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소설가의 유산
작가 : 푸랭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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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
작성일 : 16-09-02     조회 : 577     추천 : 0     분량 : 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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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도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새벽임을 알려주는 적막함. 이불과 베개를 물들이고 있는 희끄무레한 어둠. 물을 잔뜩 먹은 솜처럼 무거운 머리. 그 모든 것들이 그가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느릿느릿하게 눈을 꿈뻑거렸다. 그의 등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마다, 새벽잠이 들어왔다가 또 새어나갔다.

 

  비도는 자신이 왜 깨어났는지를 궁금해하면서 몸을 뒤척였다. 낮잠이 생각보다 길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마음을 자꾸만 적시고 있는 퀴퀴한 것들이 그가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하게 했던 것일 것일까? 그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는 문득 빗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창밖으로는 비가 무서운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달랐다. 빗소리는 창문이 아닌, 방문 너머로 들리고 있었다.

 

  비도는 문고리를 돌렸다. 문의 틈이 천천히 벌어지면서 빗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문이 전부 열렸을 때쯤에는 지붕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내가 창문을 열어놓았던가? 비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침실 밖으로 나온 비도는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는 집에 있는 창문이란 창문은 전부 확인했다. 그렇지만 열린 창문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것은 지하실 뿐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놓인 재떨이를 집어 들고는 지하실로 이어지는 문 앞에 섰다. 비도는 침을 꼴깍 삼켰다. 마른 침이 목구멍을 힘겹게 넘어갔다. 재떨이를 쥔 손에 자꾸만 땀이 배어나왔다. 그는 런닝셔츠에 땀을 닦아내고는 재떨이를 고쳐잡았다.

 

  그는 문을 벌컥 열었다. 그와 동시에 폭발적인 빗소리가 그를 덮쳤다. 빗소리는 아래 쪽에서 나고 있었다. 그는 최근에 지하실의 문을 열기는커녕, 마지막에 지하실에 내려간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다른 누군가가 지하실로 들어왔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의 심장이 빗소리를 이겨내려는 듯이 쿵쾅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계단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계단 아래로는 새벽에게 내몰린 채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밤들이 고여 있었다. 비도는 지하실 조명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어둠은 꼼짝도 않고 계단을 점령하고 있었다. 비도는 작게 욕설을 토해냈다. 집 안의 불은 계단이 시작되는 부분까지 밖엔 닿지 않았다.

 

  도저히 그 아래로 내려가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내려가고 싶진 않았지만, 내려가야만 했다. 비도는 실루엣만 희미하게 보이는 계단 위로 한 발씩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지하실 안에서 빗소리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울려댔다.

 

 “누구야! 당장 나와!”

 

  비도는 자신이 겁먹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외쳤다. 너무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기침이 터져나왔다. 그는 입을 틀어막았다. 발가벗겨진 콘크리트 벽들이 어둠에 숨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잡동사니로 가득한 선반, 무더기로 쌓여있는 도구들. 여기저기에 그림자와 칠흑이 덩어리처럼 뭉쳐있었다. 산사태에 묻혀버린 것처럼, 지하실은 어둠에 완전히 묻혀있었다.

 

  그의 바로 옆에 누군가가 숨어있다 하더라도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망가진 전등을 고치지 않고 방치해둔 자신을 원망하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지하실을 점령한 어둠이 그를 조금씩 집어삼켰다.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빗소리 속에서 오직 그의 심장소리만이 귓가에서 울려댔다. 그는 조금씩 걸어서 지하실의 중간 정도까지 나아갔다. 그는 들릴락말락하게 숨을 내뱉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손조차도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둠 속에 완전히 갇혀버렸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앞으로 나아갈 자신도, 뒤로 도망갈 자신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덮칠 것만 같았다. 그는 그렇게 굳어버린 채로, 숨만 헐떡거렸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순간 번쩍하고 번개가 들이쳤다. 활짝 열린 지하실의 문이 눈에 비쳤다. 그리고 그 계단 밑에는 그의 머리통만한 돌이 놓여져 있었다. 번개는 이내 자취를 감췄지만 번개가 남긴 잔상은 망령처럼 비도의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비도의 눈은 이내 지하실 밖의 뒷산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빗물 때문에 그것의 표면은 마치 생물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뒷산에서 굴러 떨어진 돌이 문을 열어버린 모양이었다. 비도는 한숨을 내쉬면서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었다. 번쩍하고 다시 번개가 쳤다. 어둠이 걷혔다.

