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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네 서방이야?
작가 : 경아
작품등록일 : 20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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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날밤이 늘 짜릿한 것 은 아니다.
작성일 : 16-09-01     조회 : 316     추천 : 1     분량 : 6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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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주 까마득한 옛날, 지혁이 5살 때의 일이다.

 

 ​

 

 “지혁아, 우리 소꿉놀이하자.”

 

 “그래.”

 

 “네가 아빠고, 내가 엄마야. 여보, 잘 다녀오셨어요?”

 

 ​

 

 그때 지혁은 난생 처음으로 같은 유치원에 여자 아이랑 ‘소꿉놀이’ 라는 것을 하였다.

 

 ​

 

 “유리야.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니야.”

 

 ​“응? 그럼 어떻게 부르는 거야?”

 

 ​

 

 그런 둘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유치원 아이치고는 조숙해서 때로는 선생님들도 당황하게 만드는,

 

 한 여자 아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

 

 “드라마에서 봤는데, 그럴 땐 ‘서방’ 이라고 부르는 거야. 서-방.”

 

 ​

 

 그리고 지금, 2016년, 고등학교 2학년인 지혁에게

 

 ​

 

 “서방님. 여기가 저희가 쓸 방인가요?”

 

 ​

 

 처음 보는 여자, 정확히 말하면 꿈에서 한 번 본 여자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방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2. 첫날밤이 늘 짜릿한 것 은 아니다.

 

 

 

 자신의 방을 흥미롭게 구경하는 여원을 보며 지혁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

 

 ‘침착하자, 침착해. 호랑이 굴에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댔어. 아니, 여기는 우리 집이잖아?’

 

 ​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해도 쉽게 진정시킬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너무 여러 일이 생겨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였다.

 

 ​

 

 “앗, 그러고 보니.”

 

 “또 뭐?”

 

 “오늘이 저희가 다시 만나 보내는 첫날 밤 이군요.”

 

 ​

 

 첫날 밤. 이 세 글자가 지혁에 귓가를 통해 머릿속에 들어오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

 

 “그렇게 떨리세요? 사실 저도 지금 엄청 긴장되는데...”

 

 “잠, 잠깐만.”

 

 “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난 지혁이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

 

 ​“정체라뇨? 그게 무슨 소리에요?”

 

 “사람이 갑자기 상자에서 튀어 나오고, 처음 보는 꼬마가 날 아빠라고 부르지 않나, 너는 날 서방이라 부르지 않나.

 

  내 상식으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라고!”

 

  “그런가요?”

 

 “그래!”

 

 ​

 

 그러자 여원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진지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 모습에 뻘쭘해진 지혁도 얼떨결에 자리에 앉았다.

 

 ​

 

 “그럼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서방님. 저는 서방님과 100년 전 혼인을 약속했던 강여원이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100년 전에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서방님의 전생과 말이죠.”

 

 ​

 

 현실성이라곤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는 말이었지만 여원의 표정은 떨림 하나 없이 올곧았다.

 

 ​

 

 “100년 전 이라니... 그럼 넌 인간이 아니라는 거야...?”

 

 “네. 조금 놀라실 수 도 있겠지만, 저는 마녀입니다.”

 

 ​

 

  또 다시 혼란에 빠진 지혁은 아무 말 없이 여원을 바라보았다.

 

 ​

 

 ​‘쾅-’

 

 ​

 

 하지만 갑자기 부엌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소리에 화들짝 놀라 부엌쪽으로 달려갔다.

 

 ​

 

 “뭐야, 이 집에는 우유도 하나 없어?”

 

 ​

 

 ​‘이... 이게 대체 무슨...’

 

 ​

 

 몇 번이고 눈을 비비고 보았지만 달라진 것 은 없었다. 그릇들과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들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은이 있었다.

 

 ​

 

 “여은아, 이게 무슨 짓 이야!”

 

 ​

 

 여원의 따가운 고함 소리에, 그릇들과 음식들은 바닥에 떨어졌다. 여은은 입술을 쭉 내밀고 여원과 지혁을 바라보았다.

 

 ​

 

 “죄송해요, 서방님. 부엌은 제가...”

 

 “어차피...”

 

 ​

 

 무거운 목소리가 부엌에 울려 퍼졌다. 떨리는 주먹을 꽉 진, 차가운 눈빛에 지혁이었다.

 

 ​

 

 “어차피 전생이라면 지금의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거잖아.”

 

 ​

 

 여원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지혁은 입을 닫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을 이었다.

