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속에 이제 알람은 울리지 않건만 나는 눈을 떳다. 철호의 낑낑 거리는 소리가 새벽내내 들려 잠을 설쳤다. 지금도 철호의 소리에 눈을 떳다.
눈에 들어온 방의 광경은 처참했다. 휴지는 다 씹어놓고 여기저기 오줌범벅에 양말도 여기저기... 더 자세히 보고 싶지가 않다.
"철호!! 너 혼날래 진짜? 밤새 낑낑거리고 방은 이게 뭐야?"
내가 일어나자 꼬리를 흔들던 철호는 내 표정을 보고는 방구석 옷더미 속으로 숨어 들었다.
화를 삭히며 하나씩 방을 정리했다. 철호에게 다가가 철호를 한손으로 들고 큰소리로 다시한번 주의를 줬다.
"철호. 오줌은 저기다 싸고. 이제 낑낑 거리지 말고. 알았어? 그리고 밥그릇에 밥 챙겨 놨으니 밥먹고 물도먹고 이제 밥먹어."
밥그릇 앞으로 얼굴을 밀어줘도 철호는 밥에는 입도 안대고 물만 홀짝였다.
"에휴. 밥을 먹으래도 안먹네. 내가 잘하는건지 모르겠다. 휴~"
철호가 밥을 먹든 말든 나도 허기를 채워야 했다.
간단히 라면을 끓여 순식간에 허기를 채웠다.
어찌 된건지 그리 오래 라면을 끓였는데 언제나 라면 맛은 제각각이었다. 오늘은 그맛중에 하품인 싱거운 맛이었다. 먹고도 찌푸려지는 인상에 속만 더부룩 해졌다.
찌그러진 인상으로 냄비를 씽크대에 담궈두고 웅크리고 있는 철호를 한번봤다. 밥은 아직 입도 안댔는지 그대로 인것같다.
배고프면 알아서 먹을테니 밥이랑 물만 잘챙겨주면 건강하게 크지 않을까 싶다.
철호때문에 못잤던 잠을 좀더 자고 동물병원에 들러야지 싶다.
할일도 없으면서 머릿속에 일정을 정리하며 자리에 누웠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인지 일정정리고 뭐고 금새 잠이든다.
잠이든 나는 잠속에서 지긋지긋한 팀장을 봐야했다.
신입이던 시절부터 팀장은 언제나 나를 압박했다.
무엇하나 잘하지 못한다고 못마땅해 했다.
시간과 기회도 없이 무조건 해내야하는 그 하루하루가 너무도 지옥 같았다.
"어디서 병신같은게 와서 에휴. 나가죽어라 죽어 진짜."
진짜 지독히도 오래 들었던 말이다. 병신, 죽어라.
잘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좌절도 하고 노력도 했다.
그리고도 달라지지 않은 병신.
병신은 그뒤로 그저 어쩔수 없나보다 하며 받아들였다.
움츠리고 언제나 책상 칸막이 사이에서 숨어있는 내모습이 보인다. 언제나 나에게 결과를 보이라지만 나에겐 과정도 없었기에 결과는 항상 초라했다.
꿈에서 비치는 내모습을 보니 참 비참하고 비굴하다.
그러고 보면 참 오래도 버텼다 싶다.
회사에서의 모습들이 장면 장면으로 스치고 지나갈때 앓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정체를 찾아 귀를 기울이자 꿈의 영상들은 흐려지고 만다.
점점 흐려져 그저 그소리만이 남았을때 그소리가 더 또렷이 들렸다. 철호.
'또 너냐? 이번엔 그래도 꿈에서 구해줬으니 고마워라도 해야하나?'
깨지 않으려는 정신이 천천히 소리에 맞춰 깨어지고 있었다.
눈을 뜨고 소리가 나는곳을 바라보니 철호가 웅크려서 낑낑대며 다리를 핥고 있다.
"철호. 조용안해? 진짜 혼난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 소리에 점점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다.
팀장의 얼굴이 떠오르고 순간 베게를 들어 철호쪽으로 집어 던졌다.
"야!!! 조용히 좀 하라고!"
베게가 철호 옆 벽을때리고 떨어졌다.
