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신을 따르는 신의 종들은 마법사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신이 마법사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니 신이 싫어하기보다는 마법사가 신의 영역을 범하여 신성을 위협하기에 본능적으로 성직자들은 마법사들을 꺼려한다.
엄밀히 말하면 신의 권능을 넘보는 정도만이 아니라 스스로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기에 신성의 위엄을 넘보는 불경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 마법사들을 이단으로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신의 영역을 넘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강제할 인간 세상의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륜의 저버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을 벌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마법사들 중에 흑마법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했고 특히 그들이 추종하는 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마신이나 마왕을 추종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그들을 공적으로 지정하고 토벌을 했다.
이런 흑마법사들도 두 가지 부류가 존재했다. 하나는 영혼을 담보로 하여 마신이나 마왕, 마족과 계약을 하는 소환마법사와 순수하게 마이너스 마나를 이용하여 마법을 전개하는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나 키메라마법사가 있었다.
신의 사도들인 신관들이 이 두 가지 부류의 흑마법사들 중에서도 특히 싫어하는 부류는 의외로 소환마법사가 아니라 계약을 하지 않은 일반의 흑마법사들이었다.
그 이유는 일반 흑마법사가 신성을 모독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계약마법사들이 마신이나 마족에게 영혼을 담보하는 계약을 하지만 이는 그들 자신도 주신에게 영혼을 의탁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신의 사도라면 계약마법사들은 마신의 사도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신이 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신의 신성 자체를 넘보는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순수한 흑마법사는 스스로 새로운 마신이 되려는 존재였다. 신의 존엄을 무시하고 스스로 신을 능가하는 존재가 되려는 것은 신을 따르는 존재로서 용납하기 어려웠다. 이는 마법사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들은 인륜을 무시하는 행위로 빌미를 제공하기에 마법사들이 감당해야 할 분노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렇기에 신에게 있어서 신성을 모독하고 신의 권능까지 넘보는 가장 나쁜 부류였다.
1. 피오르드 영지
에카트리나 왕국의 수도 사비올라 외곽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저택은 다른 때와는 달리 아주 부산스럽기 짝이 없었다. 평소 아주 조용한 모습과는 달리 유난스러울 정도로 부산한 이유는 저택의 주인인 레비올로 스타니엘 자작이 그 저택을 처분하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갤러스 총관, 가지고 갈 짐은 다 정리했지?”
“물론입니다.”
레비올로 스타니엘 자작은 마차에 오르지 전에 자신이 살았던 저택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미 떠나기로 결정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미련을 버리고 마차에 올랐다. 그러자 갤러스 총관도 조심스럽게 마차에 올랐고 마차의 문을 닫으면서 바로 출발하라고 지시했다.
마차가 저택의 대문을 나서자 먼저 대기하던 기사 20여 명이 말을 타고 앞장을 섰고 그 뒤를 대기하던 30여 대의 마차가 따랐다. 마지막으로 그 후미를 50여 명의 병사와 용병이 뒤따랐다.
“저택을 굳이 처분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총관인 갤러스가 다소 아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귀족이기에 나중을 위해서도 수도에 저택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한 번 처분을 하기로 한 이후에 결정한 것을 바꾸지 않고 있었다.
“새로 즉위한 왕이 나를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수도를 떠나기로 한 것일세.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이고 말이야. 떠나려면 확실히 하는 것이 좋아. 그게 모두를 편안하게 하는 일이야. 그러니 아쉬워할 것이 없네.”
전대 국왕인 세일러 3세가 죽고 얼마 전에 아일라 2세가 새로 즉위를 했다. 전대 국왕 시절에 국왕자문역으로 최고의 권세를 누리던 스타니엘 자작은 새로운 국왕이 즉위하자 그저 평범한 늙은 마법사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전대 국왕이 즉위하는데 가장 공이 큰 다섯 명의 공신 중에 하나였지만 권력투쟁과정에서 얻은 부상으로 인해 5년 정도 제대로 거동도 하지 못했고 그 후에도 부상이 제대로 낫지를 않아 마법실력도 5서클에서 정체를 하고 말았다.
그건 마법사에게 죽는 것보다도 더 괴로운 일이었지만 부상에서 회복하기를 기다리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자격지심인지, 번거로운 것이 싫은 것인지, 아니면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인지 스타니엘 자작은 저택에 칩거를 하고 말았다. 20여 년 전에 우연히 영지를 받은 후에 낙향을 하려고 했지만 당시 국왕인 세일러 3세는 수도에 머물기를 원해 20여 년간 결국 수도에서 머물러야 했다.
당시에 자작이나 남작이던 벤틀러 공작, 하일러 후작, 에스니아 백작, 아일러 백작 등 다른 네 명의 공신이 중앙에서 권력을 누리고 승작을 했지만 그는 전대 국왕이 즉위한 직후에 남작에서 자작으로 승작을 한 이후 여전히 같은 위치에 있었다.
