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소설가의 유산
작가 : 푸랭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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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
작성일 : 16-09-02     조회 : 340     추천 : 0     분량 : 6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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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도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는 모든 일을 끝마치고,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 들었었다. 언제 집에 왔는지, 어떻게 일을 마치고 왔는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몽롱한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야 자신이 지하실 바닥에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린 문 밖으로 비가 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무서운 기세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비는 비도가 살고 있는 커다란 저택을 거의 부숴버릴 기세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문을 통해 들어온 빗소리는 지하실에서 증폭되어 거의 천둥소리만큼이나 커다랬다. 천장, 벽, 어딘지도 모를 모든 곳에서 끊임없이 투두두두 하는 소리가 울려댔다.

 

  그는 낑낑대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욱신거리는 몸을 움직여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얼굴을 더듬었다. 코에서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나 싶을 정도로 강렬한 격통이 밀려들어왔다. 손 역시 제대로 펴지도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서 느끼지 못했던 고통은, 이제 배가 되어서 그를 괴롭혔다.

 

  그는 밀려들어오는 고통 속에서도 이를 악 물고 주위를 둘러봤다. 지하실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선반들은 온통 넘어져 있었고, 거기에서 떨어진 잡동사니들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을 뒤덮은 진흙과 빗물. 바닥을 뒹굴고 있는 돌덩이. 그리고

 

 바닥에 말라붙은 피.

 

  완전히 마르지는 않은, 하지만 대부분은 말라서 덩어리가 져버린 핏덩이. 천천히 돌아가던 그의 고개가 뚝 멈췄다. 그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무서운 눈빛으로 그것을 노려봤다. 밀려들어오던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는 그 사실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그의 눈이 이내 바닥의 돌덩이로 향했다. 바닥 위에 나동그라진, 이미 흉기가 되어버린 돌은, 한 쪽 모서리에 마치 원래 그랬던 것 마냥 적갈색의 무늬를 띄고 있었다. 그는 자꾸만 그때처럼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우우웅-

 

  비도는 갑작스런 진동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지하실 바닥 위에서 핸드폰이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까만색의 액정화면 위에는 어머니라는 하얀 두 글자가 떠올랐다. 그것은 몸을 떨면서, 스스로 의지를 갖기라도 한 것처럼 점점 그를 향해 다가왔다. 부르르 하고 한 번 떨 때마다, 그와의 거리도 한 뼘씩 줄어들었다. 핸드폰이 그에서 더 다가오기 전에 비도는 얼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아들. 잘 지내지?”

 

  돌아오지 않는 답에 건너편의, 아득한 건너편의 어머니는 말했다.

 

 “다른 게 아니라… 네 아버지가 거기 가지 않았니?”

 

 그녀는 답하지 않는 핸드폰 너머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한테 돈 빌려달라고 찾아왔거든. 너한테도 갔을 거 같아서… 또 네 아버지 성격 알잖니? 무슨 사고라도 칠까 봐 영 걱정이 돼서…”

 

 “오긴 왔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는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아니, 안 되지. 웃음소리 같은 걸 흘리면. 비도는 억지로 그것을 다시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몇 번이나 다시 심호흡을 한 이후에야 핸드폰에 입을 갖다 댔다.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핸드폰 너머로는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믿지 않는 눈치였다. 비도는 숨을 깊이 들이 쉬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목소리에 살짝 웃음기를 불어넣으며 말했다.

 

 “진짜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저한테 손 빌리지 않겠다고 했는걸요.”

 

  그래. 앞으로 절대 손 빌리지 않겠다고 하긴 했지. 내가 돌로 머리를 한 번 내려친 이후긴 했지만. 비도는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었다. 그 순간에 그의 말은 비도에게 닿지 않았다. 물론 그의 말이 닿았다고 해도 그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은 진즉에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다소 안심을 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양반도 드디어 생각을 고쳐먹었나 보다. 사람이 변하긴 하나 보구나.”

