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이 천사가 아니어도 나는 별 상관없다. 나는 오늘 하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이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마두를 죽이고 판사에게 가서 하나의 위치를 알아내면 되는 것이다. 참 쉬운 일이다.
오래 걸리지도 않고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간에 천사들도 마두를 위한 작전을 하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거기서 천사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단 옆에 서있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답답한 마음에 단에게 천사들의 계획을 말했다.
"천사들이 짠 계획이 다 그렇지 뭐. 쓸데없는 놈들. 악마를 변화시키려고 하다니 멍청해도 보통 멍청한 놈들이 아니야."
"우리가 먼저 가야 될 텐데."
"걱정 하지 마. 늦게 가도 총이 있으니까 멀리서도 마두를 쏠 수 있어."
"총은 하나 밖에 없어?”
"당연히 하나 밖에 없지. 그리고 만약 하나가 더 있다고 해도 너에겐 줄 수 없어. 네가 날 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거든."
나는 단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만약 나에게 총이 있다면 마두를 죽이고 단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이 방해한다면 그들에게도 총을 쏠 것이다.
단은 차를 멈춘 후 주사기를 꺼냈다. 그리고 재킷을 벗고 셔츠를 팔꿈치 위까지 올린 후 혈관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당뇨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인슐린은 혈관에 놓지 않으므로 그가 맞으려고 하는 주사가 마약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른 혈관에 주사바늘을 찔렀다. 마약은 그의 손끝에서 밀려 혈관 안으로 들어갔고 그는 얕은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등받이를 의지한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침을 꼴딱 삼키고 손으로 허벅지를 꽉 쥐었다. 그리고 잠시 후, 허벅지를 쥐던 손 하나를 바지 속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그를 보고 있던 눈을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하나만 생각했다.
하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천사가 된 것이고, 하나를 빨리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단을 따라다닌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를 찾기 바로 전이다. 단과 할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지금의 내 목표다.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는 없다.
나는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 천사가 되고 몇 달 동안 피우지 않았던 담배가 몹시 생각났다.
도로의 구석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제일 싼 담배를 사고 거리로 나왔다. 불을 빌리기 위해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지만 그는 불을 붙여 주지 않았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잠시 후, 라이터가 코앞에 다가왔고 곧 불이 솟아올랐다. 나는 고개를 돌려 라이터의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동민이었다.
"형, 담배 끊은 줄 알았는데…. 천사 중에 담배 피우는 사람은 나랑 형 밖에 없다. 나는 맡은 일 때문에 피우는 거고, 형은?”
나는 대답대신 쓴 웃음을 지었고 동민은 내 어깨에 손을 갖다 댔다. 동민의 손은 따뜻했다. 나는 동민을 자세히 봤다. 그의 머리색은 처음에 봤을 때랑 달랐다. 좀 더 밝은 색으로 염색을 다시한 모양이었다. 동민의 키는 나보다 작았지만 언뜻 보면 나보다 커보였다. 동민의 외모는 동민의 성격과 달랐다.
외모는 불량스러웠지만 웃음은 밝았고, 온 몸엔 문신이 가득해 무서움을 주었지만 말투는 예의를 갖추고 있었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많았다. 동민은 천사가 되기 전엔 나쁜 아이였다. 나도 천사가 되기 전엔 나쁜 어른이었다. 누가 더 나빴을까? 나는 내가 더 나쁜 사람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동민은 이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나는 천사가 됐지만 천사가 되기 전의 생각과 행동으로 돌아갔으니까.
동민은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큰 소리를 쳤다. 이미 착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비웃었다. 나는 동민을 비웃는 사람들을 쫓아가 동민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동민은 나를 쫓아와 말렸다. 나는 동민이가 불쌍해 보였다.
이 아이는 왜, 사람들의 무시를 받는데도 천사를 할까? 왜 자기의 욕심과 체면을 버렸을까? 그것을 버린다고 맛있는 것을 얻어먹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버린다고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혹시, 동민은 조한에게 영혼을 착취당하는 것은 아닐까? 조한은 천사라는 명목 하에 동민의 꿈과 취미, 욕구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동민은 지금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을까? 천사로 사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너는 천사가 좋아?”
"그게 무슨 말이 말이야. 당연히 좋지! 너무 좋지!"
"뭐가 그렇게 좋아?”
"아이들이 나 때문에 자살을 안 하고, 누나들이 나 때문에 집에 들어가고, 아저씨들이 나 때문에 술을 덜 먹고, 아줌마들이 나 때문에 웃으니까 좋지."
"그럼, 너는 그 사람들 때문에 천사를 하는 거야.”
"아니, 나는 나 때문에 하는 거야."
"너 때문에 하는 거라고?”
"응, 나 때문에 사람들을 돕고, 나 때문에 사람들에게 착하게 사는 방법들을 가르쳐 주고, 나 때문에 사람들을 사이좋게 하고, 나 때문에 사람들이 죄에서 해방되게 하는 거야."
"천사를 한다고 해도 너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게 너를 위한 일이니?”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어. 내가 사람들을 도우면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만 이익이 있는 줄 알았어.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아. 내가 사람들을 돕고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더 좋더라고. 하지만 내가 내 기분만 생각해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아니야.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다보니까 그냥 그렇게 된다는 거야. 이해 돼? 나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행복해지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행복해 진다는 것."
