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넌 어디에서 왔니
작가 : 해글님
작품등록일 : 2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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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계약관계
작성일 : 20-08-01     조회 : 308     추천 : 2     분량 : 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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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연인사이라면 실수 했다는 생각에 가을은 속으로 뜨끔했다. 그런데 그렇게 오해할만한데는 지혁의 태도도 한 몫을 차지했다. 혼수상태였던 연인이 깨어났는데그의 태도나 표정에서는 걱정이나 안도감 같은게 보이지 않았기에 지혁이 누군지 기억이 났을때 단지 놀린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떤 감정을 통해서 관계를 맺고있는지 모르기에 섣불리 부인했던 것에 대해서 가을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미안해요. 그것까지는 몰랐어요."

 ​​"그럼 됐어. 지금부터 잊지 말고 기억해둬."

 ​"네"

 가을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빙긋 웃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지혁은 다음대화를 이어나갔다.

 "사실 중요한건 지금부터야."

 역시 뭔가 있을 줄 알았다. 가을은 또 다시 실수할까 입을 꾹 다물고 그를 응시했다.

 ​"우리의 가족 비슷한 애인관계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거든."

 ​한쪽 다리를 꼬면서 화보를 찍듯 깍지낀 손을 무릎위에 올리며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어 앉아 지혁이 말했다. 입으로는 지혁이 설명을 한다고 했지만 그 모습은 꼭 가을에게 '자 이제 우리 관계에 대해서 브리핑을 시작해봐' 라고 명령을 하는 듯 보여 기분이 별로였지만 그런 모습이 또 너무 잘 어울려서 이상하지 않는 오묘한 느낌이었다.

 ​"...네. 설명해줘요."

 ​가을의 말에도 그는 묵묵부답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심장에 해로운 잘생긴 미모에도 그녀는 지지 않고 그와 눈을 맞췄다. 얼핏 누군가 보면 서로 눈싸움이라도 하는 듯 보였지만 지혁은 잠시 생각에 빠진 상태였고, 가을은 어서 우리관계에 대해 설명해 라는 눈빛을 그에게 보내고 있었다. 침묵을 깨고 그가 말했다.

 ​"계속 보면 떠오를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건 아닌가보군."

 ​'혹시 알아? 인정하고 싶진않지만, 네 외모를 보면 없던 기억도 되살아날수 있겠지.'

 지혁의 외모 자체가 심리적으로 자극이 될 수 있고, 평소와 같은 태도로 그녀를 대하면 기억이 돌아올수도 있다고 그의 사촌형인 김박사가 말했지만 가을에게는 효과가 없는 모양이었다.

 ​지혁이 자세를 고쳐 잡고 침대 위에 불쑥 걸터앉았다. 무방비 상태로 그가 다가오자 가을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엉덩이 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뭐...뭐에요.?"

 ​"아, 지금부턴 비밀이라서. 주변에서 들으면 곤란하거든"

 ​병실안에 아무도 들어올것 같지 않아 거리를 두어도 충분할것 같은데 지혁은 속눈썹이 한올 한올 보일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비밀이라는 말에 가을은 영혼으로 있을 때 본 막장 아침드라마가 생각났다. '알고보니 이복남매', 그리고 금토드라마였던 '재혼가정에서 핀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 을 떠올리자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떤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지 지혁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그의 얼굴때문은 아니다. 가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린..."

 ​"우린?..."

 ​"계약관계야"

 ​"계...뭐라구요?"

 ​"계약연인"

 가을이 막장드라마를 떠올리긴 했지만, 복잡하게 얽히는 관계가 더해지면 진짜가을을 찾는일도 힘들어질거라는 걸 알기에 막장보다는 로코에서 나올만한 그나마 가볍게 느껴지는 계약연인이라는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또 뭐가 남아는지 운을 띄우는 지혁의 모습에 그녀는 살짝 두려워졌다.

 ​"제안의 시작은 이가을, 당신이 먼저 제시했지."

 ​"네? 거짓말이죠?"

 "아니, 틀림없는 사실."

