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시작은 늘 그랬다.
언제 적 인지도 모르는, 어쩌면 기억의 사실 조차 거짓일 수도 있는 어린시절. 정말로 코를 훌쩍이던 꼬꼬마의 시절.
기억에 남는건 그것 하나였다.
어두운 밤. 풀벌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녹색철문의 듣기 싫은 녹슨소리. 그리고 그 소리에 한참을 울었던 여자아이.
그리고 깨어나면 기억의 암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여자아이 조차 나였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수많은 기억의 보물상자에서 딱 한 개만 열어볼수 있게 한 것처럼 한참을 울었던 그 기억은 매년 나를 힘들게했다.
그것 조차 보물은 아닌 것 같지만
삐걱 거리던 철문소리에 귀신이 나타날까봐 울었던 여자아이는 나름 잘 성장해서, 그때와 반대로 귀신이, 아니, 악령이 두려워하는 사자(使者)가 되어있었다.
뜻과는 상관없이.
자발적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비정규직 사자 일을 하고 있는 까닭은 총 1만개의 악령을 잡아야지 소원을 이뤄준다고 높으신 분께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정작 이제 2명의 악령만을 올려보내면 되는 지금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환생을 빌었는지, 아니면 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빌었는지, 아니면 미련이 남았을 수도 있는 몸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달라고 했는지.
아마 예상컨데 같이 일을했던, 먼저 몸으로 다시 돌아간 녀석의 소원으로 봐서는 같은 소원일 가능성이 제일 커 보인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사자의 대부분은 수명을 채우지 않고 어떤 사고로 인해서 영혼이 몸을 탈출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언제 1만개의 악령을 다 채울까 싶었지만, 오늘처럼 병원을 한번 돌때는... 그러니깐 지금같은 상황에서.
방금 전 악령을 잡았던 병실밖에 팔짱을 끼고 기대고있자 역시나 환자 주변으로 검은연기가 피어올랐다.
오늘은 이곳에 방문 손님이 많네
기가 약한 환자에게는 그 몸을 차지하기 위해 악령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제대로된 결계를 치기 전 까지.
검은 형체가 자리를 잡자 이제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악몽을 집어넣기 시작하는 것이다.
/흑으흑... 억울해... 흐윽윽/
아, 이번에는 원한 컨셉이야?
그런데 활동을 한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악령의 연기 리얼리티가 너무 떨어진다. 누워있는 환자 표정이 미동도없이 너무 평온하잖아.
어설퍼보이는 악령이지만 어쨋든 잡아서 올려보내야 했고, 한참을 지켜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악령에게 다가갔다.
“에휴, 저기요...”
/흐흑흑... 너 때문... 네에?/
아씨, 깜짝이야.
봐도 봐도 저 뻥 뚫린 블랙홀 같은 눈동자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깜짝 놀란 심장을, 아 나 심장 안 뛰지. 호흡을 가다듬고 악령에게 말했다.
“아니 그렇게 해서 악몽을 꾸겠어요? 환자 봐 봐요. 너무 평온해 보이지 않아요?”
갑자기 나타난 나 때문에 당황해 보였지만,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느낌으로 안달까, 이 악령도 그동안 계속 실패를 해 왔던지 내 말에 귀를 귀울였다.
"표정이 중요해요. 그래야지 감정이 들어가죠. 오늘 컨셉 뭐에요? 보니깐 원한컨셉인것 같은데, 맞죠?"
용케도 알아맞춘 내가 신기한지 고개를 과하게 끄덕였다.
"따라해봐요. 먼저 눈썹을 내 천자로 만들고, 그리고 입술도 시옷입으로 만들면서, 네 좋아요. 그렇게!"
"이제 정말~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야지 악몽이 들어간다구요."
/이... 이렇게요?/
"아니아니. 좀더 입술 끝을 내리고! 곡소리는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나올 수 있게!"
/흐흑흑!!! 억울해!! 다 너 때문이야!!/
“옳지, 잘한다!”
