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119.
작가 : 삼각형
작품등록일 : 2016.8.31
  첫회보기
 
17
작성일 : 16-10-26     조회 : 547     추천 : 0     분량 : 5563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잘 먹겠습니다~”

  얼굴은 찡그리고 있는 불만 가득한 아저씨의 시선을 피하며, 나는 아이스크림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괜히 다른 사람들이랑 이것저것 얽히기는 싫으니까, 귀찮아서 사주는 거다. 그러니까, 아까 그거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알겠으니까, 이제 그 표정 좀 풀지 그래요? 이 아이스크림이 제대로 안 넘어가잖아요!”

  “잘 넘어가면, 아예 그걸 통째로 입에 넣고 넘기나 보지?”

  이 아저씨, 은근히 유치하다.

  “뭐, 맛있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자요, 아저씨도 한입 드세요!”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이 불평불만 많은 아저씨에게 건넸다.

  “안 먹어, 단 건 안 좋아해.”

  단칼에 거절해버린다.

  “저번에 그 초콜릿은 먹은 거 맞겠죠?”

  문득, 이 아저씨와 처음으로 대면했던 날이 떠올라서 눈을 가늘게 뜨고 추궁한다.

  “당연하지. 그때는 배고팠으니까.”

  간단히 답한다.

  “그거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저 아이스크림은 오랜만이에요.”

  새하얀 바닐라는 굉장히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어른들은 왜 이런 걸 싫어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면, 저희 엄마도 아이스크림은 싫어해요. 백설기도 똑같이 단 맛인데 말이죠.”

  “백설기는 맛있긴 하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저씨는 입맛을 다신다.

  “그런 데서는 또 어른 같네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런 말이 튀어나와 버린다.

  “너도 그런 걸 좋아하는 면에서는 또 꼬맹이 같다.”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아무것도 아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다.

  “그런데, 아저씨는 계속 혼자서 있는 거예요?”

  아이스크림을 한 입 크게 먹고 물었다.

  “병원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걸 묻는다면, 앞으로도 쭉 혼자서 지키고 있을 예정이다.”

  별 거 아니라는 말투로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음, 결혼은 했어요?”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왠지 측은한 답이 나올 것만 같은 질문을 했다.

  “분명히 아까 말했는데. 결혼까지 한 유부남이다.”

  “엇, 의외네요!”

  진심으로 의외다.

  “그런데 왜 아저씨 혼자만 이렇게 병원에서 있는 건데요?”

  “그건……. 뭐, 사정이라는 게 있으니까.”

  아무래도 말하기 곤란한 사정이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힘들지 않으세요?”

  힘든 일이다, 아픈 환자만큼이나 더 힘든 사람이 그 곁에서 항상 있어야 하는 보호자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다.

  분명 이 아저씨도 이 병원 어딘가에 존재하는 환자의 보호자일 것이다.

  아마도 환자는 가족이겠지.

  “대충이지.”

  “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되묻는다.

  “힘들 때, 힘들어서 역겨울 때가 있거든.”

  어쩐지 그 표정이 진지해진다.

  “너라면 그럴 때 어떡할 것 같은데?”

  그 표정이다.

  거울 속에서 봤던 그 표정, 내가 지었던 그 표정을 똑같이 지으며 아저씨가 내게 묻는다.

  망상이 아니었다.

  이 아저씨도 나하고 똑같은 그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비슷한 사람.

  비슷한 어른.

  나와 비슷한 어른이다.

  시선을 아이스크림으로 돌렸다.

  어쩐지 이 아저씨를 계속 쳐다보고 있기가 싫어졌다.

  어른인데도, 아직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게 화가 났다.

  나도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그 질문이 머릿속에 파고든다.

  나라면 어떡할까.

  힘들 때.

  그러니까, 내키지 않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내게 가르쳐줬다.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받을 필요는 없다고 내게 가르쳐줬다. 꼭 필요한 일이라면,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받아낼 수 있게 된다고. 그렇게 말했었다.

  “도망칠래요.”

  라고 말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아저씨의 반응을 알아차릴 수는 없다. 허나, 왠지 놀란 기척이 앞에서 느껴진다.

  “의외로 겁쟁이네.”

