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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천사의 후예들
작가 : paulpark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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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용돌이 - 1
작성일 : 16-09-02     조회 : 706     추천 : 0     분량 : 5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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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소용돌이

 

  어제는 마치 성격이 곱지 못한 누군가가 나의 일상에 관여해 불행과 불운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안 될 수 없었던 일이 안되었고 당연히 되어야 하는 일도 되지 않은 하루였다. 만약, 신이 나에게 ‘소원을 들어 줄 테니 어제를 하루 더 살라’고 말한다면 나는 소원을 포기하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니, 평생에 어제 같은 날이 어제로만 끝나게 해달라는 것이 나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쨌든, 기억을 순서대로 바꿔 어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오전에 있었던 재판에서 내가 변호한 피고가 검사의 구형보다 더 많은 형량을 받았다. 나는 창피해서 황급히 법정을 빠져 나오다 피고의 엄마에게 뺨을 맞았다. 나는 그녀를 뒤쫓아 가 발을 걸었지만 넘어진 건 나였다. 그녀는 넘어진 나에게 발길질을 했고 나는 그녀의 발을 피하지 못했다. 잠시 후, 나는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내 차가 타이어가 펑크가 난 채 기울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쪼그라든 타이어에 발을 올려놓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마치 옆에 있었던 것처럼 금방 도착한 긴급출동기사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타이어를 교체해줬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핸들을 돌렸다. 그리고 곧 주차장 기둥과 차의 뒷문이 맞닿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차에서 내려 발로 기둥을 찼다. 그러자 곧 엄지발가락이 퉁퉁 부어올랐다. 나는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로 갔고 깁스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의사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발가락에 얇은 붕대를 감아준 후 나를 돌려보냈다. 병원을 나오며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넘어 있었다. 혹시, 사무실로 중요한 연락이 왔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그만뒀잖아요."

  나는 짜증 섞인 그녀의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판사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 담엔 잘 봐줄게. 그런데 너무 조금 가지고 오면 안 가지고 온 것하고 똑같아! 잘 알면서."

  나는 전화를 끊고 침을 뱉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로 돌아와 넥타이를 풀어헤친 나는 책상에 앉아 서류 뭉치를 멍하니 쳐다봤다. 나의 시선은 곧 책꽂이 옆에 있는 달력으로 옮겨졌고 하나와의 약속이 표시된 숫자에 고정됐다. 나는 동그라미가 그려진 날짜가 오늘이라는 것을 알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순간, 누군가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껏 그의 발을 짓밟고 내 목을 감싼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뒤로 기울어지더니 곧 바닥에 꼬꾸라졌다.

 

  나는 그가 몸을 추스르기 전에 그의 몸에 올라타서 얼굴을 가린 헝겊을 벗겨냈다. 그러자 형의 얼굴과 똑같은 얼굴이 나왔다. 형은 주먹으로 내 배를 힘껏 때리고 문 밖으로 도망갔다. 나는 형을 쫓아가려던 다리의 움직임을 멈추고 방으로 돌아갔다.

 

  힘을 써서 배가 고파진 나는 자장면을 시켰다. 오래 기다린 후 도착한 자장면의 면발은 고무줄 같았다. 하지만 허기가 재촉하는 젓가락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러다가 한참을 씹었는데도 그대로인 면발 하나를 손가락으로 꺼냈다. 고무줄이었다. 나는 배가 너무 고팠다. 고무줄이 나왔다고 남은 자장면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양념까지 다 먹었다. 하지만 잠시 후, 배가 몹시 아파왔다. 나는 간신히 화장실로 가서 배에 힘을 주었다. 곧 대장에 격렬한 운동이 일어나면서 식은땀이 등줄기, 이마, 코끝에서 나왔다.

 

  화장실을 몇 번 더 드나든 후 뱃속이 진정된 나는 땀이 난 몸을 수건으로 닦아낸 후 시간을 확인했다. 6시 5분이었다. 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이동합니다."

 "하나야, 왜 전화기가 꺼져있어. 오빠 지금 출발하니까 시간 맞춰서 나와. 알았지. 사랑해. 보고 싶어. 안녕."

 

  나는 운전할 힘이 없어서 택시를 탔다. 그런데 길이 너무 막혔다. 게다가 비까지 내려 택시는 도로에 한 참 동안 서있었다. 나는 시트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차츰 빗소리가 거세졌고 곧 비가 철을 뚫어 버릴 것 같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거북이처럼 움직이던 택시에 사고가 났다. 뒤차가 택시를 세게 박은 것이다. 나는 목이 심하게 꺾이며 어깨와 뒷목에 있는 근육이 단단해졌다. 기사는 차에서 내려 가해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빗물이 붙어있는 유리창 넘어 가해자의 얼굴을 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하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가 반복됐다. 기사가 돌아와 수표 두 장을 나에게 내밀더니 입 끝을 올렸다. 나는 기사의 손을 살짝 밀었다. 돌아가는 그의 손이 주머니로 들어갔다.

 

  가까스로 약속 시간 안에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는 택시에서 내려 카페로 걸어갔다. 투명한 유리창 안에 하나의 뒷모습이 보이자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나는 가슴이 뛰는 박자에 맞춰 그녀가 앉아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하나야, 많이 기다렸지."

