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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나. 다가온 너
작가 : 시그널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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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내이름은...
작성일 : 16-09-02     조회 : 564     추천 : 1     분량 : 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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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적대는 지하철속 멍하니 그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어찌하나 웃는이들이 없을까?

 언제나 찾아오는 출근시간의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다르게 보인다.

 북적대고 많은 이들이 모여있지만 그저 수많은 외로움과 고통들만이 가득차 있는것 같다.

 밀착되어있는 이들의 숨소리가 귓가로 다 들려온다.

 그들의 걱정과 한숨이 다 내가슴속으로 들어오는것 같아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 지독한 매연이 있더라도 바깥 공기를 들이 마시고 싶다.

 한정거장 두정거장 이제 곧 다가오는 도착지가 어쩐일인지 다가오지 않고 있는것 같다.

 지하철의 문이 열리고 드디어 해방이다. 쏟아지는 사람들 속을 잰걸음으로 요리조리 피해가며 밖으로 나온다.

 탁한 공기지만 갑갑한 마음을 벗어주기엔 충분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아직 출근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탁한 공기를 즐기며 천천히 걸었다.

 오늘 해야할 업무를 생각해보니 아찔한 현기증이 난다.

 무거운 걸음으로 걸어가는 걸음에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이름은 뭐였지?`

 순간 나는 얼른 내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여보, 아빠, 김과장, 야 불리는 소리는 많았지만 그중에 나는 없었다.

 내이름이... 내이름은 김철호였다.

 `그래 김철호 나는 김철호...`

 내이름을 연신 중얼거리며 수많은 이들이 들어가고 있는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이른시간임에도 벌써 많은 직원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김과장님 오셨어요?"

 "어 박대리.. 아니.. 승원씨 일찍 왔네?"

 "아. 네. 이름 부르시니 어색하네요."

 "그런가? 그냥 오늘은 그러고 싶어서 그랬어. 아침부터 뭘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

 "사보요. 휴.. 요즘 경기가 안좋다 안좋다 하더니 결국 저희 회사까지도 여파가 온것 같네요. 이번달 말까지 희망퇴직자를 받는다네요."

 "그래? 그거참..."

 묵직했던 아침의 마음이 이렇게 될거란 예측의 생각이었던가?

 무거웠던 마음속에 큰돌덩이가 하나 더 얹혀지는 맘이었다.

 자리에 앉아 어제 수집하던 자료를 다시금 훑어봤다.

 지금 일하는 광고회사를 처음 들어왔을때는 의욕에 넘치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뭐든지 해낼것 같았고 최고로 올라설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결혼을 하고 어여쁜 딸도 낳았다.

 지금은 비록 주말부부로 살고 있지만 내집도 마련을 했다.

 그순간 순간의 성취감과 기쁨은 있었지만 그것 또한 순간처럼 지나갔다. 그저 모든 과정뒤의 결과는 지금의 내모습이었다.

 그렇게 생각의 꼬리를 찾아 물고 물고 있을때 팀장님의 회의 소집 명령이 들어왔다.

 프로젝트 자료를 챙겨 회의실로 들어갔다.

 팀장은 똑같은 인사와 의미없는 잔소리후 지금 진행중인 프로젝트 회의를 시작했다.

 "김과장. 김과장은 이번 프로젝트는 박대리한테 인수인계하고 빠지는 걸로해. 도대체 자료수집 그거 하는데도 그렇게 헤매서야 일해나가겠어? 박대리는 오늘 안에 인수인계 확실하게 받고."

 이건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싶다.

 내가 보름간 준비했던 자료들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를 보는 모든이들의 눈에는 경멸과 안쓰러움이 묻어 있는듯 했다. 피하고 싶지만 이미 내몸뚱이를 찔러버린 그 눈빛들은 빠지지 않았다.

  인수인계라는게 필요 있을까? 그저 내가 조사했던 파일만 넘기면 되는것을.

 이제 나는 필요없는 이회의를 계속 듣고있어야 하나 싶었다.

 나의 생살을 찔러대는 이 공격을 신음 없이 듣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 김과장은 이제 나가봐. 이제 들을 필요 없잖아."

 "예.."

 다행이다 싶었다. 얼른 서류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회의실의 투명한 유리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사냥꾼들은 나를 공격하는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며 자리에 적힌 내이름을 봤다. 김철호과장.

 `그래. 내이름은 김철호 였어.`

 자리에 앉아 습관적으로 책상위의 사진을 보았다.

