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 우리가 마두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마약 하는 마두 말인가요."
"마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춘, 고리대업, 조직폭력, 도박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변화될 것이 많은 사람이군요."
"조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마두가 참 빛을 보고 살 수 있을까요?”
"그러게요. 늘 하는 일이지만 닥칠 때마다 어렵군요."
나는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듣다가 단을 만난 후 부터 천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하나에 관해선 왜 이런 얘기들을 안 하시죠?”
"……." 천사들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왜 실종된 하나를 찾기 위해선 노력하지 않는 거냐고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안정천사."
조한이 상기된 얼굴로 말을 꺼냈다.
"하나는 이런 토의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의 노력과 기도 속에서 찾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언제까지 찾아지고 있는 중이죠. 하나가 실종되고 한 참이 지났는데도 그녀가 납치 된 건지, 사고 때문에 죽었는지, 악마들에게 잡혀갔는지 조차 알 지 못하고 있잖아요."
천사들은 나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있었고 동민은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천사들에게 화를 낸 것은 단을 통해서 하나를 찾기 싫다는 마음이 있어서였지만 단을 통하지 않고 하나를 찾을 수 없다면 천사의 후예들을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를 찾아야 한다고 마음먹은 결심을 숨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이기적이다. 나를 사랑해주는 조한과 다른 천사들을 배신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죄책감은 없다. 단이 자신을 천사라고 말하고 있으니 같은 천사라면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동민이가 내 어깨를 감싸주는 것으로 천사들은 나에 대한 위로가 끝났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조한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마두를 변화시킬 방법들을 의논했다. 의논은 결론을 만들었는데 그 결론은 내일 저녁 마두를 찾아가 그가 가지고 있는 마약을 불태우고 감옥에 있는 그의 아버지를 만나게 한 다음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하영천사와 도석천사는 차고에서 마약을 불태울 때 쓸 장비를 가방에 챙겼고 도석천사는 마두가 사랑하는 여자의 전화번호를 여기저기 수소문 했다.
두호천사와 우성천사는 계획 중에 일어날 돌발 상황에 대비해서 몇 가지 작전을 짰고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동민은 그 얘기를 듣다가 잠들었고 나도 슬슬 졸리기 시작했다.
-내일 새벽 그 남자를 만날 거야. 집으로 갈게. 앞으로 나와 있어. 단-
단이 보낸 메시지를 보니 잠이 달아났다. 다른 천사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고 조명은 꺼져있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여러 번 확인하며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내일 드디어, 하나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니….
나는 밤을 꼬박 새고 동이 트자마자 집을 빠져 나갔다. 어차피 오늘은 저녁에 마두를 찾아가는 일 빼곤 다른 일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시간이 괜찮았다. 단은 하얀색 와이셔츠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그 겉에 검은색 가죽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바지도 검은색 바지를 입었고 구두는 광이 잘 나있었다. 선글라스는 눈썹이 보일정도로 가는 것을 꼈는데 참 멋있었다.
단은 내게 포옹한 후 볼에 키스를 했다. 나는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나의 말에 기분이 상해서 하나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을 못 만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차는 지난 번 것 하고 달랐다. 지금 것이 예전 것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차였으며 가격도 비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단은 차를 출발 시킨 후 한 참 동안 말없이 교통법규만 어겼고 나는 안전벨트를 손으로 꽉 움켜쥐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했다.
저택이 즐비한 골목에 차를 멈춘 단은 손가락으로 한 집을 가리켰다. 나는 목을 빼 그 집을 확인했다. 집은 내 기억 속에 있는 어떤 집하고 똑같은 집이었다. 나는 목을 여러 번 회전시키며 그 집에 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자 곧 어떤 뇌세포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집은 바로 이대청 판사의 집이었다.
단은 나에게 차에서 빨리 내리라고 재촉했지만 나는 정지된 표정으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청 판사가 어떻게 하나의 납치범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다시 시작되는 질문에 현기증이 났다. 단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벽을 타고 올라가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 후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안에서 문을 열어 주었다. 정원엔 사람만한 개들이 잠들어 있었고 곳곳에 있는 여러 개의 조명도 같이 잠들어 있었다. 단은 현관문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더니 문고리를 세게 밀어 문을 열었다. 큰 소리가 나자 자고 있던 개들이 일어나 짖어댔고 곧, 개소리가 문을 열며 났던 소리보다 더 커졌다.
우리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허락 없이 앉아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한 방의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여자는 우리를 봤지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주방으로가 물을 마시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이대청 판사가 나왔다. 나는 판사를 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판사는 안경을 고쳐 쓴 후 입을 벌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그것도 단과 함께."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죠. 안정은 이제 저의 동료가 됐습니다. 대천사에서 같이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판사님과 마주칠 일이 많아 질 겁니다."
나는 단의 말을 막고 싶었지만 판사의 말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그것 참 잘됐군. 안정 군과 나는 그 전부터 호흡이 참 잘 맞았는데, 안 그러나?”
나의 대답은 중요했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하나를 볼 수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단은 내 허벅지를 꼬집으며 대답을 빨리 하라는 눈치를 줬다. 나는 순전히 입술이 만든 말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판사님."