철호는 큰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내눈을 응시하며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작은 소리로 끙끙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그저 떨고 있다.
"휴~~ 진짜. 말좀 들으면 이런일 없잖아."
괜시리 투덜 거려진다. 답답해진다.
철호는 제대로 하는게 없었다. 먹는거 싸는거 걷는것까지.
팀장얼굴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고 끙끙 소리도 듣기 싫었다.
옷을 대충입고 밖으로 나왔다. 죽는다는게 가여워 무턱대고 데려왔는데 앓기만 하니 그저 답답하다. 강아지란 애교있고 똑똑하고 그런 부류가 아니었던가.
이런저런 생각속에 평소처럼 걷다보니 동물병원이 보이는 곳까지 내려왔다. 할일을 생각하고 잠들어서인지 걸음이 이리로 향했다.
온김에 철호 저녀석 좀 어떻게 해보라고 해야겠다.
거칠게 병원 문을 열자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의사선생의 모습이 보인다.
"아~안녕하세요. 똘이는 잘지내나요?"
"계속 낑낑거려서."
"아~ 그래서 걱정되셔서 오셨나 보군요."
걱정이라는 말에 움찔한다. 걱정을 한순간도 해보지 않았다.
그저 짜증만 냈다. 하지만 의사선생은 철호를 입양한 내모습으로 나에대한 이미지를 선한 사람으로 굳힌것 같다. 선한 껍데기에 가려진 무심한 내모습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마 많이 힘들거에요. 치료는 했지만 아직 기력도 많이 없고, 뒷다리 뼈는 굽은채로 굳었지만 통증도 좀있을 거예요. 참아낸다고 많이 끙끙 앓더라구요.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세요. 아물고 있는 중이니깐요."
아픈걸 참아낸다고 그렇게 앓았던 거란다. 말을 더 들을수록 고개가 조금씩 숙여진다.
"강아지 처음 키워 보신다구 하셨죠? 그럼 배변 훈련법 모르시겠네요. 강아지들은 주인이 하나씩 반복적으로 신경쓰며 케어 해줘야해요. 일단 밥먹는 장소, 잠자리, 놀이를 하는곳을 제외한 외진곳에 배변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그렇다구 잠자리에서 너무 먼곳은 말구요. 패드에 살짝 변을 묻혀주시면 더 좋구요. 배변을 하는곳 이외의 공간은 똘이에게 노는 장소라는 인식을 위해 그공간에서 많이 신나게 놀아 주이고요. 실수 한다고 아니라는걸 인식시켜 주는건 좋지만 화는 내지 마세요. 성공을 하면 칭찬과 보상을 꼭 해주시구요. 너무 어려운가요?"
"아뇨.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다 못가져 갔던 물품을 사가려고 하는데요."
"예.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똘이 전주인에게 많이 학대를 당한것 같습니다. 아직 아기 강아지인데 참 가여워요. 잘하시겠지만 많이 보듬어주고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주세요."
"예... 그러겠습니다."
그사이 간호사가 샤워용품 부터 빗, 발톱깍기, 간식, 청소용품 여러가지 물품을 내왔다. 짐을 챙기고 문을 열고 나가기전 의사선생을 불렀다.
"선생님"
"네."
"그녀석 이제 이름이 철호 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서 나왔다. 그녀석 이름은 철호다.
세상에 처음나와 아무것도 몰랐던 철호다.
세상이 기다려주지 않고, 알려주지 않는다며 한탄했던 철호다.
짐은 가득하지만 조금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나오기전 떨고 있던 철호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뭐든 그저 다 알아서 할것 같고 그저 귀여워만 해주면 될줄 알았다. 집이 생겼으니 아픔도 이젠 잊을줄 알았다.
성큼 성큼 계단을 두칸씩 올라 집 현관문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철호의 끙끙소리가 들린다.
역시나 오줌은 방가운데 질러놨다.
"철호. 이리와봐."
철호 앞에 앉아 손을 내밀자 철호가 꼬리를 말고 슬금슬금 피한다.
"철호야. 내가 미안해서 그래."
살짝 철호를 쓰다듬어 줬다.
"우리 잘해보자. 아직 많이 아프지? 밥도 잘먹고해서 얼른 낫자."
