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119.
작가 : 삼각형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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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20     조회 : 500     추천 : 0     분량 : 5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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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안녕하세요~ 어린이 여러분~”

  피에로도 아니고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한 마술사가 자신의 앞에 모여든 여러 명의 아이들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와! 아저씨 보세요! 마술사에요!”

  아주 좋다고 폴짝폴짝 뛰어댄다.

  “거, 나도 눈은 있거든? 도대체 저런 수준 낮은 마술사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방방 뛰어 대냐?”

  나는 마술사가 적당히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뭔가를 시작하려는 마술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뭐,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거니까 딴죽은 안 걸게요.”

  이 꼬맹이가 아주 인심을 써준다는 듯이 말한다.

  “야, 너 나한테 아주 큰 빚을…….”

  “아, 조용히요! 아저씨! 이런 공공장소에서는 큰소리로 떠들면 안 된다고요! 지금 시작하잖아요! 집중하세요, 집중!”

  역시 나는 어린 애와 죽이 맞지 않는다.

  나의 작은 한숨과 함께 마술사의 손이 바삐 움직이며 그 손끝에서 알록달록한 기다란 실들을 뿜어낸다.

  “오 오!”

  이렇게 눈을 반짝이며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순해빠진 어린애 같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 이번에는 여기 어린이 여러분의 기운을 받아서~”

  낯간지러운 대사를 읊으며 마술사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이상한 손짓을 하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오! 그래요, 저기 저쪽에 앉아 계신 아버지, 잠깐 거기 따님 분이랑 여기로 나와 주실 수 있을까요?”

  거 참, 재수도 없는 사람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마술쇼에서 무대 위로 올라간다니.

  나는 마술사에게 호명당한 불운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확인하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옆에 앉아있는 한 꼬마가 나를 부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저쪽에 앉아 있는 한 아줌마도 내게 흐뭇한 미소를 보낸다, 어쩐지 저 마술사의 시선 끝이 이쪽을 향하는 것 같은데.

  “아저씨, 이건 천운이에요!”

  내 한쪽 손을 꽉 잡으며 꼬맹이가 내게 속삭인다.

  “이건 필히 제가 매일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착하게 살아와서 하늘에서 준 기회에요!”

  아, 대강 뭐가 뭔지는 감이 온다. 이 꼬맹이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하늘이 준 천운일지는 몰라도, 내게는 하늘이 준 시련이나 다름이 없다.

  “저, 죄송하지만 저는 이 꼬맹이의 아버지가…… 읍!”

  마술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 기회를 다른 후보들에게 양보하려던 내 입을 꼬맹이가 다급히 막아버린다.

  “저기요, 아저씨.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마술사 선생님이 기껏 준 기회인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요! 저를 봐서라도 제발 꼭 좀 부탁할게요. 네?”

  도대체 이런 마술쇼가 뭐라고 이런 간절한 표정을 짓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끄는 것도 관객들에게도, 저 마술사에게도 예의는 아니기에 나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꼬맹이에게 무대 위로 올라가라고 손짓을 해 보였다.

  “자, 그럼 이쪽으로~”

  마술사가 웃음을 지으며 무대 위를 가리키자, 꼬맹이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금세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벌떡 일어나 나보다 먼저 무대 위를 향해 뛰어간다.

  그 뒤를 곧바로 이어 작은 무대 위로 올라간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눈이 크게 뜨여지며 시선이 무대 앞으로 고정이 되고 말았다. 솔직히 놀랐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그리 넓지 않은 무대, 그리 대단하지 않은 마술사가 있는 이 곳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넓지 않을 공간을 꼭꼭 채워서 고개를 쳐들고 무대 위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 그러나 나는 그 인파에 놀란 것이 아니다.

  머리에 붕대를 묶고 있는 아이, 한 손에 링거를 꽂은 채로 노란 액체가 담긴 주사를 맞고 있는 아이, 새하얀 얼굴에 더 하얀 마스크를 쓴 채로 이곳을 바라보는 아이, 휠체어를 탄 채로 한 구석에 있는 아이,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이곳을 바라본다, 멋스럽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싸구려 마술쇼를 바라보며 내 옆에 있는 이 꼬맹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자, 그럼 여기 꼬마 숙녀 분은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마술사의 높은 목소리가 무대 위를 울린다.

  “박 하요, 박하라고 합니다!”

  들뜬 목소리의 꼬맹이가 마술사에게 답한다.

  “네, 그럼 우리 하 어린이는 여기 있는 카드 중에서 마음에 드는 카드를 한 장 골라주시죠.”

