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앞은 환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대기 의자 옆으로 휠체어를 주차시킨 후 주변을 둘러봤다. 병원의 안은 밖과 달랐다. 밖은 깔끔하고 아름다웠지만 안은 페인트가 벗겨진 벽에 군데군데 곰팡이가 있었다.
그리고 천장의 모서리는 거미줄이 쳐 있었고 입원 환자들이 입고 있는 옷은 환자복이 처음 보급됐을 때 만들어진 것처럼 낡은 것이었다.
나는 많이 남아있는 대기시간 동안 병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엔 진료실이 빼곡하게 있었는데 진료실 앞의 대기의자마다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진료과목을 표시한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산부인과1, 산부인과2, 산부인과3, 산부인과4, 산부인과5, 산부인과6, 정신과1, 정신과2, 정신과3, 정신과4, 정신과5, 정신과6. 2층엔 성형외과만 있기 때문에 이 병원은 성형외과와 산부인과, 정신과만 있는 것이다. 나는 내과가 없는 병원을 처음 봤기 때문에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내가 가진 의문을 물어봤다. 하지만 간호사는 손을 저으며 대답하지 않았고 곧 진료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을 봤다. 산부인과 앞엔 여자들만 앉아 있었는데 임신부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들 중 몇 명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교복을 입지 않은 여자들도 교복을 입고 있는 여자들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지 않았다. 정신과 앞에는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남자들이 많았고 거의 다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복도의 끝엔 여러 가지 클리닉이 있었는데 이런 것이었다. 가족계획 클리닉, 우울증 클리닉, 마약클리닉.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고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엔 환자 한 명과 간호사가 타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조금만 옆으로 움직여 줄 것을 부탁했지만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비스듬히 휠체어를 놓고 숫자 '4'를 눌렀다. 잠시 후, 4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나는 바퀴를 움직여 문이 닫히기 전에 내리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내 옆에 있던 환자가 나의 다리를 잡아끌어서 나는 내릴 수 없었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높은 층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환자가 자기의 손으로 내 목을 꽉 쥐었다.
간호사는 약간만 당황해하며 환자를 말렸지만 환자는 더 센 힘으로 내 목을 졸랐다. 그의 눈은 살기로 가득 찼고 핏줄이 서있었다. 나는 발로 그의 배를 밀었지만 그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간호사가 나를 보고 말했다.
"아저씨가 조금만 참아요. 죽이진 않을 거예요. 오늘 아침 약 먹고 이렇게 됐는데, 곧 괜찮아 지니까 그냥 가만히 계시면 돼요."
간호사의 말이 맞았다. 엘리베이터가 6층에 도착하자 환자는 내 목에 있던 손을 자신의 엉덩이로 가져갔다. 나는 갑자기 열려지는 기도로 많은 산소를 흡입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의 눈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뀌었다. 순진한 눈동자는 내 얼굴을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엉덩이에 놓인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6층에 내렸다. 6층은 병실마다 쇠창살로 막혀져 있었고 몸이 큰 남자 간호사들이 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일어섰다.
나는 그들에게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바퀴를 뒤로 굴렸다. 바퀴가 뒤로 구르는 소리와 함께 벽 너머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는 동물이 도축당할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오싹해진 등골을 등받이에 갖다 대고 다시 2층으로 내려왔다.
진료실 앞에 있는 간호사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크게 대답한 후 팔로 바퀴를 세게 밀어 진료실 앞으로 갔다. 간호사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본 후 어디를 성형하기 원하는지 물어봤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코'라고 대답했고 간호사는 내 코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실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간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나는 발로 문을 밀어 휠체어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코를 고쳐서 뭐하게?”
의사의 반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나는 침착하려 애썼다.
"이제 보니 코는 괜찮네요."
"그럼 나가 봐! 바쁜 데 이런 사람 왜 들여 보네!"
