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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유산
작가 : 푸랭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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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4
작성일 : 16-09-05     조회 : 353     추천 : 0     분량 : 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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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도는 등하와 계약을 했던 날을 떠올렸다. 비도는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대신 펴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녀는 생각 외로 쉽게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마 그녀도 출판사들의 계속되는 거부에 조바심이 난 상태였으리라. 두 사람은 책으로 벌게 되는 돈도 5:5로 나누기로 했다. 사실 그로서는 밑져봐야 본전인 장사였다. 그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출판 시장이라는 괴물에 맞서는 희생양은 그의 노력이 아니라 그녀의 노력이었다. 게다가 비도에게는 희생양이 기어코 괴물을 쓰러뜨리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현실’은 비도의 예상을 뛰어넘어서 엄청난 성적을 거두었다. ‘현실’은 단순히 예상이 아니라, 기대도 품지 않았던 영역조차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 성적은 지금도 계속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무지막지한 성공의 크기만큼 두려움도 컸다. 그리고 그 커다란 성공이 그와 등하 사이에 분열을 가져올까 봐 걱정됐다. 또 언제라도 자신이 사실은 ‘현실’을 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들킬 것만 같아서 걱정됐다. 그러나 그녀의 욕심이 별로 크지 않은 탓인지, 그녀도 예상치 못한 성공에 놀란 것인지 둘 사이에 다툼 같은 것은 없었다. 그리고 둘의 비밀 역시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성공을 즐기기만 하면 됐다.

 

  비도는 성공의 부산물 중 하나인 신형 SUV를 타고 도로를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등하가 사는 별장으로 이동했다. ‘현실’이 성공하자마자, 등하는 시끌시끌한 곳은 집중이 안 된다면서 서울 근교에 있는 별장을 하나 샀다. 비도로서도 그건 나쁠 게 없었다. 어차피 서로 자기 몫으로 나눈 돈으로 사는 것인데다가, 그는 그녀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사는 게 비밀을 지키는 데에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별장에 가까워지자 주변에선 공터와 어둠, 그리고 드문드문 서있는 가로등만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별장은 그 어둠 속에서 혼자만 덩그러니 서있었다. 마치 먹구름 위에 얹어진 거인의 성처럼, 별장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의 별장은 사실상 육지 위의 외딴 섬이나 다름없었다.

 

  비도의 차는 어둠 위로 한 줄기 선명한 빛을 그어갔다. 차가 별장 주변으로 가자, 별장이 뿌려대는 커다란 빛은 마치 블랙홀처럼 SUV의 미약한 빛을 바로 집어삼켰다. 그는 차에서 내려 뒤를 돌아보았다. 코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칠흑에 조그마한 가로등 불빛만이 점점이 박혀있었다. 자신이 지나온 길을 멍하니 바라보던 비도는 이내 등을 돌려 곧장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초인종을 누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금세 문이 열렸다. 별장 주변에는 어둠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터라 멀리서부터 차의 불빛이 보였으리라.

 

 등하는 문틈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많이 늦었네.”

 

 “사인회가 생각보다 늦게 끝났어.”

 

  비도는 그녀에게 가벼운 키스를 건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부터 거실에서 타오르는 조명 때문에 눈이 부셨다. 비도는 눈을 가리며 말했다.

 

 “너무 밝은 거 아냐?”

 

 “어두운데 있다가 와서 그래.”

 

  그녀의 말에 비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소파에 앉았다. 소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몸을 훅 빨아들였다. 그는 포장지에 싸이다 만 물건처럼 소파에 파묻혔다. 비도는 피곤한 기색을 숨긴 채 밝게 웃으며 말했다.

 

 “김 편이랑 얘기하고 왔는데, 얼마 안 있으면 번역본도 해외로 출간될 수 있을 거래.”

 

 “흠… 그래?”

 

  그녀는 그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그녀가 잔뜩 좋아할 거라 기대했던 비도는 그녀의 떨떠름한 반응에 당황했다.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는 머쓱해하면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비도는 분위기를 좀 바꿔 보겠다고 편집장이 굽실대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김 편 그 사람 진짜 웃기더라.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나오면 자기 출판사에 내달라고 얘기하더라고. 그러면서 나한테 굽실거리는데-”

 

 “귀빈 대접 받아서 좋았겠네.”

