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119.
작가 : 삼각형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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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01     조회 : 429     추천 : 0     분량 : 5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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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꼬맹이!”

  나는 저 앞으로 달려가는 꼬맹이에게 큰소리로 소리쳤다.

  만약 누군가가 내 모습을 본다면 확실히 수상한 사람 취급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꽉 눌러 쓴 모자에, 부스스한 머리, 삐죽삐죽 난 수염, 험악한 목소리. 제대로 꽝이다.

  “나 그런 사람 아니야! 그러니까 그 소리 좀 그만 질러!”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없는 이 곳에서 저기 시끄럽게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꼬맹이를 잡아야한다.

  “즈, 증거가 없잖아요!”

  나와 거리를 유지하며 꼬맹이가 몸을 뒤로 돌려 내 정면을 마주본다.

  “내 이름은 서정우라고 한다. 너한테는 개미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꼬맹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꼬맹이의 표정이 갑자기 무언가를 경멸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바뀐다.

  “거짓말 같아요,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제일 위험한 사람이라고 엄마가 그랬거든요!”

  이젠 내게 삿대질까지 하며 나를 유괴범이라고 확신 한다.

  “야, 먼저 나한테 온 건 너잖아! 문제가 있다면 너한테 있지, 나한테는 그런 거 전혀 없거든!”

  어쩐지 굉장히 열성이 됐다. 선량한 나에게 갑자기 유괴범이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타이틀이 붙다니, 이건 열을 내지 않고는 못 뺀다. 아무리 상대가 꼬맹이라도.

  “우와~ 아저씨 지금 화를 낸 거예요? 한심하네요, 저 같은 꼬맹이에게 화를 내다니 어른으로써 실격이에요!”

  저 꼬맹이 아주 핵심을 찌른다.

  이 나이 먹도록 살면서 한 번도 보람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 없고, 열심히 살아보지도 않은 것은 인정하지만 나는 내가 어른이라고 자부는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부심이 저 꼬맹이에게 와르르 무너진다.

  “그, 그건 됐고. 내가 유괴범이라는 오해는 풀린 거냐? 풀렸다면 너는 그냥 가던 길을 가면 좋겠는데.”

  내가 졌다. 나는 저 꼬맹이에게 멋진 훈수를 둘 수 있는 꼰대가 아니다. 유괴범이라는 오해만 풀고 가던 길을 가면 그만이다.

  “흠, 아저씨처럼 어설픈 사람이 유괴범은 아닐 것 같네요. 수염도 안 깎고, 양말도 짝짝이로 신은 유괴범은 너무 눈에 끌리네요. 아저씨는 유괴범의 소질이 없어요! 꽝이에요!”

  칭찬이라면 칭찬일 터, 괜히 아니꼽게 생각하지 말도록 하자.

  나는 고개를 밑으로 젖혀서 내 발을 바라봤다. 검정색 슬리퍼에 끼인 내 두 발이 입고 있는 양말은 서로 다른 색이었다. 그것도 하나는 검정색, 하나는 하얀색.

  “저희 엄마가 하신 말인데요, 사람은 사소한 거 하나부터 잘 챙겨야 한데요. 특히 어른이 된다면 사소한 거 하나 챙겨줄 사람이 사라지니까, 특히 더 잘 신경 쓰고 살아야 한댔어요. 슬픈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해야 할 일, 작은 일들에 더욱 신경을 기울여야 깊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어요!”

  나보다는 저 꼬맹이가 꼰대로서의 소질이 다분히 보인다.

  “엄마가 말한 거니까 맞아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해보세요!”

  꼬맹이 주제에 발음도 또박또박하고, 목소리도 아주 똑 부러진다. 웅변 학원이라고 풀코스로 다녔던 걸까.

  나는 어쩐지 어린아이다운 표정을 짓고 있는 꼬맹이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었다.