  옅은 미소를 띠는 마술사가 갑자기 그 손에 여러 장의 카드를 쫙 펼쳐 보인다.

  무대 앞에 있는 꼬마 관객들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저마다 꺄르륵하고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보인다.

  “음~ 어떤 거로 할까나. 음, 그럼 이거요!”

  잠시 고민을 하던 꼬맹이는 마술사가 펼쳐 보인 여러 장의 카드 중에서 한 장을 꺼내 재빨리 마술사의 눈앞에서 감춘다.

  “네, 여기 계신 모든 여러분들도 다 보셨을 겁니다. 저는 하 어린이가 가진 카드가 어떤 카드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 그럼 저는 이렇게 고개를 뒤로 돌리고 있을 테니까. 하 어린이는 방금 뽑은 카드를 아버지 분을 포함해서 관객들 모두가 볼 수 있게 해주세요.”

  마술사의 말을 들은 꼬맹이는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이 뽑은 카드를 관객들 앞에 뻗어 어떤 카드인지를 똑똑히 확인시켜준다.

  하트 3, 빨간색 하트가 세 개 그려진 카드를 관객들, 그리고 나까지 모두가 확인했다.

  “자, 어떻게 모두가 확인했나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몸을 돌려 관객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마술사.

  “그럼, 잠시만 거기 계신 아버지 분은 여기로 가까이 와주실 수 있을까요?”

  능글맞은 말투로 나를 바라보며 마술사가 다가오라는 손짓을 한다.

  나는 그 손짓에 반응하여, 마술사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우리 하 어린이에게 잠시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뭐든지 양심에 손을 얹고 답하겠습니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심각하게 기쁜 표정을 짓는다.

  “반응이 좋네요! 자, 우리 하 어린이는 엄마가 좋나요, 아니면 아빠가 좋나요?”

  마술사는 자신의 검지를 세우며 심각한 표정을 하며 꼬맹이에게 묻는다.

  꼬맹이들에게는 꽤나 난해한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기는…….

  “엄마요!”

  어려울 줄 알았건만, 너무나도 확신에 찬 눈빛으로 대답한다. 괜스레 이 꼬맹이의 아빠라는 사람이 측은해진다.

  “아, 아……. 그런가요?”

  여유 넘치는 태도로 일관하던 마술사가 당황한 모습을 보인다.

  분명히 이 마술사는 꼬맹이가 둘 중 누구를 선택할지 몰라 뜸들이며 고민하는 반응을 예상했겠지. 어찌됐든 이 마술사도 꽤나 불쌍하게 됐다.

  그런데.

  어째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왠지 모를 측은함이 가득 담겨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내 설정이 이 꼬맹이의 아버지인 설정이 아니었던가.

  “아, 아……. 그래요! 옆에 아빠가 있으니까 지금은 없는 엄마를 선택했군요? 우리 하 어린이는 배려심이 깊네요!”

  땀을 찔끔찔끔 흘리며 어떻게든 이 안쓰러운 상황을 무마하려는 마술사.

  “아니요! 제 양심에 손을 얹고 진심으로! 대답 드린 거예요!”

  상황파악은 안중에도 없는 꼬맹이.

  “네, 네! 여러분 사실 우리 하 어린이는 여기 계신 아버지, 그리고 지금 여기 계시지 않은 어머니, 이 두 분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여 도무지 선택을 할 수가 없나 봅니다!”

  결국 대본대로 가는 건가.

  “어, 어째 저 무시당한 것 같은데요, 아저씨.”

  조금 충격을 먹은 목소리로 꼬맹이가 나를 올려다본다.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여 이 골치 아픈 꼬맹이에게 차근차근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마술 진행상 참기로 한다.

  “자, 그, 그럼. 제가 준비한 이 검은색 보따리를 잘 봐주시죠! 이렇게 뒤집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일반적인 보따리죠?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 보따리를 여기 계신 아버님께서 잘 들고 있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방금 전, 황당한 상황을 없었던 일로 만들려는 듯 마술사는 큰 목소리를 내며 내게 축 늘어진 검은 보따리를 건넨다. 나는 순순히 그 보따리를 건네받으며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품을 했다.

  “네, 그렇게 들어주시면 됩니다. 자, 그리고 이 예쁜 하트 인형을 하 어린이가 사랑하는 아빠나 엄마, 두 분 중에서 한 분께 이 인형을 선물로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엥? 그러니까, 그 인형 엄마한테 주면 되잖아요?”

