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이 한 밥은 죽이라고 해도 될 만큼 질었고 감자와 고춧가루를 넣고 끓인 국은 색에 비해 싱거웠다. 그나마 내 입맛에 맞는 시금치무침과 메추리알간장조림은 양이 너무 적어서 많이 먹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밥을 포기하고 일어섰다.
"다시 앉으세요." 두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요? 입맛에 안 맞으세요." 조한의 목소리도 들렸다.
"아직 배가 덜 고파서 그래."
"나는 맛있는데."
"남은 것 제가 먹어도 돼요"
"다 먹을 때 까진 앉아 있어야지." 다른 천사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처음에 내가 들어갔던 방으로 가서 누웠다. 바닥은 차가웠고 이불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양복의 외투를 벗어 배를 덮고 팔로 베개를 만든 다음 눈을 감았다. 하나는 어디 있을까? 하나를 어떻게 찾을까? 머리는 온 통 그 생각뿐이었다. 천사들이 하나를 찾아줄까? 조한천사는 어떤 방법으로 하나를 찾으려할까? 이들에겐 왜 초능력이 없지? 왜 하나의 위치를 단번에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걸까? 혹시, 이들이 하나를 납치한 사람들이 아닐까?
조한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금방 만든 쿠키와 커피를 내 앞에 놓았다. 코를 찌르는 달콤한 향기에 속이 요동쳤다. 나는 두 손가락으로 쿠키를 집어 들고 입속에 넣었다. 그리고 접시와 찻잔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허겁지겁 먹었다.
"저는 안정 씨가 천사가 될 줄 믿습니다."
나는 입속에 남은 쿠키를 혓바닥으로 핥아 목으로 넘긴 후 대답했다.
"왜요?”
"그 이유는 안정 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안정 씨가 천사가 되는 것을 제가 원합니다. 안정 씨가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상관없이 제가 그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 질 것을 믿습니다. 분명히 제 믿음대로 될 겁니다."
"글쎄요. 그 말을 들으니 천사가 되기 싫어지는데요. 저는 솔직히 천사가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에요. 어차피 하나만 찾으면 이곳을 나갈 거니까요."
"이런, 그렇게 솔직히 말씀해 주시다니……."
조한은 비어있는 접시와 찻잔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불을 끄고 쪼그려 앉았다. 잠시 후, 조용한 어둠 속에서 내 마음이 하는 말이 들렸다. '내 감정에 치우쳐서 결정을 내리면 안 된다. 내 모든 행동 중 특히 이번 일에 있어서는 하나를 위한 결정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를 영원히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생각을 고쳐먹고 조한을 따라 나갔다. 그는 문 앞에 있다가 자신의 방으로 나를 인도했다.
"월급은 어떻게 되나요.”
"월급?”
"천사를 해서 받는 월급 말이에요."
"미안한데 월급은 없어요."
"근무시간은요?”
"천사가 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계속이에요."
나는 속에서 나오는 한 숨을 참느라 힘들었다.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죠.”
"그건 차차 알게 됩니다."
"하나를 찾지 못하면 어떡하죠."
"찾을 수 있다고 믿으세요. 지금은 믿음을 가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맞는 말이다. 나는 지금 하나를 찾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하나를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가 이상한 사람들에게 치욕적인 일을 당하고 있는 상상은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하나가 내게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하나를 찾으러 가면 된다. 변호사를 하지 못해도 좋다. 어차피 수임된 사건도 없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수 십 가지의 거짓말을 만드느라 애쓰는 것보단 하나를 찾기 위해 힘을 쏟는 것이 더 낫다. 나는 숨을 짧게 내쉬며 결심을 마무리 했다.
나는 조한과 함께 1층에 있는 방으로 갔다. 조한은 같이 방을 쓸 천사들을 소개시켜줬다. 우성천사, 도석천사, 동준천사. 나는 그들과 악수하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동준천사가 천사용품을 가져다주었다.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라면을 포장했던 박스에 꽉 차있는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 확인했다. 외출복으로 보이는 흰색 재킷과 남방, 여름용 바지 2개와 겨울용 바지 1개, 얇은 털이 박힌 칫솔, 처음 보는 디자인의 두꺼운 손목시계와 양말 4개, 단화와 슬리퍼 한 개씩, 호루라기와 비닐봉지 한 묶음, 싸구려 은반지와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물총하나, 세 가지 색이 한꺼번에 들어있는 목걸이 볼펜과 메모지, 허리띠에 걸 수 있는 물통과 장난감전화기, 반바지와 티셔츠, 명품브랜드의 이니셜과 한 글자가 다르게 적힌 선글라스(오래 쓰면 눈이 아플 것 같다.), 그리고 사각형 속옷과 삼각형 속옷 하나씩이 있었다.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박스에 넣고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 내가 옷을 갈아입는 것을 지켜보던 도석천사가 한 마디 했다.
"속옷도 갈아 입으셔야 합니다."
세 명의 천사는 별다른 대화나 놀이 없이 자신의 이브자리에 누웠다. 나도 두꺼운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이불을 덮었다. 동준천사 옆에 누워있던 우성천사가 동준천사와 위치를 바꿔 내 옆에 누웠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내게 말했다.
