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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의 경우 학예회는 보통 교실에서 이뤄졌다. 고학년도 별 다를 바 없긴 했지만, 6학년이 준비한 연극은 모든 반에서 다 참여를 하는 것이라 그런지, 구청에서 소유하고 있는 강당을 빌려서 하기로 했다. 그 많은 수의 부모들을 수용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선생님들은 고작 초등학생들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큰 무대를 온갖 장식물로 꾸몄다. 한 쪽에는 성 모양으로 잘라 알록달록하게 칠해 놓은 판을 배경으로 세워놓았고, 반대쪽 구석에는 아기자기하게 생긴 난쟁이들의 집 역시 판으로 만들어 세워놓았다.
각자 역할을 맡은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의 의상이나 소품을 만들었는데, 자기 자식이 눈에 띄기를 바라는 마음에 엑스트라의 의상조차 지나치게 화려해지자 선생님들이 그걸 다시 고쳐놓고는 했다. 물론 내 의상은 선생님이 그렇게 다시 고쳐놓을 필요도 없었다. 내 의상은 망토를 대신할 칙칙한 색깔의 담요 하나뿐이었다. 어머니에게 한가하게 그런 걸 만들 시간은 없었다. 때문에 내 경우엔 오히려 선생님이 그래도 모자는 필요하지 않겠냐며 내게 고깔모자를 건네주었다. 그 고깔모자는 애들이 생일 때에나 쓰는 화려한 무늬의 싸구려 고깔모자였다. 선생님은 새까만 색지를 모자의 겉 부분에 붙여 적어도 우스꽝스럽지는 않게 만들어줬다. 나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대사를 연습하며 허둥댔다. 그들이 시간이 흘러가지 않기를 바랄수록 시간은 빨리 흘렀다. 하나 둘씩 모이던 사람들은 어느새 객석을 거의 꽉 채울 정도로 많아졌다. 부모들은 저마다 손에 카메라나 캠코더를 들고서 자기 아이들을 찍기 위해서 마치 카메라맨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고 있었다. 그 무리에 어머니는 없었다. 어머니는 바빴다. 우습게도 실망보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어머니가 나를 보고서 나의 비참함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대사를 연습하며 초조해할 여유도 없었다. 나에게는 오직 비참함의 아래까지 곤두박질치는 것, 그것을 막는 것만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이 바짝 긴장해서 얼어붙어있는 동안 연극을 총괄했던 선생님이 무대로 올라갔다. 그는 웃는 얼굴로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 선생님이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깔깔거렸다. 물론 연극을 앞두고 커튼 뒤에 있는 아이들은 조금도 웃지 못했다. 긴장이 그들의 감정을 완전히 마비시켜 놓았다. 선생님이 뭐라고 말을 하는지 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두터운 커튼 때문이기도 했고, 음향기능이 그리 좋지 않은 싸구려 마이크 때문이기도 했고, 내 감정 역시 마비시키고 있는 긴장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의 흥분도 한몫 거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새 연극은 시작됐다. 백설공주가 나가서 독백을 시작했고, 왕비가 거울과 함께 뛰어나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 다른 애들의 연기가 어땠는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남은,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의 기억이라고는 아주 단편적인 것 밖에는 없었다. 커튼 너머로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아이들의 목소리, 거기에 맞춰 깔깔깔 웃는 어른들의 목소리. 새까만 무대 뒤편으로 비쳐 들어오는 뿌연 조명. 그 조명이 비치는, 마치 지저분한 물에 섞인 부유물 같은 먼지들. 다른 소리가 귓속에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듯이 울려대는 심장소리. 그 때의 기억이라고는 그런 것뿐이었다.
연극은 금방금방 진행됐다. 마치 누가 시간을 억지로 떠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내 차례 역시 앞선 시간들에 떠밀려 금세 찾아왔다. 선생님이 내 등을 두드리며 차례가 왔다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내가 나가야 할 차례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왕비가 거울에게 제일 예쁜 사람이 누구냐고 묻고, 거울이 백설공주라고 대답하면 나는 그 때 거울이 손에 들고 있는 얇은 막 뒤로 다가가 왕비와 바꿔 치기를 해야 했다.
왕비는 거울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누구지?
거울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백설공주입니다.”
선생님이 내 등을 떠미는 게 느껴졌다. 단지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인데, 고작 약간 두터운 커튼을 지나쳤을 뿐인데, 그 밖은 이미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커튼에 막혀 힘없이 울려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마치 귀에 직접 쏘아지는 것처럼 커졌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수많은 눈이 전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희뿌연 조명 아래로, 약간은 조잡한 소품을 지나, 나는 마치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거울의 뒤에 섰을 때, 거기엔 이미 왕비가 서있었다. 내가 채 준비를 하기도 전에 왕비는 우리 둘을 가리던 까만 천을 덮어쓰고 무대 뒤편을 향해 뛰어갔다. 이제 무대 위에는 나와 거울만이 서있었다. 나는 앞을 쳐다봤다. 관객의 수는 고작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는 건 그게 처음이었다. 그들은 전부 나를 보고 있었다. 저마다 촬영장비의 렌즈를 들고 있는 그 관중 무리가 마치 거대한 하나의 생물처럼 느껴졌다. 그 괴물은 먹잇감을 앞에 두기라도 한 것처럼 수백 개의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괴물이 짓누르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배경을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남아있는 조명들이 나를 비췄다. 뿌옇게 떠오르는 먼지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어둑어둑한 관람석들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어둠 속에서 관객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일그러짐. 그리고 나는 거기서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손에 잡힐 듯 짙은 경멸과 혐오.
