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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나. 다가온 너
작가 : 시그널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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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네이름은...
작성일 : 16-09-18     조회 : 342     추천 : 1     분량 : 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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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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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돌아와 방을 둘러 보았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할지를 살펴 본다.

 하지만 한번도 이런 경험이 없는 나에게 선뜻 어떤 생각이 들리 없었다. 그래도 대충 방은 정리를 해야 할것 같았다. 청소라는걸 참 싫어하는 나로서는 청소하는 내모습이 어색 하기만하다. 아마 수빈엄마가 이곳을 한번이라도 와서 보았다면 엄청난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수빈엄마가 찾아오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다 싶다. 일단 그녀석이 생활할 방바닥은 최대한 깨끗이 치우고 걸레질을 했다. 화장실 내부도 이사후 처음으로 청소를 했다.

 방금전까지 세상을 욕하고 모든걸 잃었던것 같던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놈의 몸뚱이는 있는 힘껏 청소를 했다.

 한참을 움직이고 나니 허기짐이 느껴진다. 세상을 욕하고 죽네 사네 하면서 배고픔을 느끼는 내가 참 싫어졌다. 배고픔에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참 듣기 싫어 라면을 급하게 끓였다.

 '배고파서가 아니라 이 꼬르륵 소리가 듣기 싫어서야.'

 나 스스로에게 타당성을 만들어주고 라면을 먹었다.

 꼬르륵 소리가 이내 잠잠해지고 후루룩 거리는 내소리도 멈췄다.

 빈냄비만 덩그러니 방바닥에 남아 있다. 냄비를 슬그머니 밀어 버리고 뒤로 벌러덩 누워 눈을 감았다.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던것 같다.

 지금까지 몇년을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 오늘은 그곳을 크게 벗어나 두려움 부터 좌절, 슬픔 까지 너무 많은 감정을 느껴보았다.

 모든게 낯설어 겁이나 차라리 오늘이 꿈이었음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렇기만 한다면 팀장의 그 가축을 보는듯한 눈빛도 동료들의 한심하다는 눈빛도 얼마든지 받을수 있을것 같다.

 정해진게 없는 앞으로의 시간. 새롭게 살아야 하는 내일이 참 두려워진다. 무엇인가를 꼭해야하는 내일이 아니건만 해가떠오고 밝아질 내일이 두렵다.

 생각들이 커지기전에 눈을떠 방을 바라봤다. 처음보다 많이 정리가된 모습이다. 정리라고 해봐야 방에 널부러진 물건들을 어딘가로 올리고 쑤셔 넣은것 밖에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 깨끗해 보인다.

 아직도 그녀석을 내가 데리고 오는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녀석이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거짓이 아닌것 같다.

 보면 볼수록 발버둥치는 모습이 오늘까지의 내모습 같아 외면할수가 없었다.

 어리석지만 발버둥치고 버티려하고 바보같은 모습이 판박이었다. 그래도 오늘중 유일하게 그녀석 생각이 나를 버티게 하고 있다.

 아마 그녀석 생각이 나의 두려움을 중간 중간 끊지 않았다면 지금쯤 두려움에 술에 쩔어 있었을 것이다.

 누워서 있자니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채워가며 눈꺼풀을 누르고 있었다. 많은 감정소모로 몸이 피곤했는지 그 억누름을 버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하루의 끝을 지나치고 있었다.

 모로누워 몸을 잔뜩 웅크린 자세로 잠이들었다. 좀더 편해져도 되겠건만 그렇게 웅크려 한참을 자고 있다.

 오늘 느낀 수많은 감정들은 지나간 시간속에서 서서히 잊혀지겠지만 내가 느꼈던 아픔은 그대로 간직될 것이다.

 시간이 아팠던 순간을 서서히 덮어버리고 있었다. 깊이 고민하고 한참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순간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시간은 그순간을 덮어버리고 있다.

 순간이 기억으로 탈바꿈하고 있는사이 서서히 날은 밝아오고 있다. 완벽한 밝음은 아니지만 세상은 밝아오고 있다. 빛이 있어야 밝아지는건 아니다. 그저 어둠이 사라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모든곳은 밝아진다.

