 내가 너무 쓸데없는 말이 많아서. 검사결과는 보호자 분 없이도 말해도 되는 건가?”
간호사 언니는 아빠를 찾는 건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아빠는 방금 밖으로 나가셔서 돌아오려면 좀 걸릴 거예요. 먼저 저한테 얘기해 주시면 제가 아빠한테 전달해 드릴게요. 어차피 좀 있으면 당당 선생님 오셔서 아빠랑 진료결과 얘기할 거잖아요?”
“아, 응…….”
내 반응이 너무 갑작스러웠던 걸까, 간호사 언니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살짝 뒤로 빼고 헛기침을 한다.
“흠! 그럼 일단은 검사결과는 말이야…….”
주저리주저리, 항상 병원에 오면 듣던 말들이 간호사 언니의 입에서 줄줄이 새어 나온다. 이제 이 뒤로 내게 벌어질 일들은 나는 신통한 점쟁이마냥 줄줄이 예언을 해 낼 수 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나는 병상으로 옮겨진 후에 링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평소에 먹던 약과 함께 입원을 할 때만 되면 추가적으로 보급이 되는 약이 전보다 두 배는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다가 얼마 있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확인을 하다면서 피검사를 하러 미숙해 보이는 인턴 의사가 나타날 것이고, 나는 몇 번의 주사 실패는 대충 참으면서 병원 안으로 이송이 될 때까지 편히 누워 링거에서 똑똑 액체가 떨어지는 거나 구경하면 될 것이다.
“그럼, 됐지?”
간호사 언니는 애가 전부 이해를 했을까, 못 했을까 걱정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간호사 언니가 말한 내용에다가 더 세부적인 질문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다.
“네.”
웃음을 지으며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내 미소를 본 간호사 언니는 안심한 표정을 짓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한 이십분만 기다리면 링거를 맞을 준비를 하겠지.
나는 아픈 배를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 화장실을 갔다가 오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이다.
화장실이 분명 나가서 오른쪽 이었지?
기억이 나는 대로 나는 응급실 문을 열고 로비로 나가 화장실을 찾았다. 로비 오른쪽으로 곧바로 화장실이 보였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그곳까지 걸어간 나는 문을 열려다 말고 문 앞으로 붙어있는 종이 한 장의 내용을 확인했다.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이 화장실은 현재 수리중이오니 건물 밖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어쩔 수가 없나.
그래도 이왕 나온 김에 화장실은 들르는 게 낫겠지.
불편하고 귀찮긴 하지만, 나는 혀를 짧게 차며 로비에서 건물 밖으로 나가는 유리문을 힘차게 열었다. 새벽이라서 그런지 낮보다 훨씬 차가운 바람이 훅 들어온다.
춥네, 빨리 싸고 가야겠어.
호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 넣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낮에 내렸던 비 때문에 주변에 물웅덩이가 꽤나 많이 생겼다. 다리를 떨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저씨들이 저쪽에 모여 있는 게 눈에 띈다.
“아.”
한눈을 팔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눈을 이리저리 굴려 ‘여자화장실은 이쪽.’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바로 발견해냈다.
표지판이 있는 방향으로 종종걸음을 뛰며 조심조심 향한다.
“괜찮습니다.”
담배냄새와 함께, 낮은 목소리가 울린다.
나는 고개를 살짝 내밀어 앞에 누가 있나 확인을 했다.
여자화장실 앞, 웬 아저씨가 벽에 기대고 서서 담배를 피며 통화를 하고 있다.
병원 안에서는 금연인데, 피시려면 흡연구역에서 피셔야지…….
매너 없는 아저씨를 살짝 째려보며, 나는 가던 길을 마저 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떼려고 했다. 그런데,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저 아저씨의 표정이 선뜻 지금 다가가지 못하게 만든다.
“그런 문제라면 전부 아내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저는 어차피 별로 관심도 없으니까요.”
휑한 표정.
뭐가 뭔지 모를 표정이다, 슬퍼보이지도 않으며. 화가 난 것 같지도 않다. 당연히 저 표정은 안심한 표정도, 행복한 표정도 아니고. 결정적으로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표정이다.
이상한 사람…….
어쩐지 지금은 저 화장실을 가기가 껄끄러워진다.
저 이상한 아저씨가 가고 나면, 들어가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계속 내밀고 이상한 아저씨의 행동을 관찰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상한 아저씨는 휴대폰을 귀에서 내리고 호주머니에 넣는다. 통화가 끝난 게 분명하다.
이제 갈려나.
아,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이상한 아저씨는 피던 담배를 땅바닥에 휙 내던지고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새 담배갑을 꺼내 그 안에서 새로운 담배 한 개비를 꺼낸다.
이상한 골초 아저씨네.
그리고 나는 저 아저씨가 바닥에 내던진 담배꽁초에 시선을 돌렸다.
몰상식하고 이상한 골초 아저씨?
수식어를 추가하여 수정한다.
“귀찮네.”
언제 불을 붙인 건지, 입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혼잣말을 중얼 거린다.
“어머니가 쓰러졌어.”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서서히 아래로 내리며 쭈그리고 앉는다.
“별로 상관은 없지.”
뭘까, 나는 왠지 모르게 저 아저씨의 표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을 한 채로, 이상한 아저씨는 계속 괜찮다고 중얼 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세뇌라도 하듯이.
“별 일 아니야, 어머니는 별로 상관 같은 거 없었으니까. 슬프지도 않아, 아무 감정도 없어.”
미친 사람 연기라도 하는 걸까, 그러나 저 모습은 도저히 연기라고 보기는 힘들다.
또 다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뭐라고 중얼 거린다.
“그래도, 거 엄청 화나네.”
빡, 하는 소리가 울린다.
처음에는 어딘가에서 물건이라도 떨어진 걸까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빡, 하고 또 소리가 울린다.
괜찮아 보이지 않은 표정을 한 채로, 이상한 아저씨는 계속해서 땅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괜찮아.”
진정이 된 걸까,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손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을 것이다.
“좋아, 진정됐어.”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 때문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상한 아저씨는 휘청거리며 저 앞으로 걸어가 사라진다.
뭐야.
나는 멍하니 자리에서 서서 방금 일어난 일을 머릿속에서 곱씹었다.
제대로 못 들어서, 이상한 아저씨가 말했던 소리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별로 밝지도 않은 공간인데도, 그 표정은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괜찮지 않아 보이는 표정, 어디선가 많이 본 기억이 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배를 움켜잡으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볼일을 빠르게 보고, 손을 씻기 위해 어린이용 세면대 앞에 선다.
수도꼭지를 돌리고 흐르는 물에 손을 깨끗이 씻는다.
어머니, 분명히 어머니 뭐라고 처음에 그랬던 것 같은데.
어쩐지 계속해서 그 이상한 아저씨가 떠오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거슬리는 표정이 떠오른다.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은 이상한 아저씨의 대사 때문일까, 순간적으로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마, 내일이나 모래, 늦으면 다음 주에라도 이곳에 올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고개를 들고 세면대 앞에 놓인 거울을 확인했다.
“아.”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 표정, 기억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