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어 있는 철호를 잠시 옆으로 옮겨주고 일어나 냉장고의 물을 들어 마셨다.
술이 들어간 탓인지 갈증이 계속 찾아왔다.
하지만 물만으로는 왠지 갈증이 가시지 않는것 같다.
냉장고 문을 조용히 닫고 다시 잠자리를 향하며 작은 액자를 손에 들었다.
그곳에는 집사람 수빈이 그리고 내모습이 웃으며 자리 잡고 있다.
어둠이 내린 방안에서 그 사진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항상 봐왔던 사진은 눈앞에 선한것 같다.
보이지 않아도 익숙해서 기억을 해버린 것이다.
수빈이가 어렸을적 공원을 산책하며 찍었던 사진이 지금의 그 사진이었다.
"이때가 언제였지? 수빈이가 몇살때였지?"
사진의 모습은 익숙했지만 그때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았다.
저때는 무슨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웃고 있는지 생각을 아무리 하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수도 없이 어쩌면 습관적으로 사진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나보다는 엄마를 많이 닮아 이쁘게도 자란 수빈이 모습을 수도 없이 봤다.
사진을 보면서 힘을 내고 살아갈때도 많았지만 사실 후회와 좌절을 한 시간도 꽤나 많았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들...
길을 잃은 새가 바닷가로 나가 하염없이 날개짓을 하고 있는것 같은 느낌. 날개짓을 쉬면 끝없는 추락 어디론가는 항상 나아가야 하는 두려움. 살아있다는 두려움.
사진을 내려놓는 지금도 이 사진을 보며 느낀 기분이 무엇인지 복잡하다.
술기운이 남은건지 두통과 함께 속쓰림이 연이어 찾아온다.
술로 잠시 잊는 것은 좋지만 술기운으로 밀려오는 감성은 항상 씁쓸한 한숨만 남긴다.
`난 더 날아가봐야 할까? 아니면 이제 흘러오는 파도에 몸을 맡겨야 할까?`
머릿속에 생각들은 하나도 정돈이 되지 못한채 어지럽혀 있다.
내가 이방으로 이사온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잠시 몇년만 지내다 다시 가족과 함께 하려했던 계획은 바뀌고 바뀌어 지금까지 왔다.
어쩌면 모든게 나의 무능함 때문이다.
능력이 없어 이직을 할수도 없었고, 그저 버티는게 최선이었다.
길을 조금씩 벗어나던 삶은 결국은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버렸다.
그리고 나에대한 이해만을 채워나갔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그들은 그걸 알까? 내가 이렇게 힘든데...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하는 나의 합리화.
과거의 삶은 부정당했고, 앞으로의 길은 두렵고, 현재는 괴롭다.
정말 두터운 한숨만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득한 어둠과 한숨속에서도 철호는 곤히 잠들어 있다.
"철호야 니가 세상 젤 편하구나."
괜히 잘자고 있는 철호에게 핀잔도 줘본다.
지금 철호와 내가 있는 이방 나만의 세상인 이곳에서 나아가기가 너무나 두렵다.
나에게 욕을 할까봐 무섭고, 나에게 또다른 아픔이 올까봐 겁난다.
세상은 이런 나를 동정할것이다.
한심하게 바라볼 눈빛도 무섭다.
철호옆에 누워 눈을 붙여 보지만 도저히 잠이 들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계속 수빈이가 나를 바라 봤던 눈빛이 가슴을 후벼판다.
너무도 원망하는 듯한 그리고 간절한 듯한 눈빛.
모두가 결혼을 하기에 나도 그리해야겠지 해서 결혼을 했고, 애를 나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수빈이를 낳았고, 아빠는 돈을 벌어야 한다하니 일을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모두가 그러하기에 나또한 그리해야 한다 생각했다.
나만 다르면 또 혼자가 될테니깐.
다른 이들과 비슷하게 살아간다 여겼건만 왜 나에게 잘못했다 하는건지 모르겠다.
`수빈엄마가 진짜 이혼을 하려는 걸까?`
누군가를 붙잡고 때론 집사람 흉도 보고 싶고 수빈이 자랑도 하고 싶다.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나누고 싶지만 그럴 사람이 한명도 없다.
