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소토피아
4화.
그 뒤로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이제부터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중2병 걸린 듯한 묘사가 나와도 양해 부탁드린다. 아무튼 이제 서술을 시작해 보면 어두운 골목. 한 사내가 이리저리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 사내는 안색이 마치 겁에 질린 사람의 것보다도, 아니 오히려 시체가 더 생기있어 보일 정도로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내는 불안한지 끊임없이 눈을 굴려대고 길 이곳 저곳을 한 번씩 터치해가며 한 곳에 도망치듯 갔다. 사내가 겁에 질린 이유는 간단하다. 8일 전, ‘그 남자가 후원하는 여자’에게 도청기를 심었었는데 하루만에 발각됐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이틀 동안 반응이 없길래 기억을 안 하거나, 힘이 빠졌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은 줄 알았건만, 어제 자신이 정보 정리하고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었을 때 쪽지 한 장을 받았다.
안녕하신가? 긴 말 안 하지. 이제부터 자네의 목숨은 내 손안에 달렸다네.
-J.D-
eli eli sabachthani. 주여,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가 복음 27;46) 이제서야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나 싶어졌다. 죽음이 그의 목앞에 있음을 느꼈다. 마치 눈앞의 맹수가 먹이를 죽이기 전에 갖고 노는 듯한 느낌. 혹은 사신이 자신의 바로 옆을 지나는 것만 같은 느낌. 비둘기가 되는 과정 중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을 때 자주 느끼는 느낌이다. 왜 선배들이 그를 상대로 거리를 벌렸는지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 때였다.
탕-!
“악! X발!”
총탄이 사선으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위험했다- 싶었던 순간,
푸욱-
“아악!”
다리에서 뜨끈한 느낌이 들어 아래를 봤다. 얇디 얇은 실이 아킬레스건을 관통했다. 와이어 트랩 (주인공이 지은)애칭 거미줄이었다.
휘청-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세가 무너졌다. 하지만 동시에 아킬레스건을 좌우로 관통하는 거미줄이 아킬레스건으로부터 다리 뒷부분을 수직으로 절단하면서 그대로 자빠졌다. 그 순간.
끼기긱-
번쩍- 번쩍-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바로 앞의-하지만 여태 보이지 않았던-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가 얼굴을 드러냈다.
"말했지? 네 목숨, 내 손에 있다고."
“이익, 이이이이익!”
바로 주인공, 약칭 J.D. 예명 John Doe였다. 그의 앞에서 쓰러지듯 넘어져 있는 남자가 벌레처럼 기어서 그에게 도달하더니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허나, 그가 일전에 말했잖은가. 허락받지 못 한 사람의 손길은 막아야 한다고.
뚜드득-
"크아아아악!"
잡힌 쪽의 반대쪽 발로 남자의 손목을 밟았다. 아마 손목 관절이 탈골되었을 것이다.
“내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에에엑!”
“글쎄 잘...못?.”
“이런, 이런 X발! 고작! 도청기가! 뭐라ㄱ….. 아.”
드디어 깨달은 듯 말이 끊겼다.
"이제야 깨달은 듯 하군.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어”
“아, 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이제야 감히 누구를 건드렸는지 깨달은 남자. 그의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고통스럽게 죽일까 고민하는 저 남자, 눈 앞의 남자는 절대 이빨빠진 짐승이 아니었다. 그가 활동하던 때의 그는 판자촌의 악몽. 인간병기. 등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수식어는 수왕獸王. 살기 위해 먹이를 노리는 짐승의 왕. 그가 은퇴하자 다들 그의 이빨이 빠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모두가 속고 있었을 뿐이다! 은퇴 전의 기록만으로도 그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어!"
물론 그는 거창한 일 따위 때려치고 안락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래. 그저, 편안한 삶을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남자가 알 리가 없었다.
‘난 대체 누구를 건드렸단 말인가.’
잠자는 귀신의 머리채를 끄집어 낸 것과 같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혀 깨물고 죽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르게 죽는 것이리라.
“최근, 내가 움직이지 않았더니 너희는 나를 두고 이빨이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뭐,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그것은 이갈이를 위해 이가 빠졌을 뿐이다. 오히려 이가 튼튼해졌으니, 얼마든지 물어뜯을 수 있었음을 왜 생각 안 하는 거지? 참 웃기는군”
그가 진실로 이해 못 하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다들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못 하는 것이다. 그가 워낙 충격적인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그가 살인과 연류된 모든 일에서 손을 뗄 때의 나이가 17살의 소년이었다는, 그래서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놓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짐승은 이를 다 구치로 바꾸고 나서도, 그 이를 날카롭게 갈아 누구든 걸린다면 그 목을 베어 줄 만큼의 준비를 마치고 나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허나 그것은 일어나지 못 한 게 아니다. 그저 움직이기 싫었을 뿐이다. 이것은 단순한 분풀이가 아니다. 자신은 아직 건재하다는, 그래서 자극하지 말라는 의미의 장치인 것이다.
따악-
그가 손을 튕기자 손으로 잡고 있던 와이어 트랩의 작동 라인이 풀려났다.
위위윙-
도르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두 상가의 천장에서 와이어에 묶여 있던 쇠파이프가 바닥을 향해 처박혔다.
카각-
그리고 쇠파이프는 바닥 밑에 있던 지랫대를 두드려 바닥에서 위로 쇠침이 쏟아져 나오게 했다.
푸부북-
“까아아아아아아악!”
“왜 그래? 이건 시작에 불과한데.”