"혹시, 주무시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시면 저를 깨우세요. 깨우기 쉽도록 제가 옆에서 자는 겁니다. 아셨죠?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나는 무서운 꿈을 꾸기 전까지 우성천사가 왜 그 이런 말을 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현실 같은 꿈은 연못 주위를 걷는 것에서 시작됐다. 하늘이 황색을 띄는 것으로 봐선 날씨가 흐렸든지, 밤이 가까웠든지 둘 중에 하나였다. 나는 발끝에 시선을 고정하고 일정한 속도로 걷고 있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연못에 원을 그리는 것이 늘어갈수록 내 몸이 연못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러다가 빠지겠다 싶어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발은 내가 움직이고 싶은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진흙에 빠져 발을 빼내는 것이 힘들어졌고 곧 연못의 물이 내 발을 적셨다. 나는 눈을 발로 가져갔다. 땅이 연못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연못의 물도 내가 있는 곳으로 밀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거기서 빠져 나와야 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연못 주변으로 천사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조한에서부터 동민까지 다 있었다. 나는 자유로운 팔을 흔들어 그들에게 나의 위험을 알렸지만 그들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누군가 성대를 쥐고 있는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은 금세 내 가슴까지 올라왔고 물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나는 역겨운 냄새에 코를 막았지만 이미 들어온 냄새는 내 속에 있던 모든 것을 토하게 했다. 곧 연못에서 나는 냄새보다 내가 토해낸 것에서 나는 냄새가 더 심하게 느껴졌다. 물은 드디어 내 목까지 올라왔다. 나는 척추를 뒤로 젖혀 앉은키를 크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입 속으로 물이 조금씩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죽을 것 같았다. 내 안에 죽음의 공포가 꽉 채워져서 물 때문이 아니라 그 공포 때문에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하나를 찾아야 한다. 나는 하나를 꼭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온 몸을 쥐어짜며 소리를 만들었다. '악'
우성천사가 내 옆에서 나를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연못은 없었다.
"괜찮아요?”
나는 대답할 힘이 남아있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입속에서 침이 돌기 시작하고 혀를 움직일 만한 힘이 생겼다.
"어떻게 된 거죠?”
"꿈을 꾸셨어요."
"이런 꿈을 꾼 적은 한번 도 없었는데."
"이제 악마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나는 잠에서 깬 후 다시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우성천사가 가져다 준 물을 벌컥벌컥 마신 후 화장실에 다녀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정말 무서운 꿈이었다. 우성천사가 깨워주지 않았다면 꿈속에서 그리고 현실 속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봤던 연못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혹시, 그 연못이 하나의 실종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꿈을 기억하려니 힘이 들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고 손발이 저렸다. 하지만 나는 정신을 집중해 그 연못을 생각해냈다.
발이 빠졌던 지점에서 연못을 보니 연못은 시커먼 물이 가득했다. 물속엔 쓰레기가 넘쳐났고 검은색 덩어리들이 떠다녔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그 형체는 살려달라는 몸짓을 하고 있었고 그 형체가 지르는 비명이 내 귀에 들렸다. 나는 그 형체를 유심히 지켜봤다. 팔과 다리를 흔들고 있는 것이 분명했고 양쪽 견갑골 사이에 날개 같은 것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잘 못 본 것이 있다면 다시 정확히 보려 했다. 하지만 내가 본 날개는 진짜였다. 하얀색이었고 몸에 비례해 적당한 크기였다. 그 형체가 천사라는 결론을 내린 나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썼지만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 형체의 움직임을 멀리서 지켜보던 내 눈에 천사의 얼굴이 들어왔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며 놀랐다. 그 천사는 하나였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어 하나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다리는 도통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곧 몸의 여기저기가 아파왔다. 하나에게 갈 수 없는 몸이 원망스러워 생긴 통증이었다. 그리고 곧, 호흡에 사용되는 근육이 수축을 포기한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
"어서 일어나세요."
"자고 있는 게 아니에요."
"아니요. 자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조금 만요. 조금만 더 하나를 볼게요."
"안정 씨, 안정 씨는 좀 전에 우성천사가 깨워서 일어났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은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있는 거예요. 현실 속에서 자면 안돼요. 어서 일어나세요!"
나는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조한과 우성천사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조한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수건으로 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한 번은 꿈속에서, 한 번은 현실 속에서 죽을 뻔했던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 없었다. 우성천사가 다른 천사들을 불러 내 주위로 모이게 했다. 원을 그린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천사들의 기도 소리는 어제 조한에게 하던 것과 비슷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마음이 평안해지는 소리다.
그들의 소리를 한참 동안 듣고 있었더니 몸속의 세포들이 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세포들이 담당하는 조직과 기관이 따뜻해졌다. 나는 공중에 떠있는 것 같았고 속에 있는 장기들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다리 쪽에 있는 근육과 신경은 뇌가 보내는 명령에 잘 반응했다. 다리는 곧 그 명령에 순종해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