악령을 그냥 잡으면 되지 왜 옆에서 이렇게 코치를 하냐고? 모든 악령이라고 다 잡아들일수 있는게 아니다. 저런식으로 악몽을 꾸게 시도해봤자 대상자에게 효력이 없으면 잡을수가 없다. 연기도 지도 하고, 비정규직 사자는 먹고 살기도 힘들다.
코칭의 효과가 나타나는지 환자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제 악몽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칭찬을 해주면서 옆에서 악령을 더 부추기자 응원에 탄력을 받았는지, 세상 알고 있는 욕이란 욕을 환자의 귓가에 열심히 퍼붓고 있다. 환자의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하며 호흡이 조금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아, 더이상 가다가는 생사람 잡겠네.
“이봐요!”
서로 연기와 같은 존재라 손으로는 잡을 수 없기에 귓가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저기요! 이제 그만!!"
/#####**@#$##@$!$^%&%^*%^&^/
“아 그만하라고!”
너무 연기에 심취해 있어서 내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들고 있던 부채로 악령을 그대로 내려쳤다.
그제서야 소리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근데... 누구?/
이 악령도 어지간해서 밥 벌어먹기 그른것 같다. 이제서야 내가 누군지 궁금해 하다니.
“나? 너 잡으러 온 사... 아, 귀신인가?”
/....히익!/
얼씨구, 반응도 한템포 느리고.
도망가려 애쓰는 듯 보였지만 이미 부채의 힘에 의해서 온몸이 묶여버렸다. 심연같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가진 눈동자에서 얼핏 공포를 본 것 같지만 개의치 않고 펜을 들어 이마에 숫자를 세겼다.
158
이름대신 나에게 부여된 번호였다. 그래야지 위에서도 누가 보낸건지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살...살려줘!!/
숫자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자 이마부터 검은 입자가 깨지기 시작했다. 검은 가루가 흩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는 가볍게 눈을 감고 묵념했다. 한때는 사람이었을 영혼에게.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그땐 부디 원하는 생으로 살기를.
“휴, 이제 한 개 남았네”
9999개의 악령을 올려보냈고, 이제 마지막 하나 이다.
"수고했으니 좀 쉴까나?"
왠지 찌뿌둥한 느낌에 기지개를 켜고 문 밖으로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할때였다.
"아... 오늘 마무리 하라는건가."
병원을 선택한 이유가 여러명의 악령을 잡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오늘은 유달리 이 환자에게 손님이 많은것 같다. 바로 지금처럼.
누웠있는 환자 위로 투명한 막이 생성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침투해 있던 악령이라도 되는걸까. 그런데 형태 또한 달랐다. 대부분의 악령은 사람의 형태였구나 싶은 검은 형체에 뻥 뚫린 눈동자만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보는 악령은 투명한 사람형태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래 마치 저 몸에서 나올것처럼.
“어...어?”
이런, 너무 늦게 악령을 거둬드린건 아니지?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오려는 것 같은 모양새이다.
“이봐요, 저기 영혼씨?”
황급한 부름에 몸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영혼이 나를 돌아보았다. 흐릿하지만 사람의 형체에 악령 특유의 블랙홀 같은 검은 눈동자도 없다.
“저기, 몸의 주인씨, 거기 꼼짝말고 가만...어!! 일어나지 마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안절 부절 못하고 있자 몸의 주인인 그녀의 영혼이 몸을 쑥 일으켰다. 잡힐리 없음을 깜빡 잊고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손을 쑥 뻗었다.
"어?"
잡히면 안되는건데?
잡힐리 없는데 잡힌 손안에서 서늘한 피부의 감촉이 느껴지는것 같다. 그녀 또한 내 어깨를 그대로 붙잡았다.
‘....아줘’
분명 힘이 느껴지지 않아야 하지만 내 팔뚝을 강하게 잡은 손에 의해서 엎어지듯 그 육체의 몸 위로 넘어졌다. 그리고는 그녀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그녀와 그대로 시선이 마주쳤다.
‘...다...아줘’
“...네?...”
슬픔이 가득한 눈동자에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슬픔에 온몸이 잠식당한 기분이다. 보이지 않을 눈동자를 마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흐를리 없는 눈물이 실체인가 싶어 손으로 눈물을 훔치려는 순간 더 강한 힘에 의해 육체가 내영혼을 끌어당겼다.
