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소토피아.
6화.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비명을 질러야 한다.(1)
이곳에 어울린 지 벌써 이틀째.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지 의심하게 됐다. 밥 먹는 것. 잠 자는 것.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평안하게 이루어졌다. 여기 들어오기 위해서 했던 개고생이 다 꿈인 것만 같았다. 여기서는 거의 모든 생산적인 활동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해 봤으나 그들은 바깥의 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하는 사냥을 그들은 그저 스포츠로서 즐길 뿐이었고, 우리가 고생해가며 키우고 고생해서 구매해 먹는 감자를 그들은 하루에도 수 알씩 비싼 기름에 튀겨 먹었다. 우습기 그지없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가. 도시 하나만 건너 가면 유토피아가 나오는데. 아니. 유토피아에 가까운 곳에 도달했는데. 이들은 화폐도 없었다. 범죄도 없었고 그 흔한 약냄새와 분냄새가 얽혀 지독한 악취가 나던 매음굴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모든 것이 충족되어 있는데 굳이 그런 것을, ‘바깥’의 것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로봇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 나도 잠시나마 이곳의 세계에 어울리도록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여기에는 노예시장이 없다. 그런데 분명 ‘구매자’는 이 곳에 있고 여기서 내가 직접 그녀를 봤었다. 그녀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주인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아, 비서 로봇이 지금 작동했나 보다. 아니, 근데 내가 하겠다고 했는데?
“식사를 안 하신지 36시간째입니다. 저는 지금 주인님의 건강을 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군.”
서걱-
“미안하지만, 조금만 자고 있어라.”
머리를 베어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경비로봇을 수도 없이 썰어 봐서 대충 구조를 안다. 내가 잘라낸 것을 메인 컴퓨터가 인지하고 부품을 보내서 다시 연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6시간. 6시간이면 충분히 탈출 가능하….
“오토 시스템 가동. 요인이 탈출을 시도했다. 경비 프로토콜 오픈. 사살 모드 가동.”
뭐, 인마?
“로봇 3원칙도 안 지키냐?!”
“외인은 내인과 동등한 취급을 받지 못 합니다. 거기에 당신은 1급 범죄자. 더 말할 필요는 없겠죠. 그럼.”
철컥, 우우우웅-
외인은 내인과 어쩌구 이후로 듣지도 못 할 만큼 긴장했다. 빌어먹을. 손에서 저 불빛 나는 거 뭐야. 한 대 맞으면 X될 것 같은데?
“All for paradice.”
망할.
우웅, 파앙-
“X발!”
공격을 피하고 관절부에 나이프를 꽂으려 했으나,
카가각.
인간의 관절로는 불가능한 각도로 관절을 꺾어 관절부로 나이프를 붙잡았다. 하지만 행동에 제약이 생긴 것은 똑같으니 상관은 없다.
‘어깨로 날아드는 라이트 잽. 못 막는다.’
후우웅
피해서 몸 안쪽으로 진입했다. 아마 공격권 밖에 있을 것이다.
철크럭, 끼리리릭-
“뭐요 X발?”
익숙한 장전음. 미니건이 흉부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타타다다다다-
발사 직전에 몸을 최대한 낮춰서 다행히 거의 안 맞고 돌진했다.
스르륵- 위이이잉-
허리춤에 있던 와이어의 손잡이를 당기자 기계가 줄을 당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와이어가 내 손에 감겨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와이어를 풀고는,
끼이이이이이이익-
로봇의 허리에 감고 남은 줄을 당겨 상하체를 분리했다. 금속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절단된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 하체가 분리됐는데 설마 움직이...네?”
X발. 허리가 절단되면 절단부에서 바퀴가 나와 작동하는 구조라고?
“어느 미친 또라이 놈이 저 미친 또라이같은 기계를 만들었어!”
“대답 불필요. 섬멸 모드 작동.”
뭔가를 또 작동하려는 녀석을 정글도로 반갈죽을 시전했다. 깔끔하게 수직으로 절단이 됐다. 리튬 배터리가 잘려나가는 것을 봐서 진짜로 이번에는 끝…
띠, 띠, 띠
….나지 않았네? 어머나 X발. 하핳.
“니가 무슨 X라에몽이냐? X라미냐고!”
팔에 박아 뒀던 나이프를 뽑아 그대로 전선을 죄다 절단했다. 그래도 뭐가 있으면 내 손톱 끝을 자른다.
“......”
없네.
“하아아……..”
젠장. 무슨 비서 로봇의 전투기능이….
“아, 대상이 아우터여서 그런 것이었나.”
분명히 저 빌어먹을 로봇이 외인은 내인과 동등한 위치가 아니라 했었지. 근데 그게 로봇보다 낮은 위치라고?
“부정.”
뭐?! 언제…
“코드 네임 존 도. 본명 에녹. 외인이라 그렇게 취급 받는 것이 아니라 9년간 4000명을 학살하고, 최근 시위의 중심이 됐던 당신에게 저들과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젠장….”