 그사진 속엔 웃고 있는 아빠와 딸이있었다.

 언제나 그사진을 보며 아빠는 힘을 내었었다.

 하지만 지금 철호는 이자리에 앉아있음을 너무 버거워 하고 있었다. 잠시간의 갈등.. 오늘도 철호의 생각은 아빠, 남편의 생각에 묻혀버리고 만다.

 이제 무엇을 해야하나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남은 잡업무를 보는것이 회사만의 불문율 이었다.

 `해나가야지. 견디다 보면 또 지나가겠지.`

 밑에 직원들이 하던 업무들을 하나씩 찾아내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모든 팀원이 회의를 하는 지금 남은 사람은 나 하나 였다.

 그렇게 사무실안은 타자치는 소리만이 들릴뿐 그어떤 소리도 없었다. 한참 서류작업을 하고 있자니 회의를 마친 직원들이 돌아왔다. 아니.. 아직도 그들은 사냥꾼이었다.

 비웃음과 동정 가득한 창을 가지고 돌아오고 있었다.

 시선은 모니터에 집중시킨채 아프지 않은척 견뎠다.

 사냥꾼들이 직원들로 돌아올때즘 일어서서 화장실로 향했다.

 짧은 시간 동안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볼일을 보는데도 그곳이 찢어지는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여러모로 되는것 하나 없는 거지같은 하루였다.

 시계를 보니 퇴근까지는 아직도 6시간이 남아있었다.

 지금 할수있는건 견디는것뿐.

 세면대에서 찬물로 한참이나 세수를 했다.

 지금 묻어있는 비굴함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물기어린 얼굴로 바라본 거울에는 한마리의 생선이 비춰졌다.

 지난달쯤 팀장의 비위를 맞춘다고 함께 낚시를 갔을때가 생각났다. 팀장은 고가의 장비를 갖춰둘만큼 낚시광이었다.

 그때 수많은 입질에 많은 물고기들을 낚았지만 팀장은 원하던 돔이 아니면 모두 길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왜 버리냐고 물었더니 이깟 잡쓰레기를 잡으러 온게 아니니 필요없다며 수많은 고기들을 던졌다.

 이름도 잘모르는 그 고기들은 길바닥위에서 펄떡이고 있을 뿐이었다. 거울속의 김과장처럼 그저 물기어린 눈을 하고 펄떡이고 있었다.왜일까라는 그런 초점도 없는 눈빛. 괜시리 헛웃음이 났다.

 셔츠로 대충 물기를 없애고 사무실로 향했다.

 문에서 나는 끼익하는 소리마저 서늘한 눈초리 같이 다가왔다.

 자리에 앉아 눈길한번 돌리지 않은채 6에서 부터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6.5.4.....

 시간단위로 내려가는 카운트 다운은 설날이 끝나고 여름휴가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끝날것 같지 않던 카운트 다운도 어느새 마지막 카운트를 세고 있었다. 0...

 지겹던 카운트가 끝났다. 퇴근 준비를 하던중 팀장이 마지막 말을 던진다.

 "아. 퇴근 준비들 하면서 들어. 사보들 봐서 다들 알고는 있겠지만 요즘 회사 사정이 안좋아 졌어. 그래서 희망 퇴직자들 받고 있으니 생각있는 사람들은 얘기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팀장의 시선은 나에게서 머물렀다. 그시선을 애써 무시한채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은 하루가 끝나가고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듯 했다.

 문득 오늘은 조금의 다독임을 느끼고 싶었다. 폰을 꺼내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가 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다.

 "왜? 용돈 다썼어?"

 "뭐. 돈때문에만 전화하나?"

 "그럼 왜? 아참 그리고 수빈이 학원하나 더보내야 될거 같아. 그러니깐 당신 생활비좀 줄여. 혼자 있으니깐 크게 돈쓸일도 없잖아.

 알겠지? 수빈이 밥챙겨야해 할말없음 끊어."

 어느새 통화는 종료 되었다. 위로라는게 그렇게 쉽게 받을수 있는게 아닌가보다.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했지만 집사람의 생활비를 줄이라는 말이 뒤따라 떠올랐다.

 철호는 또 남편에게 지고 말았다.

 지하철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며 집을 향했다.

 눈을 감으니 생각의 문이 더욱 크게 열렸다.

