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119.
작가 : 삼각형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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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09     조회 : 417     추천 : 0     분량 : 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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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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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꼬맹이가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좋겠다. 집에 돈이 많으니까, 걱정 같은 건 없겠지?”

 

  아마도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녀석이 내게 했던 말이다. 그 녀석의 말대로 우리 집에는 돈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특별한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녀석의 말투는 비꼬는 말투도 아니었고, 그 시선은 진심으로 나를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녀석의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났다. 피가 거꾸로 솟고, 손은 조금씩 떨렸으며, 호흡은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 그 날, 난 학교를 다니며 처음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는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부모의 등에 빨대를 꽂고 사는 한심한 인간으로 보이는 것이 싫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걱정 없이 살아가는 바보라고 취급을 당했다고 스스로 착각에 빠졌던 걸까.

  잘 모르겠다.

  아직 어렸던 나는, 팔팔 끓는 물이 담긴 냄비의 뚜껑을 열었을 때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처럼 내 감정을 막아낼 수 없었다. 나는 내 정신이 맑아질 때까지 주먹을 휘둘렀고, 학교에서 고만고만하게 유지하던 인간관계에는 조금 금이 갔다.

  대충 살면 그만이라고, 눈에 띄지 않고 어중간하게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 사건은 좀 특별한 일이었다.

  사람은 가끔씩 그 감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도서관에서는 애를 잘 단속하셔야죠. 보호자가 주의를 안 주면 애들은 잘 모른단 말이에요.”

  나는 대충 먼 산을 바라보며, 내게 주의를 주는 도서관 사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음부터는 꼭 제대로 좀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짢은 표정을 하고서는 그대로 몸을 휙 돌려 다른 곳으로 걸어간다.

  드디어 끝났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쪽 구석에서 웅크리고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꼬맹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죄, 죄송합니다.”

  꼬맹이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부끄러운 건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뭐, 됐다.”

  특별히 꼬맹이를 꾸짖을 마음이 없는 나는 자세를 낮춰서 꼬맹이의 곁에 조금 가까이 갔다.

  이 꼬맹이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내 입장이 조금 난처하게 됐다.

  “읽을 책은……. 아직 못 찾았지?”

  고민해서 입 밖으로 낸 말은 겨우 이거다.

  “네…….”

  밝기만 하던 꼬맹이가 이런 태도를 취하니까 더 어려워진다. 갑자기 멋대로 울어버리고, 갑자기 어색해하다니.

  나는 풀이 죽은 건지, 기운이 없는 꼬맹이의 표정을 슬쩍 보고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자, 나는 대충 다 고른 거 같으니까. 이제 갈까?”

  나는 대충 손에 잡히는 책을 들고 꼬맹이에게 흔들어 보였다. 내 말에 꼬맹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쓱 비비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표정은 아직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 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정이 많은 사람은 아닐까 하는 망상이 들었다.

 

  “저, 사실은 친구들이 있었어요.”

  도서관을 나와, 1층에 있는 산책로를 통해 어린이 병동 쪽으로 나란히 걷던 꼬맹이가 좀 울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고집을 피우면서 동네에 있던 놀이터로 매일매일 엄마를 끌고 갔었어요.”

  잠자코 듣는 게 나을라나.

  “놀이터에서는 함께 놀 수 있는 애들이 많았거든요. 저도 그런 애들 사이에서는 재밌게 놀 수 있었어요, 저는 그 애들을 친구라고 생각했고, 그 애들도 저를 친구라고 불러줬어요.”

  산책로 가에 있는 노란 꽃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을 춘다, 하늘도 좀 어두운 걸 보아하니 비가 오려는 모양이다.

  “사실 밖에 자주 놀러 다니면 좋지 않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었어요. 엄마도 자주 밖에 나가는 건 몸에 좋지 않다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그래도, 그래도 저는 엄마 말을 듣지 않았어요. 저는 그 아이들과 노는 게 즐거웠어요. 그 애들과 밖에서 뛰어 놀고 있으면 저는 제가 그 애들과 다를 바 없는 건강하고 평범한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돼서, 안심이었어요.”

