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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천사의 후예들
작가 : paulpark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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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 번째 회심 - 2
작성일 : 16-09-20     조회 : 851     추천 : 0     분량 : 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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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 줄 가족이 없었다. 아버지는 죽었고 친엄마도 죽었고 새엄마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일한 핏줄인 이복형은 정신이 나간 채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다리로는 운전을 할 수 없으니 혼자서 집까지 갈 수도 없고 택시를 탄다 해도 집까지 짐을 들고 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

 

  나는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숫자 1을 눌렀다. 짧은 벨이 울리고 도착한 1층 로비를 지나 나는 회전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휠체어는 회전문을 통과하기 힘들었고 나는 문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고장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리고 몇 분 후, 119 구급대원들이 왔다.

 

 그들은 침착하지만 빠르고 정확한 행동으로 나를 회전문에서 빼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천사처럼 나를 안아서 차로 이동시켰다. 그들은 아픈 다리를 잘 받혀주었고 차에 올라탈 때는 번쩍 들어 올려 한 번에 태워주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앰뷸런스의 내부구조를 구경하며 집까지 갔다.

 

  친구들이 몇 번 집으로 와 돈을 빌러 갔을 때를 빼곤 나는 줄곧 혼자 있다. 밥은 거의 다 시켜 먹고 생필품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든지 아니면 집 앞 마트에 전화해 배달을 부탁한다. 하나가 해준 음식이 너무 먹고 싶을 땐 손가락으로 혀를 때린다.

 

 둔해진 미각이 다른 음식을 하나가 해준 음식으로 오해하길 바라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나는 폐인이 됐다. 머리카락은 이발을 하지 않아 어깨에 닿았고 수염은 턱에 닿았다. 그리고 잘 씻지 않은 팔꿈치와 복사뼈는 갑각류의 껍질처럼 변했다. 편중된 메뉴선택으로 비타민과 무기질이 부족해 자주 어지러웠고, 입안이 부르터 피가 났으며 밤엔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에 온 이후로 자주 악몽을 꾸었고 꿈을 꿀 때 마다 난 땀 때문에 침대엔 악취가 가득했다. 가사도우미를 구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수입이 끊긴 상황에서 그동안 모아 둔 돈으로 매달 150만원을 지출한다면 나는 금방 거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냄새나는 채로 계속 사는 것을 선택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취미를 넘어 생활이 됐다. 다친 다리를 가지고 있어도 손가락만 멀쩡하다면 게임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 좋았고 내가 원하는 데로 움직이는 유닛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잘 쓰는 전술은 빠른 자원채취를 한 후, 되도록 많은 저글링을 만들어 그들의 움직임을 빠르게 업그레이드해서 상대편의 본진 깊숙이 들어가 일꾼유닛과 중앙기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라커를 만들어 오버로드에 태운 후 상대편의 확장 기지를 파괴하고 본진에 히드라를 보내서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다. 나는 한 번에 쉬지 않고 53시간 동안 게임한 적도 있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물만 조금 먹고 게임을 계속 했었는데 45시간이 지나자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았고 모니터도 과열돼서 원래의 색을 잃었었다. 그래도 나는 끈기 있게 게임에 열중해서 8시간을 더 했고 198승 16패의 성적을 거뒀다.

 

  그런 식으로 게임에 빠져 지낸 지 한 달 만에 1,000승을 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대견해하며 만세를 불렀다. 나의 전적을 보고 지레 겁을 먹은 게이머들은 나와 게임하는 것을 피했고 나는 할 수 없이 다른 아이디를 만들어 게임을 해야 했다. 한번은 게임채널의 이벤트로 프로게이머와 배틀넷에서 붙은 적이 있었는데 3:2로 내가 이겼다. 그 게임을 지켜 본 많은 팬들은 축하와 격려메시지를 보내주었고 나에게 진 게이머는 그 해 리그결승에 올라 우승했다.

 

  나는 발가락으로 채널을 돌리다 눈에 띄는 얼굴을 TV화면에서 발견했다. 그 얼굴은 내 다리를 수술한 의사의 얼굴이었다. 그는 박수를 치는 사람들과 목에 꽃을 거는 사람들 틈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사진기자들은 그 웃음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리포터가 긴 마이크를 그의 코에 갖다 대고 질문했다.

 

 "정형외과 의사로는 처음으로 미국정부가 선정한 올해의 과학자로 뽑히셨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평상시와 비슷합니다."

 "미국의 일류병원들이 박사님에게 보낸 러브콜을 왜 거부하셨죠."

 "저는 저의 의료기술을 모국의 환자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각별한 사랑과 관심을 보내주신 대호병원 최혜한 박사님께 은혜를 갚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내일부터 저는 대호병원에서 근무합니다."

 

