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다 잊고 살까봐. 어차피 헤어진 지 오래 되었고 더 이상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놈이니까.”
그러고선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쉐이크 한 잔을 집어 여유 있게 마시었다.
“그래그래, 그렇게 해서 확 잊고 새롭게 다시 살아.”
“근데, 이 얘긴 네가 먼저 한 거다. 네가 ‘그’ 얘기만 안 했어도 내가 이렇게 다시 ‘그’ 고통을 안 생각했을 텐데..”
“헐.. 그래서 지금 내 탓을 하는 건가요? 아니, 저기요.”
“왜요.”
“지금 내가 ‘그’ 얘길 했다고 내 탓을 하시는.... 허, 참....”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피식, 하고 웃었다. 친구에게 장난을 한 것뿐인데 너무나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조금도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받아든 친구가 웃긴 뿐인지라 웃음이 절로 나오는 듯해 이제는 한 손으로 웃음을 보이는 자신의 입을 막았다.
“뭐야. 너 설마 웃냐?”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나보다.
“아.. 미안. 난 장난친 것뿐인데 네가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네.”
“치이.. 오늘 같이 만나서 놀려고 내가 그동안 받은 알바비 하나도 안 쓰고 고이 모셔뒀는데. 에이, 안 되겠다~ 그냥 내가 오늘 다 쓰던지 하지 뭐.”
“나 이미 밖이야. 그것도 네가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홍대에서 유명한 디저트 카페, 르쁘띠푸 카페.”
“헐.. 미친. 너 오늘은 그냥 작정하고 갔구나.”
그리고 또 다시 쉐이크를 마신 그녀.
“ ‘발로나 초코 쉐이크’랑 ‘마카롤 얼그레이’ 시켰어.”
“그런 곳을 갈 거면 나도 불러주지. 자기 혼자만 가고. 진짜 미워.”
“오늘은 그냥 혼자 있고 싶었어. 그래서 혼자 온 거야. 다음엔 같이 오자.”
“진짜지? 진짜 다음엔 같이 오는 거다.”
“당연하지.”
“좋아, 그럼 오늘은 재밌게 놀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 그리고 항상 조심......”
뚜 뚜뚜--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전에 끊었어야 했는데.. 괜히 안 끊었다가 결국 잔소리로 마무리했네.”
하지만 그렇게 후회를 하고 불평을 해도 결국엔 친구밖에 없다는 걸 아는 그녀는 다시 한 번 피식, 하고 웃었다.
카페에서 나온 그녀는 마치 미리 계획을 짜놓은 것처럼 곧장 영화관으로 향하였다.
“볼 만한 영화가 없을까..”
친구랑도 와보고 가족이랑도 와봤어도 혼자서는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그녀로서는 망설이는 것이 아닌 처음으로 혼자 볼 만한 영화가 무엇이 있을까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냥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거나 볼까.”
결국은 요즘 가장 많이 보는 영화, 가장 인기가 많은 영화를 골랐다.
드디어 영화를 보는 그녀. 처음엔 재미가 있었지만 점점 갈수록 내용이 이상하고 쓸데없는 장면들이 영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듯해 그녀는 그저 억지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진실’된 웃음을 지은 것만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자신도 저렇게 웃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그녀는 억지로만 웃는 자신이 초라해보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산책을 하는 듯 주변을 걸어 다녔다. 하지만 계속 걸어 다니는 것조차 지쳐버렸다. 그래서 근처 옷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한 직원의 밝은 인사에 그녀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사실 옷가게를 혼자 온 것도 처음인 그녀이기에 조금은 어색했다. 평소 친구와 왔더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어느 곳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 온 그녀이기에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망설였다.
계속 망설이고 있을 수만 없는 그녀는 어색하긴 해도 곧 여성의류 코너로 향하였다.
“옷이.. 많네....”
전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혼자 와서일까, 생각보다 옷이 많고 무엇보다 자신이 바라보는 모든 것이 훨씬 크고 넓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또 다시 억지로 옷가게를 구경하던 그녀는 주변을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그녀의 주변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치 목적지가 정해진 것 같은 부류와
한 가지의 옷을 보면서도
"꺄르륵"
하고 웃으며 너무나 재밌어하는 부류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그녀의 모습은 어느 한쪽에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그 두 부류의 중간에 끼어있는 것도 아니고 끝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듯해 보였다.
"혹시 찾으시는 옷이라도 있으신가요?"
"아.. 아니요..!"
구원자가 나타난 것 같아 속으론 내심 조금은 좋았지만 왠지 계속 기대고 폐를 끼칠 것 같은 마음도 들어 그저 억지 웃음으로 괜찮다고 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밝게 웃는 직원의 모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네.."
라고 대답하였다.
1시간 뒤,
그녀는 결국 옷을 사기는 커녕, 제대로 구경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와 조용한 카페로 향하였다.
"짐작에 여기로 올걸 그랬어.."
손님도 몇 없고 분위기도 딱 좋은데다가 그 분위기 속에서 나오는 잔잔하고 엉망진창이었던 나의 하루를 위로해주고 토닥여주는 듯한 음악까지.
타악-!
"하아.. 되는 것도 없지,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지.. 진짜 다 마음에 안 들어..."
벌컥 벌컥-
벌써 한 병을 전부 다 비은 그녀.
뚝뚝-
그러고선 눈물을 뚝뚝 흘리고선
"나 진짜 멍청하다. 그리고 미치기까지.."
-30분 뒤-
"너무 힘들어.. 진짜 너무....."
"..."
그러다 그녀는 그녀의 옆에 앉은 낯선 남성과 눈이 마주쳤고 잠시 남성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쪽은... 상처, 안 주죠? 그쵸..?"
"...."
"상처 안 주면은요.. 저랑 한 번, 만나보실래요? 그냥 서로 만족이 되던, 재미가 되던... 진짜 그냐......"
툭-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그 남성의 어깨에 기대어 버리고 말았다.
피식-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