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이 집을 나간 후, 나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조한을 쳐다봤다. 얼굴의 대부분에 거즈가 붙어 있어서 그의 생김새를 자세히 관찰할 수는 없었지만 미남 같았다. 그의 왼 손 네 번째 손가락엔 은반지가 끼어있었다. 표면이 거칠고 색이 둔탁한 것으로 미루어 오래된 반지 같았다.
나는 이불을 길게 펴서 그의 발과 얼굴을 덮었다. 발과 얼굴을 따뜻하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잠시 후 잠에서 깬 조한은 자기를 시체 취급한다며 투덜댔다. 그래서 나는 이불을 그의 얼굴과 목이 보이도록 내려줬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내게 말을 걸었다.
"안정 씨, 정식으로 인사하죠. 저는 조한이라고 합니다."
"성은요"
"남잡니다."
"…"
"천사의 후예들에 책임자고 실종된 하나와는…"
조한은 갑자기 감정이 북받치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을 침대에 붙였다. 그리고 곧 흐느끼기 시작했다. 조한의 울음에 전염된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벽으로 갔다. 그리고 벽에 얼굴을 대고 눈물을 쏟았다. 우리는 한 참 동안 울었다. 그렇게 같이 울다보니 약간 창피하고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다시 울기로 하고 눈물을 닦았다. 조한도 눈물을 그치고 가슴을 들었다. 나는 조한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봤다. 얼굴로 유추한 그의 나이는 50대 중반 같았다. 그의 이마에 얕은 주름이 많고 코와 볼을 연결하는 부위에 지방이 볼록하게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성격을 알 것 같았다. 얼굴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가 그 사람의 성격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조한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좀 전에 관찰했던 주름들은 얼굴을 찡그리는 부위에 있지 않고 웃음을 짓는 부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입 끝이 올라간 것을 보면 확실하다. 그의 머리카락이 차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군데군데 하얀색이라는 것도 그의 성격이 온유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의 큰 눈엔 쌍꺼풀이 없다. 그는 쌍꺼풀이 없으면서도 눈이 큰 사람들 중에 하나다. 그의 키는 나보다 작지만 평균이하는 아니다. 173cm정도 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앉은키는 173cm의 키를 가진 사람보다 훨씬 작다. 그만큼 다리가 길어서 키가 커 보이는 체형이다. 그의 몸무게는 확실한 숫자를 말할 수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얼굴엔 살이 통통하지만 상체는 말라보이고 다리 근육은 단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여러모로 이곳의 착한 책임자처럼 보인다.
"하나는 정말 열심히 하는 천사였어요.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한 번 사랑하기로 한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사랑했고 곧 변화 시켰죠."
"사랑하기로 한 사람이 많았나요."
"쉬지 않고 일했으니 많았죠."
나는 기분이 나빴다. 하나가 다른 사람을 만났었다니… 그것도 여러 명을.
"그 일을 당신이 시켰어"
반말이 나왔다. 화가 난 입이 말끝을 짧게 했기 때문이다.
"진정하고 눈을 감아요. 안정 씨. 그리고 내 말을 들으세요." 나는 눈을 감았다.
"하나가 당신을 사랑해준 건 당신에겐 축복이에요. 그러니 하나가 당신만 사랑할 수 없었다는 것에 섭섭해 하지마세요. 하나는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 중에 당신을 제일 많이 사랑했으니까… 내가 말릴 정도로."
"하나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죠"
"저도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에요."
조한과 나는 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더 했다. 어떤 이야기에선 웃었고 어떤 이야기에선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참 동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조한은 다친 몸이 불편한지 누웠고 곧 잠이 들었다. 나는 배가 고팠다. 하지만 지하실엔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조한을 두고 잠시 1층에 올라가 먹을 것을 가지고 다시 내려오기로 했다.