공직에 나가서 드러난 일을 하지 않은 탓에 승작을 하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다른 네 명의 공신이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탓에 하나가 되어 견제를 하니 승작이 쉽지가 않았다.
“왕립마탑이나 태양의 마탑에서도 내가 수도에 머무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 고작 5서클 마법사인 내가 그들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정리하기를 원하는 것이지.”
스타니엘 자작은 겉으로 권력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암중에서 국왕의 자문역을 수행하면서 그간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세일러 3세에게 가장 영향력이 강한 귀족이기도 했다. 특히 마법 분야에 관하여는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두 탑주와 많은 간부들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 것이 영주님인데 지금에 와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 나이 이제 일흔다섯이니 10여 년 전에 물러났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치고 말았어. 선대왕이 계실 때 멀리 떠나지 않은 것이 잘못이지.”
스타니엘 자작은 전에 떠나지 못한 것을 오히려 안타까워했다. 그런 처지가 된 것보다 그런 처지가 되도록 처신한 것을 반성하고 있었다. 그는 권력에 초연한 면이 있었고 그렇기에 전대 국왕도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하오나 선왕 폐하께서 만류를 하셨고 그 후에는 환후가 있어 자리를 비울 상황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내가 있었다고 하나 도움이 된 것은 없었네. 오히려 내가 수도에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된 면이 컸네. 지금이라도 떠날 수 있는 것이 다행일세. 그러니 이후에는 달리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하네.”
갤러스 총관도 이제 나이가 일흔이었다. 열 살의 나이에 시동이 된 이후에 60년의 세월 동안 그를 보필한 가장 믿음직한 가신이기도 했다.
스타니엘 자작은 정식으로 호칭을 하면 피오르드 자작이라 해야 옳았다. 풀네임을 부르면 레비올로 스타니엘 피오르드라고 칭해야 했다. 그의 영지 명칭이 피오르드 영지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스타니엘이란 성을 사용하는 스타니엘 백작이 있기에 사실 스타니엘 자작으로 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젊을 때에 스타니엘 남작으로 불리었고 자작이 된 후에도 영지를 받기 전까지 스타니엘 자작이라 불렸기에 영지를 받은 후에도 여전히 스타니엘 자작이라고 칭했다.
“10일 정도 지난 후에 스타니엘 백작령에 당도할 것입니다.”
갤러스 총관은 수도인 사비올라를 벗어나자 그렇게 먼저 상황을 보고 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내용이지만 항상 모든 것을 고하는 것이 몸에 익은 상황이라 복명을 했다.
“영주인 백작에게는 연락을 했겠지?”
스타니엘 자작은 타계한 전대 영주인 레온 스타니엘 백작의 동생이었고 그 전대 영주인 데이슨 스타니엘 백작의 넷째 아들이기도 했다. 마법을 배우면서 영지를 떠났지만 여전히 영지와는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물론 방문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거부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의 처지가 별로 좋지 않지만 그가 수도에 있으면서 스타니엘 영지에 해준 것이 많았다.
“내가 가는 것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소에 들리기 위해서이니 굳이 백작을 만날 이유는 없어.”
조카가 달가워하지 않는다면 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물론 묘지에 들리기 위해서는 백작의 거처인 영주관 인근에 가야했지만 꼭 만날 이유는 없었다.
“아마 영지 어귀에 당도하면 영접을 하러 일부 인원이 나와 있을 것입니다. 하온데 이렇게 번거롭게 마차로 여행을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차라리 워프게이트로 기사들과 같이 이동을 하시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영지에 가면 외부로 나갈 일이 없을 것이네. 마차로 달려도 한 달 이상이 걸리겠지만 이런 여행을 할 기회는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네. 그러니 그냥 여행을 하고 싶네.”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워프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갤러스 총관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스타니엘 자작이 특별히 원한을 맺은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전대 국왕의 측근으로 정치에 관여를 한 이상 적지 않은 적대관계가 형성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해코지를 하는 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것도 다 운명인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어떻게 하건 위험도를 따지면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니.”
스타니엘 자작의 말에 갤러스 총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렇기에 영지에 있는 기사 20명을 수도로 불러 여행하는 동안 호위를 하도록 한 상황이었다.
“영지에 있더라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그러나 다른 영지를 횡단하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우리를 공짜로 호위해 주는 자들이 길 양 옆으로 수도 없이 많으니 걱정할 것 없네. 한 때 같이 일을 도모했던 다른 동료들이 나를 위해 암중에 호위를 붙여 주었으니 걱정할 것 없네.”