 

  아니요, 어머니. 사람은 변하지 않던 걸요. 비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양파 껍질을 까도, 양파는 양파다. 몇 번이나 껍질을 까서 벗겨도, 변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변하는 것은 없다. 양파 냄새가 싫다면, 양파의 껍질을 까는 게 아니라 양파를 없애야 한다. 비도는 바닥에 말라붙은 적갈색 자국을 쳐다봤다. 거리와 거리를 넘어 전파를 타고, 그녀의 보다 밝아진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네. 저 바빠서 이제 끊을게요”

 

 그가 말을 마치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침묵이 흘렀다. 전파가 그녀의 말을 다시 흘려보낼 때까지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비도는 그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아쉬움 역시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신경 써줄 여유는 없었다.

 

 “그래. 힘들다 싶으면 언제든지 집에 와도 된단다. 알았지?”

 

 “네. 그럼 이만 끊을게요.”

 

  비도는 그래, 그래, 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핸드폰을 귀에서 뗐다.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그는 핸드폰을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

 

  비도는 전구를 쥐고 돌렸다. 홈과 홈이 맞물리며 서로를 긁어댔다.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쇳소리에도 비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구가 천장에 꽉 조여진 것을 확인한 그는 불을 켜기 위해서 벽으로 향했다. 스위치를 누르자 전구는 폭발이라도 할 것처럼 깜빡거렸다. 깜빡거리던 주기가 짧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필라멘트가 맹렬히 타올랐다.

 

  그는 완전히 노출된 알전구 밑으로 걸어갔다. 거친 시멘트 바닥에 적갈색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비도는 말없이 옆에 놓여진 통에서 회반죽을 한 움큼 퍼서는 바닥에 펴바르기 시작했다. 이 집의 지하실은 예전에 그가 살던 원룸보다도 훨씬 컸다. 다섯 배? 아니 더 될 것이다. 그는 회반죽을 바르다 말고 지하실을 둘러보았다. 예전의 그라면, 이러한 지하실을 갖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거기에 있었다. 예전 집보다도 거대한, 하지만 한참 동안이나 쓰지도 않고 방치돼 있었던 지하실에서, 그는 아버지의 핏자국을 없애기 위해 바닥에 회반죽을 칠하고 있었다. 제대로 펴지지 않은 회반죽에서 뽀글하고 기포가 올라왔다. 비도는 그것이 어쩐지 마치 밑에서 누가 숨쉬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 부분은 특히 정성스럽게 옆으로 펴냈다.

 

  그의 핏자국을 모두 없애는 데에는, 그가 세상에 있었던 흔적을 없애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저 반죽한 횟가루를 몇 번 치덕댔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그저 그의 커다란 지하실 바닥에 아주 조그맣게, 다른 바닥의 색과는 조금 다른 색인, 부자연스러운 바닥이 생겨났을 뿐이었다. 그라는 인간이 살았던, 또 죽은 흔적은 사라졌다. 커다란 지하실에 비하면 그 조그마한 자국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

 

  비도는 걱정거리나 불안한 무언가를 앞에 두고서는 일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다. 아니 적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젠장,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네,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웬만하면 거슬리는 것들을 먼저 해치우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가장 거슬리는 것을 치웠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힌 것처럼 무엇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비도는 새하얀 원고지를 내려다봤다. 텅텅 빈 원고지, 원고지의 하얀 칸들은 빨간색 선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비도의 만년필은 죽은 것처럼 허공에 매달려 그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뒷이야기를 생각해내려고 애썼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마치 남의 생각을 들여다보려는 것처럼 그것은 막연하고 또 불투명했다. 그건 안개를 손에 쥐려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비도는 자신이 시간과 무관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녀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구토할 것 같은 역겨움이 위 안에서 요동쳤다. 그는 그런 생각은 결코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지금 그에게 남은 유일한 이정표였다. 그녀가 없다는 건 나침반 없이 바다를 항해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원고지를 옆으로 밀쳐놓고 ‘현실’을 꺼내 들었다. 그는 그것을 펼치고, 읽었다. 그가 ‘현실’을 읽는 게, 이제 몇 번째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책의 모서리 부분은 그가 하도 만져댄 탓에 누렇게 변색된데다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현실’을 읽을 때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한결 같았다. 분노와 질투. 그리고 자괴감.