  얼굴을 들이미는 꼬맹이의 눈을 일부러 피하며, 마술사가 무대 위에서 한 걸음 앞으로 전진 한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제가 여기 있는 하 어린이가 더 이상 고민하지 않도록, 이 인형을 복사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무대 앞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더욱 무대로 가까이 붙으며 눈을 반짝인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하 어린이가 뽑은 카드의 모양이 어땠는지 다들 기억하고 계십니까? 음, 저는 그 모양을 못 봐서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어쩐지 제가 들고 있는 이 하트 인형이 딱 그 모양과 맞아떨어질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며 마술사는 자신의 손에 들린 하트 인형을 높이 들어 보인다. 또한 그 앞에 앉아있던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작은 손으로 박수갈채를 보낸다.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서 더! 지금부터 이 인형을 방금 하 어린이가 뽑은 카드의 숫자만큼 복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시죠!”

  무대 앞을 향하고 있던 마술사는 몸을 휙 돌려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하트 인형을 내가 양손으로 들고 있던 검은 보따리에 쑥 집어넣었다.

  꽤 대단한 마술쇼를 여럿 본 나로서는 이 뒷내용이 대충 예상이 가기 시작한다.

  “하나!”

  내 귀에서 피가 터져 나오기라도 바라는 걸까, 마술사는 큰소리로 외치며 검은 보따리 안에서 방금 자신이 집어넣었던 하트 인형을 하나 꺼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 후, 싱긋 웃으며 다시 손을 보따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두울!”

  예상이 갔던 그대로 마술사는 보따리 안에서 방금 꺼냈던 하트 인형과 똑같은 인형을 꺼내 다시 모두에게 그 인형을 보여주었다.

  “자, 그리고 여기가 마직막이네요! 세엣!”

  마지막 구령과 함께, 마술사는 보따리 안에서 세 번째 인형을 꺼내 높이 들어보였다.

  뻔하다, 재미없다, 따분한 마술이다. 나로서는 이 마술사의 마술이 전혀 대단하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굳이 이 마술을 보러 이곳에 일부러 올 필요도 느껴지지 않는다.

  “와…….”

  그리고 대충 주변을 둘러본 나는 이 마술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 사람은 이 공간에서 나 하나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와! 맞아요! 제가 뽑은 카드는 하트가 세 개! 세 개에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술사를 난처하게 하던 꼬맹이가 마술사가 기뻐할 최고의 반응을 보이며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어댄다.

  진심으로 즐거워 보인다. 꼬맹이뿐만이 아니라, 이 공간을 가득 채운 모두가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그 웃음은 그들의 팔을 감싸고 있는 붕대나, 주사바늘과 상당히 대조가 되어 위화감이 들지만, 하얀 환자복과는 왠지 모르게 잘 어울린다는 웃음이라고 생각이 되어 그 위화감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최고에요! 제 인생 최고의 마술쇼에요!”

  “인생을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그런 소리를 막 하냐.”

  나는 아직도 무대 위에서 짓고 있던 표정을 유지하며 품안에 하트 인형을 가득 안고 걸어가는 꼬맹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치, 정말 낭만이 없는 아저씨네요.”

  입을 삐죽 내밀고 내게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뭐, 그래도 오늘 이렇게 마술쇼를 볼 수 있었던 건 아저씨의 덕이 굉장히 컸다고 생각을 해요,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거요!”

  꼬맹이는 품안에 고이 모셔놓고 있던 하트 인형 하나를 손에 쥐고, 그 손을 내게 뻗었다.

  “받으세요, 제 선물이에요!”

  “글쎄다. 그거 두 개 가지고 되겠어? 그냥 세 개 다 가지고 가지 그러냐.”

  “괜찮아요, 두 개면 충분해요!”

  그렇게 말하며,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지개가 뜰 것 같은 미소를 짓는다.

  “너희 아빠한테는 좀 미안한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꼬맹이의 손에 들린 빨간 하트 인형을 바라만 보았다.

  “괜찮아요, 아빠한테도 확실히 줄게요!”

  “그래도 나는 이런 인형 전혀 쓸데도 없고, 필요도 없는데.”

  내 말을 끝까지 들은 꼬맹이는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입을 삐죽 앞으로 내밀며 다시 입을 연다.

  “저기요, 아저씨? 저 팔 떨어지겠는데요?”

  도대체 이런 말은 어디서 배워온 건지.

  나는 작은 한숨과 작은 웃음을 동시에 내뱉으며 꼬맹이의 작은 손에 들린 인형을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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