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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나. 다가온 너
작가 : 시그널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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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라진무게
작성일 : 16-10-08     조회 : 332     추천 : 0     분량 : 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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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명이 밝아 올때부터 눈이 떠진다.

 철호는 여전히 잠들어 있지만 내눈은 떠졌다. 오늘 다가올 일들이 아직 받아들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왜 변명을 하지도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할까.

 두렵고, 두렵다.

 내가 일상으로 알고 살았던 모든게 깨어질까 두렵다.

 철호를 잠시 도닥여 주고 다시 억지로 자리에 누었다.

 깨어있음 걱정과 두려움에 쓰러져 버릴것 같다.

 차라리 잠에서 깨었을때 모든일이 벌어져 있음 좋을것 같다.

 한참을 공허한 생각으로 채우고 나서야 잠이 들수 있었다.

 이미 여명은 건너가고 날은 밝아 있었다.

 철호는 간혹 끙끙 앓는 소리를 냈지만 잠결에 손을 뻗어 도닥여 주면이내 잠잠히 잠들었다.

 무엇에 눈이 떠졌는지 모르겠다.

 그저 지금쯤은 눈을 떠야할것 같아 눈을 떳다.

 회사를 그만두고는 한번도 제대로 시간을 챙겨 본적이 없다.

 해가 뜨면 날이 밝았구나 배가 고프면 밥때이구나 하는 정도.

 철호의 밥을 덜어주고 물도 새로 채워 줬다.

 철호는 배가 고팠는지 한달음에 달려와 허기를 채운다.

 "배고팠구나. 말을하지 참고 있었냐? 천천히 먹어 여기 니밥 뺏어 먹을사람 아무도 없어."

 철호가 맛나게 먹는걸 보니 사료인데도 내가 출출해진다.

 요즘 요리하는 남자가 인기 최고라는 말을 들었다.

 요리 기준으로 한다면 나는 최악의 남자 일거다.

 딱히 요리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볼수도 있겠지만.

 라면을 또 먹을 생각하니 속이 부대낀다.

 누가 라면이 손쉽고 간편하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철호야 왜?"

 어느새 철호가 앞에 앉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새로 갈아준 패드가 젖어 있는걸 보니 소변 본걸 칭찬해 달라는것

 같다.

 "그래. 그래. 잘했다. 그렇게 하는거야."

 쓰다듬어 주자 철호는 기분 좋아한다.

 이전 누군가도 철호를 이렇게 쓰다듬어 줬을것 같다.

 사랑을 바라고 손길을 바라고 있다.

 철호를 바라보며 잠시 지어지려던 미소가 하나의 알림음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내가 그렇게 얘기 했는데 이렇게 했다 이거지 이혼하자는 말이 농담같았어? 끝내자. 지긋 지긋하다. 그동안 참고 살아준거 고마운줄 알고 해준거 하나없으면 위자료나 준비해.>

 그럴수도 있겠단 생각은 있었지만 현실이 되는거와 생각은 체감이 달랐다.

 헤어져도 크게 달라질게 없을것 같던 생각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심장이 죄여 오는 느낌이 든다.

 모든게 흐트러진 느낌이다.

 달라진건 문자한통이지만 바뀐건 내 전부이다.

 철호가 쪼르르 달려와 내앞에 앉지만 무언가 해줄수 있는게 없다.

 한참 꼬리를 흔들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내손등을 핥는다.

 그순간 내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눈물은 무엇을 뜻하고 있을까 어디가 그렇게 아파서 우는걸까.

 나의 일상이라 불리던 모든게 깨어졌다. 직장, 가족.

 남아있는건 철호와 앉아있는 이공간 속의 생활뿐이다.

 하나씩 깨어지니 두렵기만 하다.

 지금 이공간속의 일상은 지킬수 있을지 두렵다.

 한참의 눈물이 흐르고 난뒤에 전화를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걸려가는 통화음이 내가 하고자 했던 말들을 잊게끔 한다.

 "왜? 할말있어?"

 익숙한 불만가득찬 냉랭한 목소리가 들린다.

 "수빈엄마.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뭐가 아니야? 나 많이 참고 참은거야. 이제 더는 못참는다. 맘 바꿀생각 없으니깐. 이제 더이상 전화도 하지말고 찾아 오지도 말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내가 그동안 당신이랑 수빈이만 보면서 어떻게 살았는데 이렇게해."

 "그딴 소리 하지말고 할말없으면 끊어. 당신이 수빈이랑 나한테 뭘했다고 낳았다고 자식이 아니야!"

 "여보..ㅅ...ㅔ..."

 전화는 끊어졌다.

 손에서 휴대폰이 떨어져 툭 소리를 낸다.

 그소리에 놀란 철호는 뒷걸음쳤다.

 "철호야. 끝났다. 정말 다 끝났어."

 쌓아 올리기위해 애쓰고 애쓴 세월이 무색하게 한순간 하나의 일로 모든게 쓰러졌다.

 수빈이가 떠올랐다. 수빈이는 그래도 나와 함께하고 싶지 않을까.

 서둘러 대충 신발만 신고 뛰쳐나와 무작정 지하철역을 향해 뛰었다.

 숨이 턱턱 차오르지만 수빈이를 만나봐야 할것 같았다.

 지하철역에 도착했을땐 이미 몸이 땀범벅이었다.

 지하철을 타기위해 서있는 지금도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자각되지 않을 정도로 몸이 뜨거웠다.

 한참동안의 지하철과 그리고 또 한참의 버스를 타고 나니 뜨거운 도시의 기운이 벗어난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지도 모른채 멀끔하게 들어서 있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분명 내이름으로 내소유로 되어있는 집이지만 언제나 낯설다.

