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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손으로 쓰셨네요.”
비도는 그의 말에 박힌 가시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그저 비웃음일지도 몰랐다. 그에게는 가시 같은 건 사치인지도 몰랐다. 구정물처럼 제자리에 고여 있는 건 너뿐이야. 아니, 구정물은 제자리에 있기라도 하지. 너는 방향감각이 고장 나기라도 했는지 뒤로만 가는 군 그래. 누군가가 그의 귀에 대고 그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이현은 말없이 비도가 내민 원고를 읽어내려 갔다. 그가 아직 원고를 다 읽지도 않았지만, 비도는 그의 반응이 어떨 지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비도는 이 원고를 그에게 내밀기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원고의 마지막 점을 찍는 그 순간. 아니, 그것보다도 더욱 이전, 원고를 집필하면서부터,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이전에…
그럼에도 비도가 원고를 들고 그를 찾아온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었다. 이번에는 잘 될지도 몰라. 이번에는 열심히 했어. 이번은 다를 거야. 그러나 그의 자기합리화는 대부분의 거짓말이 그러하듯이 금세 밑천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이번에야 비로소 그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까 하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비도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미 그는 스스로에 대해 실망하긴 했다. 그러나 그 비루한 결과물을 밖에다 내보이고, 그 상처를 다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원고를 들고 이현을 찾아온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바보 같은 희망을 갖고야 마는 어쩔 수 없는 본능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비도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원고를 읽어가던 이현은 채 반도 읽지 않은 원고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찰싹, 하고 종이가 내려앉는 소리에 그가 몇 달 동안 했던 노력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한 손으로 입만 매만졌다. 그가 입에서 손을 떼기도 전에 비도는 손을 내밀어 그를 막았다.
“담당자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는 알겠는데 적어도 반이라도 읽어보세요.”
“선생님. 제가 원고 하루 이틀 봅니까? 선생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이 정도도 많이 본 겁니다.”
비도가 뭐라고 말하려 하자, 이번에는 이현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제 생각에는 선생님께선 재충전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비도의 얼굴이 싹 변했다. 다소 비굴해보이기까지 하던 그의 얼굴이 마치 드잡이라도 할 것처럼 험악해졌다. 그는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재충전이요? 저보고 어디 시골짝에 들어가서 농사라도 지으라는 소리에요?”
이현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예술은 영혼을 태우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도 1년 365일 내내 그 짓을 할 수는 없어요. 농사라고 나쁠 것 있습니까? 이젠 좀 쉬셔도-”
“감히 나한테 그 따위 소리를 해?”
비도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시뻘개진 눈으로 이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현도 눈을 피하진 않았다. 그는 불편하다는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로 젊은 작가의 분노를 받아냈다. 비도는 그에게 화를 냈지만 이현은 비도에게 화를 내고 있지 않았다. 이현에 얼굴에 깃든 감정은 분노가 아닌, 경멸이었다.
“담당자님, 김 작가님 오셨는데요.”
“들어오시라고 해.”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현은 눈 깜짝할 만큼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이현은 이제 비도를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그는 안 꺼지고 뭐해? 라고 말하고 있었다. 목이 타버릴 것 같은 분노가 비도를 휘감았다. 비도는 아직 끊어지지 않은 한 가닥의 이성을 간신히 붙들고는 문 쪽으로 걸어나갔다.
“원고는 가져가셔야지요.”
“필요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문을 닫고 나오기 전, 비도는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파쇄기 옆에 놓여있던 폐휴지함, 그것이 덜커덩거리면서 흔들리는 소리를. 비도는 자신의 이성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티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갔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나면서 비도는 김 작가를 마주쳤다. 그는 웃으면서 인사를 했지만, 이내 심각한 분위기를 눈치 채고는 웃음을 거두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비도는 이를 악물고 발을 더 빠르게 놀렸다. 집까지 가는 길.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 건물이나 가로수들, 불이 꺼진 채로 서있는 가로등. 그 어느 것도 비도의 눈에는 잡히지 않았다. 그의 눈, 귀, 머리는 아까 전의 시간에 그대로 붙박힌 채로 머물러 있었다. 마치 사진기가 찍어놓은 걸 그대로 머리 속에 쑤셔 넣은 것처럼 그는 그 장면만을 쳐다보고, 듣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화나고, 역겨운 사실은 이현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형편없었다. 슬럼프? 그의 작품은 그 따위의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 그의 말이 맞아. 비도는 생각했다. 그의 영혼은 타버렸다. 전부 타버려서 재가 되었다. 그 재는 이미 바람에 흩날려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의 작품은 껍데기였다. 영혼 없는 껍데기. 빨리 타오른 불꽃은 그만큼 빨리 사그라들었다.
