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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천사의 후예들
작가 : paulpark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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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지막 만찬 - 4
작성일 : 16-09-26     조회 : 496     추천 : 0     분량 : 6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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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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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처럼 생긴 여자가 내 무릎에 얼굴을 넣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운 후 질문을 뱉었다.

 

 "당신은 제가 사랑하는 여자와 얼굴이 똑같아요. 그리고 금방 죽은 여자와도 얼굴이 똑같아요. 당신은 하나가 맞나요?”

 "저는 하나가 아니에요. 혹시, 하나가 지금 제 얼굴의 주인이에요?"

 "얼굴의 주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저는 원래 이 얼굴이 아니었어요. 어떤 사람들이 저의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이곳에 가뒀어요.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이곳에 당신과 얼굴이 똑같은 사람이 몇 명 있죠?”

 "6명이에요. 저는 그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미치겠어요. 저랑 똑같이 생긴 사람들을 보는 것은 역겹고 징그럽기 짝이 없어요. 주인남자가 올 지도 몰라요. 빨리 저를 구해주세요."

 

  나는 그녀를 탈출시키기 위해 창문을 막고 있는 굵은 철사를 손으로 벌리려했다. 하지만 철사는 그 위치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철사에 닿았던 내 손톱만 부러졌다. 그때 판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빨리 빨리 해야지! 지금이 벌써 1시야, 이래가지고 언제 하나를 찾고 대호병원에 2시까지 가겠나. 그리고 창문으론 아무도 나갈 수 없으니까 괜한 고생 하지 말고 얼른 다른 방으로 가서 진짜 하나를 찾아봐!"

 "6명의 여자들을 하나처럼 성형수술 한 이유가 뭐지?”

 "악마들이 하는 일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서 물어?”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야."

 "마지막이 언젠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놈이 어디서 승리가 네 것이라고 말을 해!"

 

  판사는 눈으로 독을 뿜으며 멱살을 잡고 숨을 조였다. 하지만 나는 간단히 그의 손을 걷어내고 방에 있던 여자와 다음 방으로 갔다.

 

  세 번째 여자는 하나에겐 없는 팔뚝의 큰 점이 있어서 나는 그녀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두 명의 여자와 함께 네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 있는 여자는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그녀의 뒷모습이 하나와 똑같은지 비교했다. 잠시 후, 특별히 다른 곳을 찾지 못한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 돌아누워 달라는 부탁을 했다. 잠결에도 부탁을 잘 들어준 그녀의 얼굴은 검은색이었다. 그녀는 한국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손짓으로 그녀에게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고 그녀는 간단한 소지품을 주머니에 넣은 후, 나를 따랐다. 나는 세 명의 여자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계단은 미끄러웠고 많은 무게를 잘 견디지 못할 만큼 약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등을 밀어주고, 발이 놓일 위치를 말해주며 긴 계단의 끝에 섰다.

 

  2층 바닥엔 수십 마리의 뱀이 있었다. 그 뱀들은 우리를 보자 허리를 꺾어 기어왔고 우리는 그들을 피할 궁리도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뱀들은 우리를 에워싼 후, 혀를 내밀어 입맛을 다셨다. 나는 등 뒤로 여자들을 숨기고 뱀의 눈을 쳐다봤다. 뱀들은 언제라도 나와 여자를 물어뜯을 기세였다. 나는 주먹을 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뱀 사이를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문을 닫았다.

 

  방은 두꺼운 커튼이 창문을 가리고 있어서 어두웠고 조명도 켜지지 않아 하나가 있는지 확인하기 힘들었다. 나는 형광등의 스위치를 찾기 위해 손으로 문 앞의 벽을 더듬었지만 벽지 외에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다. 어둠속에서 발을 옮기는 것이 불편했던 나는 목소리로 하나를 불렀다.

 

 "하나야! 내 목소리가 들리니? 대답해봐!"

 "누구세요."

 "나야, 오빠야! 하나 여기 있니?”

 "가까이 와서 나를 구해줘요. 오빠."

 "어디에 있어? 여기는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가 않아 계속 말해봐 내가 네 목소리를 따라갈게."

 

  하나는 목소리로 내 발걸음을 인도했고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 몸을 움직여 하나의 발가락 앞에 섰다. 내가 자신의 발가락을 건드리는 것을 느낀 하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으며 훌쩍거렸다. 나는 그녀를 안아주기 위해 팔을 벌렸다. 하지만 그녀는 내 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키가 컸고 뼈도 단단했다. 나는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조명에 비춰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 하나가 아닌 것을 알게 됐다. 아니, 그녀의 이름과 수술 받은 얼굴은 하나가 맞았지만 내가 찾고 있는 하나가 아닌 것을 알게 됐다.

