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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천사의 후예들
작가 : paulpark
작품등록일 : 20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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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자의 사과 - 1
작성일 : 16-09-22     조회 : 566     추천 : 0     분량 : 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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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여자의 사과

 

  벨소리가 났다. 우리는 그 소리가 아파트 관리실에서 광고하기 전에 나오는 멜로디인 줄 알았지만 소리가 그쳐도 사람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두 번째로 울리는 벨소리를 들으며 나는 전자레인지의 작동시간이 끝나서 나오는 멜로디인 줄 알고 주방에 가서 확인해 봤지만 전자레인지의 전원코드는 아예 뽑혀 있었다.

 

  동준천사는 하나의 핸드폰 벨소리와 비슷하다며 핸드폰을 찾기 위해 또 이 방 저 방을 뒤졌다. 우성천사는 밖에서 나는 소리 갔다며 창문을 열어 귀를 내보냈지만 소리는 집에서 나는 것이었다.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인터폰의 액정에 최봉의 얼굴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벨소리는 거기서 나는 것이었다. 동준천사는 액정 속 최봉의 얼굴을 보며 저렇게 심한 화상은 처음이라고 과장된 표현을 했고 우성천사는 고통이 너무 컸을 그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지 상의했다. 우리들의 생각은 또 나뉘었다. 나의 생각은 그에게 취미나 직업을 가지게 해서 하루하루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었고, 동준천사는 그가 자살 할 수 없도록 당번을 정해 감시하자고 했고, 우성천사는 그의 마음속의 상처를 다 드러낸 다음 위로해주고 꿈을 가질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문을 밀고 들어오는 그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이 얼굴의 반이 돼 있었고 크게 벌린 입으로 침이 조금 흘러내렸다. 하지만 집에 있는 사람이 하나천사가 아니라 우리인 것을 보고 그는 처음에 지었던 표정의 반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 셋을 훑어보다가 나에게 다가왔다. 다가오는 그에게선 술 냄새가 심하게 났다. 나는 자동으로 코를 집어 냄새를 피했다.

 

  그는 나의 멱살을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앞으로 흔들린 땐 목젖이 그의 주먹에 맞았고 뒤로 흔들릴 땐 디스크가 아팠다. 동준천사가 그의 손목을 꺾어 겨우 멱살에서 나온 나는 숨을 헉헉 댔다. 조금만 늦었으면 천국에 갈 뻔했다.

 

 "왜 내 목을 조른 거야?”

 "너 아직까지 하나 씨 못 찾고 뭐 한 거야!"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먹었어."

 "안녕하세요. 저는 우성천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저는 동준천사예요."

 "천사? 미친놈들. 생긴 건 꼭 제비같이 생겨가지고 천사라고? 천사는 다 너희들처럼 잘 생겨야 되냐? 그럼 나는 악마겠네! 얼굴이 이렇게 흉하게 생겼으니까."

 

  동준천사는 우성천사의 명령으로 꿀물을 타왔다. 그는 소주를 대접에다 주는 줄 알고 고맙다며 벌컥벌컥 마시다 혓바닥을 뎄다. 동준천사가 타온 꿀물은 비상식적으로 뜨거웠다. 우성천사는 업무상 과실을 한 동준천사의 귀를 잡아 위로 올렸고 동준천사는 발끝을 올려 귀가 얼굴에 붙어있게 했다.

 

  나는 냉동실에서 얼음을 가져다가 그의 입에 넣었다. 하지만 이런, 너무 낮은 온도 때문에 건조해진 얼음이 입술에 달라붙었다. 그는 아마 입 속은 뜨겁고 입술은 차가워서 미칠 것 같았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최봉 씨를 도우려다 그만."

 "다 필요 없어. 저리 가! 너희들 천사 맞아? 이젠 천사도 나를 우습게 봐, 정말 짜증나네!"

