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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후예들
작가 : paulpark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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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용돌이 - 2
작성일 : 16-09-05     조회 : 66     추천 : 0     분량 : 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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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서 앞에 도착한 나는 용무를 물어보는 의경을 뿌리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형사는 자기 자리에 앉은 채 나에게 짧은 거수경례를 했다. 나는 그의 인사를 받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았다. 우리들의 대화는 바로 시작됐다.

 "실종처리 하겠습니다. 원래는 며칠 더 연락이 안 되어야 하지만 변호사님이니까 그냥 해드리죠."

 "언제까지 찾을 수 있을까"

 "죽지만 않았다면 곧 찾을 수 있겠죠."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부탁을 받아드리는 형사의 자세가 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사는 자신에게 부탁하는 나에게 최고의 결례를 범했다. 결례의 범위는 형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감히, 하나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니, 나는 참을 수 없어서 그의 목을 비틀며 주먹을 휘둘렀다. 형사의 치아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의 입 밖으로 솟구치는 피가 내 셔츠에 튀었다. 곧 주위의 형사들이 나에게 몰려들었다. 나는 그들에게도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들은 내 주먹을 피한 후 팔을 꺾어 나를 넘어트렸고 무릎으로 목을 졸랐다. 나는 그들의 제압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몸에 있는 모든 힘을 뺐다.

 

  유치장은 처음이었다. 철창 밖에서 피의자들을 만나 거짓말을 가르친 적은 많았지만 안에 들어와 본 적은 없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건들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술에 취한 노인 두 명과 온 몸이 문신으로 뒤덮인 어린 녀석이 군데군데 틈이 있는 마루에 몸을 붙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인 두 명은 서로 껴안은 체 잠이 든 것 같았고 젊은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친 후, 손가락 끝까지 뻗어있는 용 문신의 꼬리를 움직였다. 나는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뭘 봐, 쓰레기야!"

  그 녀석은 고개의 각도를 약간 올린 후, 손가락을 구부려 동그란 주먹을 만들었다.

 "형, 앉아봐!"

 

  나는 앉았다. 서 있는 것이 힘들어서 그랬다. 결코, 그 애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린 녀석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 다음, 얼굴을 시작으로 팔에 찬 시계와 구두까지 시선을 옮겨 나를 훑었다.

 "왜 들어온 거야"

 "이를 부러뜨렸다."

 "누구 이?"

 "형사."

 "손 안 아파?"

 "손가락이 아파."

 "싸움을 안 하다가 하니까 그렇지."

  나는 질문과 대답을 하는 동안 그녀석의 얼굴을 자세히 훑었다.

 "너 몇 살이니"

 "열다섯. 형은"

 "서른 둘."

 "형, 너무 조바심 내지마. 언젠간 찾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 녀석에게 하나의 실종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런데 뭘 찾는다는 거지? 나는 녀석을 쏘아붙였다.

 "너, 내가 누구를 찾고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

 "…"

 "말해봐! 네가 어떻게 알고 있냐고"

 "형 같은 사람이 누구를 때렸다면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 그것도 형사의 이를 부러트렸는데…."

 

  나는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나의 실종이 지금 내 앞에 있는 보잘 것 없는 영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 아이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으로 대화를 마치려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동민이었다.

  철창의 문이 열렸다. 경찰은 내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동민을 노려보던 눈빛을 풀고 유치장 밖으로 나왔다. 동민은 등을 보이고 나가는 나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형,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형사는 한 손으로 입술을 부여잡고 들릴 듯 말 듯 한 크기의 음성으로 나에게 말했다.

 "이는 걱정 마세요. 치과 몇 번 다니면 괜찮아 질 거예요."

 "미안하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돈 좀 줄까"

 "…"

  형사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지갑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 여섯 장을 꺼냈다. 지갑이 가벼워졌다. 돈을 받아든 형사는 고개를 숙이며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손을 들어 그 다짐을 격려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뒤를 돌자 주위의 형사들이 문까지 가는 길을 에스코트했다. 나는 또 손을 들어서 그들의 호의가 어색하지 않게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서 혹시 하나가 잠들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하나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와서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내 침대에 누워 배터리가 없는 자신의 휴대폰을 손에 든 채 잠들어 있는 상상이었지만 집 안 어디에도 하나는 없었다. 나는 냉장고 앞에서 한 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손으론 냉장고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고 눈은 감은 상태였다. 하나가 없다는 것이, 하나가 있는 곳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내가 갈 수 있는 곳에 하나가 없다는 것이 내 안에 슬픔을 만들었다. 나는 갑자기 커져가는 슬픔을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나의 실종을 받아들이며 느끼는 첫 번째 슬픔이었다. 그 슬픔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방 안에서 어둠만이 그 힘을 발휘할 때 느껴지는 공포하고는 달랐다. 불안과 초조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떤 에너지에 타들어가서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의 소유가 된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육체의 모습이 단 한순간에 동상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됐다는 것, 하나를 만나기 위해 움직이던 관절과 하나를 기억하던 뇌세포들이 하나의 실종을 눈치 채고 그들의 할 일을 멈춘 상태, 그 상태를 만든 어떤 에너지, 그 에너지에 타들어가는 나의 심장과 근육들, 태어나서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그래서 딱히 어떤 감정이라고 말할 수 없어서 촌스럽게나마 '슬픔'이란 단어를 붙인 묘한 기분은 몇 분 동안 계속 됐다.