의사는 간호사에게 소리치며 볼펜을 던졌고 간호사는 날아오는 볼펜을 잡아 주머니에 꽂았는데, 거기에는 이미 많은 볼펜이 꽂혀져 있었다. 내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계속 그대로 있자 의사가 시비를 걸었다.
"뭐야? 너 뭔데!"
"이제 다리 안 고치고 얼굴 고치냐?”
"뭐? 무슨 소리야, 무식한 새끼. 의사는 아무거나 다 할 수 있어."
"내 무릎하고 발목에 있는 뼛조각 왜 안 뺐어? 나 그것 때문에 제대로 서있지도 못해. 알아?”
"네 무릎을 내가 수술했니?”
"기억도 못하는 구나. 멍청해 가지고."
의사는 바퀴가 달린 의자를 굴려 내 앞으로 와 다리를 쳐다봤다.
"기억난다. 박사님이 부탁해서 내가 수술한 놈이구나. 그런데 뼛조각이 뭐 어떻다고 그러는 거야. 네 다리가 붙어 있는 것에 감사해야지. 원래는 그냥 자르라고 했어. 알아? 그래서 내가 톱까지 다 준비해 놨었다고."
"그런데 왜 자르지 않았지?”
"이 다리는 달고 있는 게 더 불편하니까 내가 알아서 안 자른 거지. 잘랐으면 의족차고 여기저기 잘 다녔을 걸."
"너도 악마냐?”
"너도 천사냐? 웃기지도 않는 놈. 네가 어떻게 살아왔었는지 난 다 알고 있어. 1초전까지 네가 뭘 하고 있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박사와는 무슨 사이지?”
"돈을 나눠 쓰는 사이. 아니면 양자. 그것도 아니면 동료. 하나만 더 말하라면 동업자."
"사람들 얼굴 고쳐서 박사에게 돈 벌어 주려고 여기서 근무하는 거냐?”
"너, 정형외과 수술해서 돈 얼마나 벌 것 같아. 무거운 다리 힘들게 수술해도 얼마 안 돼. 그런데 턱 조금 갈고 코 조금 높이면 다리 몇 개 한 거랑 맞먹지. 힘들게 공부하고 연구해도 돈이 안 되면 재미없잖아.”
"혹시, 하나를 알아?”
"뭔 소리야?”
나는 휠체어를 돌리고 문을 열었다. 그를 의료사고와 관련해 고발하고 싶었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의료분쟁에서 환자가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의사는 나처럼 말 잘하고 판사와의 인맥이 넓은 변호사 한 명만 찾으면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
수술시간에 졸다가 사람을 죽여도 환자가 수술 전 서명한 수술동의서만 있으면 죽음에 대한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의료기법을 시험하다 환자를 장애인을 만들고, 병을 더 진전시켜도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려며 직접 의대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한 다음 졸업해서 자기가 가진 질환의 전문의가 되기 전까진 불가능하다.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악마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처지가 억울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악마들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 나와 비슷한 억울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어쩌면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 모두 박사의 지시 하에 이상한 치료를 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주먹을 쥐고 벽을 쳤다. 벽은 흔들렸고 내 손은 부러진 것 같았다. 곧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 관절이 아팠지만 나는 손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악이었다.
생명을 죽이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악의 실체가 눈앞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병원을 나와 거리로 갔다. 어두워진 거리엔 여기저기서 싸움이 일어났다. 싸움은 거칠었고 무기가 동원됐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 곁에 서서 팔짱을 낄 뿐,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칼이 날아다니고 방망이가 부러졌다.
나는 바퀴를 굴려 싸움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던지는 무기를 손으로 낚아챘다. 하지만 그들은 자리를 이동해 또 싸웠다. 잠시 후, 도로에 오토바이가 가득차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이 그 오토바이에 타고 있었는데 쫓아오는 경찰에게 욕을 퍼붓고 주머니에서 화약을 꺼내 던졌다.
