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마지막 만찬
어렵게 알아낸 병원의 위치는 내 다리를 수술한 의사가 있는 병원이자, 판사의 아내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이었다. 나는 그의 입이 말하는 약도를 머릿속으로 그리다 목적지를 말하는 대목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 예감은 내가 병원에 가서 느꼈던 이상한 기분이 감각 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충고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정형외과 의사가 성형외과 수술을 하는 병원이니 환자의 얼굴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넓은 피부를 떼어다 붙이는 일은 쉽게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그를 수술 했던 의사가 내 다리를 수술한 의사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가 설명하는 인상착의가 그 의사와 비슷했지만 똑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성천사는 당장 그 병원으로 달려가려는 나와 동준천사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렸고 해마천사가 우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낮아진 귓속으로 우성천사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잠깐만, 이번 일은 성급하게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사람의 얼굴을 없애는 병원은 생각보다 큰 악이 버티고 있을 지도 몰라. 아무런 준비 없이 우리들끼리 가다간 악마의 종으로 끌려갈 수도 있어. 조한에게 보고한 다음 움직이는 것이 지혜로워."
맞는 말이다. 얼굴이 없어진 것은 보통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와는 다르다. 우리는 작정하고 사람의 얼굴을 없애는 병원으로 가려는 것이다. 산부인과, 성형외과, 정신과만 진료하는 이상한 병원으로 가려는 것이다. 갑자기 병원에서 봤던 환자들의 눈빛이 떠올랐다. 무슨 질병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같이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코 주변에 검은색 점들이 모여 있었고, 눈 밑에는 검은색 반달이 떴으며 동공은 초점을 맞추지 못해 말하는 곳과 쳐다보는 곳이 달랐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기운 없이 두피에 붙어있었다. 혹시… 그 병원의 성형외과에선 환자들의 얼굴을 없애고, 산부인과에선 아기들을 죽이고, 정신과에선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천후’로 돌아온 후, 판사와 박사가 마귀라고 했던 단의 말이 소리의 진동 없이 청각세포를 자극했다. 그리고 판사의 집에서 당했던 모욕과 폭행이 떠올라 맥박이 두 종류가 됐다. 맥박의 하나는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피의 이동이었고 다른 하나는 피의 이동을 막기 위한 비정상적 혈관수축이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만든 두 번째 맥박은 손과 발을 차게 했고, 숨 쉬는 것을 어렵게 했으며 관절통과 두통을 일으켰다. 나는 호흡을 잘하기 위해 동맥이 지나가는 여러 부위를 마사지했다. 그럴 때는 숨쉬기가 좀 편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곧 현기증과 어지러움, 구토, 손발 저림이 시작됐다. 나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고, 우성천사와 동준천사가 내 곁으로 내려앉았다.
우성천사의 한 손이 내 머리위에, 동준천사의 한 손이 내 가슴위에, 그리고 그들의 나머지 두 손이 내 등에 올려졌다. 그들은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는 천사의 말을 사용했다. 나는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말을 따라했다. 곧, 그들의 손이 뜨거워졌고 그들의 손이 닿은 내 몸도 뜨거워졌다. 열이 전달된 손과 발은 차가움이 없어졌고, 어지러움도 약해졌으며 구토하고 싶었던 속도 진정됐다. 나는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을 맞잡고 손가락끼리 교차시킨 후 무릎을 꿇었다. 천사들은 내가 무릎을 구부릴 때, 내 몸에 있던 자기들의 손을 떼서 거들어 주었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부터 ‘천후’에 들어간 일, 천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받은 40일간의 훈련, 단과 만나 저지른 죄, 판사와 박사, 내 다리를 물어뜯은 개의 이빨, 다시 돌아온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던 조한, 얼굴이 없어진 최봉. 순식간에 벌어진 기가 막힌 일들 속에 내 마음은 여기저기 상처가 났다. 나는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받은 무시와 모욕을 말하기 시작했고 나를 슬프게 하고 나의 맘을 아프게 했던 일들을 쏟아냈다. 한 참을 그렇게 하는 동안 천사들은 내 주위에서 천사의 말로 하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나는 나의 말과 천사의 말을 섞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리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커지더니 입술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로 듣는 내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신기하고 놀랐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은 내가 하려고 하는 말보다 완전하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했다. 그 말은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해서 꺼내지 못했던 상처와 아픔을 꺼냈고, 나의 짧은 지혜로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을 미리 알아 기도하게 했다. 잠시 후, 맥박이 다시 하나로 바뀌었고 점점 줄어들던 어지러움과 몸의 이상한 징후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더 크게 기도하고 싶었다. 혹시, 내 기도를 하나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자 기도가 멈췄다. 나는 이상해진 성대를 손으로 만져 그것이 없어졌는지 확인했지만 목은 그대로 딱딱했다. 해마천사는 내 이마를 차가운 물수건으로 닦아 주었고 나는 서서히 잠들었다.
감은 눈 속으로 꿈이 찾아왔고 꿈속으로 판사가 찾아왔다. 그런데 판사는 사람 같지 않았다. 목소리, 외모, 성격, 말투, 허리둘레, 머릿결 등이 조금씩 이상했다. 혹시, 그의 피부 안엔 다른 형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그리고 곧, 그 생각이 만든 이미지가 뇌의 깊숙한 곳에 떠올랐다. 떠오른 이미지는 판사가 옷을 서서히 벗고 손톱으로 피부의 가장 얇은 곳을 긁어내는 것이었다. 잠시 후, 긁어낸 피부 안에 있던 징그러운 형상이 나타났다. 그 형상은 그동안 봤던 영화 속 괴물을 귀여운 애완동물로 생각하게 할 만큼 끔찍했다.
