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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후예들
작가 : paulpark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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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용돌이 -3
작성일 : 16-09-05     조회 : 91     추천 : 0     분량 : 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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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저녁이 다 된 시간까지 걱정과 슬픔의 감정 속을 걸어 다녔다. 아니, 그런 감정들에 파묻혔다. 마음이 걸어갈 수 있었다면 나는 소망이 있는 곳으로 마음을 옮겼겠지만 마음은 깊은 슬픔 속을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몇 시간이 더 지난 후 눈물이 그쳤다. 그러자 곧 안구가 건조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눈 주위를 문질러 주변에 있는 수분을 모았지만 별 소용없었다. 잠시 후, 뻑뻑한 안구 속에 하나가 나타났다. 눈 속에서 보는 하나의 모습은 아주 작았다. 얼굴에 표정이 없었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하나에게 다가가려고 몸을 움직였지만 그녀와의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그것이 내가 움직일 수 없어서인지 아니면 하나가 멀어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고 자유가 없어진 사랑을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 하나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자유, 하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유, 하나를 사랑하며 그녀와 관계된 비밀들을 알아갈 수 있는 자유가 없어졌다. 나는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그리움이 쇠사슬처럼 내 목을 감기 시작했다. 하나에 대한 걱정은 나의 마음을 묶는 수갑이 됐고 뜻하지 않은 이별은 나의 삶과 나의 영혼을 절망으로 떨어뜨렸다. 나는 마치, 고아가 된 것 같았다.

  하나는 동상처럼 서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다시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누굴까? 인터폰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며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일거라는 기대도 들지 않았다. 택배배달원이나 도시가스를 점검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액정에 비춰진 사람은 어제 봤던 앞집 남자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인터폰의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말했다.

 "하나 씨, 어제는 어떻게 된 거에요? 문 좀 열어보세요."

  나는 대답 없이 그가 화면에서 지워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계속 벨을 눌렀고 점점 더 앞으로 다가와 자신의 얼굴을 크게 보이게 했다. 하나와 이 남자와의 관계는 뭘까? 혹시, 이 남자가 하나의 실종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문을 열었다.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에 그의 눈이 환해졌고 나는 곧 그 눈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뒤로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균형을 잡은 그는 나를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하나 씨는 어디 있죠."

 "당신이 뭔데 하나를 찾아"

 "그러는 당신은요? 당신은 뭔데 하나 씨 집에 있는 거죠"

 "난 하나 약혼자다."

 "정말요"

 "그래"

 "그럼, 지금 하나 씨가 어디 있는지 알겠네요."

 "몰라. 몰라서 하나를 찾으러 온 거야."

 "하나 씨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니……. 당신 약혼자 맞는 거예요"

  어제 있었던 일을 다 말해주고서야 그는 하나의 실종을 이해했다. 그리고 식탁으로 가서 좀 전의 나처럼 울기 시작했다. 한 참을 그렇게 있던 그가 하나의 침실로 들어갔다. 나도 그를 따라 하나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망설임 없이 옷장 문을 열고 옷과 옷장의 뒷면 사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행동을 말렸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 씨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당신도 어서 찾아봐요."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하나의 화장대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선물했던 귀걸이와 목걸이, 각종 액세서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을 애써 무시하고 서랍 깊숙이 손을 집어넣었지만 특이한 것은 없었다. 그는 하나의 옷이 정리되어 있는 다른 방으로 향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 하나하나를 다 확인했고 정사각형으로 접혀져있는 티셔츠와 내의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러고 보니 그가 왜 하나를 기다렸고, 찾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하나를 짝사랑했을까? 아니면 하나의 먼 친척, 엄마친구의 아들, 초등학교 동창?

 

 "저는 이만 가볼게요."

 "왜?"

 "당신이 찾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잠깐만. 그런데 어떻게 하나와 친하게 지내는 거지?"

 "하나 씨가 저를 살려 줬어요. 자살하려고 했었는데 하나 씨가 저에게 용기를 줬어요. 하나 씨는 천사예요. 마음이 너무 예쁘고 착해요. 악마도 반할 성격에다가 외모도 너무 귀엽잖아요."

