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조한은 뒷짐을 지고 주변을 걸었다. 우리는 조한의 겹쳐진 손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적당한 속도로 주변을 거닐던 조한의 몸이 흙으로부터 멀어져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 강렬한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주변을 덮었다.
나는 이제껏 그렇게 강한 빛을 본적이 없었다. 태양을 바로 앞에다 가져다 놓은 것 같아 눈을 뜰 수 없었고 뜨거운 열에 눈썹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내 옆에 있던 우성천사와 두호천사는 그 빛에 밀려 뒤로 이동했고 나도 버틸 수 있는 만큼 제자리에 서 있다가 뒤로 물러섰다. 잠시 후, 그 빛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노랫소리도 아니고, 동물의 울음소리도 아니고, 기계나 악기가 만든 소리도 아니고, 사람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나는 손으로 빛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를 살짝 벌려 그 빛을 쳐다봤다.
그 빛 속엔 조한과 다른 한 명이 서있었는데 조한은 그의 품에서 웃고 있었다. 조한의 웃는 모습은 너무 편안해 보였고,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였다. 조한을 안고 있는 사람은 키가 굉장히 컸다. 조한의 머리가 그의 배에 있었으니 조한보다 두 배정도 커보였다. 나는 빛 때문에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고 눈을 몇 번 깜빡인 후 다시 고개를 높이 들어 그의 얼굴을 보려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너무 높은 곳에 있었고 그의 얼굴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곳은 주변의 빛보다 더 강한 빛이 비추고 있어서 계속 그렇게 쳐다보다간 눈이 멀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은 것은 힘이 다한 육체가 만든 수동적 자세가 아니었다. 그에 대한 경외감이 만든 능동적 항복이었다. 나는 조한을 안고 있는 사람이 아니, 조한을 안아주시는 분이 나를 만드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배운 지식과 경험, 이성으론 그것을 알 수 없었지만 빛이 비추며 밝게 드러난 진리와 그 진리를 이해하게 하는 지혜가 그것을 알게 해주었다. 나는 코를 땅에 박고 며칠 전 했던 천사의 말을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을 하는 내 마음은 그를 거룩하신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아마도 내가 하는 말은 그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잠시 후, 우성천사와 두호천사도 무릎을 꿇고 비슷한 말을 시작했다.
빛은 서서히 올라갔고 조한은 땅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한의 주위로 몸을 옮겨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조한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혹시, 빛 속에서 얼굴을 교체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나는 우성천사와 두호천사에게 눈빛을 보내 내 생각을 말했고 그들도 나와 똑같은 눈빛을 보냈다. 조한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쳐다본 후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갔다. 우리도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랐고 산에서 봤던 광경에 대해 서로 묻지 않았다.
조한은 천사들을 불러 모아 대호병원에 관한 설명과 그 병원의 악을 없애는 작전을 말해주었다. 대호병원은 이대청 판사의 아내인 최혜한 박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병원이다. 병원의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산부인과, 정신과가 있고 특수 클리닉으로 마약재활 클리닉, 가족계획 클리닉, 우울증 클리닉 등이 있다. 병실의 수는 38개, 총 병상 수는 99개, 직원은 88명이 있는데 모두 다 악마의 노예들이다. 대호병원이 하는 일은 각 진료과별로 산부인과에선 출산을 원치 않는 산모의 몸속에 있는 태아를 빼내고, 성형외과에선 더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의 얼굴을 없애고, 정신과에선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고, 마약클리닉에선 마약중독자들을 불러 그들이 마음 놓고 마약을 맞을 수 있도록 하고, 우울증 클리닉에선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의 사람들을 잡아다가 우울증이 걸리게 하고, 가족계획 클리닉에선 아기를 가질 수 없도록 영구적인 시술을 하고 있다. 병원이 만들어진 목적의 반대를 목적하고 있는 대호병원의 이야기에 천사들은 충격을 받았고 그동안 희생됐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조한은 구체적인 작전을 말하기 시작했다. 작전 시간은 오늘 오후 2시, 오후 진료가 시작될 때이다. 조한과 학선천사가 최봉을 데리고 진료를 받으러 가면 로비에서 동준천사와 우성천사가 환자들이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조한과 학선천사가 병원 안에 있는 의사들과 직원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을 때 두호천사와 도석천사, 하영천사가 병원에 들어와 수술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병원 밖으로 빼낸다. 그리고 해마천사와 내가 병실에 갇혀있는 환자들을 탈출시키면 작전이 완료된다. 우리들은 시계를 조한의 시계와 똑같이 맞춘 후, 1시에 모여 출발하기로 했다.
전화벨 소리가 여러 번 울렸지만 아무도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서 급하게 뒤처리를 하고 나와 전화를 받았다.
"안정 군, 오랜만이야."
"누구세요?”
"나, 이대청 판사야."
나는 전화를 끊으려했다. 판사와의 아픈 기억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 씨를 찾았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곧 맥박이 두 개로 변했다. 그리고 떨리는 혀가 아무런 대답을 만들지 못했고 무릎이 자기 마음대로 구부러졌다.
"빨리 우리 집으로 와. 여기 하나 씨가 있으니까."
지금은 12시다. 시계에 눈을 두고 시침이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는 것을 쳐다보던 나는 작은 뇌에서 일어나는 수 만 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그 중에서 제일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판사의 집에서 하나를 찾은 다음 대호병원으로 가서 그 병원의 악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천사가 된 목적과 천사가 되어서 생긴 목적을 한꺼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다른 천사들의 눈치를 보며 빠져 나갈 궁리를 했다.