 지혁은 ​놀란 듯 뻐끔 거리는 그녀의 입술이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정확히 4달전, 이 계약관계가 시작된 그날을 떠올렸다.

 

 ​***

 

 ​[주지혁, 손주며느리 데리고 오지 않으면 이 계약서에 싸인 못한다]

 ​투자를 한다고 미소지을때부터 의심해 봤어야 했다. 어쨋든 큰 투자처가 잡혔기에, 계획대로 TF팀을 꾸리고 다른 업체와의 계약도 차근차근 진행되고있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결제시한을 보름남기고 이렇게 뒤통수를 치실줄이야.

 지혁은 할머니의 억지에 아침부터 두통이 가시지않는 느낌이었다. 한층 예민한 상태로 주차장으로 향하던 그때였다.

 ​'자... 자기야'

 ​익숙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지혁의 팔짱을 꼈다. 그렇지않아도 짜증나는 상황이었기에 상대가 누군지 조차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당연히 매일같이 쫓아 다니는 김주영일거라는 짐작에 욕설과 함께 팔을 거칠게 빼내려는 순간, 고개를 들고 그를 올려다 보는 사람은 다른사람이었다.

 '아 씨... 이대리?"

 ​'...죄송한데 그냥 걸어주세요'

 ​지혁에게 조금 더 바짝 붙으며 소근소근 말할때마다 한쪽 볼에 볼우물이 생기는, 갈색눈동자를 빛내며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사람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인 이가을대리였다.

 ​그녀가 재촉하듯 살짝 팔을 잡아당기자, 지혁은 자신답지 않게 가을의 보폭에 맞추어 걸었다.

 ​'죄송해요. 뒤에 스토커가...따라와서요.'

 ​속삭이듯 말하며 그를 올려다 보는 가을의 눈빛은 스토커라는 단어와는 다르게 열기가 타올라있었다.

 ​'스토커라니?'

 ​그 말에 반사적으로 돌아보려다 가을이 팔을 가볍게 당기며 막아서자 괜히 자극해서 좋을게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신고는 안했습니까?'

 ​'아,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어서요.'

 ​스토킹을 당하는 상황인데도 가을은 담담한 목소리로 빙긋 웃었다. 주차되었던 차와는 거리가 멀지 않아, 5분여 정도 함께 걷자 어느새 도착했다. 주차장은 어둡지 않게 여러대의 가로등이 밝게 빛을 내고 있어 그 주변도 선명하게 보였다. 차 앞에 멈춰선 뒤 가을은 끼고 있던 팔짱을 빼고 몸을 뒤로 휙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한쪽 보조개가 파이도록 싱긋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어 그에게 건냈다. 폰 화면에는 동영상의 녹화버튼이 켜져있었다.

 ​'대표님, 잠시만요'

 ​지혁에게 폰의 위치를 잡아주고, 그녀는 신고있던 한쪽 운동화를 벗고 한손에 꽉 쥐었다. 그리곤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그대로 강하게 운동화를 한 지점을 향해 던졌다.

 ​퍽!!

 ​포물선 보다는 강속구 처럼 날아간 운동화는 정확히 한지점에, 검은 형체의 인영의 머리에 꽂혔다. 꽤나 큰 타격음 소리에 지혁도 움찔했다.

 ​인영의 벗겨진 모자 사이로 얼굴이 들어났고, 가을은 얼굴을 확인하자 큰 소리로 소리쳤다.

 ​'최인호! 야 이 개**! 니가 바람펴 놓구선 어디서 스토커 질이야! '

 ​'아 씨*'

 ​쪽팔리는 듯 다급히 뛰어가면서 얻어맞은 운동화를 다시 그녀에게 항의하듯 툭 던지는 뒷모습에 가을이 크게 외쳤다.

 '한번만 더 찾아오면 너 이 영상 동창회에 다 뿌려버릴거야!'

