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소설가의 유산
작가 : 푸랭
작품등록일 : 2016.9.2
  첫회보기
 
과거 #2
작성일 : 16-09-02     조회 : 361     추천 : 0     분량 : 5140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나는 못생긴 여자다. 그게 뭐 어쨌냐고? 당신들이 생각하는 못생김은 내가 말하는 못생김과는 거리가 좀 있을 거다. 길거리를 지나면서 스쳐 지나갔을 때, 다시 돌아볼 정도의 못생김 정도는, 그것이 만약 나의 것이 된다면 나는 그걸 더할 나위 없는 축복으로 받아들일 터였다. 나의 못생김은,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설 정도의 못생김이었다.

 

  왜 나만 그런 걸까, 어렸을 때 사고라도 당했던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어머니는 단호하게 난 태어날 때부터 못생겼다고 말했다. 참 고맙기도 하지. 날 그렇게 낳아준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해보았고,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세상을 원망해보기도 했지만 그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어머니가 날 그렇게 낳고 싶어서 낳은 것도 아니었으며, 나 역시 예쁘고 멋진 사람이 더 좋았으니까 말이다. 내가 그런데 세상이라고 다를 리가 없었다.

 

  못생긴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게 남자든 여자든 힘들기는 매한가지일 테지만, 특히나 못생긴 여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가혹한 일이었다. 물론 내가 못생긴 남자로서의 삶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이런 말을 늘어놓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못생긴 여자로서의 삶은 끔찍하다는 것만을 말해둔다.

 

  아주 어린 아이조차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어떤 것이 잘 생긴 것이고 어떤 것이 못생긴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선천적으로 생기는지 후천적으로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험상 아이들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내 못생김은 아이들이 갖는 인식의 한계를 돌파할 만큼 강렬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못난이로 불렸던 나는, 물론 못난이는 매우 점잖은 축에 속했지만, 그 모든 것에 하나하나 원망을 품는 것보다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포기하는 편이 나 자신에게는 더 낫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그 편이 나에게는 훨씬 덜 상처가 됐다. 난 못생겼으니까 그런 거야. 난 못생겼으니까 어쩔 수 없어. 어쩌면 오히려 그 주문 덕에 더 편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것도 있긴 했다.

 

  예를 들어 내가 시험을 망치고 나면, 스스로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하는 것이다. 나는 못생겼으니까 공부도 못하는 게 당연해. 물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긴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도피처였다. 나는 못생김을 받아들였고, 또 못생김 안에 숨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 됐고,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도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순간은 나타났다.

 

  내가 못생겼다는 사실을 가정 처음으로 부정하고 싶어진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 해 가을에는 학예회가 예정되어 있었고, 선생님이든, 수위 아저씨든, 아이들이든, 부모들이든 모두가 상당히 들떠 있었다. 그 이전까지는 노래를 부르거나, 간단한 춤을 추거나 하는 등 상당히 가볍게 치러졌지만, 그 해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해여서 그런지 상당히 성대하게들 준비를 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많은 사람들이 준비한 것은 연극이었다.

 

  각 반 마다 나름 연기에 자신이 있다 싶은 아이들만 골라 뽑아 진행하기로 했는데, 모든 반이 다 참여하는 만큼 규모도 관심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 나이의 애들이 연기를 잘 한다고 해 봤자 다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라 보통은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아이들이 뽑히게 되었다. 무슨 연극을 할까 하는 투표에서는 백설공주가 간발의 차로 신데렐라를 이겼다. 여자애들은 너도나도 백설공주를 하겠다고 나섰고, 남자애들은 너도나도 왕자를 하겠다고 나섰다. 경쟁은 나름 치열했지만 결국에는 가장 예쁘고, 멋있는 한 쌍이 백설공주와 왕자가 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별 문제 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거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마녀로 변장한 왕비의 역할을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마녀라는 걸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흉측하게 보이는 분장 등을 준비했는데, 분장을 다시 지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려서 왕비의 역할과 마녀로 변장한 왕비의 역할을 분리 시켜 놓았다. 하지만 그 어떤 여자아이도 그런 끔찍한 분장을 하고서 모든 6학년 친구들 앞에서,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 앞에서 연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최대한 연극을 잘 만든답시고 한 준비 같았지만, 아이들은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교실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아무도 그 역할을 맡지 않는다면 연극은 할 수 없게 될 거라고 겁을 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떤 아이도 그 역할에 지원하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은 제비뽑기로 마녀 역할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정말로 제비를 만들기 시작하자, 여자애들은 웅성웅성거렸고,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을 놀리면서 낄낄거렸다.

 

 그 때 누군가 내 등을 밀치면서 소리쳤다.

 

 “희경이가 한데요!”

 

  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나에게로 향했다. 일순간 교실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여자애들은 서로 귓속말을 하면서 깔깔거렸고, 남자애들은 대놓고 잘 어울린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았다. 그 때 선생님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발견했던 것은 단순한 내 착각이었을까?