동민은 길 건너에서 천사들이 온다며 횡단보도 앞으로 몸을 이동했고 나는 조금 있다가 만나자는 말을 하고 단의 차로 돌아왔다. 그런데 단은 차에 없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았고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니 나를 부르는 그의 손이 보였다. 나는 그 손이 움직이는 데로 가서 어제 동민이가 가르쳐 주었던 길로 내려가는 단의 뒤를 쫓았다.
단은 마두를 죽일 때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가르쳐 주었다. 망을 보고, 다른 악마들이 마두를 돕는 것을 막고, 자기가 총을 쏠 때 마두를 꽉 잡고, 시체를 치울 만한 곳을 알아보고, 피를 닦을 걸레를 찾아오는 일이었다.
뒤에서 나는 소리는 여러 가지였다. 음료수의 마개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려서 탄산이 빠지는 소리도 났고,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엄마의 동요 부르는 소리도 났고, 얇은 구두굽이 부러지는 소리도 있었고, 술 취한 남자가 자신의 죄를 말하는 소리도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익숙한 발자국 소리를 골라냈다. 그 소리는 몇 명의 걸음이 합쳐져 만들어진 소리였고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다. 두호천사는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느리게 펴지기 때문에 걸음의 박자가 다른 소리가 난다. 우성천사는 발가락으로 땅을 힘차게 차기 때문에 땅이 긁히는 소리가 난다. 조한의 걸음은 차분히 뒤꿈치가 내려앉는 것이어서 소리가 많이 나지 않는다.
다른 천사들도 그들만의 걸음 소리가 있어서 나는 그들을 보지 않고도 그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천사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을 보는 내 눈이 초점 없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불안한 심리가 만든 눈동자의 떨림이자 갈등하는 내면이 표출하는 몸의 이상이었다. 나는 지금이라도 천사들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단은 주위를 살피더니 자판기와 벽 사이에 있는 문을 열었다. 나는 단을 따라 그 문으로 들어갔다. 어제 있었던 조명이 없어서 주위가 너무 어두웠다. 하지만 단은 어둠속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빨리 내려갔다. 나는 그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손과 발을 빠르게 움직이다가 발을 헛디뎠다. 어제보다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진 나는 머리에서 피가 났다. 단은 멍청한 짓을 했다며 나를 놀렸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무슨 말을 해서 단의 기분이 나빠지면 단은 마두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하나가 있는 곳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천사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소리는 걸을 때와는 다르게 규칙적이고 빨랐다. 단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올린 후 총을 꺼냈다. 나는 단의 총구를 막으며 총알이 몇 개 되지 않으니 참으라고 했다.
단은 마약이 놓여있는 테이블 사이를 지나며 견본으로 꺼내놓은 마약을 찍어 맛을 봤고 예전보다 덜해진 맛에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마약을 파는 사람들은 그의 불만에 신경 쓰지 않고 가격을 흥정하는 다른 손님에게만 귀를 기울였다. 마두는 두꺼운 손가락 사이에 지폐를 끼고 지문에 침을 뱉은 후 돈을 셌다. 나는 마두를 보자 몸과 정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벌어질 일이 머릿속에서 상상됐기 때문이다.
단은 나를 보고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마두의 빨간색 모자에 시선을 고정하고 손을 비비며 긴장을 풀었다. 마두 옆에는 두 명의 씨름선수가 있었다. 그들의 직업이 정확히 씨름선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체격은 씨름선수를 안 해 봤다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단이 시킨 일 중에 저 두 명을 처리하는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 일이 있든 없든 마두를 죽이는데 방해가 될 두 명을 처리하는 것은 내 몫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약이 많이 남아 있을 텐데… 다른 볼일이 있나? 단."
"판사님이 너에게 전해주라고 심부름 시키신 것이 있어서."
"하하하. 너 이제 할 것 없어서 판사 심부름 하고 다니는 구나. 미련한 놈. 천사가 되겠다고 '천후'에 들어가서 한 달도 못 버틸 때부터 너의 미래가 어떨지 짐작은 했었지만 이렇게 초라한 모습을 보여줄지는 몰랐다."
"당신이 조금 후에 보여줄 모습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초라할 걸."
씨름선수들의 몸짓이 단을 위협했지만 단은 눈도 깜짝이지 않았다. 마두는 단에게 향했던 시선을 내게 보내며 위아래로 훑었다.
"얘는 변호사잖아."
"얘를 어떻게 알지?”
"내가 왜 얘를 모르겠나. 얘가 나를 변호해 줘서 내가 사형을 면했는데."
나는 마두가 나를 알고 있다는 말에 미간이 찌푸려졌고 곧 그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맛있는 양주를 실컷 먹은 후 7명을 죽인 코끼리 같은 놈이 있는데 우리 한 번 그 녀석을 용서해 주자고 판사가 말했었다. 나는 다음날 구치소에 있는 마두를 찾아가 7명을 죽인 이유는 별 다른 게 없고 살인을 후회하고 있지 않다는 것과 재범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담당검사에게 찾아가 판사가 준 돈과 서약서를 전해줬다. 서약서에는 '검사님이 퇴직하시고 변호사 개업을 하시면 누구의 도움이 가장 필요하겠습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개업 후 변호 성공률 100%를 위해 이대청 판사가 노력할 것을 다짐 합니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검사는 결정적인 증인에게 출석을 요구하지 않았고 가장 확실한 증거를 빼먹었다. 나는 마두가 초등학교 때 받았던 개근상을 들먹이며 성실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에게 사법부의 실수를 짊어지게 하면 안 된다고 웅변했다. 마두는 내 말이 끝나자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잠시 후엔 기쁨의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