 ​도망가면서도 힐끗 뒤돌아보는 스토커에게 그녀는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주고는 고맙게도 바로 앞까지 던져준 운동화를 주섬주섬 고쳐 신었다. 그리곤 지혁에게 다가와 폰을 건내받았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방금전의 행동에 대한 창피함 같은거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함이 가득해 보였다. 종종 마주쳤던 가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의외의 점에 지혁은 실소가 터져나왔다.

 ​'큭큭... 하하하하'

 ​방금전 까지 머리를 아프게했던 두통이 사라진것 같았다. 정말 아무생각없이 진심으로 웃는건 오랜만이었다.

 ​'앗, 죄송해요.'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이 생각났는지, 가을이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며칠동안 계속 스트레스 받아있었거든요. 그래서 오늘 꼭 잡겠다는 생각에...'

 ​'하하, 괜찮아요. 아는사이입니까?'

 ​'아...'

 ​떠올리기 조차 짜증이 나는지 가을이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전남친이에요. 한동안 바빠서 못만났는데, 바람을 폈더라구요. 그래서 헤어졌더니 저런짓을 하고 있었네요. '

 바쁜 이유가 가을이 TF팀에 합류해있기 때문인것 같아지혁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오히려 저런놈이란걸 알고 헤어진것이 가을에게 천만다행이 아닌가.

 ​'어쨋든 오늘 감사했습니다. 주대표님. 신세 꼭 갚을께요.'

 ​정말 속이 시원하다는 듯 웃는 가을의 모습을 지혁은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사무실에서 봤을 때도 한쪽에만 파이는 보조개가 가끔씩 눈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가까이 바라보니 그의 옛 기억을 소환시켰다.

 작은 여자아이... 그래서 그런걸까.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보조개를 손끝으로 가볍게 터치했다.

 ​가을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면서 지혁과 시선이 마주쳐졌다. 당황한듯 올라가 있던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며 보조개도 함께 숨어버렸다. 지혁이 자신도 모르게 아쉬움을 느낄때 쯤.

 ​'어! 주지혁!...과 ... 이가을대리?'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자, 영준이 퇴근이라도 하는 듯주차장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얼마든지 변명이 가능한, 그렇게 애매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지혁이 얼른 결혼해서 같은 유부남대열에 끼기를 바라는 영준의 입장은 달랐다.

 여자와 같이 있기만 해도 스캔들을 낼 녀석인데, 지혁의 손이 볼에 가 있는 위치만으로도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할 녀석이었다. 그리고 중요한건 실제로 입만 물에 뜰만큼 가볍다는 것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올 파급력은 자신보다는 가을이 더 괴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에 다급히 영준을 불렀다.

 ​'박영...'

 ​'흐흐 계속해, 미안해 이가을대리, 먼저 갑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아서 가는 그를 불렀지만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다른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혁은 영문모르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을을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대리. 내일 박팀장이 헛소리해도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아... 쿡쿡.네. '

 ​평소에 회사에서 행동하고 다니는 영준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가을이 소리내어 웃었다. 가까이에서 처음보는 그녀의 웃는 모습에 지혁은 이 상황이 아니었으면 생각지도 않을 할머니의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손주며느리! 한달이야.]

 ​굳이 할머니의 투자금이 없어도 되었다. 힘은 들겠지만 회사의 자금력을 동원하고 지혁 본인의 자산을 투자하면 충분히 현재 프로젝트는 이끌어 나갈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 생각은 들지가 않았다.

 ​'이대리, 신세 갚는다 했죠?'

 ​'네, 뭐든지 말만 하세요.'

 ​'뭐든지라는 말 쉽게 하는거 아닙니다.'

 '대표님인데요. 뭘.'

 ​어떤걸 부탁할지도 모르고 가을이 말갛게 웃었다.

 ​'그럼 내가 오늘 이대리 도와준것 처럼 이대리도 도와주겠습니까?'

 ​'물론이... 네? 뭘 도와드려요?'

 ​'오늘 내가 그런것처럼, 이대리도 애인역할을 해주면 됩니다. 단 5개월 동안만'

 ​할머님, 예비 손주며느리 데리고 가겠습니다. 단 5개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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