  라고 들려온다.

  “나하고 비슷한 점도 하나 있구나 생각해서 놀랐는데?”

  “도망칠 데가 있으면, 꼭 그럴 거예요.”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답한다.

  “그거 괜찮네.”

  있었을 때라면 분명 나는 그렇게 했을 거다.

  “나도 대충 그렇게 했어, 아니지 꼭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지. 개선의 여지를 만들 노력을 하는 게 좀 많이 귀찮아서 말이야. 대충 행복하게 살았달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내 말에 앞에서 웃음이 터진다.

  “잘 됐네, 일부러 못 알아듣게 말하는 거거든.”

  장난하는 걸까.

  “그 있잖아, 좀 배워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가끔 강연에서 자주 하는 말 있는데, 도망만 치면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도 않거든. 나도 나름 그 도망치는 대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도망만 쳐도 해결이 되는 일이 참 많다 이거지.”

  고개를 들었다.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입가에는 쓴웃음이 짙게 번져있다.

  “괜찮다 싶어서 가만히 있다가 보면, 꽤 많은 일들이 해결이 돼버려서 굳이 내가 안 나서도 되거든. 사실 안 나서는 게 아니라, 못 나서는 거지만. 가만히 있는 게 장땡이라고 생각하고 대충 살아버리면 나서서 해결 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지거든.”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바닥으로 뚝 떨어진다.

  “차라리 나서서 해결하는 게 더 낫지는 않았을까, 하고 후회를 하는 순간이 문제가 되는 거지. 이미 손을 꽤나 많이 놓은 상태라서 개선의 여지는 전혀 없거든. 한심하지? 그러니까, 힘들지 않아. 어차피 손을 놓아버렸으니까. 여기서 뭘 어떻게 더 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으니까. 나는 물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별 힘이 들 이유는 없지.”

  “어려워요, 일부러 꼬아서 말하는 거 아니에요?”

  “간추리면, 나는 대충 사는 거에 만족을 하니까, 힘 같은 거 안 든다. 라는 말을 한 거지.”

  정말 만족하는 걸까.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던 걸까.

  의문이 들지만, 굳이 거기에 매달릴 필요는 느껴지지 않았다.

  “너라면, 가족. 너희 어머니가 있으니까, 거기로 도망이라도 치면 되겠네. 아직은 힘든 일은 부모한테 맡겨도 전혀 문제 되지는 않겠지.”

  어쩐지 그 말에서 악의라고 해야 하나, 까칠한 가시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또 생각이 나고 말았다.

  “그러게요……. 엄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목소리가 떨리고 말았다.

  “엄마는 좋아하니까요.”

  별 생각 없이, 솔직하게 튀어나온다.

  “그래…….”

  왜일까, 내 말을 들은 아저씨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 먹었지?”

  금세 그 표정을 갈아치우면서, 앉아있던 자리에서 먼저 일어선다.

  “아, 네.”

  나는 녹아서 떨어져버린 아이스크림을 잠시 바라본 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꼭 지키도록 해라. 안 지키면 아이스크림 값은 꼭 물어 받을 거다.”

  하품을 크게 하면서 영수증을 내게 보여준다.

  영수증에는 작게 3000원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치사하게 그러지는 않거든요?”

  발끈하며 답한다.

  “모르는 일이니까.”

  입가에 작은 웃음이 일어나며, 그 영수증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럼, 나는 가본다.”

  대충 손을 흔들며, 내게서 등을 돌린다.

  “아, 안녕히…….”

  감사인사라도 더 할라고 했건만, 확실히 이상한 아저씨다.

  내 말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앞으로 걸어가기만 한다.

  어린이 병동은 저쪽 방향으로 가는 것보다 이쪽이 더 빠르므로, 나는 아저씨가 향한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발을 뗐다.

 

  ‘물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

  그 이상한 아저씨의 목소리가 귀를 후벼 판다.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내리고 시계를 확인한다.

  10시가 조금 더 넘은 시각. 아기들이 많은 이 병실은 10시가 다 되기만 하면, 이렇게 소등을 하고 잠을 잘 준비를 마친다.