조한은 2층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었고 다른 천사들은 방에서 복장과 준비물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발뒤꿈치를 살며시 들어 올려 밖으로 나가는 걸음을 들키지 않게 조심히 이동했다. 현관문을 열고 도로에 발을 내딛을 때 집 옆에 있는 가로등이 한 번 켜졌다가 꺼졌는데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할 겨를 없이 택시기사에게 판사의 집까지 가는 길을 설명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정원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판사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하게 노후를 보내는 부부 같았지만 나는 그들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다. 판사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점심식사는 했어요? 안정 군."
"지금 밥이 넘어 가겠어요. 잃어버렸던 애인을 찾을 판인데… 당신도 참…."
판사의 아내가 입술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하나 어디 있어?"
"다리가 빨리 회복됐네. 개들이 엄청 물어뜯던데…."
판사는 손에 있는 분무기로 나의 얼굴에 물을 뿌리며 말했다. 나는 뺨에 흐르는 물을 손으로 닦은 다음 판사의 앞에 앉았다.
"하나가 어디 있는지 말해!"
"하나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돈을 내놓아도 모자랄 판에 감히 명령을 해! 건방진 놈!"
"천사들이 다 그렇지 뭐! 어디 한두 번 당해요. 자기들만 착한 줄 알고 여기 저기 날뛰는 꼴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제대로 하는 건 하나도 없는 것들이."
나는 그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집안을 뒤져 하나를 찾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릎을 펴고 일어나 제일 오른쪽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침대에서 뒤돌아 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하나의 뒷모습과 똑같았고 머리카락 길이도 기억속의 길이와 똑같았다.
나는 온 몸의 근육이 강하게 수축하는 것을 느꼈다. 그 수축 중에 다리 근육의 수축은 더 빨리 그녀에게 가도록했고 얼굴 근육의 수축은 웃는 표정을 만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간 후,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녀의 몸이 나를 보도록 잡아 당겼다. 하나의 얼굴이었다. 나는 몸의 모든 곳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눈물과 함께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의 몸과 내 몸이 닿자 더 많은 눈물이 났다. 많은 눈물은 큰 소리를 내며 몸 밖으로 나오고 있었고 눈물이 만든 벅찬 기쁨에 나는 날아 갈 것 같았다. 그리고 되도록 빨리 이 소식을 천사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와의 대화였다. 많은 질문과 대답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몇 마디 말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또 그녀의 목소리가 주는 평안을 빨리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주는 평안이란 내가 불안해하고 약해질 때마다 용기와 사랑을 주던 목소리를 들을 때 생기는 내 영혼의 반응이었다. 나는 하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불안이 떠나갔었고 약해졌던 마음이 단단해졌었다.
나는 그녀의 첫 번째 대답을 고를 수 있었다. 내가 첫 번째로 무엇을 물어보느냐에 따라 그녀의 대답이 달라지니까. 내가 고른 질문은 그녀의 건강을 물어보는 것도 아니었고, 그녀가 무엇을 하며 몇 달을 보냈는가도 아니었고,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의 종류를 물어보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하나가 맞아요?’라고 물어봤다.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대답을 고르면서 유심히 쳐다본 그녀의 얼굴이 하나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녀의 코는 하나의 코와 비슷한 높이였지만 좌우의 넓이가 하나보다 넓었고 양쪽 콧구멍의 크기가 달랐다.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한 부위도 하나보다 더 아래에 있어서 이마가 좁았고 눈썹의 높이도 어딘가 이상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서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 없이 앉아 초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녀의 얼굴 앞에 내 얼굴을 가져다놓고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방에서 나와 판사와 박사를 찾았다. 그들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는데 밥과 반찬이 사람이 먹는 것과 똑같았다. 나는 비어있는 의자에 몸을 넣어 앉은 후, 그들의 입에서 음식물이 없어 질 때를 기다리지 않고 질문을 했다.
"하나가 아니잖아! 저 여자는 누구야? 하나와 닮은 사람을 미끼로 나를 부른 건가? 진짜 하나는 어디 있지?"
"하나는 많아. 방마다 하나가 있을 거니까 들어가서 네가 찾는 하나가 어디 있는지 알아 맞춰봐!"
나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방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고 밥을 먹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판사는 내가 나온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총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서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가슴을 더듬어 심장의 위치를 확인 한 후, 눈을 높게 들었다. 그리고 곧, 악은 도대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악은 존재한 이후로 항상 더 잔인하게, 더 간교하게, 더 빈번하게 세상을 괴롭히고 있다. 그들의 끝을 예견하려면 지금을 시작으로 봐야한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그들의 방법은 다양하고 속기 쉽다. 사람을 죽이려는 그들의 노력은 사람을 살리려는 우리의 노력만큼 크다. 나는 악을 이해할 수 없다. 왜 사람을 죽이려는 걸까? 왜 뱃속에 있는 아기를 꺼내려는 걸까? 왜 사람들을 마약의 쾌락으로 몰아넣다가 결국 고통 속에서 죽게 할까? 사람들에게 폭력과 이간질을 훈련시키는 이유는 뭘까? 악은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을 할까? 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그들에게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게 해주는 것은 불가능할까? 그들은 회개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을까? 그들의 마음은 어떻게 도덕, 법, 선의 지배를 무시할 수 있을까? 내가 악을 이해하는 방법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악은 또 다른 선으로 세상 속에서 적당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그 역할이 혹시, 선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악을 허용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선해지려는 마음이 들 정도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