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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海月) : 뒤바뀐 하늘
작가 : 까망별하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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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녀와 소년의 싸움
작성일 : 20-08-01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5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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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후.

 하늘 아래의 세상 융평국의 400년.

 이 융평국의 또 다른 영토 희슬(喜瑟).

 

 희슬은 음악과 축제의 땅으로 융평국 서쪽에 위치해 있는 영토다.

 활기가 가득하고 그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가 넘실거리는 매력적인 땅, 희슬.

 또한 희슬은 융평국의 일곱 영토 중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넓은 땅이다.

 

 그리고 이 희슬에서 최고의 음식점이자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는 희슬의 명소, 낭청루(朗淸樓).

 

 퉁퉁퉁 투퉁퉁!

 

 휘릭 휘릭.

 

 지잉~ 지잉~

 

 신명나는 악기 소리들과 또 젊은 여자들의 맑은 노랫소리가 함께 어울려져 윤로의 귓전에 어렴풋하게 흘러들어왔다.

 윤로, 그가 누워 있는 이 방이 바로 낭청루가 보유하고 있는 많은 방 중에 하나였다.

 

 이 방 안으로 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살은 정신없이 꿈속을 헤매고 있는 윤로의 얼굴 위를 거침없이 비췄다.

 

 그 빛과 동시에 연주 소리들과 여자들의 노랫소리가 조금 더 선명하게 윤로의 귓가를 자극하는 듯 했다.

 그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뜻이다.

 

 윤로는 간밤에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를 정도로 술을 꽤 마셨었다.

 언제 쓰러져서 잠 들었는지 모를 만큼, 꼭 의식을 잃은 것처럼 자고 있었던 윤로였다.

 

 윤로는 정신이 드니 위장이 느글거리기도 하고 이따 끔씩 속에서 따가운 통증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속이 보채는 바람에 더 이상 더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힘겹게 겨우 두 눈을 떴다.

 그리고 곧바로 침상에서 상체를 힘들게 일으켜 침상 밑으로 긴 두 다리를 내리고 걸터앉았다.

 그런 뒤 그는 이 방 안에 펼쳐져 있는 풍경을 멍한 표정을 하고서 눈으로 쭉 훑었다.

 

 윤로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자신의 침상 건너편에 또 다른 빈 침상이었다.

 윤로는 하품을 하며 그 침상으로부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자 간단한 차나 식사를 할 수 있는 2인용 네모난 탁자가 그 다음으로 그의 눈에 들어왔다.

 탁자 위는 난리도 아니었다.

 

 탁자 위에는 호리병 모양의 백색 도자기 술병 두 병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병의 술병이 탁자 끝에서 곧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누워 있었다.

 

 총 세 병의 술병. 저 술병들은 틀림없이 모두 빈 병들일 것이다.

 술병들 안에 들어 있던 술은, 이 낭청루의 대표 주(酒)인 [송화주]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 송화주가 들어 있었던 술병들 주변으로는 먹다만 안주들이 담겨 있는 접시 두 세 개도 널브러져 있었다.

 

 “우욱~ 죽겠네~ 진짜. 휴~ 또 말렸어. 도대체 사람이 아니고서야.”

 

 윤로는 탁자의 상태를 보자마자 간밤에 송화주와 함께 밀어 넣었던 것들이 식도를 타고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겨우 속을 진정시킨 윤로는 인상을 팍 쓰며 중얼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탁자의 상태를 보고 있노라니 윤로는 간밤에 치열했던 접전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다시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저 송화주 세 병을 윤로 혼자서 해치운 것은 아니었다.

 일조(一助)를 했을 뿐이었다.

 

 세 병 중에 한 병만을 말이다.

 나머지 두 병을 해치운 이는 따로 있었다.

 송화주 두 병을 해치운 이를 생각하며 윤로는 다시 거칠게 인상을 팍 썼다.

 

 이제 정신이 완전히 차려진 건지 윤로의 귀에 잠결에 어렴풋이 들렸던 악기 연주 소리와 여자들의 노랫소리가 더 선명하게 흘러 들어왔다.

 

 음악과 축제의 땅답게 희슬 곳곳에서는 낮이고 밤이고 음악들이 울려 퍼진다.

 또 희슬의 사람들은 음악과 함께 늘 흥겨운 일상을 보낸다.

 

 이런 희슬을 대표하는 낭청루에도 해가 희슬을 비출 때에도,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도 음악소리와 노랫소리들이 줄곧 울려 퍼진다.

 

 윤로는 처음에 이 희슬을 유난스런 땅이라 생각했었다.

 그런 그도 희슬의 활기찬 생활 방식과 일상들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긴 했었다.

 

 혜신류에서 도망쳐 어쩌다 이 희슬에 정착해 3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으니 익숙해질 만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지내다 보니 익숙해진 걸까?