 

  그녀는 갑자기 그의 말을 툭 끊으면서 말했다. 주변에 내려앉은 공기가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그는 그녀가 왜 자신에게 화가 나있는 건지, 아니, 그 분노의 대상이자신이 맞긴 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그런 취급을 받고서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그녀의 화풀이 대상이나 되기 위해서 그녀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등하야,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안 좋은 일?”

 

  그녀는 그를 향해 휙 돌아섰다. 그리고는 마치 그 질문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붙였다.

 

 “네가 인터뷰를 하고, 사인회를 하고, 아부나 받는 동안, 방구석에 처박혀서 글이나 쓰고 있는 건 나라고. 그게 어떻게 좋은 일이겠어?”

 

  결국 그거 때문이었어? 비도는 인상이 찌그러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언제든지 그것에 대한 불만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자신이 글을 쓰는데 자신이 그 작가로서 행세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도는 그녀의 분노를 그대로 다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가 그녀와 애초에 맺은 건 정당한 계약이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밖에서는 내가 ‘현실’을 쓴 작가라고 알고 있는 걸.”

 

  비도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등하는 콧방귀만 뀌었다. 물론 그녀도 그걸 비도가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화가 날 수밖에 없다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처음에는 아지랑이처럼 흐릿하던 분노가, 입 밖으로 꺼내자 점점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을 쓴 건 나야. 텔레비전에 나와야 하는 것도 나고, 팬들이 받으려고 안달이 나야 하는 것도 내 사인이야. 최고의 작가라는 타이틀은 원래 내 거라고. 너는… 너는 아무것도 안 한 채 그걸 받아먹기만 하잖아. 나는 봉사활동을 하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녀의 말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거의 고함소리에 가까웠다. 가만히 앉아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비도는 자신의 마음에 자리 잡은 막연한 감정이 차츰 분노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라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남들이 비도가 뒤집어쓴 껍데기를 가지고 그를 칭찬할 때마다, 그는 뒤틀리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그도 그녀와 같은 재능을 자신이 가지고 있기를 소원했다. 그도 자기 자신의 글을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었다. 그는 차라리 그녀의 자리를 자신이 맡고 있기를 바랐다. 아무런 의미 없는 껍데기 같은 명예보다는 ‘현실’ 같은 작품이 자신의 것이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비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변 사람들이 간신마냥 떨어대는 아부를 애써 받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그 역겨운 것들을 목구멍 안으로 집어삼켜왔다. 그 역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작가 행세를 해왔다. 지금까지 그가 억눌러왔던 열등감과 자괴감, 부서진 꿈이 마구 뒤섞여 휘몰아쳤다. 비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애초에 그게 우리가 계약한 거였잖아. 그렇게 될 거라는 건 너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 아니야? 내 이름으로 작품이 나오는데, 그럼 내가 작가 행세를 해야지 어떻게 해? 그리고 나라고 해서 그런 게 마냥 좋은 줄 알아? 내가 쓰지도 않은 책을 남들이 칭찬할 때마다 내가 어떤 기분인 줄 알아?”

 

  그는 씩씩 대면서 말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분노에 그녀는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속삭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게다가 사람들은 항상 내 전 작품들과 ‘현실’을 비교해. 그 때마다 내가 평생 동안 쌓아온 것들은 하잘것없는 취급을 받아. 나의 평생은 고작 잠깐 동안의 슬럼프 취급을 받는단 말이야. 이제 난 내 작품을 마음대로 낼 수도 없어. 니가 쓴 글이랑 비교당할 게 뻔하니까. 작가한테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너도 잘 알잖아? 너만 힘든 일을 도맡는다고 생각하지 마.”

 

  그녀는 몰랐다. 그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말도 안 되는 투정에 불과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현실’을 만들기 위해서 밤낮가릴 것 없이 노력하는 것은 그녀였다. 하지만 그는 떡고물은 혼자 받아먹으면서도 그녀에게 자신도 힘들다고 지껄이고 있었다. 그녀의 분노는 기름을 들이부은 것처럼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녀는 빈정거리면서 말했다.

 

 “그게 내 잘못이야? 그건 단지 니가 글을 못 쓰니까 그런 거잖아?”

 

  비도는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는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무너져 내리는 듯한 그의 표정을 보면서, 등하 역시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사과 같은 걸 하진 않았다. 그녀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사과해야하는 건 오히려 비도였다. 그녀는 손톱을 깨물었다.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입을 열 수 없게 머리통을 짓누르는 것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비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말없이 그녀를 지나쳐 걸어갔다. 별장을 나갔다. 확 열린 문이 닫히기도 전에,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별장, 비도는 그것을 뒤로하고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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