사회생활속 사교성도 좋지 못했고, 친구라고 오래 곁에둔 사람도 없었다.
지옥같았던 회사생활이 오늘 따라 그립다.
그저 참으면 일상은 버텨낼수 있었고,
언제나 찌그러지고 짓밟혀도 나는 그들처럼 세상속에 살고 있었으니.
혼자가된 지금이 너무 싫다...
내가 지냈던 세상은 많은 장면이 필요 없었다. 언제나 회사, 지하철, 집 단 세단어로 표현이 되는 인생이었다.
재미없고 바보같은 인생을 생각하니 헛웃음만 나온다.
한번쯤 팀장비위도 맞춰 술한잔 했었어도 괜찮았을테고, 후배들 밥한번 사줬다면 지금이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마음이 답답해지고 꽉막힌것 같다.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을 들여 마셔보지만 피부속의 마음 까지는 시원하게 하진 못한다.
다 놓을수 있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수 있을텐데.
무슨 미련이 있어서 이렇게 아픈데도 버티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서있는 이 창밖으로 한걸음만 더 나아갈수 있으면 참 편해질텐데.
아이러니 하게도 나를 엿먹인 이세상에 뛰어들어야 내가 편해질수 있다는게 웃기다.
끝없는 바닷가를 날아 간다고 정신이 없어 아픈지 몰랐는데 우연히 날개에 있는 상처를 보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날개짓을 해도 계속 그곳이 신경쓰이고 아팠다.
모르고 바보같이 계속 날았다면 언젠가는 날개짓을 멈출수 있는곳을 발견했을지도 모를텐데. 힘듬을 느껴 고민을 하게 된것이다. 힘들지 않아도 되는 길이 보여버리니...
활짝연 창틀로 몸을 반쯤 걸쳐 보았다.
바람이 연신 머리카락을 흐트러 놓지만 보이지 않았다.
저아래를 내려다 보지만 그곳은 그저 어두운 한 점일 뿐이었다.
`무섭다.`
포기하는게 무서운건지, 순간의 고통이 무서운지 모르겠다.
하지만 온몸이 떨릴 만큼의 무서움이 찾아온다.
순간 걸쳐 있던 몸을 내려 창을 등지고 쭈그려 앉았다.
부끄럽고 무섭고 나약한 내가 너무 싫다.
한숨과 함께 작은 한탄이 쏟아졌다.
한참 고개를 흔들다 작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의 움직이는 소리에 깬건지 철호가 천천히 걸어와 내 다리위로 올라오려 했다.
"철호야..."
작은 발로 내다리를 쓰다듬으며 엎드리자 철호의 체온이 느껴졌다.
손발이 떨릴만큼 무섭던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는것 같다.
주먹만한 철호가 그저 내다리위에 올라왔을 뿐인데 떨리던 몸이 멈춰갔다.
"철호야 너는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거니? 나한테 말해주면 안되니? 나 진짜로 힘들구나."
철호를 쓰다듬으며 한참을 그자리에 주저 앉아있었다.
주저주저 고민하며 나는 아직도 날개짓을 멈추지 않고있었다.
그게 두려워서인지 미련이 남아서인지 알수는 없다.
하지만 죽을만큼 힘들지만 날개짓을 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가며 내가 등지고 있는 창틀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지만 나와 철호의 세상은 바뀐것 없이 멈춰있다.
철호도 나도 길을 잘못들었음은 맞았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몰아놓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길에서 우리는 만났다.
서로를 보던 한번의 눈길이 지금이 되었다.
우리의 세상에선 철호와 내가 서로에게 전부였다.
아픔이 서로에게 보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함께 할수 있는것이었을까.
나에게 이제 김철호라는 이름 석자만이 남아있듯 철호에게도 나에게도 철호가 전부이다.
머리와 마음은 아직 복잡하지만 지금 이순간 내가 어루 만져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게 조금은 감사했다.
"철호야 우리 조금만 더 날아가 보자. 조금만더..."
똑같은 배경속에 똑같은 날개짓 바뀔건 없다.
이길이 맞는지 그것조차 알수없다.
그렇지만 아직은 멈출수는 없다.
내손에 이작은 녀석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