 또 아니면 혼자가 아니어서 자신이 이 땅의 이방인이라는 것을 잊고 지내게 된 건지.

 윤로는 그런 생각들을 종종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숙취에 시달리거나 기분이 저조해질 때는 고요하고 한적했던 별들의 땅, 혜신류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혜신류는 망할 기억을 떠 안겨준 별의 땅이었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자신과 맞는 땅은 이 요란한 희슬이 아닌, 바로 혜신류라고 윤로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다.

 

 “망할!”

 

 또 다시 혜신류의 생각에 사로잡히자 윤로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어떤 장면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장면을 억지로 쳐내고 싶기라도 했는지 윤로는 거칠게 상체를 다시 침상에 뉘였다.

 

 그리고 한 쪽 팔을 자신의 두 눈에 얹고 햇살로부터 두 눈을 가리며 짜증스럽게 말을 툭 내뱉었다.

 

 ♥♥♥

 

 10년 전. 혜신류.

 

 별들이 흐르는 혜신류의 어느 가을밤.

 이제 대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가 자신의 눈 바로 위에서 번뜩이는 날카로운 칼날의 끝을 응시하며 벌벌 떨고 있었다.

 

 “아, 아버지…….”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떼며 소녀는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한 성인 남자에게 아버지라 불렀다.

 

 “나를 아버지라 부르지 말거라. 넌 나의 딸이 아니다. 넌, 장차 내 앞 길을 막을, 또 이 혜신류를.. 이 융평국을 멸망시킬 저주의 아이일 뿐이다.”

 

 칼 밑에서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소녀를 향해 남자가 단호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소녀에게 일렀다.

 자신의 할 말을 다 마친 남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긴 칼을 위로 치켜 들었다.

 

 “아, 아버지!”

 

 ♥♥♥

 

 소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윤로의 귓전에 생생하게 때려 박혔다.

 그와 동시에 윤로가 누워 있는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야!”

 

 열린 방문과 함께 윤로가 떠올렸던 어린 소녀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 소리가 조금 더 성숙해진 소녀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순식간에 바뀌어 들려왔다.

 윤로는 다시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 방문 쪽을 쳐다보았다.

 

 열린 방 안으로는 창을 타고 들어온 햇살 보다 더 강렬한 태양의 빛이 넓게 왈칵 쏟아져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 태양의 빛과 함께 열린 문 밖에서 이얀이 환하게 웃으며 윤로를 부르고 있었다.

 

 “뭐야?”

 

 윤로는 눈부신 햇빛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그녀에게 까칠하게 대꾸했다.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저기요? 간밤에 송화주 두 병이나 혼자 해치우신 아가씨가 하실 소리는 아닌 거 같습니다만?”

 

 그녀의 발랄한 등장에 짜증 가득한 말투로 윤로가 비아냥대듯 말했다.

 이얀은 그런 그의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방문을 툭 닫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윤로의 바로 앞으로 다가와 섰다.

 

 송화주 두 병을 해치운 장본인인, 양 쪽으로 곧게 땋은 하얀 머리의 이 소녀, 이얀.

 그런 이얀의 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뭐, 이런 게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 윤로는 이얀이 어떻게 저 정도로 멀쩡할 수 있는지 새삼 의문이 들었다.

 

 술은 이 희슬에 와서 처음 접한 두 사람이었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해롱거리는 윤로와 달리 이얀에게 송화주 두 병 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이얀은 윤로 바로 앞에서 그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며 미소를 살짝 머금었다.

 그런 그녀는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뭐, 뭐야?”

 

 이얀의 얄궂은 행동에 윤로는 다시 까칠하게 쏘아 물었다.

 그러자 이얀은 허리를 푹 숙여 자신의 얼굴을 윤로의 얼굴 가까이에 마주했다.

 

 이얀의 신비스러운 진녹색 두 눈동자가 윤로의 눈 바로 앞에서 빛났다.

 그리고 이얀의 땋은 하얀 머리카락 끝들이 윤로의 얼굴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윤로는 당황한 얼굴로 인상을 쓰며 이얀을 쏘아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얀은 더 요상하고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그런 그녀가 곧 윤로에게 명랑하게 물었다.

 

 “지금 내 손에 뭐가 있게?”

 

 “안 궁금해!”

 

 “로가 궁금해 하지 않아도, 이걸 보면 태도가 달라질걸?”

 

 “별로 그럴 거 같지 않은데? 아가씨?”

 

 윤로는 계속 가까이에 있는 이얀의 얼굴 때문인지, 미세한 열감이 자신의 얼굴에 퍼져 오르는 것을 느끼며 이얀의 말에 대꾸 해주었다.