 

  최봉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식칼을 가지고 거실로 나왔다. 나는 소파 뒤로 몸을 옮겼고 우성천사는 그에게 한 발 다가섰다. 그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 뇌가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그가 얼마든지 살인이라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준천사에게 우성천사를 뒤로 오게 하라고 손짓했다. 동준천사는 우성천사의 허리를 잡아당겼지만 우성천사는 발바닥에 힘을 주고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어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아침보다 더 힘이 생긴 다리는 걸을 만 했다.

 

  걷는 다는 사실에 놀랄 겨를 없이 동준천사의 곁으로 간 나는 그와 팔을 섞어 우성천사를 세게 잡아당겼다. 하지만 뿌리가 깊게 박힌 나무처럼 가만히 있는 우성천사의 머리카락이 맘대로 휘두르는 최봉의 칼에 잘려 나갔다. 하마터면 귀가 잘릴 뻔 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우성천사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천사의 눈이 자기를 무시하는 눈빛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더 크게 칼을 휘둘렀다.

 

  우성천사의 머리카락이 거의 없어졌을 때, 그는 소파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코고는 소리가 공기 중으로 나오지 못하고 소파 속으로 들어가 다행이었다. 그가 반대로 누웠다면 큰 소리에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술이 깬 다음 준비한 작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성천사는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상처를 끄집어내서 그의 입으로 고백하게 하고 우리의 위로와 도전을 통해 그가 스스로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동준천사는 식탁의자에 앉아 몸을 반으로 접고 잠이 들었다. 우성천사는 거실바닥에 누워 팔로 베개를 삼아 잠이 들었다. 나는 하나의 방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침대에 기대 고개를 뒤로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내려 다리를 봤다. 뼈와 피부밖에 없던 다리가 어제보다 통통해 진 것 같았다.

 

  수술한 조직에 염증이 생겨 탱탱하게 부은 것이 아니라, 뼈와 피부사이에 무엇이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발목을 위로 들어올렸다. 평소엔 발가락만 올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발목이 조금 올라왔다. 그리고 새끼발가락 쪽으로 비스듬히 올리는 동작과 엄지발가락 쪽으로 비스듬히 올리는 동작이 다 됐다. 신기했다. 몇 달 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다리가 갑자기 움직이고 없던 것이 생겼으니 신기할 만했다. 아니, 이것은 어떤 것을 처음 본 다음 느끼는 신기함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것은 기적이다.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과학과 의학의 연구를 아무 소용없게 하는 기적이다.

 

  상상 속에서도 힘든 일이 눈앞에 펼쳐진 것을 기적이라는 말 이외의 다른 말로 표현할 방법은 없다. 다시 한 번 이것은 기적이다. 그렇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모두 기적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 진 것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나는 걷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언젠간 걸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나에게 이런 다리를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나를 만나러 갈 때 두 발로 서서 두 다리로 당당히 걸어가고 싶었다. 누군가 나의 마음속의 바람을 알아차리고 전능한 힘을 내 다리에 주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아직도 마두와 동민을 죽인 죗값을 치러야 하는 죄인이라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다리가 움직이고 힘이 생긴 것은 누군가가 나의 모든 죗값을 치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가 나의 든든한 후원자요, 전능한 아버지가 된 것 같아 황홀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걱정이 들지 않았다. 오늘의 기적이라면 미래의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기뻐서 노래가 나왔고 일어나 춤을 췄다. 춤을 추면서도 다리는 꺾이지 않았고 빠른 박자와 리듬을 따라 잘 움직였다. 나는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 같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물, 물, 물 좀 줘!"

  최봉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는 우렁찼다. 나는 춤을 추다말고 그에게 물을 가져 다 주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어제, 여기서 칼 들고 저기 누워있는 사람 머리카락 자른 것 생각 안 나요?”

 "안나요. 저는 술 먹고 했던 일을 기억할 수 없어요. 어쨌든 미안해요. 가볼게요."