 빛이 나타나기 전까지 곁에 머물러 주면 좋으련만 무엇이 그리 바쁜지 어둠은 한참전에 도망가 버린다.

 빛도 어둠도 없는 어정쩡한 그곳에 구겨져 있는 초라한 나 하나만이 꿈틀꿈틀 거린다. 천천히 빛이 찾아온다. 저빛이 이 창문을 넘어 방으로 들어올때 나는 깨어날 것이다. 그전까지는 조금더 기억을 잊어갈수 있다.

 밝아진 아침 들어오는 빛을따라 방안의 모습이 새로운 색을 얻어가고 있다.

 그리고 조금뒤 언제나 처럼 익숙한 알람이 울린다. 그알람엔 언제나 처럼 나는 반응하여 급하게 일어난다. 서둘러 옷장으로 향하다 아차하며 자리에선다. 이젠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이젠 급할것도 없다. 이젠 내가 해야할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 어떤걸 하지 않아도 이제 하루는 지나갈 것이다.

 허탈한 한숨을 쉬고는 어기적 물한잔을 마시고 이불위로 털썩 주저 앉았다.

 "오늘은 뭘 해야 하지?"

 나만의 시간을 별로 지내본적이 없는 나에게 이 질문의 답을 찾기란 너무 어렵다.

 정말 간절히 아침부터 술생각이 나는 하루다. 술은 정말 만병통치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픈걸 잊게 해주고, 슬픈 기억속에서도 조금은 덜 슬픈 기억을 만들어주고 그순간을 얼른 지나가게 하는 묘한 힘이 있는것 같다. 그 순간이후가 너무 힘들다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만 장점이 너무 강하게 끌리기는 한다.

 그렇게 한참 술의 몽롱함에 내 생각을 빼앗기고 있을때 한통의 메세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동물병원인데요. 혹시 오늘 아침9시쯤 방문해 주실수 있을까요? 제가 외진이 잡혀 있어서 오후에는 병원에 없을것 같아서요. 시간 괜찮으시면 부탁 드립니다.>

 메세지를 보고나니 오늘 해야할일이 하나 정해졌다.

 어제 그렇게 청소를 해놓고 그녀석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인생을 오래 살았지만 아직까지도 처음이라는 말은 설렘보다도 두려움이 크다.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은 언제나 걱정을 한아름 안겨다 준다.

 그래도 오늘은 해야할일이 하나 생겼다는 안도감이 있어 그걱정을 잠시 묻어두게 한다.

 시간을 보니 천천히 준비하고 내려가면 넉넉히 도착할것 같았다.

 천천히 샤워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누군가에의해 지나갔던 날들이 어제까지 였다면, 오늘부터는 내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머물러 버리는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 굴리는 시간속에 함께 얻어타고 살아왔던 것이다. 천천히 몸 이곳저곳을 깨끗이 씻고 나왔다. 시간을 봤지만 예상보다는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전에 시간을 굴리던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시간을 잘 가게 했을까. 그저 가만히 전철에 앉아있기만 해도 지각할까 걱정할 정도로 시간은 잘갔었는데.

 수건으로 물기를 없애고 나의 유일한 화장품인 스킨과 로션을 발랐다. 헹거쪽으로 걸어가 입을 옷을보니 옷은 거의다가 정장과 셔츠였다. 나에겐 모든게 그저 회사를 위해 맞춰져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간이 참 부질없게 느껴진다.

 `이렇게 쉽게 잃을것을 그렇게나 바보같이 붙잡고 있었으니.`

 어제와 같이 구겨진 옷세트와 삼선 슬리퍼를 신었다.

 정장이 익숙하긴 하지만 이젠 이런 홈패션도 익숙해져야 할것 같다. 급하지 않게 한걸음 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가본다. 밖은 이제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고 집이 보이고 차가 보였다. 빛이 있기에 사람들은 보여지는 모습들을 신경쓰고 살것이다.