쇠침에 발라두었던 약은 일종의 각성제다. 정신이 망가지지 않도록 유지는 못 해주지만 정신이 나가는 것만을 막아두는 것이다. 그러고는 준비해뒀던 방독면을 꼈다.
쾅-!
그가, 판자촌의 악몽이 발을 구르자 지면 아래에 장치되었던 가스통의 핀이 풀렸다. 그것은 바로 환각제다. 고통이 배로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진정한 고통의 시작이었다. 그는 나이프를 뽑아 들고 반대쪽 다리의 아킬레스건을 잘라냈다.
서걱-
“끄어어어억.”
“이제 시작이라니까? 정신 놓지마. 웬만하면 즐기고 싶으니까.”
보비를 들어 절단부를 지졌다.
치지직-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제길. 제기라아아알!”
“아직 말할 여유가 있나 보네? 아주 좋아.”
“살려... 아니, 죽여 줘!!!”
“그럴 거야.”
"너만 즐기다니 너무한걸? 난 슬슬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는데."
치지직-!
“끄아아아아아악!”
메스를 들고 몸 이곳저곳의 힘줄만을 절단하고 보비로 지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석션과 장침을 꺼냈다.
푸욱-
“여기가 어딘지 아나? 그건 너가 더 잘알테지.”
촤악-
위장에 박힌 장침을 뽑자 위액이 구멍을 타고 빠져나왔다.
치이이익-
위액방울이 튀어서 살점을 부식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석션을 구멍이 난 위장에 쑤셔박았다.
“잠깐, 지금 무슨 짓을…!”
석션이 위액을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너희. 서기를 사는, 평화속에 사는 너희들은 잘 해 봐야 치과에서나 봤겠지.’
하지만 이 석션은 사실 쓰기에 따라 엄청난 고문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한 우리의 주인공씨가 사전에 준비한 정수기 물병을 호스와 연결해서 남자의 위장에 쑤셔박았다.
꼴꼴꼴꼴꼴-
물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위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장의 운동이 활성화됨에 따라 위액이 나올 준비가 됐다는 소리다. 그리고, 곧 있으면 아침 6시 50분이다. 밤을 꼬박 새웠다는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치워 두고, 6시에서 7시 사이는 보통 아침을 먹는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조건 반사라는 것이 존재한다. 특정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후천적으로 얻는 반사를 의미하는데, 파블로프의 개 실험이 대표적이다. 방울소리와 밥이 같이 오는 것에 익숙해진 개가 방울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는- 그 뒤에는 침의 생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입에 구멍이 났던 개의 희생이 존재해야 했던-실험인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6시에서 7시 사이에 밥을 먹기 때문에 그 비슷한 시간이 되기만 해도 본능적으로 위액이 분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뭘 의미한다? 석션이(가) 일할 시간이라는 의미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앞에서 칠면조를 굽자 위액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본능이다. 이성이 조절하는 것이 불가하진 않으나 힘든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모았을까, 남자의 팔뚝에 호스를 꽂고 석션의 흡인통에 연결했다. 위액이 호스를 타고 남자의 혈관으로 들어갔다. 단백질 조직이 구워지는 냄새가 났다.
치이이-
"......"
더 이상 비명 지를 힘도 없다는 것일까. 남자는 오히려 조용했다. 팔이 녹아내려 뼈가 드러나고, 혈관 모양을 따라 살점이 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악귀가, 싸움의 승리를 확신한 수라 修羅가, 장난감을 얻은 포식자가
씨익-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그 웃음 뒤에는 무수히 많은 살업이 있을 것이고 순수하고 맑아 보이는 눈에는 시골에서 보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양의 죄악이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에는 그 어떤 의미도 가치도 존재하지 못했다. 그에게 범죄는 그저 굶주린 짐승이 먹이를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수산화 나트륨. 흔히 말하는 양잿물을 남자의 몸에 끼얹었다. 염산(HCl)과 수산화나트륨(NaOH)이 서로 만나 중화가 되면서 소금물(H2O와 NaCl)으로 변했고, 그로 인해 맨손으로 만져도 괜찮아졌다. 우리의 주인공 씨는 반쯤 녹아내린 남자의 팔을 잡고서,
뚜드득-
“크허헉. 쿨럭! 크흐. 그녀에게 빨리 돌아가야, 쿨럭! 해야, 하지 않나? 크흐흐흐.”
“걱정 마라. 내가 장기 출장 나간다고 얘기해 뒀으니까. 뭐, 눈치 빠른 그녀라면 내가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대로 뽑아 버렸다. 흔히 매체에서 나오는 팔이나 다리를 절단하는 것은 말 그대로 깔끔하게 절단을 한다. 골격구조와 근육의 탄성따윈 개나 줘버리고 말이다. 현실에선 그렇게 깔끔한 단면따윈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뽑는 쪽이 더 편하다. 그리고 뽑아버리면 단면도 지저분해 접합도 되지 않는다. 주인공 씨가 다시 보비를 들었다.
지지직-
“끄으으으윽.”
단면을 지지자 고기타는 냄새가 나며 깔끔하게 구워졌다.
‘음, 삼겹살 먹고 싶다. 웬만하면 숯불로.’
남자의 머리에 총을 겨눈 주인공 씨. 평소 사용하던 권총이 아니라 이번에는 소총으로 준비했다.
철컥. 탕-
소총에서 불을 뿜으며 나온 탄이 남자의 두개골을 일직선으로 뚫고 지나갔다.
쩔그렁-
바닥에 탄피가 떨어졌다. J.D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어느 즈음.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바람은 곧 불어올 피바람의 예고장이라도 되는 듯, 소름끼치도록 냉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