“당신의 감시역으로 붙여 놨던 로봇은 실시간으로 상황이 보고되죠. 프로토콜이 작동했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왔더니…”
지친 공무원의 고충을 말하는 그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 앞의 저 깡통들이 나를 적대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지미럴. 고난한 내 삶은 늘 귀찮아진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내가 원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소총을 어디에 뒀는지 찾던 나는 비로소 그것이 내 방에 있었음을 눈치챘다. 제기랄. 소총 없이 탈주하는 게 될까. 아니, 저기 있는 기계들을 내 손으로 전부 부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눈치채셨습니까? 얌전히 들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X까.”
캔을 꺼내 그대로 던졌다. 그것은 바닥에 부딪혀 굴렀다.
깡, 데구르르르
정확히 100g짜리 통조림. 쉽게 생각해 동X참치 생각하면 된다. 고작 그 정도 무게를 그냥 던지는 것만으로 저놈들에게 1도 피해를 입히지 못 한다고 판단했고, 그게 맞긴 하다. 하지만,
“당신에게 승산은 없습니다. 다시 돌아가 주시죠.”
X까라 그러지. 아, 깔 X이 없나?
“네놈의 언행에는 두 가지 변수가 없어. 첫째, 난 단 한번도 승산을 확신하고 싸운 적 없고.”
철컥-
권총을 꺼내 장전했다.
“잠깐-”
“둘째, 넌 그 캔을 부쉈어야 했어.”
탕-!
발사음과 함께 총탄이 날아가서 캔을 꿰뚫었다. 그것은 캔 내부에 발라둔 황과 마찰해 작은 불꽃을 생성했고,
쾅-!
캔 안에 있던 구아노와 반응해 폭발했다. 폭음과 함께 알루미늄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 사이동안,
“나보고 들어가라고? 엿먹어 이 병신들아!”
그대로 도망쳤다.
탁, 탁, 탁.
아, 그 아까 쏜 탄환을 싸던 탄피에 fXXX you라고 적어 뒀었는데, 알아서 보겠지.
“당장 추적하세요.”
추적해 봤자 날 찾을 순 없을 거다. 왜냐면 난 천장에 있는 타일 너머로 튀었으니까. 아마도 못 찾을 것이다.
“하아….”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푸욱-
“끄윽”
어떻게? 뒤에서 로봇이 나왔다. 권총을 꺼내 등 뒤로 총구를 돌리고,
철컥- 탕!
평소보다 1.5배는 빠르게 장전하고 발사했다. 조준은 필요 없었다. 내 몸을 뚫을 정도의 예리함을 가진 장치가 내 등에 박혀 있으니까. 발사의 충격으로 로봇에서 멀어진 몸을 추스르고 등에 박힌 것을 뽑았다. 만약 칼이라면 손잡이가 없어서 칼등을 쥐고 싸워야 하는 형태다. 뭐, 이런 적이 처음인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붕대를 대충 감고 허벅지에 주사로 약을 박아 넣었다. 고통을 둔화하는 약이다.
후우우웅-
평소라면 할 수 없는 무빙. 인간은 자기 육체가 낼 수 있는 한계까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고통이라는 제어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둔화하는 약물에 의해 아무래도 평소보다 약간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나는 몸을 굴려서 놈의 몸에 칼을 박았다. 아무리 강해도 하체 관절에 뭔가 박히면 움직이기 힘든 법이지.
카가가각-
그대로 점프해서 칼로 상하부 연결부위를 잘랐다. 넘어지는 놈의 몸을 디딤돌 삼아 점프했다가,
“엿 먹어 이 X같이 생긴 새끼야.”
떨어지면서 칼로 인간 기준 배꼽의 위치를 영점이라 정했을 때 Y=2X, Z=2Y인 함수의 그래프를 그리고 깔끔하게 착지.
끼이이이익-
“젠장.”
시청각 자료가 메인 컴퓨터에 도달하니까 주변 로봇을 스위치 온 시킨 모양이다. X됐다고 생각했던 그 때,
“흐읍.”
“쉿.”
누군가 내 뒤에서 나타나 내 입을 막고서는 무언가를 펼쳤다. 막과 비슷한 형태였다.
“추적 불가.”
“다른 곳부터 추적 요구.”
그대로 돌아가는 그들을 보며 의아해 했다.
“이게 무슨….”
“빛의 굴절을 역방향으로 바꿔 가리고자 하는 것을 투명하게 해 추적하지 못 하게 하는 메타물질, 바닥만 도체 다른 곳은 부도체로 해서 자유전자를 흘려 봐야 알 수 없게 만든 것과 방음막으로 이루어진 삼단막이지. 자네가 날 눈치 못 챈 것에도 이런 이유가 있네.”
“할배. 세줄 요약.”
내가 아니라 저 위의 날 관조하시는 아주 잘나신 분들이 원해서.
“쉽게 말해서 소리, 적⋅자외선을 포함한 빛, 전기 차단막이지.”
“땡큐.”
세줄로 요약하라 했더니 한 줄로 요약하고 있네.
“팁은?”
“망할 영감.”
휘익-탁.
“목숨값으로 6000연화라니. 너무 짠 거 아닌가?”
“닥쳐. 네놈 정보가 산만해서 마이너스다.”
저 얼굴이 어떻게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저 할배 나한테 시위하라고 했던 놈이다.
“여기를 어떻게 왔는지 궁금한 얼굴이로군.”
이 할배 이거 돗자리 깔아도 되겠구만.
“간단하다. 네놈이 들어올 때 따라갔으니까.”
할무당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