  꼬맹이의 말이 잠시 멈춘다. 그리고 동시에 내 발걸음에 맞추고 있던 녀석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한다.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요. 그 애들과 놀던 어는 날, 갑자기 배가 아파오고 머리가 어지러워졌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함께 놀던 애들은 당황하면서도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 급히 도움을 청해서 저를 구해줬어요. 정말로 착한 애들이었어요. 사실, 그날은 별로 몸이 좋지도 않았는데 엄마 몰래 밖으로 나갔었거든요.”

  나는 속도가 느려진 꼬맹이의 속도에 맞춰 내 발걸음을 조금 더 천천히 했다.

  “그대로 곧바로 응급실로 가서 주사를 맞으니까 다행히 몸은 금세 괜찮아졌어요. 엄마한테는 엄청 혼나고, 집으로 돌아온 저는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그 애들은 나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가득 채웠어요. 저는 또 다시 엄마 몰래 밖으로 빠져나와 놀이터로 향했어요. 마침 그 놀이터에는 저와 매일 함께 놀던 친구들이 있었고,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 애들에게 달려갔어요.”

  꼬맹이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기 시작한다.

  “그 때, 새삼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어요. 아이들은 마치 여기서 더 이상 볼 수 없을 사람이 왔다는 듯이 저를 쳐다봤고, 그 시선은 더 이상 같은 또래의 친구를 보는 눈빛이 아니었어요. 나와는 다른 사람, 그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이 전부 제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 무서웠어요, 왜 난 건강하지 못 한 건지 자괴감도 들었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 아이들이 저를 일부러 내쫓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아이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는 며칠 전만 해도 함께 놀던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아닌, 몸이 불편한 환자를 대하는 듯한 태도였어요.”

  차가운 감각이 얼굴에 든다.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얘기를 엄마에게 말하니까, 엄마는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아직은 준비가 덜 됐지만,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말이라도 건넨다면, 그런 쓸데없는 조건 같은 건 아무 필요 없을 때가 온다고, 그렇게 말해줬어요.”

  꼬맹이는 고개를 들어 투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엄마 말이 맞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 아이들이 잘못 된 게 아니에요, 아직은 제가 준비가 덜 된 거예요. 이 병원에서 나가고 약 없이도 생활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저는 제가 먼저 친구가 되자고 말하고 싶어요.”

  비가 조금 더 거세게 내리며 시원하게 내 머리를 적신다.

  “그러니까, 아저씨도 자질구레한 것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가, 갑자기 큰소리를 친 건 정말로 죄송합니다!”

  비에 젖어 꼬맹이의 곱슬머리가 점차 미역줄기처럼 되기 시작한다. 내게 몸을 숙이며 꾸벅 사과를 건넨 꼬맹이는 이제야 기분이 다 괜찮아졌다는 것을 알리는 듯이 환한 미소를 머금는다.

  “요는 내 말이 듣기 싫었다, 이거냐.”

  싱글벙글 웃고 있는 꼬맹이를 보자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며 잠시 놀부 심보가 올라온다.

  “음, 그렇긴 하죠! 그래도 아저씨가 싫었던 건 아니에요!”

  내 말을 가볍게 받아치며, 꼬맹이가 말을 잇는다.

  “이 병원에서 나가면 꼭 아저씨 랑도 친구가 되면 좋겠거든요!”

  “글쎄다, 그건 좀 많은 시간을 써가면서 고민을 해야겠는데.”

  “에~, 어른이면 어른답게 넓은 마음을 가진 태도를 보여주셔야죠!”

  막말 꼬맹이가 따로 없다, 지금까지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 해도 넓은 마음을 가진 어른의 태도가 아닌가.

  “음, 그래도 아저씨는 딱 이런 느낌이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하네요, 제 주위에 있는 어른들은 너무 심각하기만한 것 같아서 제가 다 걱정이거든요.”