 

 그러던 그때 이얀이 허리를 다시 폈다.

 그리고 두 팔을 윤로의 얼굴 앞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이얀의 두 손바닥 위에 벽돌만한 크기의 네모난 상자가 얹어져 있었다.

 윤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상자와 이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런 그가 곧 퉁명하게 물었다.

 

 “쓰레기 주워 왔냐? 또?”

 

 “아이, 진짜! 이건, 쓰레기가 아니란다? 네 주인을 뭘로 보는 거지? 이 호위무사야?”

 

 이얀은 윤로의 물음에 큰 눈을 끔뻑 거리며 능청스럽게 대답해주었다.

 

 “허! 까분다~ 누가 주인이야?”

 

 윤로는 이얀의 말에 그저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치며 짜증을 팍 냈다.

 그런 윤로의 대꾸에 아랑곳 않고 이얀이 상자의 뚜껑을 바로 열었다.

 

 “짠!”

 

 윤로는 이얀의 의해 뚜껑이 열린 상자 속을 들여다보았다.

 상자 속에는 다름 아닌, 은괴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열감이 오르고 있었던 윤로는 그 은괴들을 보자마자 바로 열감이 식어 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가 이얀을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며 호통 쳤다.

 

 “이 아가씨야! 또 노름 했어?”

 

 “허! 노름 아니라고 했잖아! 나 그런 거 안 해! 정당한 규칙을 지키면서 하는 놀이판에만 끼어든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이얀이 자신에게 쏘아 묻는 윤로에게 따지듯 맞받아쳤다.

 그러자 윤로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그가 이얀을 내려다보았다.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말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겨우 억누르고 윤로는 입술을 꽉 깨물며 이얀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숙박비 내야지! 소곡님이 나 보고 춤이라도 춰서 일하면 공짜로 지내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로가 그것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자신이 생각했던 반응과 달리 윤로가 화난 얼굴로 자신에게 나무라자 이얀 또한 답답해진 마음에 그에게 계속 맞받아쳤다.

 

 “그래서 내가 일하고 있잖아! 여기 호위무사로! 그리고 나무토막 같은 몸뚱이로 무슨 춤을 춘다고 그래? 남의 장사 망칠 일 있어?”

 

 이얀의 반박에 참다못한 윤로는 급기야 언성을 더 높여 그녀를 향해 윽박질렀다.

 

 “뭐? 으이씨! 나무토막? 허! 그리고 로가 받는 월급으로 택도 없잖아! 이 어마 무시한 낭청루 숙박비에, 음식 값에! 게다가 로는 여기서 꼬장 부리는 술주정뱅이들 무식하게 엎어 치느라, 낭청루 기물 파손한 게 얼만데! 소곡님이 그건 물라고 하셨잖아! 3년 동안 기물 파손한 거, 혼자 벌어서 언제 다 배상 할 거야? 이러다 우리 배 삯이랑 무령에 가서 버틸 재산은 언제 모으냐고!”

 

 이얀은 지지 않고 윤로에게 연이어 따지고 들었다.

 폭풍처럼 쏟아내는 이얀의 말에 윤로는 그저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만 연신 끼어댔다.

 

 그리고 이얀이 말을 끝내자마자 윤로는 바로 답답한 얼굴을 하고서 되받아 치려 입을 열었다.

 

 “미치겠네! 저기요! 주인님?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요. 내가 벌은 돈은 죄다 아가씨 술값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예? 그리고 희슬에 더 있자고 조른 게 또 누구시더라?”

 

 “그, 그건!”

 

 이얀은 반박 할 수 없는 맞는 말만 조목조목 해대는 윤로에게 더 이상 맞받아 칠 수 없어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윤로의 목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혜신류의 왕비가 희슬 출신인 거 몰라? 이 희슬에 혜신류 사람들이 어느 영토 사람들 보다 더 많이 드나 든다는 거 모르냐고요?”

 

 “아, 알아.. 그래도 3년 동안 별 일 없었잖아…….”

 

 이얀은 윤로의 말에 조금 전에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살짝 풀 죽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윤로는 팔짱을 끼며 이얀에게 다시 물었다.

 

 “말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너 천해 인가 뭔가 하는 사람, 찾을 생각이 없는 거야? 혹시?”

 

 “차, 찾아야지. 찾고 싶지.. 그런데.. 여기 있으면 윤로가 안 다치니까.”

 

 “뭐?”

 

 “여기 있으면서 알았어. 여기서는 로가 편하게 잠든 다는 걸. 우리가 희슬까지 오는 내내, 로는, 날 지킨다고 편하게 잠 든 적이 없잖아.”

 

 이얀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꽤 진지한 투로 윤로에게 말을 늘어놓았다.

 윤로는 그런 이얀은 무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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