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의 여제를 움직이게 한 장본인 샤미안.
그는 그가 복무하고 있던 대륙의 서부 아르딜라노 제국의 국경지대를 넘어 가고 있었다. 국경지대를 넘어가는 그도 나름대로 고민을 떠안고 있었다.
'다들 걱정하고 있겠지?'
그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누나들을 생각하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아냐 누나들은 나를... 너무 어린애 취급해!'
하지만 이내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누나들이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의 나이 올해로 20세. 코렐리아 대륙에서는 20세의 나이가 되면 성인으로 인정한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못했지만 엄연한 성인의 나이. 18세의 나이에 군대에 자진 입대 하여 최전방에서 전투를 치렀다. 코렐리아 대륙의 군대 입대 연령 제한은 18세에서 68세. 나이가 충족되고 사지만 멀쩡하다면 언제든지 지원 할 수 있다. 단, 한번 지원하게 되면 최소 20개월의 군복무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복무도 끝났는데 이대로 돌아 갈 수 없어!'
전역일이 다가올수록 그는 고민에 휩싸였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어린아이 취급을 받으며,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할게 뻔했다.
언제나 근엄하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세르비에 누나.
나보다 더 동생 같은 왈가닥 칼라일 누나.
성격은 괴팍하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착한 아리나 누나.
얄밉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리리안 누나 .
그리고 온화하지만 무지막지한 미첼 누나.
그를 사랑하는 그녀들의 마음은 자기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린 시절부터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온 샤미안.
처음으로 큰마음 먹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기 위해 군대에 지원 했다.
그리고 정말...... 죽을 뻔 했다.
세르비에 누나는, 말없이 다가와 훈련용 목검으로 다리를 공격했다. 한 대 라도 맞았다면 그대로 다리가 부서졌을 테고 입대는 물건너 갔겠지.
칼라일 누나는, 아예 납치해서 감금 하려고 했다. 18년을 함께 살며 배운 눈치가 아니었다면 난 지금도 이름 모를 창고에 갇혀 있었을지 모른다.
부르르르르.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아리나 누나는 나를 교화시키려 했다. 군대를 갈바에 차라리 신관이나 되라나 뭐라나.
리리안 누나의 말은 아직까지 기억난다.
'호호. 혹시, 입대하는 날 홍수가 나면 어떻게 되니?'
웃으며 말하는 그녀는 정말 홍수를 일으킬 태세였다.
그리고, 미첼누나.
사실 내가 군대에 입대하게된 건 미첼누나의 영향이 컸다. 누나가 말하기를 '샤미안 남자라면 군대도 다녀오고, 배에 칼침도 맞아보고 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진정한 남자가 된다고.
......낚였다. 군대는 다시는 가고싶지 않다.
이 처럼, 누나들의 분노(?)는 대단했고 입대도 하기 전에 나는 몇 번이나 죽을고비(?)를 넘겼다.
여담으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어린 시절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었다.
어떻게 됐냐고?
뭘 물어? 당연히 누나들의 눈이 뒤집혔다.
그 여자애부터 그 여자의 가족까지 모조리 세상에서 없애 버리려는 누나들 때문에, 나는 울며불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려있어야 했다.
그때의 일이 아직까지 한 번씩 악몽으로 찾아온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여행? 누나들 따라 놀러 다닌 게 전부다. 이러니 내가 가출을 안 할 수 없다.
'나도 내 인생을 개척할 나이야!'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우리는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다. 남이였던 우리는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피를 나눈 가족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 했다.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그래서 결론은, 나는 가출했다.
* * *
가출남 샤미안은 적국인 마르디온으로 넘어 갈 계획을 세웠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간섭을 덜 받을 테니까.
세르비에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최소 팔, 다리 골절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듯 샤미안은 몸을 떨었다.
누나들이 과보호를 하지 않아도 샤미안은 충분히 강했다.
어릴 때부터 지상 최강의 누나들 틈에서 자란 샤미안은 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재능까지 남달랐다. 천재 중에 이런 천재가 없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가지는 아니고 다섯 가지를 알았다.