 

  그는 그녀를 상상했다. 규칙적으로 타자를 쳐대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원고지 위로 만년필을 움직여나갔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옆에 서서 그를 비웃고 있었다. 그녀는 원고지 위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엉터리네 엉터리야. 이런 거로 될 거라고 생각해? 이게 정말 ‘현실’이라고 생각해?

 

  비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 내가 못할 거라고 생각해? 너 따윌 따라 잡는 건 금방이야. 닥치고 기다리기나 하라고. 그의 말에 그녀는 미친 듯이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비도는 화를 푸는 것처럼 거칠게 원고지 위로 글을 끄적여나갔다. 만년필이 원고지를 부욱 찢었다. 그는 원고지를 집어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원고지를 집어 던졌다. 팔랑거리는 원고지 너머로 그녀의 모습이 흐릿하게 번졌다.

 

  그 이후로 그는 작업실을 떠나질 않았다. 잠도 거기서 자고, 밥도 거기서 먹었다. 마치 그를 돕기라도 하려는 듯 변비에 걸려 화장실도 잘 가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원고지의 빈 칸을 채우는 데에만 자신의 시간을 사용했다. 이따금씩 그를 방해하려는 듯 그녀가 나타나 빈정거리긴 했지만 그는 애써 그녀를 무시했다. 이제 그녀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이제 그를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은 더 이상 없었다. 날파리처럼 달려드는 기자들이나 그녀까지 신경 쓸 수는 없었다. 그건 비겁하게 도망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다시 원고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얀 칸 하나하나가 까만 글씨로 차오를 때마다, 그의 가슴 속에도 검은 뭉게구름 같은 것이 피어났다. 하지만 비도는 멈추지 않았다. 뭐가 어찌 되든 이제 그의 손으로 끝내야 했다. 그는 멈춰서도 안됐고, 멈출 수도 없었다.

 

  ‘현실’을 완성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얀 원고지들을 까맣게 채워가는 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낮밤을 세는 것도, 날짜를 세는 것도 하지 않았다. 참을 수 없이 피곤할 때만 잤고, 참을 수 없이 배고플 때만 끼니를 때웠다. 그 외의 모든 시간은 원고지 위에 글씨를 채워 넣는 데에 썼다. 그는 정말로 온갖 수단을 다 썼다. 그녀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서슴지 않았다. 그 때마다 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그는 참았다. 그는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원고를 완성했다. 그는 자신이 완성한 ‘현실’을 ‘현실’과 비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쓴 것은 자신의 글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제서야 그는 현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원고지를 집어들었다. 손에 잡힌 두툼한 원고 뭉치는 묵직했다. 무거웠다. 그는 그것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의 손에 라이터가 끌려나왔다. 거봐, 내가 말했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비도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낄낄거리면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도는 못 들은 척 라이터를 고쳐잡았다. 그는 라이터를 원고 밑에 갖다 댔다. 엄지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불씨가 튀어 올랐다. 라이터가 토해낸 가스가 타올랐다.

 

 그 따위 허접하고 부끄러운 글을 없애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말이야. 그래 봤자 소용없다고? 그건 그저 니 찌꺼기뿐이니까 말이야. 진짜로 부끄러운 걸 없애려면- 비도는 불이 붙은 원고를 그녀에게 휘둘렀다. 그녀는 또 금세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타들어가는 원고는 허공에 연기를 흩어냈다.

 

 “별로 상관없어. ‘현실’을 완성하지 못해도. 어차피 난 얻을 건 다 얻었어.”

 

  그는 누구 들으랄 것 없이 말했다. 아무도 듣는 이 없는 곳에서 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원고지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허공에서 휘청거렸다. 원고가 써지는 데에는 한참이나 시간이 걸렸지만, 원고가 전부 타는 데에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였다 ‘현실’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에 목숨 걸 필요는 없었다. 빨간 선의 케이지 안에 뛰어들어도,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들어가지 않는 게 나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비웃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는 그걸 무시하고 원고지를 마저 태웠다. 타다 남은 원고지 쪼가리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는 잿더미가 된 원고지들을 뒤로하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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