스타니엘 자작이 말한 호위 병력은 사실 그를 감시하는 자들을 지칭하고 있었다. 현재 그가 귀향을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새로 즉위한 국왕이 그를 거리끼게 생각하는 점도 있지만 권력의 중심에 있는 다른 네 공신들이 그가 더 이상 권력의 중심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긴 그들이 모두 의기투합을 하기 전에는 누구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도에서 몰아내는 일에는 한목소리를 냈지만 더 이상 협력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치란 것이 비정하여 어제의 동지가 이제는 서로 권력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다툼을 암중에서 조정한 것이 사실 스타니엘 자작이었고 그런 역할을 하도록 하려고 전대 국왕은 한사코 수도에 붙잡아 두었던 것이다.
전대 국왕이 죽고 새로운 왕이 즉위하자 모두 스타니엘 자작을 꺼려하여 은근히 압박을 했고 새로 왕이 즉위할 때까지 10여 년간 권력의 암투에 환멸을 느낀 스타니엘 자작은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아 영지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사이먼은 팔로스 마을의 외곽에 자리한 주택에 살고 있었다. 팔로스는 피오르드 영지의 북방 관문이 존재하는 지극히 위험한 마을이지만 한편으로 가장 영지에서 번성한 마을이기도 했다.
영주관이 있는 곳, 피오르드 성보다 더 번성을 했는데 그 것은 관문 밖에서 진행되는 몬스터 토벌을 하면서 획득하는 몬스터 부산물과 그 과정에서 획득할 수 있는 각종 약초를 유통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와 두 동생이 일가족이었다. 여기에 군식구라고 할 수 있는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일가가 별채에 살고 있었다. 고위급 용병인 아버지는 고아였고 그 덕분에 처가 식구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너는 용병이나 기사가 되기 위해 검술을 익히는 것보다 그냥 농사를 짓거나 상인길드 교습소에 들어가서 상인이 되는 것이 좋겠다.”
아버지 크라인이 검술을 지도하다가 그렇게 탄식하듯이 말을 했다. 피오르드 영지에서 셋밖에 없는 A급 용병인 아버지의 말이니 그 말이 더욱 가슴에 크게 와 닿았다.
“제가 마나 유저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본검술까지는 다 익혔지 않습니까? 시간을 두고 검술을 수련하면 분명 마나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검술을 배운 기간이 무려 7년이다. 네 나이 이제 열네 살이다. 그 기간이라면 충분히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네가 검술을 배우는 센스가 좋아 기본검술을 다 익히고 몇몇 용병들이 익힌 실용검술까지 익히고 있지만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 한계가 존재한다. 잘 해야 C급 용병이 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면 B급 용병도 되지 못한다. 한 마디로 너처럼 검술을 익히는 센스가 좋지만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자들을 소드댄서라고 한다.”
사이먼은 자신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별명이 언급되자 얼굴을 찡그렸지만 달리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너에게 가르쳐준 검술은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고명한 검술이다. 기초검술만 익혀도 마나유저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기본검술까지 익힌 이상 오래 전에 마나를 느끼는 것뿐이 아니라 유저가 되어 마나소드를 구현해야 했다.”
크라인은 아들인 사이먼이 더 이상 늦기 전에 새로운 길을 찾기를 원하기에 강하게 말을 했다.
“알았어요.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1년 정도만 더 하고 그래도 안 되면 포기하겠습니다. 그 정도만 기다려 주세요.”
사이먼은 지금까지 해온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1년의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자신이 마나친화력은 그리 높지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검을 배우는 것은 재미가 있었다.
크리안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떠나가자 사이먼은 들고 있는 검을 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찍었다. 워낙 강하게 내리친 덕분에 손바닥이 갈라져 피가 흘렀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소드댄서라니?’
사이먼은 생각을 하기도 싫은 말이지만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기도 했다. 검술의 형식을 익히는 것은 뛰어나지만 마나를 익히지 못해 검술이 결국은 검무劍舞나 마찬가지인 검사를 조롱하는 말이었다.
‘아버지의 검술이 나에게 맞지 않아서 그럴지도 몰라 친분이 있는 다른 용병들의 검술도 익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이먼은 아버지가 일을 나간 사이에 아버지의 동료들을 졸라 그들이 익히고 있는 검술을 익히기도 했다. 어지간히 친한 관계가 아니라면 검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크라인과 그들은 벌써 10년 이상 친분을 가진 관계이기에 각자가 익힌 검술은 큰 비밀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버지 크라인도 그들의 기본적인 검술은 모를 수가 없었다. 더구나 소드댄서라는 별명을 가진 사이먼이기에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히 그들이 익힌 검술을 따라할 수가 있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마나샤워를 받는 것밖에 없는가? 프리안 마법사에게 부탁을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지.’
사이먼은 최후의 수단을 사용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많아 어린 사이먼으로서는 감당이 어려웠지만 그나마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기에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현재 사이먼의 처지에서는 기대를 하기에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