샤르비에의 검술, 칼라일의 암술, 성력을 다루는 법, 리리안의 정령술, 미첼의 용병술까지. 그는 누나들의 절기를 모조리 흡수 했고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모든 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지만 적수가 많지 않을 것 이다. 하지만 누나들의 눈에는 여전히 약해빠진 어린아이로 보인다는게 문제다.
"에휴."
상념에 빠져 걸어가던 샤미안은 어느새 마르디온의 국경이 다다랐다.
"정지!"
만리장성을 연상케 하는 거대하고 긴 성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거대한 성문위의 병사가 샤미안을 제지했다.
'직접 보는 건 처음 이네.'
그 광활하고 멋들어진 성벽의 모습에 샤미안은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누구냐! 여기는 출입 금지 구역이다! 신원을 밝혀라!"
국경 수비대로 보이는 사람이 샤미온을 향해 소리쳤다. 어느새 성벽위에는 활시위를 샤미안에게 겨눈 채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샤미온이 입을 열었다.
"아아 여행자인데 길을 잃었습니다. 여기가 마르디온이 맞나요?"
"그렇다! 신원을 밝혀라!"
"저는 골가래 왕국의 여행자 샤미안이라고 합니다."
나는 항복의사를 밝히며 양손을 머리위로 든 채 한 손에는 신분증을 내밀어 보였다.
군대 복무시절 신분 위조에 일가견이 있던 동기 녀석이 만들어 준 위조 신분증 이었다.
"마르디온에는 무슨 일이지?"
경비병이 의심이 가지 않는 눈으로 샤미안을 노려보며 위협적으로 물었다.
"대륙의 강대국인 마르디온의 문화와 문물을 접해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특히 마르디온의 건축물은 가히 코렐리아 대륙 최고라고 들었습니다."
그는 미리 연습해 왔던 멘트를 술술 풀어놓았다. 마르디온 제국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강하다. 특히 건축술에 일가견이 있던 마르디온 사람들은 건축물에 대한 칭찬을 하면, 그 자부심에 취해 경계를 풀어버리곤 했다.
"오호라! 젊은 친구가 뭘 좀 아는구만! 흐음, 신분증도 이상은 없어 보이는 군! 성문을 열어라! 어서 들어오게."
아니나 다를까, 이 단순한 사람들의 경계심은 칭찬 한 마디에 허물어졌다. 애초에 젊은 사람이기도 했고, 샤미안이 호리호리하고 약해 보이는 미소년이라는 것 도 한몫 했다.
"마르디온 제국의 영토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네. 국경지대를 가로막고 있는 이 프론트월(Front Wall)도 우리 마르디온의 건축술의 정수가 담긴 집약체라고 할 수 있지. 그 어느 나라가 이렇게 광활한 범위의 성벽을 세울 수 있단 말인가!"
자부심으로 가득 찬 경비 대장이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네 그렇군요. 처음 보는데 훌륭합니다."
나는 그런 경비대장의 말에 맞장구를 춰주었다.
"와하하! 이 친구 아주 마음에 드는구만! 보는 눈이 있어!"
경비대장은 신이나서 더욱 떠들어 대기 시작 했다.
"그래! 마르디온의 수도에 가보면 말이야...그 중앙에는... 건축물이...! 아주... 그래서...!...... 이보게, 듣고 있나?"
나는 계속해서 떠들어 대는 경비병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네. 감사합니다. 수도에는 꼭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어려 보이는데 혼자 여행중 인가?"
"네."
"저런! 위험하지 않겠는가?"
"괜찮습니다. 제 한 몸 지킬 정도의 힘은 있습니다."
"흐음."
경비병은 샤미안을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미심쩍은 듯 말했다.
"너무 허약해 보이는데......"
"하하.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뭐.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더는 말하지 않겠네. 여튼 조심하게."
"네 그럼 수고하십시오."
샤미안은 경비병을 뒤로 한 채 저 너머로 보이는 카를슈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를슈 산.
마르디온 제국의 서쪽 국경 지대에 근접해 있는 험준한 산. 온갖 몬스터들이 들끓는 위험천만한 곳. 소문에 의하면 드래곤이 산다는 말도 있고, 산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말도 있다.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위험한 곳인 것만은 확실했다.