 

 ​

 

 “난 저 녀석 아빠도 아니고, 네 서방도 아니야. 난 나야. 김지혁이라고. 전생에 끝난 운명,

 

 구차하게 이어갈 생각 하지 마. 난 너희들 장난에 놀아 날 생각 추어도 없으니까. 빨리 이 곳에서 꺼져!”

 

 ​

 

 마지막 한마디를 끝으로, 지혁은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세게 닫고, 의자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

 

 ‘내가 좀 심했나? 아니야, 솔직히 난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뭐. 저 정도 말했으면 알아듣고 가겠...’

 

 ​

 

 ‘쾅-’

 

 ​

 

 ​문짝이 뜯어 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

 

 ​“상관없다고?”

 

 ​

 

 곧 이어 들려오는, 심장을 쪼이는 살기 넘치는 목소리에 지혁은 고개를 돌릴 수 밖 에 없었다.

 

 ​

 

 “우리 엄마, 그리고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100년 동안 저 상자 안에 있었어. 당신을 만나겠다고. 그래서 자기 마력까지 다 써 가면서,

 

  죽을 지도 모르면서, 당신과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자...잠깐...”

 

 ​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이, 그 중에는 수학의 정석과 국어사전도 있었다, 공중에 떠올랐다.

 

 ​

 

 “그런데 뭐? 상관없다고? 빨리 꺼지라고? 그렇다면 당신이... 당신이...”

 

 “이건 좀...”

 

 “당신이 우리 아빠 일리 없어!!!”

 

 ​

 

 책들이 지혁과 충돌하기 1초 전,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기절해 있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을, 자신을 바라봐 주고 있다는 것을.

 

 ​

 

 “서방님, 괜찮으세요?”

 

 ​

 

 눈을 다시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 은 여원이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말이다.

 

 ​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여은아, 너 빨리 사과 드려.”

 

 “싫어. 내가 잘못 한 게 없는데 왜?”

 

 “강여은!”

 

 “잠깐, 둘 다 조용히 좀 해 봐.”

 

 ​

 

 ​두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말리면서 지혁은 누워있던 쇼파에서 일어나 바로 잡아 앉았다.

 

 ​

 

 “머리가 아파서, 다시 정리 좀 할게. 그러니까 네가 전생의 나랑 약혼을 한 사이였고, 얘는 우리가 낳은 애라는 거지?”

 

 “네.”

 

 “쳇.”

 

 ​

 

 여전히 지혁이 마음에 안 드는지, 여은의 눈빛에는 불만이 넘쳐 흘렸다.

 

 ​

 

 “아까는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 도 있으니까, 일단 미안해.”

 

 ​

 

 아까 보다 수그러진 지혁의 목소리에 여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다 싶이 그건 전생의 나야. 전생의 나는 현재의 나랑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인걸. 더군다나 나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너랑 부부의 인연을 맺을 만큼 여유가 없어. 내년이면 당장 고3이라고. 그리고 난...”

 

 ​

 

 지혁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생각이 바뀌었는지 입을 닫았다.

 

 ​

 

 ​“서방님 말씀 무슨 뜻인지 잘 알겠어요.”

 

 ​

 

 아까보다 한츰 낮아진 목소리로 여원이 말했다.

 

 ​

 

 ​“하지만 100년 전이든 지금이든 제 지아비는 서방님이란 건, 변함없어요.”

 

 ​

 

 하지만 여전히 꺾임 없이 당당하기만 하였다.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못 하는 지혁에게 여원이 무언가를 건넸다.

 

 ​

 

 “이게 뭐야?”

 

  “서방님이 100년 전 제게 주었던 반지에요.”

 

 ​

 

 반지 중앙에는 상자에 있었던 것처럼 푸른 보석이 박혀 있었다.

 

 ​

 

 “마녀들은 본래 주어진 운명이 없는 자들. 그래서 늘 시련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죠.

 

 그래서 저희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슬픔과 괴로움을 줄여주는 반지입니다. 저는 이 반지를 서방님께 드렸죠. 하지만 100년 전,

 

 헤어지던 날, 서방님은 저에게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자신보다 저를 더 생각했으니까요. 자신보다 저를 더 사랑해 주셨으니 까요.”

 

 “그런데 이걸 왜 다시 나한테 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1년만 여기서 살 수 있게 해주세요.”

 

 ​

 

 손바닥 위에 놓인 반지는 눈처럼 스르르 녹아 사라졌다.

 

 ​

 

 ​“뭐, 뭐야 이거?”