  몸을 뒤로 돌려 나를 쳐다본 그녀는 하나가 아니라 하나와 뒷모습이 비슷한 여자였다. 나는 가볍게 목을 내려 사과한 후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시킨 커피가 차가워 질 때까지 하나는 오지 않았다. 나는 두 손을 맞잡고 비비다가 한 쪽 손의 손톱을 다른 손의 지문으로 문질렀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하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파고들었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하나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하나의 친구들에게 연락해 그녀가 있을 법한 곳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하나의 친구들을 모른다. 하나의 직장에 전화해 갑자기 생긴 야근이 없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하나는 직장이 없다. 나는 하나의 어머니에게 전화해 그녀가 잊고 있던 집안행사를 가르쳐 주셨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의 어머니가 살아계시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녀의 집에 가보기로 했다.

 

  나는 폭이 좁은 여러 개의 계단을 올라 그녀의 집 앞에 섰다. 나는 그녀의 집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배웅의 끝은 언제나 집 앞 도로까지였다. 내가 집을 구경시켜달라고 말할 때마다 그녀는 적절한 핑계를 댔었다.

 

  나는 깊은 숨을 몰아 쉰 다음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옆집에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곧 남자 한 명이 모자를 눌러쓴 채 그 문에서 나왔다. 나는 남자를 쳐다봤고 남자도 나를 쳐다봤다. 남자의 눈은 동그랗지 않았다. 직사각형에 가까운 타원형이었고 양쪽 눈이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숫자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남자의 등은 옆으로 굽어져 있었다.

 

  유심히 보지 않아도 척추 관절이 이상한 위치로 옮겨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은 곧 열렸지만 하나의 집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남자를 다시 쳐다봤는데 그 때 남자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렸다. 모자 속에 있던 남자의 이마는 심하게 솟아있었고 흉터로 보이는 붉은 피부가 머리끝에서 시작해 한쪽 귀까지 이어져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계단에 앉아 손목을 돌렸다. 손목에 감겨진 시계의 시침이 숫자 '10'을 가리키고 있었고 분침은 시침 바로 옆에 놓여 있었고 초침은 평소보다 느리게 원을 그리고 있었다. 계단이 무척 차가워서 엉덩이에 구두를 깔고 앉은 나는 창문을 흔드는 매서운 바람소리를 들었다. 하나가 저 바람 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 상상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 상상을 지웠다.

 

  11시. 나는 하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또 같은 목소리의 여자가 나왔다.

 "하나야, 무슨 일이야. 전화기는 꺼져있고 너는 아무 연락도 없고…. 하나야 빨리 연락 좀 해."

  나는 옷에 달린 모든 단추를 잠근 다음 팔짱을 끼고 몸을 움츠렸다. 내려진 시선이 발에 고정됐다. 신발이 없는 한쪽 발이 나와 같았다. 나는 발가락을 구부렸다. 그리고 발가락을 폈다. 나는 발가락을 다시 구부렸다. 그리고 곧 발가락을 다시 폈다. 발가락을 계속 움직이자 12시가 됐다. 어제는 이랬다.

 

  나는 나의 눈꺼풀을 꿰뚫는 빛의 힘 때문에 눈을 떴고 잠에서 깼다. 꿈을 꾸지는 않았지만 요란한 상상과 헛된 기대가 만든 이야기 속을 걸었던 것처럼 의식과 육체 모두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서 정신을 맑게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젯밤 나는 어떻게 잠이 들었던 걸까? 탈진한 육체가 무의식으로 도망갔기 때문일까? 규칙적인 생활양식을 선호하는 뇌가 눈을 감게 하는 근육에 수축을 명령했기 때문일까? 아니, 그런 것은 제쳐두고 하나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도 내가 어떻게 잠들 수 있었단 말인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지 못한 후회가 내 맘 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곧 후회는 원망으로 바뀌었다. 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나의 실종이 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내가 싫어졌다. 약속을 오늘로 잡은 것도 나였고 약속장소를 정한 것도 나였다. 만약 하나가 잘못된다면 그건 모두 내 탓인 것이다.

 

  잠시 후, 나는 입 주위에 묻은 침을 손등으로 닦아낸 후, 손등에 묻은 침을 바지에 닦으며 일어섰다. 나는 무릎이 뻣뻣해 문 앞까지 걷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고 엉덩이 밑에 눌렸던 구두가 잘 펴지지 않아 발가락이 아팠다. 나는 초인종을 누르면서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같이 눌렀다. 제발, 둘 중 하나에서라도 하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음성이 들리길….

 

  인터폰은 아무 반응이 없었고 수화기에서만 음성녹음을 알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문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아는 것을 행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하나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한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랐고 솟아 오른 생각이 하나를 찾아나서야 하는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무뚝뚝한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한 다음 알고 지내던 형사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휴대폰이 방전되어 꺼져버렸다. 나는 요금을 좀 더 주기로 하고 택시기사의 휴대폰을 빌려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성대에 물기가 빠진 푸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사는 내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용건을 물었다. 나는 여자 친구가 실종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형사는 가벼운 한 숨을 내쉬더니 여자 친구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말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형사에게 머뭇거리는 숨소리를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주민등록번호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년월일로 구성된 앞자리조차 확실하게 알 수 없는 내가 바보 같았다. 나는 조금 더 머뭇거리다가 하나의 집주소를 가르쳐줬다.

 

 "변호사님 일단 경찰서로 오세요."

 "가고 있어."

  나는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다시 말했다.

 

로즈마리 16-09-22 11:04
 
되는 일이 없는 주인공이네요.ㅋㅋ
  ┖
paulpark 16-09-22 12:22
 
ㅋㅋ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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