 온통 숫자의 향연이었다. 나의월급, 성과금, 대출빚, 수빈이 학원비, 생활비.

 언제나 가족을 떠올리면 숫자가 따라온다. 나는 그저 그숫자들의 계산이 맞아떨어지게끔 해주는 하나의 업무만을 맡고 있는것 같았다. 0이되면 다행. ㅡ가되면 죄인.

 언제나 집사람의 관심은 한달에 한번씩 해야하는 사칙연산 뿐이었다. 그곳에도 철호는 없었다.

 ㅡ로 끝이나는 숫자속에서 눈을떴다. 어느덧 내려야할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은 서늘한 바람속에 걸음을 맡겼다. 주택가가 즐비한 언덕을 오르며 밝혀져 있는 가로등길을 걸었다.

 숨이 조금씩 차오를 때쯤 집앞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이 조금만 멀었어도 아마 호흡곤란이 왔을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집은 오래된 연립주택이다.

 계단 하나하나 딛고 올라가는 소리가 크게도 울린다.

 마치 내가 돌아왔다는 알림같이 느껴졌다.

 발자국 소리가 멈추고 키를 돌려 문을 열었다.

 열린 문을 밀치고 어둠이 나를 끌어 안았다. 오래 기다린 연인이 만나듯 나또한 어둠의 품안으로 파고 들었다.

 철커덕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어둠과 하나가 되었다.

 어느것 하나 구분할수 없는 어둠 언제나 공평한 어둠이 난 좋다.

 별로 불을 켜고 싶지 않다. 빛속에서 만나야할 현실또한 공평하지 않을테니.

 겉옷만 대충 던져놓고 몸을 눕혔다.

 오늘 하루중 그래도 가장 편안맘이 든다.

 어떤 호칭으로 나를 대할 누구도 없고 신경써야할 무엇도 없다.

 밥을 달라는 뱃속의 신호도 무시한채 그저 눈을감고 있다.

 어차피 먹을건 없으니 눈을 뜬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지금 나의 세상엔 간간히 들려오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길냥이들의 울음소리만 들리고 있다.

 몇일전부터 길냥이들의 소리가 한껏 커진것 같다.

 가끔 아기 울음 소리같이 들려 놀랄때도 있지만 오늘은 또다른 앙칼진 소리들이다.

 눈은 감고 있지만 잠이 들고 싶지는 않다.

 눈을 떳을때 밝아져 있을 하늘이 너무도 두려웠다.

 하루를 살았지만 그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김과장도 하루를 살았고, 아빠도 하루를 살았다. 하지만 철호는 하루를 살지 못했다. 어디에도 어느곳에도 철호는 보이지 않았다.

 슬며시 눈을떠 바라본 창가엔 가로등불 하나가 비춰지고 있다.

 그불빛에 아까 팀장의 눈빛이 서려 있는듯하다.

 '팀장의 그눈빛은 뭐였을까? 내가 명예퇴직을 하길 바라는걸까?'

 그깟 회사 뛰쳐 나오고 싶지만 결국 수빈이 생각에서 멈춘다.

 언제나 팀장, 회사, 사직서, 수빈이 생각의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수빈이를 생각하니 맘이 저려왔다.

 말이 주말부부지 달에 한번 정도만 집에 갈수 있었다.

 반년 전쯤 집사람이 그 얘길 한후 집에 자주 갈수가 없었다.

 수빈이가 어느순간부터 내가 집에 오는 시간을 싫어한다고 했다.

 수빈이가 싫어하니 자주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얘길 나는 그래도 수긍을 해버렸다.

 아마 나도 집에 있는 그순간이 언제부터인가 불편해 지고 있었다.

 어색하고, 답답하고 친정집에 장인어른과 독대를 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이제는 지금있는 허름한 이곳이 내집 같다.

 '철호... 철호는 어디 갔을까?'

 밖에서 들리는 앙칼진 길냥이의 소리가 지금의 내모습을 그려주고 있는듯하다.

 이곳 저곳에 가득한 상처와 피딱지가 앉은 모습으로 굴러다니는 나.

 묘하게 어울리는 어둠과 울음소리이다.

 나만의 어둠은 속도 모른채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모로 누워있는 내 모습과 널부러진 옷가지가 가득한 방의 모습이 밝혀지고 있다.

 찾아오는 새벽녘의 여명속에 그렇게 나는 누워있다.

 그렇게 또 어둠을 그리워하며 어쩔수 없는 하루를 맞이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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