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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후예들
작가 : paulpark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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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 번째 회심 - 1
작성일 : 16-09-19     조회 : 645     추천 : 0     분량 : 6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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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달력을 몇 장 찢어 넘겼는지 기억하기 힘들만큼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있다. 그동안 다친 다리에 피부이식 수술을 여러 번 받았고 수술 때문에 생긴 염증을 없애느라 갖가지 항생제를 맛보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항생제 때문에 생긴 위궤양으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체중이 절반으로 줄었다. 판사가 기르는 개가 먹고 남은 나의 다리는 관절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걸을 수 없다.

 

  나의 병원 생활은 굉장히 규칙적이고 단순하다. 오늘도 아침식사가 나오기 30분 전에 일어난 나는 세수를 하고 TV를 켰다. TV 속엔 밤에 나왔던 뉴스와 똑같은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다가 앵커의 다음 멘트를 예측해서 맞추는 놀이를 했다.

 

  이 놀이는 내가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다. 잠시 후, 항상 비슷한 시간에 찾아오는 의사가 통증의 정도, 퇴원하고 싶은 날짜를 물어봤다. 나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대답을 흐렸다. 퇴원이 무섭기 때문이다. 퇴원하면 다른 병원으로 갈 수 있는 상황도 못되고, 혼자서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전에 중요한 일과 중 하나는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다. 물리치료실에 가면 적외선 찜질과 전기치료를 받는다. 계속 치료를 받다보니 적당한 주파수와 강도를 치료사보다 내가 더 잘 조절할 수 있다. 그 치료가 끝나면 운동치료를 받는다. 잘 움직이지 않는 발목과 무릎을 움직여 주는 것인데 치료사가 손으로 관절을 구부릴 때마다 죽을 것 같이 아프다. 이식한 피부가 당겨져서도 아프고 관절 속에 있는 덜 뽑아낸 뼛조각과 잘못된 수술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도 아프다. 나의 다리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수술이 끝나고 며칠 후에 외국으로 가버려서 지금까지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의 병원으로 몇 달 전에 옮겨와 그 병원에서 받은 잘못된 치료들을 만회하고 있다. 나는 그 의사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왜 뼛조각을 빼내지 않았는지, 왜 골절부위를 잘 붙게 수술하지 않았는지를 꼭 물어 볼 것이다.

 

  운동이 끝나면 관절이 구부러지는 각도를 재고 병실로 돌아온다. 내가 병실에 들어가는 것을 본 간호사는 정맥주사를 가지고 내 뒤를 따른다. 고무줄을 위팔에 묶은 후 튀어나온 정맥을 찾는 간호사는 애를 먹기 일쑤다. 왜냐하면 나의 팔은 노인의 팔처럼 혈관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력이 많은 간호사도 평균 네 번 정도를 찌르고서야 정맥을 찾아낼 수 있다.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 간호사는 혈관을 찾다가 신경을 건드릴 때가 많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간호사에게 화를 낸다. 간호사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화를 내는 내 얼굴과 많이 닮아 있다.

 

  수액이 한 방울씩 몇 번 떨어지는지 세고 있으면 점심식사가 온다. 나는 수액이 떨어지는 것에 눈을 고정하고 있어서 밥을 입으로 넣지 못하고 흘릴 때가 있다. 흘린 밥은 며칠이 지나도 떨어진 자리에 계속 있는데 시간의 경과에 따라 딱딱하거나 물렁하다. 나는 오후에 한 번 더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야하지만 낮잠을 자거나 문병 온 변호사들과 이야기하느라 못가는 때도 있다.

 

  TV에서 어제 밤에 나온 드라마가 재방송되고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저녁식사가 나온다. 나는 밖으로 나가 다른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걷지 못하는 몸은 그것을 못하게 하고 있다. 물론 간병사가 있을 때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가면 되지만 창피해서 그만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저녁을 다 먹으면 정말 할 일이 없다. 혼자 쓰는 병실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의 이상한 추억을 들을 일도 없고, 면회 온 사람들의 직업을 물어본 후 나중에 도움 좀 받자고 부탁할 일도 없다. 9시가 되기 전에 화분에 물을 주면 잠이 오는 새벽 3시까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을 바라보며 한 가지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하나에 관한 생각이다.

 

  그녀를 생각할 때 생기는 감정은 많이 바뀌었다. 그녀가 실종당한 처음에는 그녀를 보고 싶다는 갈망이 모든 생각과 마음을 지배했었고 천사들을 만난 후엔 소망을 품고 그녀를 생각했었다. 부정적인 일들을 상상하기보다 그녀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소망으로 바꿔 하나와의 미래를 계획했었다. 하지만 하나 때문에 사람을 죽인 다음부터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녀를 일찍 찾지도 못했으면서 그녀가 싫어하는 일을 한 것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고 하나가 이런 나를 용서해 줄지 의문이 들었다. 하나가 살인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고백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하나가 그 일을 모른다면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질문은 계속 늘어간다.