사람의 탈을 쓰기 위해 본래의 모습보다 몸을 길게 늘려놨었던 악마는 껍데기가 없어지자 내 무릎만한 높이로 바뀌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았지만 얼굴은 찾을 수 없었다. 몸통에 붙은 긴 팔은 다리보다 더 많이 땅에 닿아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팔을 들어야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땅에 질질 끌렸다. 발엔 발톱이 여섯 개 있었는데 발보다 길었고 손톱은 없었으며 몸에 난 털은 부위마다 두께가 다른 것 같았다. 판사의 피부가 사라지기 시작할 때부터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는 썩은 쓰레기가 폐수에 담겨 있을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곰팡이가 음식물 속에 침입했을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독한 화학약품이 엷은 옷감에 묻어 그 옷감이 타들어갈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쓴 맛을 내는 약초를 숯으로 태울 때 나는 냄새 같기도 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집었다. 그래도 들어오는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숨을 참았다. 나는 모자란 산소로 인해 헉헉 댔고 곧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정신을 다 차렸지만, 마귀의 이미지는 한 쪽 눈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마귀의 목은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고 사람의 심장이 있는 부위정도에 주머니가 하나 있었는데 두꺼운 무언가가 들어있는 것 같이 볼록하게 올라와 있었다. 나는 그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고 팔을 쭉 뻗다가 마귀의 몸을 만졌다. 그런데 그 느낌이 이상했다. 생명이 있는 것을 만지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고 마치 북극에 있는 돌멩이나 죽은 악어를 만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주머니에 들어간 손이 빠지지 않았다. 손이 들어가자 갑자기 작아진 주머니가 내 손이 빠지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다. 나는 손으로 주머니 속을 더듬었다. 그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천사들에게 내가 본 것에 대해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천사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봤던 악마의 실체하고 똑같다는 말을 했다. 천사들도 그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그들이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우성천사는 조한의 방으로 들어가 한 참 동안 있었다. 나와 나머지 천사들은 마귀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준 정보는 마귀가 사람의 형상을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어제는 이 사람 속에서 일하다가, 오늘은 저 사람 속에서 일할 수도 있고, 동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사람 속으로 다시 오기고 하고, 어린아이나 노인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또, 자신이 이용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마귀는 따라 죽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 끈질기게 그 생명을 유지한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다 이해했다. 이젠 천사의 말도 할 수 있는 천사니까 선과 악에 관한 이야기는 다 이해할 수 있다.
조한이 심각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왔고 천사들은 방석으로 원을 만들어 앉았다. 우성천사는 조한이 앉을 방석을 마련한 후 주방으로 들어가 인원수에 맞춰 녹차를 타왔다. 혀끝으로 녹차의 맛을 보기 전, 코끝으로 들어온 차 냄새에 몸이 반응했다. 그 냄새는 몸을 여유 있게 만들었다. 어깨의 긴장이 풀어졌고 굴곡 됐던 손가락들이 펴졌다. 나는 그것을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서두르다가 뜨거운 온도에 혀를 데었다. 조한은 나의 혀를 걱정하는 말을 시작으로 준비한 말을 했다.
"괜찮아요? 앞으로 뜨거운 차를 마실 땐 입김으로 식힌 후 마시세요. 오늘 전해들은 대호병원을 놓고 우성천사, 두호천사와 같이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병원이 악의 근원이고 사람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악마의 집이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그들의 기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앞으로도 그 병원에선 의사를 위장한 악마들이 사람들을 죽일 것이고, 얼굴을 없앨 것이고,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좀 더 일찍 그 병원에 대해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다 저의 실수입니다. 제가 더 열심히 했더라면 그동안 그 병원에서 얼굴을 잃고, 이성을 잃고,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을 텐데…. 어쨌든, 그 병원이 저의 마지막 임무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조한?”
"조한에게 마지막이 어디 있어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야죠."
"조한이 없는 천사의 후예들은 상상도 못해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조한, 그럼 마지막 임무를 아예 하지 마세요. 제 말 안 들으시면 저 일본 안 갈 거예요."
잠시 후, 조한은 어깨가 무너져 내린 것 같이 상체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성천사와 두호천사는 조한의 좌우에서 같이 울었고 원을 그렸던 천사들 중 몇 명은 밖으로 나가 오열했다. 남아있는 천사들은 조한과 비슷한 자세로 앉아 울음을 보탰다. 나는 적당한 온도로 내려간 녹차를 마셨다.
두호천사가 한 시간 후에 다시 모이자는 말을 했다. 나는 비어있는 컵을 물로 헹군 후,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이불에 눈물을 묻혔다. 하나를 찾는 것이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눈물을 시작하게 했고, 조한과의 만남이 끝나간다는 생각이 눈물을 그치지 않게 했다. 나는 조한을 사랑한다. 조한이 겪을 어려움을 대신하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이성을 사랑하는 남성의 욕심하곤 차원이 다른 사랑을 그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조한이 해주었던 충고가 귓속에서 맴돈다. 나는 조한의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는다. 진심은 계속 눈물을 만들었고 나는 이불의 두께를 고려해 울음소리를 조절했다.
눈물이 서서히 그치자 다시 모이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거울을 보고 눈물자국을 지운 후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