 

  잡동사니 사이의 진득한 어둠 속에서, 한 쌍의 눈이 드러났다.

 

  그는 깜짝 놀라며 돌아섰다. 시간이 좁다란 파이프에 쑤셔 넣어진 것처럼 흘러간다.

 

  잔상이 일렁인다. 어둠이 움찔거린다. 육중한 무게감이 그를 덮친다. 짓누르는 압박감에 숨이 턱 막힌다. 그는 바닥을 뒹군다. 차갑고 딱딱한 바닥. 묵직한 주먹이 날아든다. 코가 불타는 듯한 격통이 그를 휘감는다. 하지만 비도는 얼른 고개를 든다. 온 몸을 내달리는 아드레날린은 고통을 집어삼킨다. 칼은 어둠 속에서도 새파랗게 빛난다. 그는 내리꽃히는 죽음을 부여잡는다. 쇠붙이는 살을 파고들어 뼈를 긁어댄다. 피가 흐르지만 고통을 느낄 새는 없다. 비도는 온 힘을 다해 발을 내지른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힘으로, 어둠을 밀어낸다. 비도는 바닥을 더듬어 돌을 찾는다. 밀쳐졌던 어둠은 다시 송곳니를 내밀고 달려든다. 그의 손에 돌이 잡힌다. 축축하고, 딱딱하고, 커다란 돌. 있는 힘껏 두 팔을 휘두른다. 둔탁한 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채운다. 그 무게감이 손을 타고 전해온다. 굳혀놓은 것 같은 어둠이 쓰러진다. 바닥에 부딪힌다. 비도는 그 위에 올라탄다. 어둠이 손을 뻗는다. 뭐라고 중얼거린다. 그 말이 귀에 박히기도 전에 비도는 돌을 내리찍는다. 뼈가 내려앉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하나의 세계가 부서진다.

 

  압축기로 구겨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던 시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애도라도 하듯 모든 것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비도는 숨을 몰아쉬었다. 돌을 쥐고 있던 손이 저려왔다. 번개가 아직 닫히지 않은 문을 타고 들어왔다. 바닥에는 복면을 쓴 남자가 뻗어있었다. 그는 자신을 부수려던, 그리고 자신이 부숴놓은 세계를 쳐다봤다. 그가 뒤집어쓴 복면이 검게 물들어갔다. 비도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남자에게 다가갔다. 번개가 다시 방 안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복면으로 향하던 손이 멈칫했다. 복면을 벗기기도 전에 비도는,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돌처럼 굳어있던 손이 천천히 복면 쪽으로 다가갔다. 손가락에 잡힌 복면이 쓸려나가듯이 벗겨졌다. 번개도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지 다시 지하실을 찾아왔다. 번갯빛 속에서 비도의 얼굴이 창백하게 빛났다. 비도는 누가 붙박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번개가 몇 번을, 아니 몇 십 번을 다시 찾아오는 동안에도 비도의 눈은 남자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돌처럼 굳었던 얼굴이 조금씩 변했다. 마치 겁먹은 것 같던 표정은 어둠에 녹아 없어졌다.

 

  비도의 입가에는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

 

  비도의 인생은 뒤틀렸다. 신이 일부러 장난이라도 친 듯 배배 꼬여버렸다. 거대한 의지를 가진 누군가 그의 인생을 망가뜨리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 꼬이고 꼬일 수는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빠져들고 있던 것일까?