  사소한 일. 그러고 보면, 나는 이태까지 살면서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일이 몇 개나 될까. 기억하고 있는 일은커녕, 평소에 제대로 임하고 있던 일은 몇 개나 되는 것일까. 나는 사진을 찍는 일을 몹시 싫어했다.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기분이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이유를 말하자면 그냥이었다. 어째서 사진을 그렇게 열심히 찍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대충 보고, 대충 느끼면 그만이지 않는가. 사진으로 남겨봤자 진정으로 기억할 수 있는 거라고는 풍경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친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 친하지 않았던 친구지만 나는 정장을 입고 그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웃고 떠드는 사람도 간혹 보였다. 나는 문득 죽은 친구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친구와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쩐지 조금은 슬픈 감정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그랬다. 사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사진을 찍는 시간을 아껴가며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던가, 이 아이 말대로 나는 사소한 거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이었다. 나는 사소함을 아끼지 못했다.

  사소한 것부터 챙겨가며 충실히만 살았어도 이런 상황까지 몰려오지는 않았겠지.

  나도 다 안다, 나는 글러먹은 인간이라는 걸. 자기 의지대로 살지도 못하는 허수아비 같은 인간. 어머니의 죽음을 기다리며 노닥거리기나 하고 앉아있는 불효막심한 인간.

  “저, 저 아저씨? 울어요?”

  꼬맹이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던 내 얼굴은 언제부터인지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울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제, 제가 너무 말이 심했어요? 그, 죄송해요.”

  도대체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꼬맹이는 허둥대며 내 곁으로 다가와 내 바지를 붙잡는다. 아까는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초등학생보다 더 어려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안 운다.”

  꼬맹이에게 운다고 걱정을 받다니,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날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쁜 의미로 말이다.

  나는 내 곁에서 만화에서 나올법한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는 꼬맹이의 정수리에 소리가 날 정도로 꿀밤을 먹였다. 이건 복수라고 해도 좋다, 어른을 가지고 논 꼬맹이에게 주는 복수. 좀 야비하고 멋없을지 몰라도, 분해서 못 참겠다. 꼬맹이 주제에 어른을 부끄럽게 하다니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다.

  “윽!”

  내 꿀밤을 정통으로 맞은 꼬맹이는 뒤로 주춤하더니 고개를 푹 숙인다.

  힘 조절을 잘못했나, 생각보다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울지만 않으면 좋으려만 산 넘어 산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자신의 정수리를 꽉 붙잡고 있는 꼬맹이에게 살살 다가갔다.

  “으 하하하하!”

  깜짝 놀랐다, 꼬맹이를 어떻게 달래야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예상과는 반대로 꼬맹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행복한 표정을 하며 큰소리로 웃었다. 이런 웃음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꼬맹이의 웃음에서 무지개가 뜨고, 꽃이 피고, 산들바람이 분다. 나는 이 꼬맹이가 왜 이렇게 즐거워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만은 잘 알 것 같았다.

  “울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아저씨!”

  농담이라도 하는 걸까, 꼬맹이는 어머니의 입을 감싸고 있는 산소마스크보다 훨씬 투명한 그 눈으로 내 눈을 응시하며 또 다시 미소를 짓는다.

  “제 이름은 ‘하’라고 해요, 아저씨. 연꽃 하(荷)를 써서, 박 하라고 해요!”

  그러더니 내게 자신의 작은 손을 건넨다.

  “저는 친구가 없거든요, 유괴범이라고 외친 것도 장난이에요. 제 장난에 이렇게 오래 장단을 맞춰준 어른은 아저씨가 처음이에요!”

  나는 멍한 표정을 지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 사실 제대로 속아 넘어간 것도 알고는 있지만, 아저씨 속사정을 생각해서 말로는 안 꺼낼게요!”

  거 참 고맙다. 허나, 안타깝게도 내 속은 말이 아니다.

