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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海月) : 뒤바뀐 하늘
작가 : 까망별하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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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희슬(喜瑟)의 새벽
작성일 : 20-08-02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6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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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얀은 은괴가 들어 있는 상자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쪽 검지를 들어 올려 작은 빛을 내며 말을 이었다.

 

 “빨리 천해라는 자를 찾아서 이 신술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게 많아. 그런데, 로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있으면 했어. 우리 다시 여정 떠나면, 낭청루만큼 좋은 곳에 머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잖아. 소곡님만큼 좋은 분 만날 거란 보장도 없고. 또, 백랑이랑 모명이도. 그리고 윤로는 또 날 지킨다고 편하게 잠 들지 못할 거야.”

 

 “하! 그래서, 주인님께서 이 보잘 것 없는 소인을 생각해 주고 계신다고?”

 

 “우리 이제 이 은괴도 있고, 윤로가 원하면 다시 무령으로 떠날 계획을 천천히 세워 보자. 그런데 지금, 당장은 떠나기 싫어.”

 

 이얀은 검지에서 빛을 소멸 시키고 윤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윤로는 이얀이 말을 마쳤는데도 한참 무표정을 유지한 채 그녀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입을 열어 이얀에게 물었다.

 

 “너, 무령에 가면, 송화주 더 이상 못 먹을 까봐 그러지?”

 

 진지한 표정과 진지한 말투로 어처구니가 없는 질문을 해오는 윤로를 이얀이 쏘아보았다.

 

 “아, 뭐야?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술만 퍼 마시는 줄 알겠다!”

 

 “술 쟁이 아니시라고요? 아가씨가?”

 

 “으이씨! 그러는 윤로, 너는! 너도 솔직히 말해 봐! 너도 낭청루 떠나기 싫잖아!”

 

 “내가 왜? 난 지금 당장 떠나도 아쉬울 거 없는데?”

 

 “너, 영초 언니 좋아하잖아!”

 

 “뭐?”

 

 윤로 역시 이얀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황당한 얼굴로 까칠하게 되물었다.

 [영초]는 이 낭청루에 소속 되어 있는 무희(舞姬)이다.

 

 이얀 보다 한 살 많고 윤로와 동갑인 그녀는 뛰어난 미색뿐만 아니라 춤 실력까지 출중한 낭청루를 대표하는 무희였다.

 

 “영초 언니 눈에 밟혀서 어떻게 여길 떠나겠어? 그렇지?”

 

 이얀은 진지한 표정은 이내 거두고 장난기가 가득 서린 얼굴을 하고서 윤로에게 짓궂게 놀리듯 물었다.

 

 “하! 진짜. 그러는 아가씨는? 노름 중독 되가지고 희슬 못 떠나는 거 아니야? 도대체 어쩌려고 그래? 술 중독에, 노름 중독에~ 에휴! 쯧쯧쯧. 이 사실을 어머니가 아시면,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 연해 할멈은 또 어떻고?”

 

 “허! 뭐야? 그리고 또 노름 이래! 노름 아니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돼? 내가 이렇게 돈도 많이 벌어다 줬는데, 칭찬도 못해 줄망정, 왜 자꾸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거야?”

 

 이얀은 또 다시 시작된 윤로의 면박에 그새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그에게 연신 쏘아 댔다.

 

 “그걸 몰라서 물어? 아가씨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나 도와주는 거야!”

 

 “뭐?”

 

 “그리고 그렇게 새벽에 돌아다니다가, 하르한이 심어 놓았을지도 모를 심복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정신 차려! 이 아가씨야. 우리 도망자야~”

 

 윤로도 이얀 못지않게 인상을 잔뜩 쓰고 그녀에게 경고하듯 일렀다.

 이얀은 그런 윤로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씩씩 거리며 노려보았다.

 

 벌컥!

 

 이얀과 윤로, 두 사람이 마치 원수를 보듯 서로를 노려보고 있던 그때였다.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다시 활짝 열렸다.

 이얀과 윤로는 싸움을 멈추고 방문 밖으로 동시에 시선을 꽂았다.

 벌컥 열린 방 안으로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왈칵 쏟아져 들어왔다.

 

 「영원한 어둠이 하늘의 세상을 뒤덮는대도, 희슬은 지지 않아.

  태양은 우리 희슬의 편이니까.

