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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소토피아
작가 : 팀네거티브
작품등록일 : 2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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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소토피아 5화 2장
작성일 : 20-08-29     조회 : 320     추천 : 0     분량 : 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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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소토피아

 

 5화. 지옥에서 쓴 일기장(2)

 

 

 멸망기 65년. 12월 24일. 날씨 눈 옴.

 

 

 비슷한 시위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뛰어들고, 총에 맞아 죽고, 죽기 직전에 비슷한 종이를 집어던지고, 그 시체가 노숙자들에게 먹히고. 개인적인 시위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조직적인 시위인 것 같다. 오늘 저녁에 그들 중 일부라고 생각되는 이들이 찾아왔다. 자신들과 뜻을 함께하자는 것이었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멸망기 65년. 12월 26일. 날씨 흐림.

 

 

 오늘도 찾아왔다. 말 꺼내기도 거절하니까 식량이라도 달라고 했고, 약간의 멧돼지 고기를 줬다. 

 

 

 멸망기 65년. 12월 31일. 날씨 눈 옴.

 

 

 그들이 하는 양을 보아하니 한두 해 한 것 같지 않다. 그들을 이용하면, 그리고 내게 있는 바주카를 활용하면,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 같았다. 아직 확신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식량 조달만 맡고자 거래했다. 장벽 너머에 뭐가 있냐고 물으니, 유토피아가 있다고 했다. 존재하지 않는, 이상속에서나 있는 세계가 현실로 나타난다? 그것이 정녕 가능한 일일까?

 

 

 멸망기 66년. 1월 7일. 날씨 맑음. 

 

 

  돌격소총을 들고 조준사격해 문을 열려 했다. 허나 장벽의 문은 방탄기능이 탑제되어있다는 새로운 사실만 알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멸망기 66년. 1월 9일.  날씨 눈 옴.

 

 

 몰래 들어갈 실마리를 찾았고 계획을 세웠다. 오늘 밤 자정. 시도해 볼 것이다.

 

 

 멸망기 66년. 1월 10일. 날씨 눈 옴.

 

 

 결과만 말하면 망했다. 문을 지키는 경비가 있으니 경비를 다 죽이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기계였다. 야간 문지기 전원이 기계였다. 아니, 그렇게 돈이 썩어넘치면, 나나 들여보내 달라고!

 

 

 멸망기 66년. 1월 12일. 날씨 눈 옴.

 

 

 아침에 폭음이 들려 가 보니 누군가 내 바주카를 훔쳐서 문을 부쉈다. 정확히는 뒷문이었다. 잘나신 분들의 신선한 ‘간식거리’가 들어가는 곳이라 했다. 오늘은 포도였는지 들어가던 트럭이 폭발에 휘말려 넘어지자 포도가 쏟아졌다. 다들 짐승처럼 기어가 바닥에 쏟아져서 터진 포도를 주워서 씨째 씹어먹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달려갔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었다. 같잖은 동정이나 어쭙잖은 양심이 아니었다. 그저 이 많은 이들이 이렇게 변할 때까지 가만히 있던 저 안 쪽 사람들의 무능력함에 분노했을 따름이었다. 넘어진 트럭 위에 서서 들고 있던 종이를 내던지며 2세기 전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불렀다. 그것은 아주 어릴 적. 내가 고아가 되기 전에 부모가 가르쳤던 곡이었다. 어릴 적의 나는 그것을 곧잘 따라불렀고, 오랬동안 잊었다가 이제와서야 완전히 떠올랐다. 두 번 정도 부르자 한두 사람이 따라 부르며 똑같이 종이를 내던지면서 뒷문으로 향했었다. 다섯 번 정도 부르자 열 사람이 따라왔다. 스무 번 정도 부르자 수십 사람이 따라왔다. 허나, 수류탄과 개틀링이 불을 뿜자 아쉽게도 텐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멸망기 66년. 1월 15일.  날씨 맑음.

 

 

 놀랍게도 내가 3일 전에 불렀던 노래가 우리의 주제가로 쓰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3일동안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정문과 후문을 두들겼고,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이 전진의 선두를 맡고 있었다.

 

 

 멸망기 66년. 1월 17일. 날씨 찬 바람이 붐.