냉장고엔 생수와 야채, 냉장보관용 양념 뿐 이었고 냉동실엔 얼음과 빈 아이스크림 통 밖에 없었다. 싱크대의 서랍을 열었지만 서랍은 거의 다 비어 있었고 군데군데 플라스틱 그릇이 보였다. 빈 그릇들을 보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며 몸의 여기저기에서 힘이 빠졌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주방을 전부 뒤졌다. 드디어 먹다가 반을 남긴 봉지과자 하나가 보였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나는 내려가면서 과자의 반을 먹었고 조한과 나머지 반을 반반씩 나눠 먹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조한이 보이지 않았다. 숨을 만한 곳이 없는 곳이어서 찾으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아침에 조한을 잘 부탁한다던 우성천사의 말이 고막에서 나와 외이도에 머물렀지만 서둘러 조한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과자를 다 먹고 일어났다. 그리고 좁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조한이 있는지 확인했다. 확인은 5초 안에 다 끝났다. 두호천사나 우성천사, 동민의 전화번호를 알았더라면 그들에게 전화해서 이 상황을 얘기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고 조급한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 다가 실종이 취미가 되겠네.', '내가 왜 이곳에서 며칠 동안 생활해 보기로 결정했을까?', '그냥, 지금 이곳을 나가는 것이 좋겠다.', '천사 같지도 않은 놈들.', '하나가 너무 보고 싶어.'
나는 방으로 연결되는 문을 열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서 문고리를 돌렸다. 하지만 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나갈 땐 잘 열렸던 문이었는데…. 속에서 생긴 욕이 입 밖으로 나왔다. 나는 문고리를 더 세게 잡고 좌우로 돌리며 문을 밀었지만 문은 계속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하나의 실종과 조한의 실종을 위해서 밖으로 꼭 나가야 한다는 마음이 속에서 타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닫힌 문을 더욱 센 힘으로 밀었다. 이마에선 땀이 났고 양말이 벗겨졌다. 그리고 어깨에서 나는 열이 차가운 문을 따뜻하게 했다. 나는 밖에 하나가 있다고 가정했다. 그러면 더 빨리 이 문을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했으니 밖에 있는 하나에게 나의 목소리를 들려줘야 했다.
"하나야, 오빠 여기 있어. 조금만 기다려! 내가 그 쪽으로 갈께! 알았지 하나야!"
나는 계단을 굴러 밑으로 떨어졌다. 밖에서 누가 문을 안쪽으로 열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구르며 생각했다. '문은 안쪽으로 당겨야 열리는 거였구나. 그런데 왜 내가 그것을 몰랐던 거지?' 바닥에 넘어지며 생각했다. '누가 문을 열었지?’
"형, 왜 그렇게 누워있어?"
동민이가 계단을 내려오며 내게 물었다.
"난 이게 편해서."
"아휴, 땀 좀 봐. 여기서 운동 한 거야"
"그런데, 조한이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니?"
"2층에서 주무시던데."
나는 동민과 같이 1층으로 올라갔다. 천사들은 이제 막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들의 상체근육은 피라미드를 거꾸로 세운 모양 같았다. 근육의 형태가 잘 드러나 있었고 피부의 색도 건강해 보였다. 유심히 그들의 등을 관찰하던 나의 눈에 똑같은 그림이 여러 개 들어왔다. 그 그림은 천사들의 양쪽 견갑골에 새겨진 날개 문신이었다. 아마도 진짜 날개가 없는 천사들이 자기 자신을 위로하며 새겼을 거라고 짐작됐다.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천사들은 오늘 입은 옷을 빨거나 어제 빨았던 옷을 개거나 했지만 나는 갈아입을 옷도 없고, 친한 천사가 있어서 그들과 얘기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화분 옆에 가만히 앉아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두호천사는 주방으로 들어가 쌀을 씻었다. 동민은 문 앞에 앉아 천사들이 신었던 신발을 닦고 있었다. 우성천사는 조한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학선천사와 도석천사는 걸레를 빨아 마루를 닦기 시작했고 하영천사와 동준천사는 마당과 거실, 방을 오가며 종이에 무엇을 적고 있었다. 나는 머쓱했다. 나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마땅히 도와줄 만한 일도 없었기에 더 머쓱해졌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다이얼을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자 벽에 걸려있던 액자가 앞으로 쑥 나오더니 그 속에 있던 붉은색 경광등이 켜지며 경고음이 시작됐다. 한 손에 식칼을 든 두호천사가 주방에서 뛰쳐나와 휴대전화를 끄라고 말했다. 신발을 닦던 동민도 내게 뛰어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빠른 손놀림으로 통화취소 버튼을 눌렀다.
"형, 여기서 휴대전화 쓰면 큰 일 나요."
"왜"
"전파를 추적한 악마들이 우리를 찾으러 올지도 모르거든요."