  리포터는 몇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나는 그가 대호병원에서 근무하게 됐다고 말하는 것을 끝으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청각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억울한 과거와 불길한 예감이 뇌 속에서 교차되어 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의미하는 사실을 분별하고, 그 속에 담긴 숨은 뜻을 유추하는 것에 힘을 다 써버려서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판사의 집에서 개에게 물려 뜯긴 후 응급실로 실려가 수술을 받았을 때, 수술실에 있던 간호사는 정형외과 과장에게 수술을 받지 못 하고 당직 레지던트에게 수술 받으실 뻔 했는데 참 잘 됐다고 말했다. 그 간호사가 더 말해줘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원래 수술이 없는 날인데도 그 과장이 수술실에 들러 응급환자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뼈만 남은 다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해 하던 레지던트가 수술 방으로 과장을 안내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생각을 시작으로 수많은 질문을 만들었다. 나를 수술한 의사는 왜 수술이 없는 날 수술실로 왔을까? 판사의 아내인 박사가 의사에게 베푼 사랑과 관심은 무엇일까? 박사와 의사의 관계는 정확히 어떤 것일까? 왜 앰뷸런스는 나를 가까운 다른 병원에 데려다 주지 않고 그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갔을까? 그는 왜 내 발목과 무릎의 뼛조각을 제거하지 않았을까? 그는 왜 미국의 유명한 병원으로 가지 않고 한국의 병원에서 근무하려 할까?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대호병원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외출에 겁이 났다. 그래서 아침부터 먹은 마음을 오후 3시가 다 돼서야 행동에 옮기고 있다. 나는 물티슈로 간단히 세수를 한 다음, 냄새 나는 머리카락에 스킨로션을 발랐다. 그리고 반바지를 입어 다친 다리가 잘 보이도록 했다.

 

  나는 휠체어를 거꾸로 운전해 문을 나온 후 엘리베이터를 탔다. 옆집에 사는 여자 고등학생이 열림 버튼을 눌러주어 문에 몸이 끼지 않을 수 있었다.

 "아저씨, 몇 달동안 보이지 않더니 교통사고 나신 거예요?”

 "…."

 "누가 운전을 했기에 사람다리를 이렇게 만들어나. 아저씨, 누구예요? 누가 아저씨 다리를 이렇게 만들어 놨어요. 여자에요? 술 먹은 사람이에요? 무면허 운전자에요? 말해 봐요. 열 받아 죽겠네. 이 다리로 어떻게 살라고!"

 "방학했니?”

 

  방학은 아직 안했고 정학을 당해 쉬고 있다는 학생의 대답을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곧, 집 앞 횡단보도에서 차를 운전하고 가는 그 학생을 봤다. 학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렸고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봤다.

 

  비어있는 택시들은 손을 흔드는 나를 지나쳐 갔다. 한 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십 대가 그랬다. 나는 눈물이 나려했다. 졸지에 아무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둘째치고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활도 하지 못하게 됐다는 생각이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는 침을 삼켰고 코에서 입까지 내려온 눈물도 같이 삼켰다. 눈물의 맛은 매웠고 매운 맛을 내게 하는 입자들이 혓바닥에 박혀 빠지지 않았다.

 

  내 마음에 후회가 밀려들었다. 천사들을 배신하고 단과 함께 마두를 죽인 내가 미치도록 싫었다. 동민을 먼저 올려 보낼 생각은 안하고 나 먼저 살겠다고 동민을 뒤에 올라오게 한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병원 옥상에서 떨어져 죽지 않은 것이 억울했고 이상한 바람이 나를 살려 준 것이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나는 다시 죽기로 결심했다. 죽음은 쉽다. 달려오는 차를 향해 바퀴를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나는 양손으로 두 바퀴를 꽉 잡았다. 이빨도 손처럼 꽉 맞물리게 한 후 바퀴를 앞으로 밀었다. 마침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가 보였다.

 

  이제 곧, 나는 죽을 것이다. 더 이상 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동물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이상과 꿈을 상실한 채 공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차가 내 앞으로 오는 느낌이 들었다. 바퀴와 도로가 만드는 소리가 점점 커졌고 엔진이 움직이는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나는 쇄골이 귀에 닿도록 어깨를 들어 올린 후,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차와 부딪힐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차는 내 1센티미터 앞에서 멈췄다. 나는 차가 만든 빠른 공기에 살짝 밀렸을 뿐,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다리는 제가 그런 것이 아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데 왜 도로 한가운데에 계셨어요?”

 "죄송합니다."

 

  나는 휠체어를 돌려 인도로 올라가려 했지만 도로와 인도의 높이차이 때문에 뒤로 넘어졌다. 나는 아스팔트에 닿은 후두골이 아팠고 다친 다리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가 골반부터 새끼발가락까지 저렸다.

 

  그는 자신의 승용차로 나를 데려다 놓고 도로에 놓인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운전석에 앉아 지갑을 꺼내 나에게 명함을 건넨 그는 시동을 걸었고 나는 명함을 확인했다. '천사 바비큐 사장 박배만'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혹시, 천사입니까?”

 "네?”

 "아니에요. 아니면 됐어요. 저는 대호병원으로 갑니다. 그쪽 방향이시면 좀 태워주십시오."

 "반대방향이지만 태워드리겠습니다."

 

  대호병원은 컸다.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만큼은 아니었지만 10층 이상의 건물이었고 옆으로도 넓었다. 건물 1층의 왼쪽은 응급실이었고 오른쪽은 로비와 접수처였다. 나는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오르막길이 없는 현관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계단위로 올려달라는 부탁을 하려 했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건물에 쓰인 병원 전화번호를 누르고 원무과의 어떤 직원과 통화했다. 나와 통화한 직원은 한참이 지나서야 동료 한 명을 데리고 내게 왔고 아무 말 없이 나를 들어 올려 문 앞으로 이동 시킨 후 다시 들어갔다. 나는 친절하지 않은 직원의 행동에 기분이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진료과목을 게시한 판에서 정형외과를 찾았지만 정형외과는 진료과목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접수 직원에게 어제 TV에 나온 의사의 진료를 보러 왔다고 말했다. 그 직원은 잠시 동안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성형외과로 접수해 주었다. 나는 궁금한 것이 생겨 질문했다.

 "정형외과 의사가 왜 성형외과 진료를 보죠?”

 "한 글자 차인데 뭘 그래요. 그 선생님은 다 잘하니까 가서 한 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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