  하늘도 희슬의 편이니까.

  그대의 피리 소리와 나의 노랫소리가 화합하면 그건 사랑이 되네.

  사랑이 있는 우리 희슬.

  희슬은 즐거움의 땅.

  희슬은 지지 않아.

  태양은 우리 희슬의 편이니까.

  하늘도 희슬의 편이니까.」

 

 “이얀! 큰일 났어!”

 

 그런데 그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를 뒤로 하고서, 예닐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남자 아이가 문 밖에 서 있었다.

 그런 아이는 곧바로 이얀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아이는 말을 내뱉기 전부터 또 말을 내뱉고 난 후에도 연신 숨을 색색 거리고 있었다.

 급히 뛰어온 모양이었다.

 

 “뭐야? 꼬맹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윤로가 이얀 대신 아이에게 다그치듯 쏘아 물었다.

 그의 다그침에 아이는 깊은 숨을 한 번 몰아쉬고 겨우 다시 대답했다.

 

 “그, 그러니까 그게! 아, 둘이 그렇게 사랑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야!”

 

 아이의 입에서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흘러나오자 윤로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이를 쏘아 보았다.

 쌍꺼풀은 없지만 깊고 꽤 큰 눈이 아이를 쏘아보자 길고 매서운 눈매로 변했다.

 

 “뭐라는 거야? 이 꼬맹이가?”

 

 “그러게!”

 

 윤로가 아이에게 다시 대꾸하자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이얀도 윤로에 말에 맞장구 쳤다.

 이얀은 그러다 말고 아차 하는 표정을 하고서 아이에게 재촉하듯 물었다.

 

 “그런데 백랑!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히 뛰어 온 거야?”

 

 “지금 돌멩이 녀석들이 낭청루 쪽으로 오고 있다고!”

 

 “뭐? 왜?”

 

 “왜긴 왜야? 그 녀석들이 흰 머리 아가씨가 막 사기 쳤다면서 그런 소리를 하고 오던데? 저잣거리 구경 갔다가 그 녀석들 하는 얘기 듣고 지금 막, 낭청루로 달려 온 거야! 아무래도 새벽에 그 놀이판이 문제가 있었던 거 같은데?”

 

 자초지종 상황을 늘어놓는 백랑을 보던 이얀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백랑이 알려준 상황에 이얀은 생각 할수록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씩씩 거리며 백랑을 향해 말을 내뱉었다.

 

 “진짜 웃기네? 누가 사기를 쳤다고 그래? 정정당당하게 딴 건데, 무슨 소리야? 그리고 그 놀이판이랑 돌멩이들이랑 무슨 상관있다고? 가만 있어봐. 이것들이 어디를 쳐들어와? 내가 갈 거야!”

 

 말을 다 뱉은 이얀은 자신을 한심하게 쏘아 보는 윤로를 뒤로한 채, 갑자기 방 밖으로 나갔다.

 이얀이 방에서 사라지자 윤로는 콧방귀를 짧게 끼며 침상에 다시 털썩 누웠다.

 

 윤로는 침상에 눕자마자 머리가 지끈 거려오는 것을 느꼈다.

 숙취 때문이거나 아니면, 조금 전까지 이얀과 열을 내며 싸워서 그런 듯 했다.

 

 “윤로! 안 따라가?”

 

 백랑은 낭청루 정문 방향으로 씩씩 거리며 걸어가는 이얀의 뒷모습에 시선을 꽂고 윤로에게 물었다.

 

 “내버려둬.”

 

 “에? 로, 아직 돌멩이 녀석들이랑 안 엮여 봤지? 완전 골치 덩어리들인데? 천하에 소곡님도 저 녀석들은 피하신다고.”

 

 백랑은 조금 전처럼 다급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천하 태평한 표정으로 그저 이얀의 머리색과 비슷한 자신의 흰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윤로를 향해 말을 다시 내뱉은 백랑이었다.

 

 윤로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런 윤로를 응시하며 백랑이 방 안으로 들어와 윤로가 누워 있는 침상, 건너편 빈 침상에 걸터앉았다.

 침상에 걸터앉자 백랑의 짧은 두 다리가 공중에 붕 떴다.