철호를 한참 쓰다듬어 주고 장만해온 물품을 정리했다.
의사선생이 알려준데로 밥장소, 잠자리, 배변 장소를 구분했다.
패드에는 살짝 변을 묻혔다. 그리고 이제 남은 공간을 놀이 공간으로만들어야 한다. 아직 서먹한데 놀이를 하려니 나또한 어색하다.
일단 철호를 안고 옆에 장난감으로 사준 인형을 놓아줬다.
안정될때까지 한참을 쓰다듬어 줬다.
힐끔 힐끔 나를 보던 눈이 이젠 인형으로 향하고 있었다. 냄새를 맡고 살짝살짝 물어가며 장난도 친다.
이때다 싶어 살짝 둘을 내려놓고 지켜봤다. 인형을 툭툭 건들며 관심을 보인다. 무릎을 꿇고 인형을 잡아 살살 끌며 움직였다.
그러자 철호가 불편한 걸음이지만 움직여 따라온다. 무릎걸음으로 걸으며 인형을 열심히 움직였다. 무릎이 아파오지만 방안 여기 저기를 철호와 같이 누볐다.
철호도 이젠 놀이라는걸 알았는지 신나게 방방뛰며 뒤뚱뒤뚱 좋아한다. 무릎에 한계가 올때쯤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지? 누구세요?"
"아래층이에요!"
격양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었다.
"아저씨. 쿵쿵 거리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어요. 도대체 뭐하시는 거에요."
무릎걸음 때문에 아랫집이 울렸다보다.
"죄송합니다. 주의 하겠습니다."
그때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보고 철호가 뒷다리를 질질 끌며 신나 내게 다가왔다.
"아저씨. 개키워요? 어머~다리는 왜 저모양이야? 어디서 저런 하품종을 주워왔나 몰라. 저런 이쁘지도 않은 다리 병신을 왜 키우나 몰라. 짓는소리 안들리게 주의 해주세요. 못하겠음 그무슨 소리안나는 수술을 시키던지 아니면 버리든지 하세요."
말을 끝내고는 휙돌아서서 자기 갈길을 가버린다.
순식간에 상처를 던지고 사라져 버린것이다.
"철호야. 괜찮아. 너 병신 아냐. 힘든거 이겨내고 있는 대견한 애야. 저 아줌마 소리는 까먹어. 나한테 화나서 그런거야."
사람에게도 강아지에게도 보이는것이 전부인 곳이 있는가 보다.
철호가 이해를 못하는게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현관을 닫고 방으로 들어서자 철호가 패드쪽으로 걸어가 패드 바로 옆에 오줌을 지렸다.
"아이고 아깝다. 좀만 더갔음 패드 안인데."
패드로 오줌을 처리하고 철호를 쓰다듬었다. 조금 가능성이 보이는것 같다. 의사 선생이 보상을 해주라고 했었다.
"보자. 조금 아쉽지만 발전했으니 간식줄께."
병원에서 사온 간식을 하나 빼서 입앞으로 가져다 주었다.
이녀석 간식 맛도 몰랐을 녀석이 앞발을 다써가며 정신없이 먹는다.
"천천히 먹어. 다음에 또줄께."
정신없는 철호를 바라보며 나도 이불위에 몸을 모로 눕혔다.
한참을 먹고 이곳저곳을 천천히 둘러보고 다닌다.
방안 산책을 하다가 앞발로만 걷기가 힘든지 금새 지쳐 방에 납작 엎드리고 만다. 철호도 잠을 제대로 못자 피곤한지 눈을 가누지 못하고꾸벅거린다.
그모습이 참 가여우면서도 이뻐보인다. 조용히 잠에 빠져 들다 조금씩 끙끙 앓았다. 아직 다 완치 되지 않았건만 뛰어 다녀 통증이 왔나보다.
깨지 않게 살짝 다가가 철호를 들어 내이불 위에 올렸다.
잠시 눈을떠 나를 보더니 토닥토닥 거려주자 스르르 다시 잠든다.
"철호야. 괜찮아. 괜찮아. 그래. 괜찮아. 괜찮아 질거야."
천천히 쓰다듬어 주며 중얼거렸다.
아프고 실패하고 모든걸 잃어가던 철호에게 괜찮을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