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최봉의 전화를 받은 우성천사는 우리에게 통화내용을 말해주었다. 우리가 다녀간 후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찬 그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없는지 확인하며 지낸다고 했다. 동준천사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우성천사의 다음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리에서 사과를 파는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그녀가 준 사과를 받아들었다. 누군가에게 먹을 것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는 당황하다 그것을 반으로 갈라 먹었다. 사과 먹는 것을 지켜보던 여자는 한번 도 타인의 손길을 느껴본 적 없는 그의 흉터를 만졌고 그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몰랐지만 좋은 느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흉터를 만지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고 여러 가지 대화를 했다. 대화의 끝은 다음 약속을 잡는 것이었고 그 약속한 날이 바로 오늘이다. 최봉은 우리와 같이 그녀를 만나자고 했다. 우리는 데이트의 불청객이 되는 것 보단 천사의 임무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시작으로 회의하다가 그가 좋은 여자를 만나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것을 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회의를 마쳤다.
우리는 약속장소를 찾지 못해 거리에서 30분을 허비했다. 나는 최봉에게 전화해 자세한 위치를 다시 물어보자고 했지만 우성천사는 우리가 직접 찾아가자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간판이 어지럽게 붙어있는 골목길을 더 헤맨 후 동준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다 여기!" 우리는 거기로 들어갔다.
최봉 옆에 앉아있는 여자는 남자같이 생겼다. 못생겼다는 말이 아니라 정말 남자같이 생겼다. 턱에 난 굵은 수염이 화장품의 두께를 뚫었고 코가 넓적했으며 소매 밖으로 보이는 핏줄이 울퉁불퉁했다. 목의 중간에 솟아오른 연골도 내 것보다 높아서 여자로 위장한 남자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피부는 어느 여자보다 깨끗했고 가냘픈 목소리와 짙은 쌍꺼풀을 가진 눈은 여자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도 있었다. 나는 여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이상했다. 여자라고도 할 수 없고 남자라고도 할 수 없는 또 다른 성별이라도 있는 것인가? 만약, 이 여자가 남자라면 최봉은 남자와 사랑하고 남자와 결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자 등에서 무서운 기운이 올라와 온 몸의 피부에 작은 돌기가 생겼다. 그렇다면 그가 이 여자를, 아니 남자를, 아니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는 이 사람을 사랑하게 두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천사들의 옆구리를 찔러 부정적인 표정을 보여주었다. 천사들의 표정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인사하세요. 여기 계신 분은 저에게 사과를 주셨던 아리 씨에요."
우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다시 한 번 아리를 관찰했다. 아리는 차분해 보였다. 몸을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도 여성스럽게 했다. 혹시, 우리가 자신을 남자로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서 일부러 행동을 조심하는 것은 아니겠지….
잠시 후, 동준천사가 사고를 쳤다. 물을 마신 후 컵을 비스듬히 내려 놔서 컵에 있던 물이 그녀의 옷으로 떨어진 것이다. 최봉은 어쩔 줄 몰라 하며 휴지로 그녀의 옷을 닦았고 그녀는 차분한 첫인상을 뒤집을 만한 말을 했다.
"아, 진짜. 조심해야지. 한두 살 먹은 애들도 아니고."
"미안합니다. 하지만 짜증을 낼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짜증? 누가 짜증을 냈다고 그래. "
"그만들 하세요."
우성천사가 대화의 중간에 끼어들어 동준천사와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런 후, 음료수나 커피가 아니라 순수한 물이어서 자국이나 얼룩이 남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한동안 동준천사에게 짜증을 더 내다가 멈췄고 최봉은 어디서 빌렸는지 헤어드라이기를 가지고와 그녀의 옷을 말렸다. 손으로 옷이 다 마른 것을 확인한 아리는 최봉을 자리로 돌려보내고 만남의 목적을 말하기 시작했다.
"최봉 씨, 저랑 같이 갈 곳이 있어요."
"어디죠? 바단가요? 산인가요?”
"병원이에요. 최봉 씨 얼굴을 원래대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의사가 많은 병원을 알고 있어요."
"글쎄요. 제 얼굴은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하던데…."
"누가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해!"
"네? 아니, 저도 병원에 많이 가봤지만 제 피부는 이식이 가능한 단계도 아니고 눈에서 반대편 귀까지 연결되는 흉터는 잘못 건드리면 코랑 눈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될지도 몰라서 수술을 못 한다고 했어요."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그건 최봉 씨를 미워한 의사가 만든 거짓말이에요. 최봉 씨를 그 얼굴로 계속 살게 하려는 나쁜 사람이 그렇게 말한 거라고요.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 저를 따라오세요."
나는 조급하게 그를 일으켜 세우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살짝 꺾었다. 그녀는 나를 노려봤다. 그녀의 눈빛은 쥐를 죽인 고양이의 눈빛 같았다. 나는 그 눈빛을 보고 심장이 장 쪽으로 조금 내려가는 것 같았다. 우성천사는 나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허리 쪽으로 가져왔고 나는 일어나 그녀 앞에 섰다.
"최봉 씨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데리고 갈 수 없어요."
