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천사의 후예들
'천사의 후예들'은 2층짜리 양옥이었고 담이 높지 않아 밖에서도 집 안이 다 보였다. 집 안엔 잔디가 깔린 큰 마당이 있었고 꽃과 나무가 곳곳에 있어 주변과 어울렸다. 잔디는 같은 높이로 자라나 있었는데 하얀색 테이블이 놓인 자리만 그렇지 않았다. 테이블 위엔 의자가 뒤집혀진 상태로 올려있었고 기와가 덮여진 개집은 비어있었다. 베란다엔 하얀색 옷들이 가지런히 널려 있었는데 그 종류가 수십 가지는 되어보였다. 삼각형 모양의 속옷과 사각형 모양의 속옷, 팔이 있는 러닝셔츠와 팔이 없는 러닝셔츠, 해군제복과 비슷하게 생긴 웃옷과 통이 작고 길이가 짧은 반바지, 발목을 덮을 수 있는 양말과 그렇지 못한 양말 등이 건조대에 널려 있었다.
머리 뒤로 해가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하늘을 봤다. 하늘 중앙에 박힌 태양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빛이 났다. 예전의 오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아침이었다. 나는 손으로 태양을 가리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감은 눈 속에서도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눈을 뜨기 위해 해를 등졌다. 내 몸만큼 확보된 그늘 속에 문고리가 보였다. 나는 그것에 손을 갖다 대고 팔을 당겼다. 곧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런데 내가 문이 열려 있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담을 넘어 들어가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주변의 큰 돌멩이라도 구해와 문고리를 내려치려고도 하지 않고, 손목을 살짝 미는 동작만으로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우연이라는 좋은 대답이 있었지만, 그것은 현상의 이유를 모른 척 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이 집으로 들어온 것은 분명히 어떤 이유 때문이다. 누군가의 계획일 수도 있고 내 초능력의 조정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근력의 과대한 증가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나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하나는 실종된 사람이 된 걸까?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니까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또 아무런 대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열린 문 속으로 들어가면 어제부터 나를 괴롭힌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집안의 구조는 간단했다. 방과 거실, 주방이 적당한 크기 안에 몰려 있었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이 벽의 끝을 파 놓아서 쉽게 위로 올라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을 한 바퀴 돌며 다시 관찰한 집은 방문이 다 닫혀있었고 거실엔 소파와 탁자, TV가 놓여있었다. 주방 옆엔 화분이 하나 있었는데 그 화분 속 식물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특이한 것이었다. 잎의 색깔과 크기, 모양이 독특했고 멀리서도 맡을 수 있을 만큼 진한 향기를 내고 있었다. 그 향기는 비슷한 어떤 냄새를 고를 수 없을 정도로 희한해서 누군가에게 그 향기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면 그냥 그 화분에서 나는 향기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벽의 끝을 파 놓은 계단 앞에 서서 하나가 2층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모습을 눈앞에 그린 후, 그 그림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계단을 빠르게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주먹이 꽉 쥐어졌고 팔이 앞뒤로 크게 흔들렸으며 튕겨지는 입술에서 뜨거운 호흡이 새어나왔다. 나는 태어나서 가장 긴장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2층엔 방이 두 개 있었다. 나는 첫 번째 방부터 들어갔다. 그 방은 책들로 가득 차서 문을 제대로 열기가 힘들었고 발을 내딛을 수도 없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책 틈새로 하나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책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두 번째 방 앞에선 잠시 멈춰 서있었다. 심하게 떨리는 심장이 폐를 자극해 기침이 나서 움직임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크게 내쉬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뜨거운 기운이 가라앉았고 서서히 기침이 멈췄다. 문고리를 잡고 오른 쪽으로 손목을 돌렸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나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모든 것이 급해졌다. 주위에서 문을 부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곧 복도 끝에 등받이가 없는 원형의자가 보였다. 나는 미끄러지듯 뛰어가 손으로 그것을 세게 쥔 후, 좀 전 보다 더 빠르게 문 앞으로 돌아와 문고리를 겨냥해 내리쳤다. 의자에 맞은 문은 힘없이 내 곁으로 왔고 열린 문으로 방안이 보였다. 그런데 방은 장판과 벽지를 빼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크게 소리쳤다.
"하나야! 하나야! 하나야!"
세 개의 방문이 동시에 열리고 6명의 남자들이 나왔다. 나는 그 중 키가 제일 작고 체격이 왜소해 보이는 한 명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하나 어디 있어"
"하나"
"하나를 어떻게 알지"
"도대체 넌 누구냐"
"혹시… 너"
"너, 누가 보냈어."
"이거 놔!" 6명이 한마디씩 했다.
"하나 어디 있냐고! 빨리 말해!"
멱살이 잡힌 남자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점점 숨 쉬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을 감았다. 나는 급하게 멱살을 풀었다. 남자는 철퍼덕 소리를 내며 거실바닥에 넘어졌다. 다른 남자들이 그를 크게 흔들며 정신을 차리게 했지만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긴장했다. 내가 남자를 죽인 걸까? 어떡하지? 젠장.