 

  우성천사가 두피를 손톱으로 긁으며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싸움을 경계하며 그들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동준천사는 어디서 났는지 두유에 빨대를 꼽아 마시면서 식탁의자에 앉아 이곳을 쳐다봤다.

 

 "햇살이 이렇게 강한데, 왜 모자를 벗지 않죠?”

 "내가 모자를 벗으면 당신은 기절할지도 몰라."

 "기절? 왜죠.”

 "내 얼굴이 얼마나 흉하게 생겼는지 봐야 알겠어.”

 "네, 보여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가 뭐야? 당신이 하는 명령을 내가 왜 들어야 하지.”

 "최근에 만난 사람이 당신에게 한 말이 뭐죠?”

 "뭐? 최근에 만난 사람이 내게 한 말? 글쎄? 기억이 안 나는데."

 "사람을 만나긴 했었나요? 혹시, 하나천사 이후에 우리가 처음은 아닌가요.”

 "당신 지금 나를 약 올리는 거야?"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당신의 흉터를 더 깊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죠."

 "내가 사람들을 미워한다고? 아니,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는 거야!"

 "변명하지 마세요. 당신은 당신을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미워하는 자신의 마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를 미움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이에요. 당신은 얼굴만 보기 흉한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흉하다고요."

 "뭐? 조용히 안 해!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당장 꺼져!"

 "그럼 좋아요. 내가 당신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렇다면 내가 오해하지 않도록 당신에 대해 말해줘요. 솔직하게."

 

  그는 머뭇거리던 입술에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걸려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걸핏하면 그에게 시비를 걸었고 갖가지 핑계를 가지고 그를 때렸으며 못살게 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의 착한 엄마에게도 그랬다.

 

  주먹이나 발로 때리는 것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흉기를 들고 때릴 때는 정말 무서웠다며 짓는 표정은 그 때의 공포가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화상을 입게 된 이유는 아빠로부터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아빠가 손에 잡히는 물건을 엄마에게 던지다 가스레인지에서 물을 끓이고 있는 주전자를 던졌고 그는 그 주전자 속의 물이 엄마에게 닿지 않도록 몸을 날렸는데 그 물이 그의 얼굴을 덮친 것이다.

 

  그는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벗겨진 피부를 뜯어내며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엄마를 볼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착하고 여린 가슴을 강하게 만들어 친구들하고 기회가 있는 대로 싸웠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댔으며 길에다 침을 자주 뱉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에 관한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나라도 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미워했고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분노를 표출했다.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말해가던 그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의 눈물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엄마에 대한 애절함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는 볼 끝에 걸려있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받아 자신의 가슴에 닦았다. 가슴으로 다시 들어간 눈물이 그를 위로해 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과거를 말한 것뿐인데 왜 울고 있을까? 그리고 왜 우성천사는 그의 눈물을 보고만 있고 울음대신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쳐 주지 않을까? 그를 향한 작전과 계획은 성공한 것인가? 이렇게 성공한다면 정말 너무 쉽게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된다.

 

  우성천사는 그의 눈물이 그친 것을 보고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린다음 속삭이듯 무언가를 말했다. 나와 동준천사는 그 말이 궁금해 귀를 쫑긋 세웠다.

 

 "봉이 씨, 당신은 생명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그건 당신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 다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일찍 죽을 생각하지 말아요. 당신이 있기 때문에 피어나는 꽃들이 많아요. 당신을 비추는 해는 당신이 죽으면 어두워 질 거예요. 세상의 노래 속에 당신이 불러야하는 구절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부턴 숨을 깊게 들이마셔서 당신의 세포들이 예전보다 더 활발해 질 수 있도록 하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코에 남은 눈물을 먹었다. 동준천사가 그를 그의 집으로 바래다주고 1분 만에 돌아왔다. 우리는 그동안 동준천사가 혼자 먹었던 두유가 어디 있는지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돌아온 동준천사는 냉장고의 야채 넣는 칸을 열어 주었고 우리는 하나씩 빼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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