 

 

 장벽에 구멍을 몇 개를 냈는지 모르겠다. 그런 상황에서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에 감탄을 해야 할까, 아니면 질려야 할까? 모르겠다.

 

 

 멸망기 66년. 2월 20일. 날씨 맑음.

 

 

 후문을 장악했다. 이제 저들의 식량은 가지 않을 것이다.

 

 

 멸망기 66년. 2월 21일. 날씨 확인 불가.

 

 

 잡혔다.

 

 

 멸망기 66년 2월 24일. 날씨 맑음.

 

 

 3일동안 많은 회유가 들어왔었다.  그러면서 이곳의 유지 시스템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건 무슨 금으로 재작된 새장속의 새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이곳을 고립시킴으로서 질병을 막는다. 여기까지는 그럴 듯 했다. 허나 내인(inner)과 외인(outer)으로 나누는 것을 듣자 역겨워서 설명하던 사람의 목을 손으로 움켜잡고 벽에 처박았다. 병신같이 흥분하고 말았다. 그래, 이 세상은 아우터를 거부하지. 그렇게 정신을 차분히 하고 있는데 내게 고문관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요 뒤 며칠 동안은 일기를 못 쓸 것 같다.

 

 

 멸망기 66년 2월 30일. 날씨 맑음.

 

 

 탈옥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멸망기 66년 3월 1일. 날씨 찬 바람이 붐.

 

 

 현재 나에 대한 수배서가 나돌아다닌다. 허나 내가 그런 걸 신경쓸 시간 따윈 없다. 일단 그 사람이 팔렸던 고객의 집에 잠입했다. 내일 정도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멸망기 66년 3월 8일. 날씨 비 옴.

 

 

 찾았다.

 

 

 멸망기 66년 3월 9일. 날씨 비 옴.

 

 

 잡혀서 그대로 도시 밖으로 내쫓겼다.

 

 

 멸망기 66년 3월 10일.  날씨 맑게 개임.

 

 

 다시 합류해서 돌격했다.

 

 

 멸망기 66년 3월 11일. 날씨 비 옴.

 

 

 그들이 포기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대가로 이 도시 앞에서 시위하지 말라는 것을 조건으로 거래를 했고, 일단 데스크탑을 받아서 메일로 지금까지의 일기를 그녀에게 보냈다.

 

 

 멸망기 66년 3월 14일. 날씨 구름.

 

 

 답장이 왔다. 빨리 돌아오라는 말이 내용보다 더 많았다. 늦어서 미안하지만 의뢰는 완수시키고 갈 것이다.

 

 

 멸망기 66년. 3월 15일. 날씨 비 옴.

 

 

 배신맞았다. 새끼들이 내가 도시 출입권을 요구하자마자 권총부터 꺼내서 들이밀었다. 그래도 내 상대는 안 되는 건 맞다. 다만 내 휘하의 사람 수가 너무 많았다. 그들을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힘들었기에 일단 작전상 후퇴했다.

 

 

 멸망기 66년. 3월 16일. 날씨 비 옴.

 

 

 간이 담화장을 치우고 있는 곳을 향해 바주카를 먹였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무력시위다.

 

 

 멸망기 66년. 3월 17일. 날씨 흐림.

 

 

 와이어트랩을 정문에 설치해 깔끔하게 경비의 목을 베었다. 와이어트랩의 길이를 조절해서 

 

 Do you hear the people sing과 비슷한 음절의 절삭음이 나게 했다. 즐거웠다. 추악해지는 것 같았지만,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워져서 죽는 날에 악어에게 먹힐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난 이미 추악하니까. 살기 위해서였다지만, 절대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곳은 추악해야만 살 수 있는 곳. 그렇기에 죽는 날까지 나는 나를 정당화하며 살 수 있으리라.

 

 

 멸망기 66년. 3월 18일. 날씨 맑음.

 

 

 도시로 가는물을 끊었다. 어디 얼마나 버티는가 보자.

 

 

 멸망기 66년. 3월 25일. 날씨 흐림.

 

 

 드디어. 정식으로 들어왔다. 내가 그 개고생을 해 가자 저들이 진심으로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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