 

  비도 자신도 그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몰랐다. 그건 마치 잘 느껴지지도 않는 가랑비에 어느새 옷이 젖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후로 나뉘는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없었다. 아니 언제부터 그 가랑비가 시작됐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한다 하더라도, 종착지는 여기 지금이 될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미 확실하게 뒤틀린 것을 비도 자신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은, 시작된 추락에 급격하게 가속도가 붙은 것은, 분명히 그 때부터였다. 그날 그는 자신의 파멸을 세상에 알렸다.

 

  비도는 기자회견을 열었었다.

 

  기자들이 각자 카메라를 들고 옹기종기 서있었다. 그들이 뭉쳐있는 모습은 마치 사람들과 기계들을 한 군데에 뭉쳐서 만든 괴물처럼 보였다. 비도는 묵묵히 그 사이를 걸어갔다. 괴물의 아가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카메라의 플래쉬가 빗발처럼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번쩍거리는 빛에 그의 모습은 형체가 없는 것처럼 일렁거렸다. 그의 그림자는 빛이 자신을 집어삼키려 할 때마다 도망치듯이 사라졌다. 그는 의연한 척 기자들 사이를 지나 회견석에 앉았다. 마이크를 쥐자 셔터소리가 멎었다.

 

  어쩐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초점은 허공에 매달렸다. 그는 희뿌옇게 번진 기자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는 독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찾아와준 기자들을 향한 감사를 내보였다. 그건 마치 녹음기의 재생버튼을 누른 것처럼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비도는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진짜 말을 시작했다.

 

 “제가 여러분을 부른 것은… ‘현실’에 대한 중대… 발표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입을 열자 다시 회견장이 빛으로 가득 찼다. 그 빛들은 비도에게서 무언가를 걷어내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쌓아왔던 것들은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더미처럼 쓸려나갔다. 번쩍거리는 빛들이 잦아든 이후에야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현실’의 마지막 권은…”

 

  그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기자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선명해진 모습으로,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의 몸을 후벼파내는 듯한 눈길들. 그는 갑자기 목이 메이는 것을 느꼈다. 방의 구석,

 

  형광등의 눈길이 미처 닿지 않는 그곳에 그녀가 서있었다.

 

  지우개로 밀어낸 듯이 뭉개진 얼굴이었음에도, 그는 그녀의 입에 걸린 웃음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비웃음. 그것은 마치 그의 기도를 틀어막으려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그의 목구멍을 파고들어왔다. 그는 질식할 것처럼 숨을 멈춘 채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말했다. 거봐 너는 결국 껍데기야. 나 없인 아무것도 못하지.

 

  비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웃기지마. 너 따윈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분하게도 비도는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그게 거짓말이라는 건 니가 제일 잘 알 텐데?

 

  비도는 벌떡 일어났다.

 

  껍데기는 너야. 너야말로 껍데기야. 능력 밖에 없는 껍데기. 너야말로 알맹이 없는 껍데기야!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그녀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마치 그 소리에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시뻘개진 채 숨을 참고 있던 비도는, 그제서야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기자들이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카메라 셔터가 그에 질세라 마구 터졌다. 비도는 다시 허공을 바라본 채, 카메라의 렌즈에서 눈을 돌린 채 입을 열었다.

 

 “유고작으로 내겠습니다.”

 

  이번엔 기자들이 벌떡 일어났다. 카메라는 더욱더 흥분한 듯이 플래쉬를 마구 뿜어댔다. 비도는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고 자리에서 멀어졌다. 기자들은 한 마디라도 더 뜯어내기 위해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기자들은 마이크를 들이대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수첩을 들이대며 그를 막아섰다. 이유가 뭡니까? 슬럼프가 다시 찾아온 겁니까? 작품은 이미 완성된 겁니까? 출판사와 마찰이 있었습니까?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그것들은 카메라가 뱉어낸 빛처럼 그냥 허무하게 스러질 뿐이었다. 달려드는 그들을 뒤로하고 비도는 회견장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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