손쓸 틈도 없이 그대로 육체에 갇혀버렸다.
‘이봐요!!’
사지가 묶인 듯 옴싹달싹 할 수 조차 없다. 나를 자신의 육체로 내동댕이 친 그녀는 아까와는 반대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여전히 슬픈 표정으로.
“...살아줘......야.......해.”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영혼이 육체와 동화되어 가는지 육체가 가지고 있는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혼일 적 느껴보지 못했던 오랜만에 느끼는 살아있는듯한 통증에 결국 참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 * *
"으음."
커텐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가을의 얼굴을 괴롭혔다.
가을은 눈이 부신 듯 미간을 찌푸리고 햇살을 피하려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무거운 돌덩이가 몸을 누르고 있는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려고 호흡을 크게 들여 마셔 보지만, 코 안으로 연결되어 있는 무언가가 오히려 호흡을 방해하듯 불편하게 만들었다. 손을 움직여 괴롭게 하는것을 때어내고 싶은데, 손가락 조차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숨을 쉬어도 엇박자로 숨이 들어오고 이러다 과호흡이 올것 같아서 더이상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어?’
처음 눈에 들어온건 새하얀 천장이었다. 뿌옇게 잡히지 않는 초점을 맞추려고 두세번 눈을 깜빡이자 흐릿했던 시야가 그나마 또렷해졌지만 생각은 여전히 멍했다. 뇌가 굳어 버린 듯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그녀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 주변을 살폈다.
삐삑 거리는 모니터링 장치와 여러개 연결되어 있는 수액, 사용용도를 알수 없는 기계들. 그것을 제외하고는 병원인지 호텔방인지 알수 없는 크기의 병실이었다.
주변의 사물을 살펴보자 낯이 익었다. 가을 아니 가을의 몸에 빙의한 158번의 사자가 방금전까지 악령을 잡았던 바로 그곳이었다.
‘어어?!!’
가을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확히는 들어가 있는 영혼이 놀란거였지만 가을의 몸은 영혼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생각의 사고가 빠르게 휙휙 지나갔다.
지금... 그러니깐 내가 이 몸에 빙의한거야?
습관적으로 입으로 말을 내뱉으려 했지만 거칠게 말라버린 입술에는 쇳소리만 났다.
내가 말로만 듣던, 초보나 하는 짓을 겪고 있다고?
가을은 눈물이 날것 같았다. 하지만 안면근육을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근육에 더욱더 펑펑 울고 싶었다.
이제 겨우 한명 남았는데
눈동자만 겨우 움직이자 눈물이 볼을타고 떨어졌다.
타인의 몸에 빙의를 하게 될 경우 무사히 그 몸에서 탈출을 한다 해서 그 벌로 100명의 악령을 더 모아야 했고, 만약 몸의 영혼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떠나버리면 빙의되었던 사자조차 엄벌을 면치못했다.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들어주기로 했던 소원이 사라짐과 동시에 천계에서 무보수 종신계약으로 계속 악령을 잡는 노동을 해야했다.
그녀는 허망함에 천장만을 멍하니 바라봤다.
혹시나 싶어 육체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발버둥쳤지만, 영혼이 육체에 접착제라도 발라놓은 듯 한 몸뚱아리로 미세하게 움찔거릴 뿐이였다.
미동조차 없음에도 체력 또한 떨어진 듯 숨만 거칠어 졌다.
"에휴"
크게 한 숨을 내 쉴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가을님, 혈압체크 하... ?!”
습관처럼 입으로만 말을하며 트레일러를 끌고 모니터를 보던 간호사는 손을 소독하고 혈압기계를 꺼내는 순간 가을과 눈이 딱 마주쳤다. 가을이 깨어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듯 놀란 얼굴로 황급히 비명을 삼키곤 급하게 호출을 하기 시작했다.
"VIP 이가을님 깨어나셨어요."
몸을 탈출하려고 너무 애써서 였을까.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황급히 다가와 그녀의 상태를 살피며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이대로 영혼도 함께 빠져나갔으면 좋겠다.
그녀는 소박한 소원을 빌며 문을 넘어 달려 들어오는 의료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