 

  휴대폰의 배터리를 교체한 후 전원 버튼을 눌렀다. 대기화면이 나오기 전 비밀번호를 누르라는 화면이 먼저 보였다. 하나가 사준 핸드폰, 핸드폰의 초기설정도 그녀가 했을 텐데…. 나는 비밀번호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숫자 네 개를 연속해서 누르며 비밀번호를 맞추기 시작했다. 1부터 0까지, 어떤 규칙을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순서를 맞춰서 버튼을 눌렀다. 나는 한참 동안 숫자와 씨름하다 드디어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1004. 하나다운 숫자였다.

  1004? 순간, 나는 이 네 개의 숫자가 다른 곳에도 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싶었지만 흥분한 육체는 하나의 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무실 주차장에 있을 내 차를 생각하며 택시에 올랐다. 라디오 주파수가 표시된 작은 액정위로 현재 시간이 표시돼 있었다. 12:07. 배가 고팠다. 자장면은 먹고 싶지 않았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어제 걸었던 속도와 보폭, 팔의 움직임을 그대로 반복했다. 하지만 나의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불안한 미래가 예약된 것 같다. 나에겐 그 예약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하나의 실종이 나의 하루를 바꿔놓았다.

  나는 택시요금을 내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만 원짜리 몇 장이 옆으로 누워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구겨진 한 장을 꺼내 값을 치렀다. 몸을 돌린 택시기사를 살짝 쳐다봤더니 어제 저녁 나를 태운 그 기사였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택시에서 내렸다.

 나는 하나의 집까지 연결된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올라 그녀의 집 앞에 섰다. 그리고 도어락의 숫자패드에서 1. 0. 0. 4.를 눌렀다. 번호를 누르자마자 자물쇠의 힘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지체 없이 문 안으로 몸을 집어넣고 시선을 급하게 움직여 집 안을 훑었다. 하지만 하나의 모습과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더 찾아보지 않아도 하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하나대신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떤 향기가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몸으로 원을 그리며 그 향기를 다시 한 번 맡았다. 그 향기는 후각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맡아내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내 영혼은 그 향기가 하나의 것이라고 내 의식에게 말해주었다. 하나의 향기, 나의 굳은 마음을 녹이고 딱딱한 표정을 움직이던 하나의 향기가 나의 마음 깊은 곳을 만지기 시작했다. 현실과 이성이 지배하지 못하는 내 맘은 하나를 당장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하나의 얼굴에서 흐르는 평안함을 간절히 원했다. 그 표정과 그 사랑의 눈빛을 보지 않고선 숨을 쉬지 말자고 육체의 여러 기관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육체는 현실적이었다. 위와 장은 계속 에너지원을 흡수했고 심장은 불수의적인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마음과 육체의 이견으로 나는 살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가 앉았던 식탁에 앉아 두 손을 모은 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위아래의 눈꺼풀이 마치 자석처럼 착 달라붙어서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눈을 뜨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한다고 해도 어둠이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눈물은 하나의 실종을 인정하는 마음이 만든 것이었다. 나는 하나의 전화기가 꺼져 있을 때부터 하나의 집에 하나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까지 그리고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을 때부터 동민이라는 아이가 '꼭 찾을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했을 때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눈물은 불길한 예감을 만들었다. 벌레 같은 인간들이 하나를 데리고 있지는 않을까? 생명을 포기할 만큼 두려운 상황에 있지는 않을까? 살인마의 소파에 누워서 두 손과 두 발이 묶인 채로 들리지 않는 소리를 지르고 있지는 않을까? 불길한 예감은 흐르는 눈물의 양에 따라 더해갔다. 하나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지? 혹시, 내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 이런 짓을 한 것은 아닐까? 납치의 충격으로 기억을 상실한다면, 나는 그 기억을 어떻게 돌려놓을 수 있을까? 하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다시 시작해야 하나? 하나의 새롭게 시작되는 기억 속엔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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