 빛이 있기에 구겨진 내옷이 나도 신경이 쓰이는것 같다.

 시선을 피해가며 동물병원을 향해 걸어갔다.

 병원 간판이 보이자 시계를 봤다. 거의 9시가 다되었다.

 서둘러 걸음을 옮겨 병원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9시까지 와달라고 하셔서 왔는데요."

 "네. 잠시만요. 선생님 똘이 보호자분 오셨어요."

 간호사분이 들어가고 조금후 의사선생이 나왔다.

 "오셨어요.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오늘 갑자기 외진이 잡혀서요."

 "이녀석 맞을 준비는 다되셨나요?"

 "준비라고 해봐야 집정리 한것 말고는 없는걸요."

 "그럼 집에 필요한 물품이 하나도 없으시겠네요."

 "네. 안그래도 필요한걸 준비해 가려고 했으니 좀 알려 주시겠습니까?"

 의사선생이 간호사에게 눈길을 주자 간호사가 작은 집부터 사료까지 여러가지 물품을 가지고 왔다.

 양이 제법되어 집에가는 길에 고생을 할것 같았다.

 당장 필요한것만 챙겨 가기로 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와서 구입 하기로 했다. 그래도 짐이 적지 않았다.

 짐의 부피보다도 날 놀라게 했던것은 병원비와 물품값이었다.

 얘네는 의료보험이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한아름 짐과 케이지 안에 그녀석을 넣고 집으로 걸었다. 몇번을 중간에 쉬어가며 집에 도착 할수 있었다.

 현관문이 닫히고 짐을 와르르 쏟아 내려 놓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수 있었다.

 "야! 이리 나와봐. 여기가 이제 니가 살아야 할데야. 이리나와."

 무엇이 그리 무서운지 케이지 안에 잔뜩 웅크려 있었다.

 그냥 뒤집어 꺼낼까 하다 케이지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기로 했다. 한켠에 이녀석의 집과 배변패드를 자리잡고 물그릇과 밥그릇을 찾아보았다. 씽크대를 보니 참 휑했다. 어쩔수 없이 두개뿐인 반찬그릇을 모두 쓰기로 했다.

 준비를 끝내고 다시금 케이지 앞으로 앉았다.

 병원에서는 이녀석을 똘이라고 불렀었다. 하지만 똘이가 왠지 입에 붙질 않았다. 케이지 안의 저녀석을 보자니 어제의 내모습이 떠올랐다. 새로 다가올 오늘을 두려워하던 나같았다.

 "너도 무섭지? 천천히 나와도 되니까. 맘 편히 먹어라."

 멀리 떨어져 앉아서 가만히 케이지를 바라봤다.

 케이지가 마치 내가 살았던 반복되는 삶처럼 느껴졌다. 보이는건 언제나 같은 모습 한걸음 나아가기도 너무 큰 용기가 필요했던 내삶. 나도 저 케이지에서 벗어나는게 두려워 언제나 꿈이길 빌었었다.

 케이지 안이 보이지 않지만 저녀석의 떨림이 느껴지는것 같았다.

 지금은 그저 지켜 주는게 나을것 같았다.

 "힘내라. 힘내. 꼭 힘내..."

 한마디를 하고 케이지를 지켜보았다.

 몇십분을 지켜보았을까 깜박 잠이 들었다.

 잠시 졸다가 손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촉에 놀라 눈을떳다.

 눈을 떠보니 그녀석이 어느새 나와 내손을 핥고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그녀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철호야. 잘했다."

 난 왜 그녀석을 철호라고 불렀는지 모르겠다.

 너무 그녀석에게 나를 비춰봤나보다.

 그녀석은 이상하게도 철호라는 말에 반응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래. 너나 나나 참 똑같다. 그치? 그래. 네이름은 철호다."

 그렇게 그녀석은 내가 되었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갈것이다.

 큰철호는 흐뭇해서 한참을 뿌듯해하고 작은 철호는 뭐가 좋은지 꼬리만 한참을 흔들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곳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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