나는 이제 악마의 존재까지 믿어야 하나보다.
"그럼, 미리 말했어야지."
"죄송해요. 저희도 어제하고 오늘 너무 정신이 없어서요."
"그런데 오늘 하루 종일 어디 다녀 온 거야"
"하나누나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온 천사들도 있고 다른 임무를 수행하다가 온 천사들도 있어요."
"누가 하나를 찾다왔니"
동민은 방바닥을 닦고 있는 두 천사를 가리켰다. 나는 그들에게 가기 위해 벌떡 일어났지만 다시 앉아야 했다.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 넘어졌기 때문이다.
"하나의 실종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있나요"
"아쉽지만, 오늘은 없습니다."
"하루 종일 찾았는데 아무것도 없다고요."
"네, 하나의 마지막 임무가 당신과 관련된 거라서 당신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알아봤지만 너무 많아서 오늘 다 끝내지 못했어요."
"나와 관련된 사람이 하나를 납치 한 건가요."
"그건 확실히 모르죠."
나는 나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사람들을 생각해 봤다. 2년 전 헤어진 여자 친구부터 생각났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성격이었고 내가 그녀를 만나는 이유와 비슷한 이유로 나를 만났다. 그 이유는 성공과 출세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한 달 정도 연애를 하다 결혼하기로 했다. 결혼이 결정된 후, 나는 결혼식까지 그녀를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코를 자주 파던 수학 선생님처럼 생긴 그녀의 얼굴을 자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혼 준비를 혼자 하던 그녀가 짜증을 몇 번 내기도 했다.
나도 그녀에게 짜증이 났지만 그녀의 아버지를 생각해서 참았다. 아니, 그녀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그녀의 아버지가 죽을 때 딸에게 줄 유산을 생각해서 참았다. 결혼식이 일주일 남았을 때, 나는 한 여자의 남자가 된다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와 같은 스트레스를 겪어봤던 사법연수원 동기들은 나이트클럽으로 나를 데리고 갔고 거기서 한 여자를 만나게 해주었다. 다음 날 아침, 그 여자의 코고는 소리에 잠이 깬 나는 전날 밤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나는 씻지도 않고 그 여자와 같이 호텔을 나오다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호텔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온 것이었다. 나를 본 그녀는 핸드백에서 가스총을 꺼내 그 여자의 코에 쐈고 내게도 총구를 겨냥했다. 하지만 나는 빠른 발놀림으로 호텔을 빠져나왔다. 그날 저녁,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더러운 새끼, 평생 널 저주할거야. 퉤-
두 번째로 원한이 있을 것 같은 사람은 며칠 전 나의 사무실에 들어와 배를 때리고 도망쳤던 형이다. 그 형은 나와 다른 뱃속에서 나와서 그런지 나와 다른 구석이 너무 많았다. 그 형이 나를 미워하는 이유는 내가 형의 엄마를 내쫓아서이다. 내가 형의 엄마를 내쫓기 위해 썼던 방법은 치밀하고 잔인하고 극악했다. 처음에 아빠는 형의 엄마에 대한 사랑이 두터워 내가 하는 거짓말을 믿지 않았지만 남녀 간의 정사사진에 형의 엄마의 얼굴을 합성시킨 것을 보곤 내가 하는 추리와 짐작을 다 믿어 주었다. 집을 떠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었던 형의 엄마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두 번째의 순서를 형보단 형의 엄마로 정해야 맞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형은 엄마를 잃어버린 후 정상적인 정신세계까지 잃어버렸다. 하지만 용케도 내가 했던 짓은 잊어버리지 않고 기회가 있는 대로 나를 찾아와 혼자만의 복수를 하고 있다.
세 번째로 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을 고르는 것은 힘들었다. 3위에 올려야하는 후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원고에게 돈을 받고 잘 못 변호해준 죄 없는 피고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고 위조된 인감 때문에 큰 건물을 나에게 뺏긴 치매 걸린 할머니도 생각났다. 그 할머니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가지고 놀다가 버린 여자들은 손으로 헤아리다 포기했고 내가 주는 폭력과 폭언에 몇 달을 버티지 못했던 사무실 직원들도 생각났다. 그 중 한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들을 일일이 찾아가 하나의 실종에 관해 물어봐야 하는지 한참동안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