몇 초 후에 일어난 남자는 킥킥대며 나를 놀렸다. 주위에 있던 다른 남자들도 따라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순간, 나는 오이껍질에 있는 돌기 같은 것이 온 몸에 돋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곧, 몸 구석구석이 간지러워졌다. 그래서 목덜미와 가슴을 손톱으로 긁었고 옷 속으로도 손을 집어넣어 손이 닿는 곳곳을 빡빡 긁었다. 하지만 간지러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나는 거실바닥을 뒹굴며 온 몸을 긁었다. 남자들은 웃는 표정을 없애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곧 피부뿐만이 아니라 뼈와 근육, 위, 소장, 십이지장까지 간지러워졌다. 만약 거친 벽돌이 내 옆에 있었다면 피부가 벗겨 질 때까지 긁고 싶을 정도였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될 것 같은데."
"맞아, 여기가 '천후'라서 그럴 거야 빨리 밖으로 데리고 나가자!"
네 명이 나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이동은 편안했다. 구부러지는 관절을 잘 지지해 주었고 간지러운 부위를 긁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계단이나 장애물이 있을 땐 신체의 기울어짐에 대해 미리 이야기 해주었다. 나는 왔던 길을 지나가며 하나가 갇혀있을 만한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정원에 있는 여러 그루의 나무 뒤에도,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하나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대문을 통과 하자마자 간지러움이 사라졌다. 나는 조금 전 까지 나를 괴롭히던 피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피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의 색깔을 하고 있었고 작게 올라왔던 돌기들도 사라졌다. 그들은 나를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구겨진 옷과 박수를 친 후, 닫힌 문 앞에 섰다. 다시 들어갈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1초 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았다. 문은 또 열려 있었고 그들은 아직 마당에 있었다. 나는 그들을 쫓아가 앞을 막은 후, 소리쳤다
"앉아봐. 자식들아!"
여섯 명 모두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까부는 동생에서 보내는 형의 조용한 경고 같았다.
"너희들 잘 들어. 하나가 분명히 이 집에 있을 거야? 맞지"
"하나는 여기 없어."
"그럼 어디 있어? 아니, 그전에 너희들이 하나를 어떻게 알아"
"하나는 우리의 친구야."
"우리는 하나를 사랑해."
"하나와 우리는 형제야."
"그러는 당신은 하나를 어떻게 알죠."
"혹시 잘못 찾아오신 것 아니에요."
"난 그냥 들어갈게."
6명 중 한 명이 집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5명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난 두호, 당신 이름은"
"안정"
"하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죠"
"하나가 실종됐어."
"뭐"
"실종"
"정말이야? 믿을 수 없어!"
"언제, 누가, 왜"
"조용히 해봐! 저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세요. 안정 씨."
나는 하나와의 약속이 깨진 후부터 냉장고에서 발견한 지도까지 그리고 그 지도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밤을 센 일까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나 유치장에서 하나를 꼭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던 젊은 남자와 하나의 앞집 남자는 이야기에서 뺐다. 그 대신 내가 하나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썼는지 알 수 있도록 몇 가지 거짓말을 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그들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거짓말? 내가 왜 거짓말을 해."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에 대답해 보세요."
"하나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하얀색"
"아니야 틀려, 하나는 모든 색을 좋아해."
"하얀색이 모든 색이야." 천사 중 한 명이 내 편을 들었다.
"그럼, 하나가 좋아하는 음식은?"
"하나는 잘 안 먹었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도 잘 안 먹었어."
"그럼… 하나의… 직업은?"
"직업? 글쎄 특별한 직업은 없었는데."
"하하하 틀렸어. 하나의 직업은 천사야. 그것도 모르면서 하나를 사랑한다고? 그리고 하나가 당신을 사랑했다고"
나는 머릿속이 얼얼했다. 눈 속의 시각세포들은 무뎌졌고 귀 속의 청각세포들도 그랬다. 하지만 후각세포는 평소보다 더 예민해져서 그 화분에서만 나는 향기에 반응했다. 향기가 내안에 들어오니 평안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은 감정이 생겼다. 향기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그 작용도 특이했다. 어쨌든, 머릿속이 향기에 취해 잠들고 있었다.
이마를 건드리는 누군가의 손톱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떴고 하나가 보였다. 하나의 머리카락은 이틀 동안 자랄 수 있는 정도보다 더 자라나 있었다. 어깨를 살짝 덮었던 것이 허리까지는 아니어도 등을 완전히 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내려다보는 하나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고 입술은 열리지 않는 문처럼 담담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고개를 가져오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킨 후(몸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마치 날개가 나를 들어 올리는 것 같았다.) 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에 있었어."
하나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있진 않았어."
"이젠 내 곁을 떠나지마."
"이젠 오빠가 나를 떠날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나는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아."
"영원히 함께 한다는 것은 이별 속에서 완성되는 거야."
"하나야, 그렇게 말하지 마. 꼭 떠날 사람처럼 말하는 것 같잖아."
"오빠의 손을 잡고 싶었어. 따뜻한 손을 잡고 차가운 거리를 걷고 싶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손을 보여주고 싶었어. 미안해."
"왜?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하나야,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니? 말해봐! 내가 고쳐볼게!"
하나는 아무 말도 없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를 붙잡기 위해 몸을 옮겼지만 따라갈 수 없었다. 멀어져가던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하나의 볼 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