 

  복도로 나온 나는 다시 뱀들에게 둘러싸였다. 내 옆에 있던 세 명의 여자는 뱀이 무서워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서서히 거리를 좁혀 기어오는 뱀들의 눈을 교대로 쳐다봤다. 뱀들의 눈에선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 바람은 뜨거운 나의 마음과 꿈을 향한 열정을 순식간에 식혀버렸고 나의 마음은 우울한 사람의 마음처럼 변했다. 나는 갑자기 하나를 찾는 것이 귀찮아졌고 이 집을 빨리 나가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들은 내 생각이 이렇게 변한 것을 눈치 챘는지 멀리 있던 뱀들까지 가까이와 눈을 크게 뜨며 겁을 줬다. 나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뱀들은 새롭게 생긴 공간으로 전진했고 나는 다시 뒤로 물러나다 벽에 등을 부딪쳤다. 내가 뒤로 더 물러날 수 없게 되자 뱀 한 마리가 개에게 물렸던 내 다리를 물었다. 뱀은 자신의 허리보다 더 크게 입을 벌렸으므로 다리를 통째로 입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숙였다. 내 비명소리에 놀란 뱀들은 뒤로 살짝 물러나다가 내가 힘없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몸으로 기어 올라왔다. 어떤 뱀들은 목을 조르기 위해 어깨에서 목 뒤를 돌아 이동했고, 어떤 뱀들은 몸통과 손을 감았고, 어떤 뱀들은 발목을 휘감아 일어설 수 없게 했다. 나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뱀들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점점 폐로 들어오는 산소의 양이 줄어들었고 뱀이 깨문 다리에서 시작된 마비가 허리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빠져 나갈 수 없는 죽음에 갇혀 버린 느낌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판사가 내 심장에 다리를 올려놓고 침을 뱉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듣는 것 밖에 없어서, 아니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누워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별 다른 것이 없었다. 천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말과 오늘 작전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내가 아무런 호응도 없이, 아무런 반항도 없이, 아무런 분노도 없이 누워만 있는 것에 화를 내며 갈비뼈를 발로 찾다. 그리고 내 몸에 붙어 있는 뱀에게 사라지라고 명령했다. 뱀들은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분해되는 약품처럼 공기 중에서 사라졌다. 나는 뱀들이 잡고 있던 곳곳의 혈관이 풀리며 숨을 쉬는 것이 쉬워졌고 관절과 근육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판사는 내 목을 자기 손가락 사이에 넣고 혓바닥으로 볼을 핥았다. 나는 그의 혀가 내 입 쪽으로 왔을 때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려 그의 혀를 물어뜯었다. 판사는 비명도 지를 수 없는 고통 속에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계단 밑으로 내려갔고 나는 입에 들어 있는 그의 피를 뱉어낸 후 일어섰다. 다음 방은 내 바로 앞에 있었다.

 

  나는 뱀들을 자유롭게 놔둔 것이다. 그들이 주는 나쁜 영향을 그대로 다 받고 판사를 기다린 다음 그를 공격한 것이다. 이제 그는 악을 표출하는 중요한 수단이 없어졌으니 천사들과 싸울 때 힘이 많이 들 것이다. 내가 나의 의도나 깊은 심리까지 작전에 사용한 것은 내 마음을 꿰뚫고 있는 판사를 속이기 위해서였다. 판사는 내가 뱀들에게 공격당해 모든 열정과 꿈을 잃어버린 줄 알고 내게 와서 목을 졸랐을 것이다. 아마도 내 열정이 가득할 때보단 실망과 실의가 조금이라도 있을 때를 기다린 후 나를 죽이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나는 일부러 깊은 절망으로 내려갔다. 내 맘 구석에 보석처럼 숨겨놓았던 소망을 잠시 잊은 채, 어둠에서 그를 기다린 것이다. 나 혼자 그 많은 뱀을 없앴다면 힘이 들었겠지만 판사가 없애주니 쓸데없는 곳에 들어가는 힘이 낭비되지 않았다. 나는 많은 임무를 수행하며 악은 선을 피해 행동한다는 것을 알았다.