 섣불리 들어설수가 없었다.

 기다리다보면 수빈이가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한켠의 벤치에 앉아 멈춰져 있다.

 복잡했던 내생각도 뜨거웠던 마음도 지쳐버린 내몸까지 멈춘채

 아파트 입구만을 바라보고 있다.

 '수빈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엄마 아빠가 이혼할것 같다는걸 말해야 할까. 아니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할까. 그래.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는게 좋을것 같다. 그러면서 밥을 같이 먹어야 겠다.'

 시간이 흐르고 있을때 입구에서 한애들의 무리가

 나타나는게 보였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자세히 보니 수빈이가 맞았다.

 생각하고 움직일것 없이 이미 몸은 나아가고 있었다.

 "수빈아."

 내부름에 수빈이가 고개를 틀어 나를 보더니 다시 잰걸음으로

 가던 길을 간다.

 "수빈아. 아빠야. 수빈아."

 내 계속된 부름에도 지나가는 수빈이를 빨리걸어가 잡았다.

 "수빈아. 아빠야. 아빠랑 잠시 얘기 좀..."

 "싫어!!!!"

 같이 있던 애들도 놀란 표정으로 보더니 수빈이가 내팔을 뿌리치고 사라지자 함께 사라졌다.

 이게 무슨일일까. 방금전 수빈이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은 수빈이를 더이상 쫓아가지 못하게 했다.

 다시금 벤치에 주저앉자 전화벨이 울린다.

 어쩐일인지 내몸이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머릿속은 수빈이의 눈빛으로만 가득차 복잡했다.

 내움직임이 없자 재촉하듯 전화벨이 한차례 더 울린다.

 내 생각을 방해하는 소리를 죽이듯 전화벨을 없앴다.

 "여보세요..."

 "당신 미쳤어. 수빈이 한테 왜 나타난거야.

 우리 끝이라고 했어 안했어. 진짜 이따위로 할거야. 우리끼리 그냥 조용히 끝내면 될것을 왜 애앞에 나타나서 애를 힘들게해!!"

 "아빠가 애보러 온것도 죄인가."

 "안그래도 아빠라면 불편해서 학을떼는 애앞에 그것도 거지꼴을 해서 나타나? 애 사춘기인거 몰라?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데 그렇게 해야해? 다시는 여기 나타나지마. 내가 서류 만들어서 우편으로 보낼테니까 다시는 나타나지마. 진짜 징그럽다. 징그러~!!!"

 그 눈빛이 경멸과 공포의 눈빛이 맞았구나.

 일어서 주차되어 있던 차의 차창에 모습을 비춰 보았다.

 후줄근한 추리링에 목늘어난 티, 슬리퍼.

 이제서야 느껴지는데 땀냄새도 한껏 올라오고 있었다.

 '수빈이가 사춘기였구나.'

 또하나의 아빠에 대한 몹쓸 상처만 남겨버렸다.

 '이곳은 내가 있을곳이 아니구나.'

 발길을 돌려 걸어 나왔다.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많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피곤하고 힘들었다.

 온몸을 누군가가 방망이로 난도질을 해놓은것 처럼 축늘어졌다.

 아침마다 입던 양복에 깃들어져 있던 김과장의 무게가 사라졌다.

 그리고 지갑속 사진에 들어있던 수빈아빠, 남편이라는 무게가 사라졌다. 근데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돌아가는 길은 왜이렇게 멀기만 하나.

 버스에 지하철까지 한참을 구그려져 있다가 집이 있는곳에 도착해서야 일어나 움직였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발걸음.

 그리고 손에들린 검은봉지에서 나는 병부딫히는 소리.

 어느덧 어둑해져가는 하늘에 내 죽을상을 숨기고, 흔들흔들 병 부딪히는 소리에 내흐느낌을 숨겼다.

 집앞 현관을 열고 들어섰다.

 깜깜한 현실에 들어서려 할때 후다닥 뛰는 소리와 함께 철호가 다가왔다.

 "철호야. 철호야. 참 힘들다. 누군가로 살아간다는게 힘들다..."

 그렇게 현관 앞에 주저 앉아 철호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바보같은 철호는 언제나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다. 아프면서도...

 자그마한 철호를 안고 있으니 오늘 이리 저리 나부낀 내 마음의 크기가 만져 지는듯 했다.

 천천히 천천히 쓰다듬었다.

 "철호야. 아프지마라."

 천천히 천천히 쓰다듬었다.

 "철호야. 힘들지?"

 영문 모르는 철호지만 내슬픔은 아는듯 내손등만 조용히

 핥아주었다.

 "철호야. 오늘도 술한잔 하자."

 철호와 함께 술잔을 놓고 마주앉아 술을 들이켰다.

 꿈도 야망도 없었다. 그저 바라는건 유지되었음 하는거였다.

 현재가 미래에도 현재이기만을 바라며 버티고 살았다.

 버티던 마음이 무너지니 많은것이 그밑에 깔려버려 아파했다.

 이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야할까.

 "철호야. 너는 어디가지 마라. 내가 처음에 화내고 해서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아프지도 말고."

 술잔에 따라준 물을 홀짝이며 갸우뚱 한다.

 잘모를거다. 무슨말인지. 나도 처음엔 이런일이 일어날줄 몰랐으니.

 나는 이제 철호라는 이름밖에 남지 않았다.

 생활하며 어쩌면 가장 불리지 않았던 철호라는 어색한 이름만이 나를 끝까지 있게했다.

 '철호. 어색한 내이름. 이젠 철호만이 내곁에 남아있구나.'

 물을 홀짝이며 나를 응시하는 철호.

 술잔을 비우고 철호를 응시하는 나.

 오늘은 이렇게 서로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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