 

 “서방님의 몸 속 안에 저장된 거랍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요. 이처럼 서방님과 저의 인연의 끈이 지금은 보이지 않을 지라도,

 

 증명해 보일게요. 우리의 인연을. 우리의 운명을. 100년 전, 모든 운명을 거스르고 서방님과 제가 사랑했던 것처럼...

 

 100년 후인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을.”

 

 ​

 

 ​여원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

 

 “만약 1년이 지나도 서방님이 저를 인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그때는 정말 물러나겠습니다. 그때까지 그 반지를 갖고 계세요.

 

 그리고 물러나는 날, 갖고 가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1년만, 딱 1년 만...”

 

 ​

 

 ‘닮았어. 저 눈동자랑 그 보석, 빼다 박은 것처럼 닮았어.’

 

 ​

 

 ​“이 인연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

 

 ​‘둘 다 너무 푸르러서, 내 마음 한 구석도 파랗게 물들일 것 만 같다고.’

 

 ​

 

 ​많은 것 들이 변하고 말았다.

 

 ​

 

 “우리 엄마는...”

 

 ​

 

 ​흐느끼고 있는 여원을 대신해 여은이 입을 열었다

 

 .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댔어. 자기 목숨을 버리고 자신을 지켜줬으니까, 다음에는 자기가 아빠를 구해주겠다고.

 

 목숨 받쳐 구해주고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그랬어. 그러니까 우리 엄마 울리지 마, 이 나쁜 아저씨.”

 

 ​

 

 그렇게 말하는 여원의 눈도 토끼 눈처럼 빨개지고 말았다.

 

 ​

 

 ​“엄마 울지 마.”

 

 “너야 말로 울지 마.”

 

 “흐어엉-”

 

 “아, 알았어!”

 

 ​

 

 두 모녀의 한탄을 듣고만 있었던 지혁이 결국 외쳤다. 그와 함께, 여원과 여은의 눈물을 멈추고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

 

 ​“딱 1년이면 되는 거지? 마침 엄마 아빠도 그 정도로 집을 비우시니까. 딱 1년이다. 그 이상은 절대로 안 돼!”

 

 “서방님-”

 

 “켁!”

 

 ​

 

 갑자기 자신을 껴안은 여원 때문에 지혁은 숨이 막혔지만 지금 그녀에게 그런 것 은 보이지 않았다.

 

 ​

 

 ​“정말 감사드려요. 1년 동안 꼭 서방님에게 걸맞은 아내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놔, 숨 막혀 죽겠으니까.”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너희 짐은 어디 있어?”

 

 ​

 

  여원은 말 대신 가볍게 박수 두 번을 쳤다. 그러자 상자에서 푸른빛이 남과 동시에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가방이 튀어나왔다.

 

 ​

 

 “여기에 다 있답니다!”

 

  “진짜 대단하다... 그런데 그럼 너도 쟤처럼 초능력 같은 거 가능해?”

 

 ​

 

 ​지혁이 여은을 가리키며 물었다.

 

 ​

 

 ​“초능력이 아니라 마력이라 하거든, 바보 아저씨야.”

 

 “아뇨, 제가 쓸 수 있는 능력은 이게 한계에요.”

 

 “왜? 어째서?”

 

 “상자에 100년 동안 갇혀 있으면서 마력을 다 써 버렸거든요.”

 

 

 ​

 

 ​‘그래서 자기 마력까지 다 써 가면서, 죽을 지도 모르면서, 당신과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

 

 ​아까 여은이 했던 말이 사실이었다.

 

 ​

 

 “마력을 다 쓰면 죽을 수도 있어?”

 

 “네. 극소수긴 하지만요.”

 

 ​

 

 뭐가 그리 좋은지 여원은 그저 싱글벙글 웃으며 집을 구경하기 바빴다.

 

 

 

 ‘그러고 보면 대단한 여자야. 한 사람을 위해 100년 동안, 죽을 각오로 갇혀 있었다는 거잖아.’

 

 ​

 

 “그런데 서방님, 침대가 좀 좁네요. 하긴, 그러면 더 좋긴 하지만요. 더 가까이 서방님과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야!!!”

 

 ​

 

  얼굴이 새빨개진 지혁이 서둘러 여원을 자신의 방에서 쫓아냈다. 의아해하는 여원을 보며 지혁이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

 

 ​“1년 동안 같이 사는 건 맞지만 절대 그런 짓은 안 돼!”

 

 “그런 짓이라뇨?”

 

 “,,,하여튼 앞으로 너희가 쓸 방은 저 쪽이야!”