 

  악은 선이 강한 곳에선 힘을 쓸 수 없기에 조금이라도 선의 힘이 약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 틈을 노리는 것이다. 그래서 악을 조정하기 위해선 악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둠속에 있는 악을 없애기 위해서 빛으로 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어둠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 그들의 허점이 있는 곳에 빛을 비추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창녀들의 삶을 변화시키겠다며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은 선의 수고스러움을 피하기 위한 나태다. 창녀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가 그녀들의 허점을 파고들어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섯 번째 방엔 두 번째 여자와 얼굴이 비슷한 여자가 벽을 보고 앉아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정신이 돌아오기를 기도한 후 방을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방 앞에서 시계를 봤다. 시침은 2시에서 약간 모자란 곳에 있었고 분침은 시침 뒤에, 초침은 분침 앞에 있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오래 참았다가 내뱉었다.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돌리자 문 속에 있는 자물쇠가 풀어졌다. 나는 그 문을 당겨 방으로 들어갔다.

 

  하나는 흰 색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나의 코는 예전 그대로였고 눈동자는 선명했으며 팔은 몸과 어울리게 밑으로 내려져 있었다. 그녀의 이마를 살짝 덮은 머릿결은 조명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고 턱과 쇄골은 좌우측의 높이가 같아서 보는 사람의 마음이 삐뚤어지지 않게 했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며 영혼의 깊은 만족이 만든 미소를 지었다. 내 맘은 따뜻해졌고 내 귀는 천사들이 보낼 박수소리와 환호를 미리 들었다. 나는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그동안 고생한 서로의 마음이 먼저 인사한 후, 의식이 만든 말을 나중에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하나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한쪽으로만 가는 열차처럼 내 마음만 하나에게 갔고, 하나의 마음이 내게 오지 않았다. 나는 이상했다. 실종의 충격이 아직도 하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하나가 마음을 열 수 없는 것은 아닌 지 걱정됐다. 나는 하나의 무릎에 있던 내 얼굴을 하나의 얼굴 앞으로 가지고가 코와 코를 맞댔다. 그런데 그녀의 코는 차가웠고 숨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하나가 죽은 것이라고 인식한 나의 뇌는 몸의 모든 영역을 비상체계로 만들었다. 동공이 갑자기 커지고, 대동맥의 혈류량이 급증했으며 종아리에 있던 혈액이 심장으로 돌아오지 않아 다리가 무거워졌고, 횡격막이 제 위치를 지키지 못해 딸꾹질이 났다. 그리고 손톱 밑의 피부는 혈액이 없어져 파랗게 변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피부를 만졌다. 피부는 손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 피부가 이상해서 노크하듯 두드려봤더니 꼭 나무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녀를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머리카락을 만져본 후 그것이 하나와 똑같이 만든 마네킹인 것을 알았다.

 

  나는 크게 웃었다. 판사의 말을 믿고 이곳에 와 하나를 찾은 두 시간이 아까워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그냥 웃었다. 후회한다고 시간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태연한 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 판사와 의사를 찾았지만 1층엔 아무도 없었다. 핏자국이 현관을 통과한 것으로 봐선 대호병원으로 출발한 것이 틀림없다. 나는 두 번이나 다친 다리에 통증이 있었지만 이빨을 꽉 깨물고 밖으로 나갔다.

 

  도로에 발을 내딛었을 때 주변에 있던 가로등이 켜졌다가 꺼졌다. 나는 가로등을 쳐다보던 눈을 하늘로 돌렸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검게 변했고 곧 비를 뿌렸다. 나는 눈을 감고 비를 맞았다. 비는 내 몸 구석구석을 씻어 깨끗하게 했다. 나는 비만큼 많이는 아니지만 눈물을 흘렸다. 하나를 찾지 못한 억울함이 눈물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리움이 짙어져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리가 아파서도 아니고 조한이 곧 죽는 다는 사실 때문도 아니었다. 내 눈물은 비가 내려서 나온 것이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눈물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빗물이 눈물을 감춰줬기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눈을 떴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눈물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차가 다니는 곳까지 걸음을 옮겼다. 세상은 밤처럼 어두웠고 바람이 불어 쌀쌀했다. 나는 지나가는 차들 중에 빈 택시를 찾아 손을 흔들었다. 곧 택시가 내 앞에 섰다. 나는 뒷좌석에 몸을 싣고 대호병원으로 가주길 부탁했다. 기사는 고개를 돌려 나를 잠깐 쳐다본 후, 다시 앞을 보며 핸들을 돌렸다.

 

 "비는 겉을, 눈물은 속을 씻었군요."

 "저는 아직도 더러워요."

 "깨끗하게 씻긴 몸과 영혼인데 왜 아직도 더럽다고 말하세요."

 "하나는 도대체 어디 있을까요?”

 "하나가 어디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옆에 늘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그 인형을 가지고 오지 그랬어요."

 "인형은 싫어요."

 "생명이 있는 것은 늘 같이 있을 수 없어요. 사랑은 이별 속에서 완성 되잖아요."

  나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고 들리지 않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판사가 하나를 찾지 못해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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