  이 꼬맹이에게 내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일지 내가 다 궁금해진다.

  “어, 이제 슬슬 밥 먹기 전에 선생님이 회진 돌 시간이네요. 그럼, 저는 병실로 바로 갈게요! 너무 늦으면 엄마한테 혼날 수도 있거든요! 아까 골랐던 그림책은 잘 읽으세요! 안녕요~ 아저씨!”

  참 시끄럽게도 퇴장을 하신다. 꼬맹이는 뭐라고 삐약 대면서 저 앞에 있는 어린이 병동으로 뛰어가며 사라진다.

  그런데 그림책은 또 무슨 소린가.

  나는 비에 젖을 까봐 내 셔츠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책을 슬쩍 꺼내 그 제목을 확인했다.

  어린이에게 인기 많은 그림 동화 50선, 그 사서는 나를 혼낼 게 아니라 자신의 임무를 다해서 책을 제대로 된 자리에 가져다 놓았어야 한다. 망할 서서 같으니.

  나는 애꿎은 사서를 속으로 욕하고 더욱 거세게 내려오는 비를 피하며 병원안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어머니 상태는 좀 어때?”

  통화음이 조금 크다, 나는 아내의 목소리가 울려오는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멀리하고 통화음을 조절했다.

  “그냥 그렇지, 뭐.”

  “아, 그래? 내가 너무 오빠만 고생하게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래도 좀만 어떻게 참고 기다려봐, 오늘 변호사랑 상담하고 왔는데, 오빠가 끝까지 어머니 그렇게 보살피고만 있어도 다른 친척들한테 어머니 재산 더 넘어갈 일 없어진데.”

  아내는 은근히 기분이 좋은 말투를 하며 말을 이어간다.

  “다른 친척들한테는 내가 잘 말해서 병원으로 어머니 찾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혹시라도 오빠 가족들 중에서 어머니 찾으러 그쪽으로 가면 나한테 꼭 연락해줘.”

  나는 고개를 비가 내리는 창가에서 고개를 돌려 여전히 아무런 미동조차 없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또 이번에 어머니 돌아가시면 오빠네 회사랑 우리네 회사 어떻게 잘 합쳐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던데? 아, 이건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의사가 뭐라고 그래? 어머니 앞으로 얼마나 남으신 것 같다고 그래?”

  없다, 단 한 톨의 걱정도 없다. 아내에게는 단 한 줌의 죄책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는 아내도 나와 다를 게 없다, 나 또한 어머니에 대해서 어떠한 죄책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에게서는 냄새가 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어치우고 싶어 하는 살찐 돼지의 냄새가 풍겨온다.

  “길어야 두 달이라고 그랬던 것 같아.”

  “아, 정말? 그럼 이제 정말 안 남았네. 앞으로 좀 바쁠 것 같네, 오빠도 나도 이번 일로 준비할 것도 많고, 더 얻을 수 있는 것도 산더미처럼 있어. 뭐, 오빠는 앞으로도 병실에서 어머니나 계속 지키고 있으면 될 거고, 이쪽 일은 내가 다 할게. 오빠 것도 내가 다 챙겨 놓을게.”

  아내의 아름다운 미소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처음 아내를 만나고, 처음 아내와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낀 감정이 오늘따라 유달리 거세게 다가온다.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포장된 선물 상자, 그러나 그 상자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새어나온다. 도저히 그 상자를 뜯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처음 아내를 만나며 느낀 감정은 딱 이 정도였다.

  “잘 됐어, 그럼 난 또 가볼 때가 있거든. 그럼, 오빠 잘 하고~ 끊을게.”

  통화음이 끊겨지고, 다시 병실은 조용해진다.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도 병실을 시끄럽게 울리지는 못한다.

  나는 이곳에서만 숨 쉬며 살아가는 어머니를 다시 바라보고,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의자에 몸을 구겨 넣고 몰려오는 잠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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