  허나, 그건 애기들 문제고, 나는 전혀 잠이 오지 않는다. 원래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면 적당히 잠이 들고는 했는데, 오늘은 좀 그렇지 않다.

  고개를 돌려서 옆자리를 확인했다.

  텅 비어있다.

  아빠는 회사에서 야근을 한다고 들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물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가만히 있기만 해도 괜찮을까.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로 시선을 돌린다.

  나는 투정만 부릴 줄 아는 멍청한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피해를 줬으면 줬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준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족에게, 특히 엄마에게 나는 사과를 했어야 했다. 엄마에게 그냥 죽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때, 그래서 내 뺨에 엄마의 손이 닿았을 때, 나는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나 때문에 힘든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다는 것을. 아픈 것은 화를 낼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었다.

  깨달았다고 해서, 곧바로 철이 든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투정을 부렸고, 여전히 짜증을 참는 법은 익숙해지지 않았었다. 그래도 나름 노력했다.

  엄마가 웃으면, 나도 웃었다. 엄마가 내게 뭔가를 가르쳐주면, 나는 항상 그 가르침을 따랐다. 금방 변해버리는 또래 친구보다, 엄마라는 친구가 내게는 가장 편했다. 존경하는 엄마였고, 좋아하는 엄마였고, 사랑하는 엄마다.

  그래서 항상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투정을 부리고, 짜증을 냈던 나에 대해서 나는 엄마에게 죄송했다고 사과를 했어야 했다. 나를 환자가 아니라 딸로만 바라봐줬던 엄마에게 항상 감사했다고 몇 마디라도 대화를 나눴어야 했다.

  다 알았다,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내 몸이 붓고, 내 배가 아프고, 내 머리에서 열이 날 때, 그래서 내가 투정을 부릴 때. 아직 팔팔한 내가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가장 죽고 싶었던 건 엄마였던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날이 갈수록 줄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의 백옥처럼 하얀 피부가 단지 태생적으로 그럴 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의 몸이 점점 더 말라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뭇가지처럼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의 기침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는 것도, 엄마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엄마의 손이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도, 엄마의 웃음이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는 것도,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네.

  엄마는 보호자가 아닌, 나와 같은 병실에서 나보다 더한 괴로움을 견디고 있던 환자라는 것도.

  이불이 젖기 시작한다.

  볼이 뜨겁다.

  눈에서 물이 흐른다.

  이 물처럼, 이 물이 흐르는 것처럼 가만히 있기만 한다고 괜찮을까.

  아저씨의 말은 틀렸다.

  그럴 듯 했지만, 틀렸다.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해결은 돼도, 안 괜찮아질 때가 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흘러나오는 소리를 참았다.

  스스로를 아주 멋지게 속이고 있었다, 내키지 않는 일을 직면하지도 않았었다. 언젠가는 다 받아들여야 할 거면서, 가만히만 있었다. 가만히 숨어만 있는 게, 자연스러운 게 절대 아니라는 걸 다 알면서도.

  이제 물에 둥둥 떠다니기만 해서는 안 된다, 헤엄이라도 쳐야 한다. 물장구라도 쳐야 한다.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이제 눈물을 흘리며 품에 안길 사람은 없다.

  이제 사소한 투정을 부리며 함께 웃어줄 사람은 없다.

  이제 바로 옆에서 듣기 좋은 휘파람을 불어줄 사람은 없다.

  이제 재밌는 가르침을 들려줄 사람은 없다.

  아, 슬프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이불에 숨어서 눈물을 훔치는 것 밖에는 없다.

  엄마는.

  사랑하는 엄마는.

  죽었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20 20 10/31 386 0
19 19 10/29 535 0
18 18 10/27 402 0
17 17 10/26 548 0
16 16 10/25 457 0
15 15 10/25 372 0
14 14 10/24 446 0
13 13 10/23 387 0
12 12 10/20 400 0
11 11 10/17 454 0
10 10 10/12 648 0
9 9 10/7 426 0
8 8 10/5 413 0
7 7 9/25 417 0
6 6 9/20 501 0
5 5 9/13 533 0
4 4 9/9 418 0
3 3 9/4 370 0
2 2 9/1 431 0
1 1 (1) 8/31 84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