"그럼, 당신은 최봉 씨가 계속 저런 얼굴로 살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왜, 최봉 씨가 잘 생겨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당신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 하나본데 저는 사람의 마음을 봅니다. 최 봉씨의 마음은 이미 상처에서 회복됐어요. 그러니까 굳이 얼굴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당신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최봉 씨가 지금까지 저런 몰골로 살아온 거야. 알아?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얼굴의 흉터보다 마음의 흉터를 먼저 없애야 좋다? 맞는 말처럼 말하는 이런 말들이 최봉 씨를 평생 저 얼굴로 살아가게 한다고! 저게 얼굴이야! 괴물보다 더 못생긴 저 얼굴이 사람의 얼굴이냐고!"
"그런데 왜 당신이 최봉 씨의 얼굴을 바꾸고 싶어 하는 거죠? 최봉 씨를 언제부터 알고 있다고! 최봉 씨의 아픔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당신이 알기나 알아.”
"나는 최봉 씨를 사랑해. 얼굴만 고친다면 나는 저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말리지마."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믿을 만한지 의심하기도 전에 최봉이 그녀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는 울먹이며 여러 가지 말을 했다.
"내가 이제야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니, 고마워요. 내 곁을 떠나지 말아줘요. 우리 집에 당신이 누울 자리는 많아요. 수술하러 빨리 가요."
그녀와 그는 우리를 남겨둔 채 밖으로 나갔다. 동준천사는 넘어졌던 컵에 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신 후, 찻값을 계산하지 않고 나간 두 사람을 원망했다. 우성천사는 고개를 비스듬히 한 채 비어있는 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이 많았다. 걱정은 그의 수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처에서 회복된 영혼이 사랑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거리로 나왔다. 거리의 중간에서 조한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우성천사는 두 팔을 높게 들고 환호했다. 동준천사는 주위의 시선이 창피한 듯 얼굴을 가렸고 나는 팔이 올라간 이유가 뭔지 물었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사가 돌아왔다는 우성천사의 대답에 동준천사는 두 팔을 높게 들고 환호했고 나는 창피해서 얼굴을 가렸다.
내가 질투가 날 만큼 천사들과 일본에서 돌아온 천사는 다정하게 포옹하고, 악수하고, 머리를 빠르게 쓰다듬었다. 그 천사는 내 곁으로와 포옹하고, 악수하고,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두호천사에게 내가 누군지 물었다. 두호천사는 새로 합류한 천사라고 짧게 설명했고 그 천사는 나와 악수 한 후 자신의 이름이 해마라고 말해줬다. 조한은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린 후 눈물을 흘렸다.
다른 천사들도 흥분한 몸짓을 죽이고 두 손을 배위에 올렸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천사들은 조한의 손이 내려가자 그의 주위로 몰려가 일본에 관한 질문을 퍼부었다.
그가 들려주는 일본의 악마들은 독하고 무서웠다. 그들은 갓난아기부터 내일 죽는 노인까지 폭넓은 대상을 공격하는 것을 기본으로 밤낮없이 사람들을 넘어뜨리고, 미움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해지도록 노력한댔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신을 수천 개나 만들어 사람들이 그것에게 의존하도록 한다고 했다.
도석천사는 그 얘기를 듣다가 너무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썼고 조한은 북한과 중국에 관한 이야기로 그 무서움을 더했다. 태어나는 아기들보다 굶어서 죽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북한은 그야말로 황폐한 땅이라고 했다. 풀 한포기 보기위해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하고, 음식을 구하려면 그보다 더 멀리 걸어야 한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쯤 조한은 마음이 아파 아무 말도 못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허리를 숙였고 우리는 듣지 못해도 알 수 있는 이야기에 같이 마음이 아팠다.
나는 천사가 된 이후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아픔과 절망에 관심이 많아졌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와 그 아기의 부모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했고, 성폭행을 당해 미쳐버린 소녀가 내 옆을 지나갈 땐 그녀대신 내가 미치면 안 되냐고 누군가에게 부탁했다.
돌멩이로 친구의 머리를 찍는 고등학생들이 너무 불쌍했고, 그들이 평생을 그런 마음으로 살지 않기를 바랐다. 아프리카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여자들의 다큐멘터리는 끝까지 보지 못했고 잘못된 정책에 항의하다 경찰에게 두들겨 맞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때는 꼭 내 머리가 딱딱한 무엇에 맞는 듯 아팠다. 잘못된 진리를 교육받아서 사람을 죽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외치는 남자들에게 사랑과 용서 없이 어떻게 천국에 가겠냐고 소리를 질렀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죽은 나무처럼 누워있는 사람들을 볼 때는 바다를 헤엄쳐 그들에게 가 십자가가 꽂힌 무덤을 만들어주고 싶었고 살인과 도둑질, 간음에 빠져 있는 민족들을 옳은 곳으로 인도하고 싶었다. 자신이 물고기보다 조금 더 나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미지의 어린이들에게 사람이 얼마나 많은 창조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일일이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일본과 북한, 중국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에 상처가 생겼다.
악은 왜, 세계를 어지럽게 하고 사람들을 무너뜨리며 전쟁을 일으킬까? 악은 왜, 자신의 힘을 저주와 폭력, 질병과 가난으로 나타낼까?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란 말인가? 마치, 선은 없고 악만 존재하는 것 같은 세계 속에 희망은 어디 있고 사람들을 옳은 곳으로 이끌 사랑은 어디서 찾아야하며 악과 대적해 승리할 용사는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모든 민족이 공평과 사랑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해 주는 일은 정말로 불가능하다는 말인가?