 

  뉴스에서 지하철역의 화재사고를 방송했을 때 나는 동공을 화면에서 돌렸다. 앵커가 인명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적어도 살인죄로 잡혀갈 일은 없겠다고 좋아한 것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경찰은 마약을 파는 곳까지 내려가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그곳을 빠져 나온 후 그 문은 열리지 않았으니까. 경찰은 자판기로 연결된 전선에서 생긴 화재로 결론을 내렸고 사람들은 믿기 편한 그 사실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화재가 났을 때, 바로 옆에서 천사들이 동민을 부르는 것을 들은 사람들까지.

 

  나는 그 뉴스를 본 이후로 혈압이 높아졌다. 요즘엔 혈압강하제를 먹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다. 당뇨병도 걸려서 인슐린을 맞지 않으면 어지러워 못 견딘다. 입원하기 전보다 몸이 더 안 좋아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꿈을 많이 꾼다.

 

  꿈의 대부분은 동민과 하나에 관련된 것이다. 둘은 같이 나온 적 없이 한 번에 한 명씩 나온다. 하나가 꿈에 나온 날은 기분이 좋다. 하지만 동민이가 꿈에 나온 날은 정신과치료를 받으러 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몹시 힘들다.

 

  정신과의사는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환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치료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서 내게 왜 관심이 없냐고 푸념을 떨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진료를 보러 가면 그가 묻지 않은 것들을 실컷 말하곤 한다. 오늘은 의사에게 꿈 이야기를 자세히 했다.

 

 "한 남자가 구름 속에서 손을 내밀었는데 그 손이 처음에는 부드러웠다가 점점 거칠어져 나중에는 썩은 나무 같았어요. 그래서 급히 물을 가지고 와 손에다 뿌리니 곧 가지가 튼튼해지고 잎이 푸르러져서 열매를 맺었어요. 나는 그 열매를 먹었는데 너무 달콤하고 상큼했어요. 나는 눈을 찌푸리며 캭 소리를 냈어요. 아이고, 아직도 신 맛이 내 혀에 남아있네."

 "레몬 좋아하세요?”

 "아니요."

 "그런데 신 음식 먹는 표정을 어떻게 그렇게 잘 내? 레몬 좋아 하는 것 맞는데 뭐!"

  나는 레몬을 좋아한다는 거짓말을 하고 이야기를 계속 했고 옆에 있던 간호사는 손목시계에 손가락을 올려놓으며 의사에게 눈치를 줬다. 나는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도 없이 진료실에서 나와야 했다.

 

 나는 옥상에 올라가 담 앞에 섰다. 담은 그리 높지 않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는 환자들이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지도 모른다. 나는 담에 바짝 다가서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일어섰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는데 그 바람은 박자를 가지고 내게 왔다. 한 번의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쓸고 가면 몇 초 후에 조금 약한 바람이 뒤를 이어 왔고, 또 몇 초 후엔 방향을 바꿔 적당한 세기의 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렸다. 나는 눈을 감고 단추를 푼 후 소매를 걷었다. 조금 더 많은 피부가 바람에 노출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내 의도대로 소매를 통해 들어온 바람이 배와 등을 거쳐 전신을 휘감았다.

 

  병원에 있으면서 내 영혼은 바람을 좋아하게 됐다. 걸을 수 없는 내가 날수 있는 바람을 좋아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유롭게 모든 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특권이 바람에겐 있다. 나는 그 특권을 뺏으려고 바람의 멱살을 잡지만 바람은 뱀처럼 잘 빠져나가곤 한다.

 

  나는 바보처럼 바람에게 소원을 빌었던 적이 있다. 그 소원은 나를 들어 올려 하나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는데 조한이나 두호천사가 들었다면 크게 혼냈을 이야기다. 그 둘은 그런 식의 기적을 싫어했으니까.

 

  나는 조한이 보고 싶다. 현실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조한의 지도와 인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동민을 죽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모든 것이 내 실수니까 나를 죽여 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단의 꼬임에 빠져서 천사들의 계획을 망쳤으니까 나를 미워해 달라고, 마두가 천사들의 사랑으로 변화될 기회를 뺏었으니 나를 때려 달라고, 천사의 신분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서 천사라는 이름을 땅에 떨어뜨렸으니 모든 죗값을 달게 받겠다고 말하고 싶다.