"자, 내 첫 번째 목적지 카를슈 산 기다려라!"
샤미안은 호기롭게 외치며 카를슈 산으로 향했다.
* * *
세르비에의 집무실.
쾅!
"뭐라고 했나?"
"그, 그게...... 샤미안 공자께서 마르디온 국경을 넘은 것 같습니다."
보고를 올리러 온 장교가 쩔쩔매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냉혹한 성격으로 유명한 세르비에가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이토록 화나게 하는 단 한 사람 샤미안. 유독 샤미안과 관련된 일이면 세르비에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
"이 녀석이......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냐."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려 옴을 느꼈다.
세르비에는 검지와 엄지로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샤미안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국경을 넘어서 어디로 향하고 있지?"
"저기 그것이...... 카를슈 산맥으로 향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행방을 놓쳤습니다."
쾅!
그녀는 아예 자신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쳐 부셔버렸다.
"샤미안 이 녀석! 거기가 어디라고!"
덜커덩!
그 때, 그녀의 집무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4명의 아름다운 여성들이 집무실로 난입 했다.
"큰 언니! 소식 들었어?"
"언니야. 이야기 들었나?"
"막내가 아주 위험한 곳에 갔다고 하는데?"
"남자라면 그 정도 모험은 해야지. 음음."
집무실에 들어온 네 사람은 공통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각자의 정보망에 걸린 샤미안의 행적에, 놀란 마음으로 부랴부랴 세르비에를 찾아 온 것이었다.
"다들 조용히 해라. 안 그래도 지금 막 보고를 받은 참이다. 대위 이만 물러가 보도록."
"예! 대공 충성!"
그가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네 사람은 떠들어대기 시작 했다.
"언니언니! 어떻게 해? 지금이라도 데려올까?"
칼라일은 오두방정 떨며 세르비에에게 엉겨 붙었다.
"떨어져라."
세르비에는 그런 칼라일을 떨어뜨려 놓았다.
"니 또 납치해가지고 어디 감금시켜놓을라고 하제! 됐고, 언니야 내가 데리고 오께."
"에휴. 언니들은 무식해서 안돼. 섬세한 내가 예쁜 아이들을 데리고 아주 사뿐사뿐 데리고 올게."
"내버려둬. 남자라면 카를슈 산 따위 정복할 수 있어."
세르비에는 자신의 동생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머리가 지끈거려옴을 느꼈다.
'내가 죽는 곳은 전쟁터일거라 생각했는데...... 이러다간 골머리 앓아 죽겠군.'
차라리 전쟁터의 최전방이 더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샤르비에였다.
"다들 조용히해라."
그녀의 말에 4명의 자매들은 그녀의 큰언니를 바라보았다.
"일단 최대한 들키지 않게, 샤미안에게 접근해라. 카를슈 산의 지리에 능통하고 어떤 위험이 발생해도 바로 샤미안을 구할 수 있는 정예들로 투입해라."
"그냥 내가 가서 데려 오면 안돼?"
"그건 불허한다."
세르비에는 칼라일의 말을 딱 잘라 거절 했다.
"스스로 여행을 하며 견식을 넓히고 강해지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솔직히 너무 나약하게 키웠어."
샤미안이 들었으면 아주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음, 그건 그래."
"맞다 맞다. 아가 너무 약하다아이가."
"그러게. 우리 막내. 그렇게 허약해서 나중에 장가는 갈 수 있으려나."
"음......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며 세르비에의 말에 동조하는 그녀들.
아마 샤미안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눈을 뒤집고 광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없으니 다행이지. 샤미안을 향해 묵념......이 아니라 화이팅!
"그래서 우리는 샤미안을 최대한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간다."
"오케이."
"알았다 언니야."
"네에."
"응 큰언니."
"그래. 이제 그만 다들 나가보도록."
세르비에는 네 자매를 내보내고 그녀의 하나 뿐인 남동생을 걱정 했다.
'샤미안. 조심해라. 카를슈 산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 * *
그녀들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샤미안은 마냥 들뜬 마음으로 카를슈 산을 오르고 있었다.