욕실에서 나온 여자가 머리에서 물을 떨어뜨리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판사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럼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안정 군."
"제가 아는 것은 판사님이 하나가 있는 곳을 알고 있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겁니다."
"하나?"
"네, 지난번에도 같이 왔던 제 여자 친구 말입니다."
"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네? 처음 들어보신다고요? 판사님이 예뻐하시고 사모님도 하나를 좋아하셨지 않습니까.”
"안정 군, 하루에도 수십 명이 우리 집에 와서 돈을 놓고 가는 거 알고 있지 않나. 나는 그 액수가 얼만지 기억하기도 힘들어. 그런데 같이 왔던 사람을 어떻게 다 기억한다는 말인가.”
나는 단에게 몸을 돌려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하나가 있는 위치를 아는 사람의 집에 온다고 했잖아!"
"쉿, 조용히 해봐."
단은 나를 데리고 비어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대청 판사는 악에 관한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어. 살인과 강간, 실종, 강도 등등. 저 사람이 관여하지 않은 악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야."
"판사님이 도대체 누군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아직도 머리가 안 돌아가니. 저 사람이 바로 마귀야, 마귀."
나는 며칠 전 조한이 판사에 대해 물어본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오늘 자신을 대천사라고 말하는 단이 판사를 마귀라고 말하는 것과의 연관성을 찾으려 했다. 나는 많이 고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연관성은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대천사 단이 마귀에게 온 것은 무슨 일일까? 단이 천사가 맞기는 할까?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건을 연구하고 변호를 준비할 때보다 더 머리가 아팠고 두통과 현기증 때문에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자리를 피해 주방으로 가 물을 마시고 식탁에 앉아 엎드렸다. 고개를 한 쪽으로 돌리니 위에 있는 귀로 그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네가 처리해 줘야 하는 놈이 생겼다. 돈은 알아서 가져가고 일만 깨끗하게 처리해줘."
"누구를 죽일 까요?”
"마두."
"마두요? 그 놈은 판사님의 부하 아닙니까. 판사님께 돈을 벌어다 드리고 매일매일 늘씬한 여자들도 보내주는데 그 놈을 뭣 때문에 죽이시려는 겁니까?”
"마두가 나보다 더 커버렸어. 자기가 임의로 뽑은 애들이 내 밑에 있는 애들보다 더 많아. 언젠가 나를 죽이고 혼자 나쁜 짓을 다할지 모른다는 얘기야. 알겠나.”
"마두가 순순히 죽어 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자네 혼자서도 악마 한 명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긴 데 이젠 안정까지 있으니 충분하지. 한 번 잘해 보게나."
그들은 더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대화의 후반부는 조용하게 말해서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판사는 나를 불러놓고 하나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이제 생각나네, 이제 생각나. 그런 미인을 내가 왜 이제야 기억했는지 모르겠군. 어쨌든 하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니 참으로 안타까워. 내가 오늘부터 확실하게 알아볼 테니 자네는 단과 함께 일 좀 해주게."
"무슨 일이죠?”
"다 들은 것 알고 있어. 구체적인 것은 단에게 들으면 되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예전부터 호흡이 잘 맞지 않았나. 자네가 죄 있는 사람이 죄 없다고 하면 내가 죄 없다고 판결해주는… 우린 그런 사이였어. 기억하고 있지?”
내가 죄 있는 사람이 죄 없다고 말하게 된 것은 판사가 시켰기 때문이었다. 판사가 피고에게 돈을 받고 무죄를 선고하기 위해 나에게 변호를 맡기면 나는 판사와 거짓말을 짜고 재판에 임했다. 우리는 죄가 될 만한 증거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애썼고 증인들의 부득이한 재판 불참석을 위해 돈을 썼다. 이대청 판사가 이미 말했듯, 나와 그는 호흡이 잘 맞는 범죄자였다.
판사의 집에서 나온 나는 아직 시동을 걸지 않은 단의 차에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하나를 찾기 위해 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야?”
"하나를 찾기 위한 모든 일을 할 수 있지. 이번 일만 깨끗하게 처리하면 당장 오늘이라도 하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지?"
"내가 말했잖아. 모든 악은 판사로부터 시작된다고. 판사는 수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 부하들은 세상의 모든 죄를 짓고 있어. 하나를 납치한 사람도 판사의 부하가 틀림없다고... 그러니까 판사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하나에 관한 정보를 주고 위치를 물어보면 순식간에 찾을 수 있다니까. 아직도 내 말이 뭔지 잘 모르겠어?”
"만약, 마두를 죽이고도 하나를 찾을 수 없다면 네가 나한테 죽는다."
단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보고 있는 사람의 성품을 나쁘게 하기 충분한 표정이었다. 입술의 안쪽을 바깥쪽으로 내밀어서 잇몸에 박힌 파란 핏줄을 보여주었고, 콧구멍을 한쪽만 크게 벌려 삐져나온 코털이 몇 갠지 알게 했고, 눈썹을 치켜 올리는 것으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막았고, 악기가 충만한 눈빛은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손해가 되게 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그가 천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