 

 “돌멩이 녀석들,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악질이 아니었는데 하는 짓거리들이 갈수록 더 치졸해 지는 거 같던데? 요즘은 막, 희슬 여자들뿐만이 아니라, 희슬에 오는 다른 영토 여자들까지 꾀거나 심지어 납치까지 해서... 팔아넘기는 그런 짓거리까지 한다고 하는 거 같더라고. 상인들이 떠드는 얘기 들었어. 그리고 그거 기억 안나? 3년 전에, 이얀 납치 됐을 때! 아무래도 3년 전에 그 사건이 돌멩이 녀석들 소행이 아니었을까? 하시던데? 소곡님은?”

 

 백랑은 윤로가 듣거나 말거나 자신이 근간에 들었던 소문을 일러주었다.

 윤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두통이 더 짙어져서 그런 건지 미간만 미세하게 움찔 거릴 뿐이었다.

 그의 미간이 움찔 거리자 짙은 그의 눈썹도 덩달아 움찔 거렸다.

 

 “이얀이 윤로한테 호신술 배운지도 얼마 안 됐는데 돌멩이들한테 덤빌까봐 그것도 큰일이네? 참! 게다가 그 신술 쓰는 거 조절도 잘 못하는데.. 더 사고치는 거 아니야?”

 

 방금 백랑이 흘린 말들은 분명 자기 혼자 흘리듯 중얼거린 말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윤로의 귀에는 어쩐지 백랑이 방금 흘린 말들이 또록또록하게 박혀대는 것 같았다.

 윤로는 짜증을 참으며 백랑에게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하~ 꼬맹아~ 참~ 시끄럽구나. 엉아가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으니 조심 좀 해주겠어?”

 

 “정말 안 따라가? 이얀은 머리 색깔이며 눈이며, 안 독특한 곳이 없어서 돌멩이 녀석들이 더 눈독 들일 텐데?”

 

 “아!”

 

 자신의 경고에도 백랑이 전혀 아랑곳 않고 계속 쫑알거리자 윤로는 드디어 짜증을 폭발시켰다.

 그는 거칠게 상체를 일으키고 앉아 백랑에게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꼬맹이! 너 그 누님을 3년이나 겪고도 모르겠어? 그 막무가내로 성질부리면 돌멩인지 자갈인지 하는 것들도 질려서 다 나가떨어질 거야! 3년 가지고 부족해? 나는 그 막무가내 성질을 10년을 겪었다!”

 

 “나도 안다 뭐! 우리 셋이 같이 지낸 3년이란 세월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막무가내 성질 다 윤로한테 배운 거겠지. 뭐!”

 

 아주 어린 꼬맹이에 불과한 백랑이지만 백랑은 윤로에게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했다.

 

 왜인지 몰라도 윤로는 백랑의 그 말대꾸에 별 다른 반박을 하지 못하고 그저 헛웃음만 흘려 대는 자신에게도 짜증이 났다.

 

 “나 아까 안 그래도 이얀이랑 한바탕 해서 머리 아파 죽겠거든? 오늘은 그냥 봐 줄 테니까, 꼬맹이.. 좋은 말로 할 때 귀찮게 하지 말고 나가서 놀아라. 어?”

 

 “흥! 어차피 따라 갈 거면서 엄청 빼네! 메에에롱~!”

 

 윤로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냉정하게 경고를 해오자 백랑은 윤로에게 심술궂은 얼굴로 혀를 쭉 내밀어 보였다.

 그리고 재빨리 밖으로 총총 뛰어 나갔다.

 

 백랑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성질을 돋궈놓고 사라지자 윤로는 머리가 더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윤로는 머리를 짚으며 기가 막힌 표정을 하고서 방문 쪽을 쳐다보았다.

 

 ♥♥♥

 

 “하! 진짜 짜증나! 아니, 누굴 사기꾼 취급을 하고 있는 거야? 돌멩이? 걔들이 도대체 뭔데? 안 그래도 로 때문에 열 받아 죽겠고만!”

 

 이얀은 낭청루에서 한참 벗어나 저잣거리를 향해 걷고 있었다.

 발에 힘을 주고 연신 씩씩 대며 걷고 있자니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얀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얀은 윤로와 어김없이 간밤에 송화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셔댔다.

 

 송화주라는 술은 이 희슬에서 많이 열리는 열매, [송화]라는 열매로 빚은 술이다.

 [송화나무]라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다.