  나는 꼬맹이가 내밀고 있는 작은 손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이 꼬맹이가 무슨 의도로 내게 손을 내밀었을지는 나도 잘 안다.

  “악수 몰라요?”

  꼬맹이는 순진한 눈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 작은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이렇게 잡고 흔들기만 하면 되는데.”

  내 손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작은 감촉. 어쩐지 내게는 이 작고 부드러운 손이 누구보다 크고 강직한 손이라고 느껴졌다.

  “고맙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고맙다는 건지. 내가 말하고도 내가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겠다.

  “음, 정말로 이상한 아저씨네요. 설마 진짜로 유괴범은 아니겠죠?”

  진심으로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를 내게 보낸다. 그리고 내 어중간한 개그코드는 여기에 반응하여 웃음이 빵 터지게 만든다.

  “뭐에요? 뭐가 그렇게 웃겨요?”

  내가 눈물을 보이면서까지 재미나게 웃자, 꼬맹이는 그런 나를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짧은 다리로 폴짝 폴짝 뛴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디 계시냐?”

  간신히 웃음을 멈춘 나는 꼬맹이가 아까부터 계속 혼자 있던 것이 문득 생각나서, 혹시나 미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보호자의 유무를 물었다.

  “제 병실에 있어요! 외출 갔다가 오는 길에 제가 잠깐 혼자 빠져나온 거예요. 환자복은 너무 불편하거든요.”

  부모가 얼마나 이 꼬맹이를 찾고 있을지, 좀 상상이 간다.

  “그렇게 맘대로 돌아댕겨도 되는 거냐.”

  “당연히 안 되죠!”

  참 해맑다.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참 좋겠지만.

  “나는 이제 슬슬 가야되거든. 너도 어서 너희 부모님에게 돌아가지 그러냐.”

  꼬맹이와 노닥거리고 있는 사이에 시간이 좀 지났다. 원래 간단히 요 앞만 둘러보고 병실로 돌아가려는 생각이었는데, 하여튼 나는 어린이와는 죽이 맞지 않는다.

  나는 몸을 꼬맹이에게서 돌리고 내가 뛰어왔던 복도를 다시 돌아가기 위해 발을 뗐다.

  “아. 잠깐만요!”

  어딘가 절실해 보이는 그런 목소리가 내 발을 꽉 붙잡는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꼬맹이를 바라봤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걸까. 이 정도면 장단도 아주 잘 맞춰준 편이고, 결과만이지만, 꼬맹이가 시원하게 웃을 수 있도록 해줬다. 내가 글러먹은 인간이라 이런 말을 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나는 저 꼬맹이에게 베풀어야할 호의가 없으며, 저 꼬맹이도 나를 이 이상으로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만…….”

  순간, 나는 말을 멈췄다.

  나는 꼬맹이가 내게 또 딴죽을 걸거나, 좀 더 놀아달라고 귀찮게 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추측을 시원하게 걷어차듯이, 꼬맹이는 자신의 하늘거리는 파란색 치마 주머니 속에서 에너지바를 하나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배고프시죠? 이거 드세요, 그럼 저도 꽤 바쁜 몸이라서 이만 가볼게요!”

  억지로 내 손에 에너지바를 쥐어 주더니 아이다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종종걸음으로 내가 걸어가는 쪽과는 다른 방향으로 뛰어간다.

  “다음에 또 만나요!”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에너지바를 천천히 응시했다.

  어쩌면 이게 내 인생에서 여자에게 받은 첫 초콜릿일 줄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 꼬맹이는 내 눈앞에서 증발하듯 사라졌고 나는 멍청하게 자리에 가만히 서서 에너지바의 봉지를 뜯고 반쯤 녹은 에너지바를 입 속에 넣어 소처럼 우물우물 씹었다.

  아내가 부추겨 매일 갔던 레스토랑의 호화로운 음식보다, 어머니가 고용한 가정부가 만들었던 식단보다, 아주 조금은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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