그의 앞에서 머리를 꾸벅이던 김 작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작가, 그렇다 그는 혜성이었다. 몇 백만 킬로미터 밖에서도 당당하게 그 빛을 뿌리는 혜성. 그 혜성은 마치 우리 눈에 그 크기가 작게 보이는 것처럼, 비도의 앞에서 겸손하게 굴며 지나갔지만 비도는 알고 있었다. 그 혜성은 실제로는 비도의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다는 것을. 그의 영혼은 지금 이 순간 눈부시도록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비도는 깜부기불이었다. 코 앞에 있어도, 말해주지 않으면 그것이 있는 지 없는 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깜부기불. 아니, 그의 영혼은 이제 깜부기불을 위한 땔감조차 되지 못했다. 그것은 다 타버리고 없어졌다. 재는 바람에 흩날렸다. 이제 그의 영혼은 사람들이 느낄 수도 없는 먼지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어린 나이에 데뷔했던 젊은 작가는 고장난 장난감 폭죽처럼 처음에만 요란하게 불을 내뿜었을 뿐 이내 픽 하고 식어버렸다. 거기서 새어나오는 것은 불꽃이 아니라 냄새만 독한 연기였다.
그가 온갖 자기비하를 마치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집에 와 있었다.
그랬다. 그의 집. 이 낡고 허름한, 방 하나 딸린 집이 비도에게 남은 전부였다. 가죽이 군데군데 찢어져서 누런 스펀지가 그대로 드러난 소파. 그는 그 위에 멍하니 앉아서 생각했다. 뭐가 문제인지, 그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지만 그런다고 답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비도는 조용히 일어나 작업실 앞으로 갔다.
이젠 문이 잔뜩 틀어져서, 한 번 닫으면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 문. 그 문 너머의 작업실. 그게 그의 집에 있는 유일한 방이었다. 코가 매워지는 만년필의 잉크냄새, 거뭇거뭇하게 빛이 바랜 책상과 책장, 한 구석에 잔뜩 쌓인 채로 눅눅해진 원고지의 냄새. 그의 작업실은 불타버린 폐허였다. 시체가 관을 찾아가듯이, 비도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책상 위에 원고지를 펼치고 만년필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새카만 잉크에 만년필을 푹 담갔다. 비도는 불타버린 폐허에서 잿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깜부기불이라도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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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은 태양을 향해 내달렸다. 태양을 지나쳐버린 지평선은 이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태양을 찾아 나섰다. 창문 끄트머리에 묶여있는 커튼이 새빨갛게 물들고, 푸르스름해졌다가, 결국에는 창백하게 될 때까지 비도는 작업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으레 영화나 만화에서 나오는 마구 쌓인 구겨진 원고지 뭉치 따위는 비도의 작업실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비도가 갇혀있는 곳은 원고지의 첫 번째 장, 첫 번째 칸이었다. 그는 그 빨간 벽으로 둘러싸인 그 하얀 공간에 갇혀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작업실은 불타버린 폐허가 아니었다. 그곳은 화산재에 파묻힌 고대 유적이었다. 건물을 뒤덮은 화산재는 화석이 되어 단단하게 굳었다. 비도는 맨손이었다. 그는 조금도 그 까만 것들을 파고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깜부기불을 발견하기는커녕, 자기 몸을 누일만한 구덩이도 만들지 못했다.
비도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의자에서 나는 건지, 그의 몸에서 나는 건지, 삐걱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느새 하늘 꼭대기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비도는 집을 나와 근처에 있는 도서관으로 걸어갔다. 그는 모든 것이 안 풀릴 때면, 항상 도서관을 찾았다. 책을 읽으면서 안정을 찾는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온 그는 마치 자기 집을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책장 사이를 지나갔다. 입구로 들어와서 왼쪽으로 꺾는다. 두 책장 사이로 가서 앞으로 쭉 간다. 다섯 개의 책장을 지나 왼쪽으로 튼다. 거기서 가장 왼쪽의 가장 아래, 거기엔 그가 쓴 책이 있었다.
그건 고등학생 2학년인 그가 신인상을 따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건 그가 만든 처녀작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작품이 신선하다고 칭찬했다. 시장에서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비도는 자신이 드디어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뭐라도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감옥 같던 집을 나왔다. 그의 아버지는 비도에게 마구 욕을 퍼부었지만, 비도는 개의치 않았다. 비도는 자신을 비웃던 아버지의 콧대를 눌러준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아버지란 존재는 누구에게나 큰 것이지만, 사실 그의 아버지는 비도가 그렇게 신경을 쓸 필요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이웃사람들은 그의 아버지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비도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라도 감사를 할지언정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 역시 아버지를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비도의 원고지를 찢어발기며 돈이나 벌어오라고 소리치곤 했다. 그래서 그가 돈을 벌어오기라도 하면 그걸 모조리 술로 바꿔먹고 외상값을 땜빵하는 데에나 썼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말과는 반대로 자신의 글이 성공했을 때에 더욱 기뻤다. 하지만 나중이 되어서야 비도는 그가 자신에게 종종 내뱉었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도가 결코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그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없다고 소리쳤다. 글을 쓰는 건 거렁뱅이들이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같은 건 언제부터 사라졌는지 기억도 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의 꿈을 부정했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 부정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게 아니라 어쩌면 그의 꿈은 이미 부정된 지 오래인지도 몰랐다.