 

 이 나무에서는 지금 송화 꽃이 만발하는 시기이다.

 꽃잎은 마치 하얀 눈 송이을 연상케 한다.

 

 희슬에는 융평국 남쪽의 [사(沙)], 모래의 땅처럼 겨울이라는 계절이 따로 없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볼 수 없는 지역이다.

 그런 희슬에서는 겨울이 없는 대신 송화 꽃을 봄에 내리는 눈이라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송화 꽃의 다른 말로, 동설화(冬雪華)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송화 꽃이 지고 여름에 송화 열매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열매의 크기는 살구 크기만 하며 색은 짙은 자주 또는 보랏빛이다.

 열매의 맛은 꿀만큼이나 단맛이 난다.

 

 이 송화나무가 얼마나 희귀한가 하면, 하늘이 융평국 동쪽에 내린 하늘의 숨결이 깃든 땅이자 식물과 약초의 땅인 [천아(天雅)]에도 없는 것이었다.

 

 천아에는 다양한 꽃과 약초를 비롯한 식물들이 없는 것 빼고 다 나는 땅이다.

 그런 천아에서 그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송화나무였다.

 

 송화 열매는 정말 다양하게 쓰일 수 있어 희슬의 대표 특산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이 송화 열매는 술을 빚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희슬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송화 나무를 가지고 있지만 최대 규모의 송화 과수원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는 낭청루가 유일했다.

 

 게다가 낭청루만의 비법으로 빚은 이 송화주를 한 번 맛 본 이는 송화주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그 매력에 다름 아닌 이얀이 3년 째 홀딱 빠져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어젯밤에도 송화주 두 병이나 혼자서 해치웠음에도 불구하고 이얀은 밤새 잠을 설쳤었다.

 

 그 탓에 몇 시간 전, 이얀은 새벽의 희슬 번화가를 활보하고 있었다.

 축제와 음악의 땅답게 희슬의 새벽 저잣거리는 화려한 야시장이 쭉 늘어져 있어 그 활기가 더 생생했다.

 이 야시장 거리는 새벽 시간이라도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3년 내내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던 이얀이었다.

 이얀은 그렇게 잠을 설칠 때면 이 새벽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구경을 하고 낭청루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런데 이 같은 이얀의 행동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윤로는 이얀에게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며 여간 나무랐던 것이 아니었다.

 

 비록 3년이나 희슬에 정착해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어쨌거나 여전히 도망자 신세였다.

 

 그런 두 사람이 특히 다른 영토 사람들이 관광까지 많이 오는 이 희슬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가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혜신류와 희슬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었다.

 

 바로 혜신류의 왕비가 희슬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혜신류는 다른 영토들에 비해 희슬과의 교류가 유난히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많은 혜신류의 사람들이 희슬에 드나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이얀이 혼자 희슬의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질색 팔색 하는 윤로였다.

 

 그래도 답답한 건 이얀의 선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3년 동안 희슬에서 별 일이 없었으니 잠깐 나갔다 오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던 이얀이었다.

 

 그렇게 이얀은 윤로 몰래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느라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었다.

 

 그러던 와중 이얀은 생각해 냈다.

 바로 윤로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자신에 비해 훨씬 술이 약한 윤로를 술에 취해 잠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술을 고분고분 먹어줄 리가 없는 윤로였다.

 이얀은 그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바로 술 대작이었다.

 

 어젯밤에도 이 같은 방법으로 윤로를 먼저 잠을 재우고 새벽 거리를 돌아다녔었다.

 이얀은 여느 때처럼 야시장에서 파는 다양한 물건들과 주전부리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 야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곳곳에서 다양하게 펼쳐진 놀이판들.

 이 놀이판들을 구경하거나 가끔 놀이판에 참여도 하며 이얀도 나름대로 희슬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이렇게 구경하고 즐기다 보면 오랫동안 자신을 따라 다녔던 혜신류에서의 일.

 

 또, 자신의 아버지, 하르한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던 10년 전, 그날 밤에 끔찍한 기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한참 저잣거리를 걷던 이얀은 유독 인파가 많이 몰려 있는 한 놀이판에 시선을 고정 시켰다.

 

 이얀은 자동적으로 그 놀이판이 벌어진 곳을 향해 발을 몇 걸음 뗐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떼다 말고 도로 몸을 휙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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