 

  잠시 후,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있어서 평형을 유지하기 힘든데다 다리가 몸을 지탱하는 것이 어려워 휘청거렸다. 나는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바람을 핑계로 떨어지면 자살이라는 큰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니까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바람의 박자를 기억하며 세게 불어오는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곧, 내 몸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바람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귓속 깊숙이 들어가 뇌를 관통한 후 반대편 귀로 나왔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며 바람을 기다린 후, 바람이 옷깃을 스치자마자 몸을 기울였다. 나는 바람 속으로 들어갔다. 바람은 나를 안아 올렸고 나는 하늘을 날았다. 이제 떨어지기만 하면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는 머리를 아래로 내렸다. 그래서 땅으로 떨어질 때, 머리가 먼저 닿게 했다. 하지만 바람은 나를 원래의 위치로 데려다 놓았다. 나는 힘이 빠져 휠체어에 엉덩이를 갖다 댔고 휠체어는 마지막 바람의 박자에 맞춰 뒤로 굴러갔다.

 

  죽음에 실패한 나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았고 물리치료도 받지 않았고 약과 주사도 내 몸에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주치의와 담당간호사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하지만 내 생일인 오늘부터 나는 조금씩 움직였고 말도 하기 시작했다. 태어나던 날이 기억나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 있는 것일까? 죄로 물든 지금의 모습을 지우고 깨끗한 아기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것일까? 아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

 

  나는 그냥 지금의 나로 고통을 더 받아야 한다. 죽음보다 더 비참한 지금의 모습으로, 절망이 온 몸을 뒤덮은 지금의 나로 계속 사는 것이 나를 죽이는 것이다.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병원 안에 있는 교회의 목사님과 직원들이 찾아와 축가를 불러줬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고 그 사랑을 지금도 받고 있다는 가사의 축가였다. 나는 그들의 축가가 잘못 됐다고 항의했다. 그들은 나처럼 말하는 사람을 처음 본 것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축가를 멈췄다. 목사님은 직원들의 눈치를 보다가 나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무슨 천사가 이래요? 노래 부르는데 분위기 망치는 게 도대체 어디 있어.”

 "내가 천사라고요?”

 "그럼! 천사지! 내가 모를까봐. 우리병원에 천사들이 얼마나 많이 입원 했었다고, 그런데 다른 천사들은 당신처럼 안 그랬어요. 전부 다 병원생활 잘하다가 갔지."

 "여하튼 축가가 이상해요. 그만 하세요. 그리고 빨리 나가세요."

 "뭐가 잘 안 돼? 왜 이렇게 까칠해 정말."

 "나는 지금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는데, 왜 지금도 그 사람을 받고 있다고 하냐고!"

 "당신 천사 된지 얼마 안 됐지? 딱 보면 알아! 아직도 사람의 성격이 남아 있어 가지고. 어쨌든 당신을 위해 기도할게요.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참으면서 천사해요. 알겠죠.”

 

  나는 대답 없이 그들을 밀어내고 한 참을 고민했다. 나는 아직도 천사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아니면 대천사일까? 아니면 악마일까? 그것도 아니면 천사와 악마를 동시에 죽인 일등 살인자일까? 조한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쩌면 이 질문들의 답은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생일이 지난 며칠 후, 주치의가 차트와 흰색 봉투를 가지고 병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퇴원하라고 말했다. 나는 입원비를 더 낼 테니 걸을 수 있을 때 퇴원하겠다고 말했다.

 

  의사는 종합병원에서는 오랫동안 있을 수 없으니까 이해해 달라고 했다. 나는 내 상황을 먼저 이해해줘서 퇴원을 좀 미뤄달라고 다시 말했다. 의사는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고 했고 나는 얼굴을 붉히며 이런 식으로 하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다음 창문 곁에 놓인 화분을 의사에게 던졌다.

 

  옆에 서있던 간호사가 몸을 날려 그 화분을 막았다. 의사는 황급히 몸을 피해 병실을 빠져 나갔고 간호사의 머리에선 피가 솟구쳤다. 곧 경비원이 들어와 나를 위협했는데 나는 그들의 위협을 막기 위해 닥치는 대로 주변의 물건을 던졌다. 그러던 중 경찰이 왔다. 경찰은 내 다리를 보더니 경계하던 눈빛을 풀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나는 알고 있는 경찰간부들의 이름을 나열했고 경찰은 경비에게 다가가 다친 곳이 없으면 좋게 끝내자고 했다. 그러나 경비는 내가 던진 인터폰에 머리를 맞고 혹이 났다며 경찰을 윽박질렀고 경찰은 혹을 보더니 이까짓 것 금방 들어간다고 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펴 그 혹을 누르기 시작했다. 경비원은 비명을 질렀다.

 

  경찰은 한손으론 혹이 잘 들어가지 않자 다른 손까지 포갰다. 잠시 후, 신기하게도 혹이 들어가자 경비원들은 방을 나갔고 경찰은 내게 거수경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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