  그가 나간 후 소파에 몸을 기댄 나는 TV를 켜고 탁자에 다리를 올렸다. TV엔 코미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곧 그 웃음은 커져갔다. 하지만 그것은 즐겁거나 좋아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었다. 움직여서 경직을 푸는 입 주위 근육과 폐에 남아있던 공기들이 박자를 맞추며 나온 헛웃음이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세게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나는 얼음을 가득채운 시원한 물을 먹기 위해 식기건조대에서 컵을 집어 들었다. 컵에 물을 반쯤 따르고 냉동실에서 얼음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접시를 꺼내 비틀었다. 조각조각 떨어진 그것들을 컵에 떨어뜨리고 다시 냉동실에 넣으려는데 지갑처럼 생긴 작은 주머니가 보였다. 그 주머니는 냉동만두 위에 살포시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컵에 담긴 물을 마셨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도 시선을 손에 잡힌 주머니에 고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기도로 들어갔다. 나는 기침으로 그것을 뱉어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나는 폐에 들어간 물 때문에 호흡이 점점 힘들어져서 내가 가진 모든 피가 얼굴로 집중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몸이 힘없이 비틀거렸다. 잠시 후, 시야가 흐릿하게 변하며 나는 주저앉았다.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이 이렇게 어려워 질 수 있다니…. 나는 양손을 목으로 가져가 앞으로 튀어나온 연골주변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리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하나가 나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기에 나는 살아야 했다. 조금 후, 기도를 막고 있던 얼음조각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 녹았다. 나는 험한 숨을 몰아쉬며 부족했던 산소를 허겁지겁 빨아들였다.

 

  냉동실에서 발견한 주머니엔 약도가 그려진 종이 한 장이 있었다. 하나는 왜 이 주머니를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걸까? 그리고 이 약도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어제부터 급격하게 증가되는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초라해졌다. 스스로 낸 질문을 스스로 대답할 수 없는 내가 미웠다. 나는 손바닥을 곧게 펴서 나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몇 번을 그렇게 하면서 때리는 힘은 점점 커져갔다. 차라리 흉기로 팔뚝에 상처를 내면 좋겠지만 흉기를 찾아다닐 용기는 없었다. 잠시 후, 나는 소리를 크게 질렀다. 하나가 듣기를 바라며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 무의식이 의식에게 하는 충고였다. 그것은 아마,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 영혼이 육체를 빌려 쏟아놓은 긍정의 결의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은 후 뺨 때리는 것을 멈췄다.

  약도는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화살표와 주변상점의 상호, 골목길까지 잘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 약도는 그곳이 어느 지역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게나 유용한 것이었다. 아무리 그곳 주변을 잘 설명했다고 해도 그곳의 행정구역을 전혀 모르는 나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천사의 후예들' 약도 중간에 별표를 해놓고 적어놓은 단어였다. 그러니까 이 약도는 '천사의 후예들'을 찾아가기 위해서 만들어진 약도일 것이다. 나는 눈이 커지고 심장이 꽃처럼 활짝 펴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가 어딘지만 알아내면 하나를 찾을 수 있다고 나는 확신했다.

  나는 하나의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실행했다. 보조기억장치의 용량이 작은 컴퓨터라서 그런지 모래시계가 화면의 가운데 표시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정보를 검색 할 수 있는 홈페이지가 나타났다. 나는 초록색 네모 칸에 '지도'를 치고 엔터를 눌렀다. 지도를 검색하는 사이트를 클릭하고 '천사의 후예들'을 입력하니 정보가 없다는 안내문구가 나왔다. 나는 약도를 다시 보고 주변 상점의 상호를 일일이 검색했다. '미니슈퍼', '부흥상회', '소망철물', '아트빌라' 하나의 검색에도 수백 개의 정보가 표시됐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출력하고 주소가 비슷한 곳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필요 없는 주소들은 빨간색 볼펜으로 칠했고, 주소가 겹치는 곳은 형광펜으로 표시해 나갔다. 그 일은 새벽을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나는 피곤하지 않았다. 졸음도 오지 않았고 하품도 나오지 않았다. 정신은 명료했다.

  서울시 강북구 방학 2동. 모든 상점들의 공통된 주소는 여기였다. 나는 약도를 주머니에 넣은 후, 집 밖으로 튀어 나갔다. 아직 밝지 않은 세상은 조용했고 도로엔 아무것도 굴러다니지 않았다. 택시도 없었고 버스는 더더욱 없었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새벽공기가 소매 끝을 파고 들어와 온 몸이 추웠지만 바퀴가 땅위로 미끄러지는 것보다 더 빠르게 발바닥을 움직였다. 온 몸의 근육들은 평소보다 더 강한 수축으로 달리기를 도왔고 나는 드디어 그곳 주변에 도착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약도와 비슷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상점들의 위치와 골목의 크기 등을 비교하며 '천사의 후예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마엔 땀이 흐르고 있었고 입에선 하얀 김이 새어 나왔다. 양말은 축축하게 젖어버렸고 웃옷은 땀에 의해 피부와 밀착됐다. 잠시 후, '미니슈퍼'가 보였다. 바로 옆엔 '부흥상회', '소망철물'이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찾은 것이다.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갈비뼈를 밀쳐낼 것 같았고 갑자기 많아진 혈액량으로 인해 손목 쪽의 동맥이 파닥거렸다. 나는 침착하기 위해 애를 썼다. 바쁜 마음 때문에 '천사의 후예들'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지도에서 별표가 그려진 지점과 똑같은 곳이 보였다. 나는 숨을 멈추고 그곳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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