나는 못생겼으니까 당연한 거였다. 내가 계속해서 받아왔던 경멸. 설마 나는 무대 위라고 해서 그것을 잠시나마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못생긴 역할을 맡았으니까, 그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거라고 믿기라도 했던 걸까? 내 정신은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못생겼으니까 어쩔 수 없어. 나는 못생겼으니까. ‘희경’은 마음 깊은 곳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나는 이내 그것이 일상적인 도피와는 약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경’이 도망가고 나면, 나는 텅텅 빈 껍데기가 되곤 했다. 그렇게 괴로움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희경’이 도망간 자리에는 ‘마녀’가 남아있었다. 나는 그냥 못생긴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못생긴 마녀였다. 내가 못생긴 마녀니까, 외모도 흉측하고, 마음까지 흉측한 마녀니까 그들의 경멸은 당연한 것이었다.
난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어째서 넌 그렇게 아름다운 거냐!”
연극 내내 객석에서 끊이지 않던 온갖 웅성거림이 천천히 사그라 들었다. 계속해서 자신의 아이를 찍기 위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캠코더를 들이대던 부모들도 캠코더에서 눈을 뗐다. 그건 마치, 피부 위에 직접 닿는 것처럼 고스란히 느껴졌다. 서릿발 같은 것이 팔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나도 너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어. 나도 너처럼 사랑 받고 싶어.”
나는 담요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나는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렇게 몸을 구부린 채로, 숨을 죽였다. 대사가 없는 그 공허함 속에서 사방이 조용해졌다. 오직 음향기기에서 나는 미세한 잡음과 객석에서 약하게 흘러나오는 기침소리만 무대 위를 맴돌았다. 나는 이를 빠득 갈았다.
“그럴 수 없다면… 대신에 널 죽이면 되겠지.”
나는, 아니 사악한 마녀는 품에서 빨간 사과 한 알을 꺼냈다. 무대의 반대편 난쟁이의 집 앞에는 백설공주가, 아니 넋이 나간 여자애가 서있었다. 마녀는 여자애를 향해 걸어갔다. 얼떨떨해져서는 가만히 서있는 그녀를 향해 마녀는 소리쳤다.
“당신은 정말 아름답군요. 너무 아름다워요. 나도 당신처럼 될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마녀는 여자애의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의상을 붙들며 말했다. 여자애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그 애의 얼굴에는 두려움, 부끄러움, 혼란스러움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있었다.
“그렇지만 관리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금세 시들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런 시골에서 어떻게 음식이라도 제대로 먹겠어요?”
마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빨갛게 익은 사과를 내밀었다. 여자애도, 무대의 그림자 뒤편에서 바라보던 아이들도, 캠코더를 들고 객석에 앉아있던 부모들도 숨이 멎은 사람처럼 마녀를 쳐다보았다. 엉성하게 만들어진 가짜의 왕국에서 오직 단 하나의 진짜가 거기 서있었다. 가짜들은, 그 진짜의 존재감에 모두 숨을 죽였다.
“자 이 사과를 보세요. 이렇게 잘 익은 사과를 본 적이 있나요?”
어울리지 않는, 새빨간 볼터치, 하얀 비비크림, 새카만 아이섀도우에 광대나 입을 법한 의상으로 억지로 자신을 숨긴 그녀는, 그러고도 채 자신을 숨기지 못한 그녀는 마녀의 사과를 받아 들었다. 그녀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참 맛있어보인다.”
그 여자애는 스스로도 자신의 목소리가 흰 옷에 튄 김치국물처럼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꼈다. 그 아이의 표정에서 울먹거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자애는 재빨리 사과를 베어 물고 잠에 빠진 척 했다. 그녀는 그렇게 도망쳤다. 마녀는 잠에 빠진 아이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말없이 아이의 뺨을 그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쓸어 내렸다. 아이를 바라보던 마녀의 무표정한 얼굴에 곧이어 비열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마녀의 찢어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모든 부모들은 캠코더를 찍는 것도 까먹은 채 마녀를 쳐다봤다. 마녀는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깔깔거리면서 소리쳤다. 마녀의 웃음소리는 조잡하고, 어설픈 소품 사이로 왱왱 울렸다.
“백설공주가 죽었어! 백설공주가 죽었다고!”
마녀는 웃음을 멈추고 다시 잠에 빠진 백성공주를 내려다 봤다. 마녀는 싸늘한 얼굴을 하고서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는 내가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야.”
마녀의 목소리는 마치 저주를 읊듯이 음울하게 들렸다. 마녀는 발목까지 오는 칙칙한 담요로 몸을 감쌌다. 마녀는 백설공주에게서 눈을 거두고 무대의 뒤편을 향해 걸어갔다. 몸에 달라붙어있던 조명이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뒤쳐졌다. 발을, 가슴을, 어깨를 타고 올라온 빛은 등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며 무대를 향해 사라졌다. 두꺼운 커튼이 다시 마녀를 둘러쌌고 탁 트인 세계의 소리는 다시 저편으로 사라졌다. 마녀의 존재는 무대 뒤편의 그림자 속에 녹아 없어졌다.
대신 칙칙한 담요를 몸에 두른 초라하고 못생긴 내가 다시 나타났다. 그것으로 내 역할은 끝이었다. 나는 결코 아름다운 왕비의 역할을 맡을 수 없었다. 나는 뒤를 흘끔 돌아봤다. 무대에서는 아직도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내가 예뻤다면, 아니 적어도 조금 덜 못생기기라도 했다면 나는 왕비의 역할을 맡을 수 있었을까? 나는 이를 악 물었다.
나는 이 때보다 나 자신이 못생겼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운 날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