그들의 표정은 어둡고 무서웠다. 물론 웃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 웃음은 기쁨의 감정에서 빗나간 웃음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젊음이 만들어낸 악이 질서를 파괴하는 장면은 가슴이 아팠다. 나는 휠체어를 세게 밀어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은 간단한 복장만을 하고 거리를 서성였다.
택시에서 내린 남자들은 주위를 몇 바퀴 돌아 여자를 골랐고 선택된 여자들은 남자들의 팔짱을 꼈다. 나는 다리가 갑자기 아팠다. 이식된 피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손톱으로 피부를 긁어 통증을 잊으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여자들이 너무 불쌍했다. 그들은 태어날 때 가졌던 꿈을 잃어버린 가련한 영혼들이다. 죄와 친구가 된 것을 후회하고 있지만 벗어날 수 없는 굴레 때문에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그녀들이 지금부터 순결한 신부가 되기 위해 노력해도 그들을 노리는 악마들은 허리띠를 풀고 그녀들을 찾아올 것이다. 나는 눈이 아팠다. 마치, 거친 물체가 닿는 것처럼. 그리고 보이지 않는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보지 않으려 한 것이다. 나는 손으로 귀를 가렸다. 아무 것도 듣지 않으려 한 것이다. 하지만 눈 속에도 악은 있었다. 그것은 나였다. 눈을 감고 있으니 남의 악은 보이지 않고 내 악이 보였다.
나는 더러운 영혼이었다. 천사로 살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욕심이 뱃속에 가득하고 불의가 가슴속에 꽉 찼으며, 손끝엔 정욕이 가득하고 도둑질과 간음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이웃의 것이 내 것보다 좋으면 탐을 냈고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남도 갖지 못하게 했다. 거짓말로 돈을 벌었고 진실을 숨겼으며, 아무도 없는 곳에선 도덕과 법을 지키지 않았고 양심이하는 말을 매번 무시했었다.
나는 머리카락이 뽑히는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손톱으로 두피를 긁어 통증을 줄였다. 그리고 힘없는 팔을 휘둘러 휠체어를 움직였다. 나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아니, 천사들에게 가고 싶었다.
운 좋게 택시를 타고 ‘천후’에 도착한 나는 문 앞에서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양심이 아니, 영혼이 하는 책망을 받아들이기로 한 자세였다. 나의 마음은 낮아졌다. 마음속에서 깊은 뉘우침이 일어났는데, 그 뉘우침은 누군가가 원해서 내 마음 속에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내가 일으킨 감정이었다.
나는 나의 죄를 알고 있다. 나는 두 명의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수천 명의 사람도 죽였다. 두 명의 사람은 마두와 동민이고 수천 명의 사람은 여태껏 내가 미워한 사람들이다. 나의 차가운 말투에 코끝이 얼어버린 사람들, 나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빼앗긴 사람들, 나의 이간질로 신용과 돈을 잃은 사람들, 나의 욕망에 희생된 여자들, 내가 무시하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회적 약자들을 죽였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육체를 죽인 것은 아니지만 육체보다 더 소중한 그들의 영혼이 나의 미움과 저주로 죽은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들의 영혼이 죽는 것을 보고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영혼과 삶이 망가지고, 무시당하고, 나약해지는 것을 보며 내가 승리하고, 높아지고, 부요해지는 줄 착각하며 기뻐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구제불능의 죄인이다. 눈을 감고 뉘우치는 것으로 죗값을 치를 생각은 없다. 나는 죽음으로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지은 죄는 물질적인 보상으론 불가능 할 만큼 큰 것이고, 위로와 사과로 복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사망하는 것으로 값을 치르기 전엔, 결코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다. 나는 왜 죄와 함께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일까?
혹시, 누군가 나를 위해 그 죗값을 대신 치른 것은 아닌가, 내가 죽어야 할 이유를 대신 짊어지고 죽은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지금 살아있을 수 없다. 그럼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 누가 나를 대신해 죽은 것일까? 나는 ‘천후’로 들어가 조한에게 물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