 

  아니다. 아니었을 것이다. 그 때의 나는 그것을 그냥 착각이라고 치부하고 넘겼다. 하지만 선생님마저 나를 비웃었다는 걸로 하면 나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게 돼버리니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었다. 어쨌든, 선생님은 그렇게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어버렸다. 나의 정신은 이미 그 상황에서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미처 무의식 속으로 도망가지 못한 정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얼굴을 붉히고 멍청이처럼 서있는 것뿐이었다.

 

 “그럼 희경이가 하는 거구나?”

 

  선생님은 마치 내가 긍정하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도 분명 내가 자신의 의지로 나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가 나를 마녀 역할로 집어넣은 것이, 단순히 아이들과 더 이상 귀찮은 논쟁을 하기가 싫어서인지, 그녀도 내가 그 역할에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느 쪽이든 나에게는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그저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최선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백설공주 역할을 맡은 아이가 낄낄거리고 있었다.

 

 “분장이 하나도 필요 없겠는데?”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애가 맞장구를 쳤다.

 

 “어쩌면 분장 때문에 더 예뻐질지도 모르지.”

 

  나는 그 애들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애들이 무서운 것 때문도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 스스로도 그 애들이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애들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 펑펑 울었다.

 

  못생겼으니까 그런 거야, 라는 자기파괴적 합리화는 이번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튼튼하게만 보였던 성은, 알고 보니 파도 한 번에 쓸려나가는 모래성에 불과했다. 못생겼으니까 어쩔 수 없어, 라는 주문은 상처를 입지 않게 도와주는 주문이 아니었다. 그건 입은 상처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주문에 불과했다.

 

  내가 그 주문을 외울 때 마다, 내 가슴 깊은 곳에는 후벼 파낸 듯한 상처들이 생겨났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얄팍한 주문으로는 그 상처들을 가릴 수가 없었다. 상처를 덮은 붕대 위로 피가 배어나오는 것처럼 그것들은 그렇게 주문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것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나는 흉측한 모습뿐이 아니라, 흉측한 마음까지 가진 존재로서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해야 했다. 내가 무대에 오르면 아이들은 내 모습을 보며 비웃을 것이 뻔했고, 그러면 어머니는,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 지 알 게 될 것이다. 나를 비웃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가족에 둘러싸인 채 말이다.

 

  태어나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눈물은 쉴새 없이 쏟아졌고, 끅끅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는 토까지 했다. 그 짓을 몇 번이나 하면서 나는 완전히 탈진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때 나는 결심했다.

 적어도 연기만큼은 비웃음 당하지 않기로』

 

 #

 

 “작가님.”

 

 비도는 마치 뺨을 한 대 맞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니, 너무 오래 읽으시길래요.”

 

  비도는 손에 든 원고를 내려다봤다. 그는 어느새 원고의 절반 정도를 읽은 상태였다. 그는 밤 중에 갑자기 습격을 받기라도 한 사람처럼 어리벙벙한 얼굴로 원고를 덮었다. 그는 뒷 부분을 읽게 해달라고 말하려는 입을 꽉 다물고는 원고를 다시 건넸다.

 

 “어떤 것 같아요?”

 

 “괜찮네요.”

 

  비도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괜찮다고? 비도는 자신이 스스로 내뱉은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괜찮다니? 그건 개미가 코끼리를 보면서 크기가 괜찮군, 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녀의 작품은 훌륭했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비도는 백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쓰지 못할 만한 글이었다. 그가 이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지만 이내 의아함이 그의 머릿속에 찌꺼기처럼 달라붙었다. 그녀는 작품 투고를 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이만한 작품을 바보들이 아니고서야 탈락시킬 리가 없었다. 아무리 한 번에 검토하는 원고가 많다 하더라도 이런 작품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건 달걀들 사이에 숨어있는 황금알을 못 보고 지나쳤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대충 보더라도, 하나씩 착실하게 봤다면 분명 놓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번번이’ 떨어졌다고 했다. 한 두 번이면 몰라도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아뇨. 괜찮은 게 아니라… 매우 훌륭합니다. 그런데 투고에서 번번이 떨어지셨다고요?”

 

 “네… 뭐가 문젠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띄면서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비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에게 낯익은 사람이었다. 그렇다. 분명 그거였다. 분명 그것과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건 안개처럼 보이지만 잡히지는 않았다. 뭔가가…

 

 그녀가 비도의 눈길에 불편함을 한 가득 느껴 자리를 뜨겠다고 말하려 할 때가 되어서야 비도는 알아차렸다.

 

 “강등하 씨 맞죠? 그 때 신인상을 받았던?”

 

 비도의 말에 어색하게나마 웃음기를 띄던 그녀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비도는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입가에 웃음이 퍼졌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11 과거 #6 9/5 330 0
10 과거 #5 9/5 346 0
9 과거 #4 9/5 353 0
8 과거 #3 9/3 342 0
7 과거 #2 9/2 362 0
6 과거 #1 9/2 378 0
5 현재 #5 9/2 387 0
4 현재 #4 9/2 352 0
3 현재 #3 9/2 341 0
2 현재 #2 9/2 391 0
1 현재 #1 9/2 57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