비도는 아뜩한 정신 속에서도 마치 집 안을 거닐 듯 책상 사이를 지나갔다. 너덜너덜해지고, 누렇게 바라고, 까만 끈이나 테이프 혹은 스테이플러로 간신히 삶을 연명하고 있는 그의 책은 거의 항상 제자리에 꽂혀있었다. 그 책이 종종 자리를 비우던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얘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치 묘비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리라.
비도는 무릎을 굽히고, 또 허리를 굽혀 그 구석자리를 살폈다. 그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한 권이 비어있었다. 비도는 책장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책상 앞으로 갔다. 빌려간 것일까? 아니면 누가 읽고 있을까?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 읽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도서관에 사람은 별로 없었고, 비도는 금세 자신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찾아냈다. 서른이 될까 말까 할 정도의 젊은 여자였다. 비도는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는 그녀의 앞에 앉았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그의 책이었다. 그의 책임이 확실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결코 그 책의 생김새를 잊지 못할 운명이었다. 잘못 알아보는 일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녀는 누가 앞에 앉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조용히 책에 빠져있었다. 아주 재밌는 걸 읽기라도 하는 듯 그 안에 깊이 빠져있었다.
비도는 눈을 힐끔거려 그녀의 손을 살폈다. 그녀의 오른손에 쥐여진 책의 남은 부분은 매우 얇았다. 책을 거의 다 읽은 모양이었다. 비도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책을 읽는 척 하면서 그녀를 계속 훔쳐보았다. 그녀에게서는 숨쉬는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서 나는 것은 사그락, 하고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비도가 만들어냈던 작은 세계가 끝나가고 있는 소리뿐이었다.
그녀의 눈에 비치고 있는 것은 책이었지만, 누렇게 바랜 종이에 인쇄된 글이었지만,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비도의 머릿속, 비도 스스로도 잊어버렸던 기억과 신경의 깊숙한 곳, 그곳에 숨겨져 있던 세상을 보고 있었다. 비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도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현은 단 한 번도 그에게 이런 눈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가 바라마잖던 것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눈 깜짝할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정말 짧은 찰나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그녀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작은 세계는 어느새 종이 넘기는 소리와 함께 전부 왼손에 붙들려 끌려나갔다. 그것은 이제 누렇게 빛 바랜, 오래된 책으로 되돌아갔다. 비도는 안타까움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아니, 어쩌면 신음을 내뱉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실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안타까움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그가 신음을 뱉어서 인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비도를 쳐다봤다. 비도는 질문을 하는듯한 그녀의 노골적인 눈길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은 소리 없는 웃음이었지만 그는 귀에 웃음소리가 박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책상 위에 엎드린 채로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웃는 그녀를 보고 그는 화를 낼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책을 거꾸로 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엔 불쾌함은 이미 온데간데없어지고 대신에 부끄러움만 잔뜩 남았다.
한참을 웃던 그녀는 이내 웃음을 거두고는 사과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나서 자리를 뜨려던 그녀는 멈칫 하더니 비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는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치더니 겉표지의 작가 사진을 찾아냈다.
“작가님이셨군요. 그런데…”
“사진과는 다르겠죠. 그 때는 많이 어렸으니까.”
그녀는 별 말 없이 그냥 멋쩍게 웃었다.
“제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그 마음은 저도 잘 알아요.”
그 말에 비도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마 그녀도 작가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그쪽도 작가에요?”
“아직은요. 지금은 지망생이네요.”
“이상하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비도의 말에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비도는 그녀의 웃음에서 왠지 모를 경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자리를 뜨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비도는 일부러 그녀를 붙들기로 했다.
“작품 투고는 해봤어요?”
“네, 번번히 떨어지기만 했지만요.”
“혹시 지금 원고 가지고 있어요? 주제넘긴 하지만 제가 봐줄 수도 있는데…”
그녀는 처음엔 내켜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먹은 듯 했다. 그녀는 가방에서 두툼한 원고를 꺼냈다. 원고를 그에게 건네줄 때, 그녀의 눈은 거의 반짝거리고 있었다. 비도는 자신이 이현에게 원고를 건네줄 때, 자신은 어떤 눈을 하고 있었을까 하고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눈이었든 간에, 저렇게 빛나는 눈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원고의 첫 장에는 ‘현실’이라는 두 글자가 프린트 돼있었다.
“그쪽은 컴퓨터로 작업을 하나봐요?”
“작가님은 손글씨로 쓰세요? 요즘은 다 컴퓨터로 해요.”
비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쩐지 비난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도는 그녀가 의도한 게 결코 그런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못난 자의 피해의식일 뿐이리라. 어쩌면 그가 설 자리는 이제 없는 지도 몰랐다. 마치 자필로 작업하는 것이, 컴퓨터에 밀려 없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비도는 표지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