 

  “합방이 아니란 건가요?”

 

 “당연하지!”

 

  “100년 만에 다시 만나 독수공방이라니...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1년 후에는 같은 방을 쓰게 될 테니까요.”

 

 “그래, 네 마음대로 생각해. 난 먼저 잘 테니까.”

 

 “잘 주무세요, 서방님. 혹시 이따가 라도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세...”

 

 ​

 

 여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혁이 방문을 쾅 닫고 침대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

 

 ​‘저 여자는 딸 옆에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방문 너머로 여원과 여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신기하네. 오늘 처음 본 건데, 어색하지는 않아.’

 

 지혁의 18번째 생일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

 

 창밖으로 들려오는 요란한 빗소리에 굳게 잠겨 있던 지혁의 눈이 떠졌다.

 

 ​

 

 ‘목...말라...’

 

 ​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물 한잔을 마시고, 터덜터덜 거리는 발걸음은

 

  자신의 방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

 

 “흐음...”

 

 ​

 

 침대에 누운 순간, 번쩍 거리는 천둥이 방 안을 집어 삼킬 것 같았지만, 이미 한 번 감긴 지혁의 눈은 떠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왼쪽 손을 잡는 온기 또한 느끼지 못 하였다.

 

 

 

 

 

 ​

 

 새벽에 내린 소나기가 지나가고 다가온 아침은 너무나도 화창했다. 아침햇살을 맞으며 잠에서 깬,

 

 마치 드라마에 한 장면처럼, 지혁은 기분 좋게 하품을 하였다.

 

 ​

 

 “야!!!”

 

 ​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힘이 지혁의 왼쪽 뺨을 강타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혁은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바닥과 얼굴을 맞댔다.

 

 ​

 

 ​“왜 때리는 거야?!”

 

 “우리 엄마가 자고 있는 사이를 덮쳐? 아저씨 진짜 최악이야!”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내가 무슨...”

 

 ​

 

 여은이 침대에서 자고 있는 여원을 가리켰다. 이 소동 속에서도 너무나 고요히 잠들어 있는 여원을.

 

 ​

 

 “아저씨가 우리 엄마 옆에서 자고 있었잖아!”

 

 “뭐? 말도 안...”

 

 ​

 

 ‘돼’를 외치기도 전에, 지혁의 머릿속에 어제 새벽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물을 마시고, 방 까지 가기 귀찮아

 

 가장 가까이에 있던 방에 들어갔고,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웠다. 하필이면 그 방, 그리고 그 침대에 여원이 있었다.

 

 ​

 

 “하지만 그냥 잠만 잤어. 덮치기는 무슨!!!”

 

 “아저씨 말을 믿으라고? 이 변태!”

 

 ​

 

 아침부터 지혁의 볼은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첫날밤이 늘 짜릿한 것 은 아니었다.

 

 

 

 

 

 

 

 맛있게 차려진 아침 식탁을 앞에 두고 지혁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

 

 “서방님, 어젯밤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셔서 많이 놀랐어요. 하지만... 이로써 저희의 첫날...”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저 녀석이 자꾸 오해하잖아. 아무 일도 없었고, 그건 사고였다고! 그리고 너 그 ‘서방’ 소리 그만하면 안 되냐?

 

  그냥 지혁이라고 불러.”

 

 “어떻게 서방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가 있나요? 차라리 독수공방을 할망정, 그건 절대 제 스스로가 허락할 수 없어요.”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

 

 한숨을 푹 내쉬며 지혁이 미역국 한 입을 떠먹었다.

 

 ​

 

 ​“어? 맛있네?”

 

 “우리 엄마 요리 솜씨가 얼마나 좋은데, 아저씨.”

 

 “집에 있는 미역국에 손만 조금 본 정도에요.”

 

 ​

 

 여원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

 

 ‘확실히 특이하긴 하지만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아. 서방이란 소리가 거북하긴 하지만, 나만 어떻게 잘 참으면 되니까.’

 

 ​

 

 그렇게 생각하며 지혁은 다시 한 번 미역국을 음미하였다.

 

 ​

 

 “그건 그렇고 앞으로 서방님과 학교를 같이 다닐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떨려 와요!”

 

 “푸우웁!!!”

 

 ​

 

 하지만 그 미역국은 목구멍이에서 입 구멍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

 

 “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서방님이랑 학교를 같이 다닐 거랍니다!”

 

 ​

 

 지혁의 속이 타들어가는 걸 모르는 여원의 표정에는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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