간간히 오크 무리와 고블린 무리가 나타났다.
"취, 취익. 인간. 인간이다. 고기다 고기."
"쿄쿄쿄. 약해 빠진 인간이다."
샤미안은 자신의 칼을 뽑아 불의 기운을 불어 넣었다.
"이그니스 레이지(ignis rage)"
칼에서 뜨꺼운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취, 취익. 불이다!"
"악악. 인간 불쓴다."
고블린은 불길을 보자마자 도망가기 일쑤였고, 오크는 그의 칼에 한 줌의 재가되었다.
드물게 오우거와 트롤들도 나타났지만 샤미안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웬만한 기사 5~6명은 달려들어야 잡을 수 있다는 오우거도 그의 칼질 한방에 목이 떨어 졌다.
이미 전쟁에서 2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산전수전 다겪으며, 전투 경험을 쌓아온 샤미안. 그 뿐 아니라 365일 지상 최강의 누나들과 함께 있다 보니, 전투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 했다.
"읏차. 아직 까지는 뭐 그렇게 위험한지 모르겠는 걸."
샤미안은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들던 트윈헤드 오우거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중얼거렸다.
후우웅- 콰직!
트윈 헤드 오우거가 날린 주먹은 허공을 가르며, 샤미안이 있던 자리의 나무에 틀어박혔다.
"쿠워어어!"
날렵한 샤미안의 움직임에 화가난 트윈헤드 오우거가 괴성을 내질렀다.
"시끄러워. 웬투스 스피릿(Ventus Spirit). 이그니스 레이지."
슈우우우- 화르르르-
샤미안의 발에 연한 초록빛깔의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고, 칼에서는 불길이 치솟았다.
트윈헤드 오우거는 뜨거운 불길에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이내 달려들었다.
"크워어어!"
샤미안은 고개를 살짝 숙여 자신의 왼쪽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피한 뒤 오우거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오우거의 품에 파고든 샤미안은 자신의 칼을 휘둘러 가슴부위를 베어버렸다.
푸슈웃- 화르륵-
"꾸워어어어!"
샤미안의 검에 베인 자리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비명을 지르는 트윈헤드 오우거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샤미안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왔다.
"후읍!"
샤미안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는 트윈헤드 오우거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마침내 오우거가 샤미안의 지척에 다다랐을 때, 샤미안의 발에 어린 초록빛이 밝게 빛났다.
"타핫."
샤미안은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튀어 올라 오우거의 공격을 피하고는 자신의 칼을 휘둘러 트윈헤드 오우거의 몸에 달린 두개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쿵- 화르르륵-
머리를 잃은 오우거의 몸은 쓰러졌고, 불길에 휩싸여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나쁘지 않네."
자신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샤미안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야영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흐음.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던 터라, 샤미안은 더 이상의 무리한 이동은 하지 않았다.
"이그니스 플라워(ignis flower)."
샤미안의 손끝에서 불의 꽃이 피어올랐다. 불의 꽃을 모아둔 나뭇가지로 가져가 불을 피우고 야영을 준비했다.
산이라 어둠은 금세 찾아 왔고, 샤미안은 자신의 배낭에서 이런저런 재료들을 꺼내 요리를 시작 했다. 간단한 야채 스프를 끓이고, 산에 올라 잡아 잡아놓은 토끼와 꿩을 불에 구워 먹기 시작 했다.
"그냥저냥 먹을만 하구만."
샤미안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양 옆의 거대한 나무와 나무 사이에 해먹 침대를 설치했다.
풀썩-
해먹 침대에 올라 하늘을 바라본 샤미안이 중얼거렸다.
"아 평온하다."
하늘에는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아름다운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는 보름달은 우주라는 배경에 부드럽게 장식 되어 수줍게 미소 짓는 듯 했다.
아름답고 위대한 밤하늘의 풍경을 보고 있던 샤미안은, 자신의 존재가 티끌처럼 느껴졌다.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들과 달을 보며 경건한 마음으로 마음을 가다듬고는 이내 잠을 청했다.
그렇게 샤미안은 서서히 잠에 빠져 들었고 카를슈 산에서의 첫 날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